풍운사일 1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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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189화
풍운대는 언제나처럼 선두에 서서 달리면서 청문자가 공격하라고 지시한 위치를 노려보았다.
공격 범위에 있는 적들의 숫자는 사백이 넘었는데 점창과 은하문 연합이 질풍처럼 다가오자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절묘한 변화를 보이며 무곡성의 뒤편으로 숨어버렸다.
가로막은 무곡성 병력 사백이 신묘한 기운과 함께 점창을 압박해 오자 이번에는 엄정성과 문곡성 병력 구백이 은하문의 뒤편을 공격해 왔다.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이렇듯 신기한 조화를 이루며 반격을 가해오자 은하문 진형이 금방 혼란 속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청문자는 힐끗 시선을 잠시 줬을 뿐 은하문을 구하지 않고 곧장 점창을 막아온 무곡성 병력을 향해 돌진하며 소리를 질렀다.
“운풍, 여기 병력은 우리가 막겠다. 너는 풍운대와 함께 뒤로 돌아 숨은 파군성을 잡아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빗발치듯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청무자를 비롯한 장로들과 운자배 주력 무인들의 공격이 무곡성 병력을 향해 부딪쳐 갔다.
콰앙!
수많은 전투에서 막강한 위력을 선보였던 점창의 진신력이 진법을 때리자 무곡성의 병력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현묘한 기운이 감싼 진법은 깨지지 않았고 대신 치열한 반격이 개시되었다.
진법이 발동되고 본격적으로 움직임이 시작되자 천왕성 무인들의 신형은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모를 정도로 희미하게 변해갔다.
정말 보면 볼수록 무시무시한 절진이었다.
운풍은 본진이 접전을 시작하자 자신이 이끌던 일도전 백 명의 무인과 함께 뒤쪽으로 돌아 나갔다.
일도전의 전면에는 풍운대가 앞서 달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 눈에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꼬리가 보인다! 풍운대, 놈들을 놓치지 마라!”
무곡성의 뒤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던 파군성 병력이 모습을 보이자 운풍의 입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파군성 병력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은하문은 물론이고 점창 병력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운호는 운풍의 지시를 받자마자 흑풍검을 앞으로 내밀며 무섭게 날아올라 파군성의 후미를 향해 회풍을 날렸다.
무수한 원이 생성되며 파군성의 꼬리를 강타하자 뱀 꼬리처럼 모습을 숨기던 다섯 명이 진형에서 완전히 튕겨 나가며 뻗어버렸다.
파군성의 움직임을 한번 시선에 잡아놓은 운호는 금방 따라잡아 중심을 갈라갔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법이 변화되었으나 파군성의 속도보다 운호의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운호가 중심을 찔러가자 풍운대마저 그 뒤를 따라 파군성의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의 움직임과 동화해서 내부로부터 파괴하려는 생각이었다.
운호를 비롯한 풍운대가 내부를 휘젓자 파군성의 속도가 확연히 느려지며 운풍이 이끄는 일도전에게 따라잡혔다.
그때부터 파군성은 일방적으로 점창 무인들의 검에 의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진형의 내부를 장악당한 파군성 병력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귀신처럼 나타난 녹존성 병력이 운풍의 일도전을 공격했다.
파군성이 위기에 처하자 진법이 변화하며 녹존성의 병력이 방위를 이동해 온 게 틀림없었다.
진법의 신묘함을 등에 업은 천왕성 병력은 무서운 괴력을 발휘하며 돌진해 왔는데, 그들의 진법에 갇힌 점창 제자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이대로라면 전황은 최악으로 치달을 수가 있었다.
얼마나 악전고투를 펼쳤을까.
점창 무인들을 압박하고 있던 신비로운 기운이 갑자기 없어지면서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던 천왕성 병력들이 확연하게 눈으로 들어왔다.
대기하고 있던 남궁세가와 청성파가 칠성의 머리인 탐라성을 공략했기 때문이었다.
보호하던 거문성과 녹존성 병력이 파군성의 위기에 따라 이동해 가자 탐라성이 홀로 떨어지며 진의 외곽을 맴도는 걸 확인한 무림맹 병력이 일거에 탐라성을 공격해 들어갔던 것이다.
탐라성의 이동이 막히자 청문자의 예상대로 천왕무영진이 깨지며 병진을 구성했던 병력들이 고스란히 신형을 노출시켰다.
난전(亂戰).
천왕무영진이 깨지자 진의 중심에서 소진을 구성하며 진을 관장하던 천왕성의 절대고수들이 일거에 난전에 뛰어들었다.
진법을 관장하던 그들은 난전이 시작된 이상 중앙을 지킬 이유가 없었으니 전투부대에 합류해서 선봉을 맡았다.
거의 백여 명에 달하는 천왕성의 핵심 고수들이 천왕소진을 깨고 나와 난전에 합류하자 무림맹 무인들이 퍽퍽 나가 떨어졌다.
천왕성 수뇌부의 무력은 진정 가공할 지경이었다.
무영진 사이에서 적들의 접근을 노리던 천왕성의 특수 타격대는 진법이 공략당하는 것을 보고 즉각 싸움에 가세했는데, 그에 맞추어 대비해 놓았던 무림맹의 삼 개 전투부대도 즉시 전장에 투입되었다.
무당과 모산파의 치열한 공격을 감당하며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버티던 마지막 천왕무영진이 스스로 진법을 깨고 난전으로 뛰어들자 서평은 그야말로 완벽한 난전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천왕무영진만 깨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란 무림맹의 판단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천왕성의 병력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명령 체계를 유지하며 일산불란하게 움직였는데 숫자가 적음에도 무림맹의 무인들을 주살하며 거침없는 진격을 거듭했다.
그에 맞선 무림맹은 문파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며 포위망을 구축해 나갔다.
천왕성의 전투력이 상상을 초월했으나 무림맹 역시 이를 악물고 싸워 나갔다.
격렬한 전투.
어느덧 전투가 시작된 지 두 시진이 흘렀고 서평은 시신들과 피로 물들며 잔인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무인들의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물 속에서 살기로 물들어갔다.
아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형과 동생이 팔다리가 잘린 채 살려달라며 애원했으나 그들은 오로지 적을 죽이기 위해 싸우고 싸웠을 뿐이다.
슬픔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슬펐으나 인간의 본성은 적을 앞에 두고 검을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흩어졌던 점창 무인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한 것은 난전이 벌어지고 반시진이 지난 후였다.
운호가 중심이 된 풍운대가 적들을 쓰러뜨리며 점창 무인들을 찾아 움직이자 점차 검은 전도복이 하나로 뭉쳐졌다.
점창 무인들은 이제 이백이 조금 넘게 남은 상태였다.
백에 가까운 제자들이 죽었으나 대부분 무력이 약한 명자배였고 운자배는 스물도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주력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백의 검은 전도복을 입은 점창 무인들이 사막에서 불어온 흑풍처럼 서평을 관통하며 천왕성의 병력을 치기 시작한 것은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로 솟구쳤을 때였다.
대적불가(大敵不可).
운호를 비롯해서 풍운대와 청문자, 청무자 등 절대고수들이 전면에서 적진을 헤치고 질풍처럼 움직이자 그토록 강력하게 돌진하던 천왕성의 병력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들의 움직임은 그 옛날 홀로 일어나 운남의 길목에서 천왕성의 병력을 전멸시켰던 그때처럼 대적불가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천왕성의 공격에 포위망을 구축하고도 주춤거리며 밀리던 무림맹의 반격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점창이 적들의 선봉을 격파해 줬기 때문에 무림맹은 예기가 꺾인 천왕성의 병력을 상대로 유리한 전투를 벌여 나갔다.
병력과 병력이 부딪치고 절정고수와 절대고수들이 곳곳에서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이를 악문 그들의 표정은 비장하기 짝이 없었다.
인간으로서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슬픈 일이다.
서평에서 벌어진 전쟁은 거의 하루가 꼬박 걸렸다.
천왕성의 무림일통의 꿈과 굴복과 굴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무림맹의 신념이 부딪친 전쟁은 그렇게 서서히 종장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선두에 서서 거의 반나절 동안 점창을 이끌었던 운호의 걸음이 멈춘 것은 붉은 노을이 하늘에 펼쳐진 석양 무렵이었다.
태양은 인간들이 펼쳐 놓은 잔인한 장면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쪽 하늘에 붉게 떠서 오연하게 대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천왕성의 병력은 불과 오백여 명이 남아 마지막 분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을 둘러싼 무림맹의 병력은 팔천에 불과했으니 서평에 깔린 무인들이 시신은 거의 삼만에 가까웠다.
운호는 멍하니 죽어간 시신들과 아직도 남아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천왕성 병력을 지켜보다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뒤에는 이제 반으로 줄어버린 점창 무인들이 청현자를 중심으로 진형을 구축한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들의 강력한 선봉만 격파하며 움직이다 보니 많은 손해를 입었지만 아직도 그들은 시퍼런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며 으스스한 눈길을 던지는 중이었다.
무림맹은 얼마 남지 않은 적들을 포위하고도 쉽게 처리하지 못하고 연신 피해를 입으며 물러났다.
워낙 강력한 반격에 포위망이 수초처럼 흔들렸고, 천왕성의 병력이 움직일 때마다 꽤 많은 숫자의 무인들이 쓰러져 갔다.
무시무시한 진격.
마지막 남은 천왕성의 병력은 자신들의 꿈이 깨지는 것을 용납지 못하겠다는 듯 불꽃처럼 타오르며 분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쉽게 공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지막 남은 천왕성의 병력 중에는 요문을 비롯해서 오패와 화검제 등 절대고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무림맹의 공격을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림맹 측에서 뒤로 물러나 움직이지 않던 주력 고수들이 전면으로 나선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무림백대고수에 포함된 강자들은 전쟁이 끝나가자 뒤로 물러났었는데, 천왕성의 병력이 계속해서 분전을 거듭하자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들 중에는 소림의 불제와 모산의 무검제가 있었으며 화산의 신검제와 무당의 명검제도 함께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무림백대고수에 포함된 각파의 수장들이 끝장을 보겠다는 듯 전투에 참전하자 상황은 급박하게 변했다.
초인과 초인이 맞붙었고 병력과 병력이 맞붙는 싸움이 다시 시작되자 천왕성의 무인들은 하나둘씩 피에 젖은 땅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천왕성의 병력은 모두 쓰러졌으나 초인들은 남아서 아직도 전투를 계속 벌였다.
특히 요문과 그의 동생인 대공들, 오패, 화검제와 단황야 등은 무림맹의 절대고수들과 맞서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손에 의해 벌써 다섯 명이나 전권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쾌활림주는 왼팔이 잘렸고 패천방주는 가슴이 쩍 갈라지는 부상을 입었다.
무당의 신화검도 다리가 반쯤 잘려 뒤로 물러섰고 남궁세가의 유리검과 제천문주 황무성도 옆구리와 가슴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비틀거리며 전권에서 이탈했다.
무시무시한 무력이다.
현재 살아남은 채 전투를 벌이고 있는 천왕성의 수뇌부는 모두 합해 열둘에 불과했으나 그들로 인해 무림맹 팔천 병력이 그저 자리만 지킨 채 움직이지 못했다.
특히 요문과 오패의 수장, 그리고 화검제는 무천십제에 올라 있는 구룡의 초인들을 맞이하고도 오히려 우세를 점할 정도였다.
거의 이백여 초를 겨루던 불제 뇌공 대사가 입에서 피 분수를 뿜어내며 뒤로 날아간 것은 요문의 검이 하늘로 날아올라 천둥 번개를 때렸을 때였다.
무천십제 중에서도 천하제일로 꼽히던 불제의 패배에 포위망을 구축했던 무림맹 무인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서운 신위.
불제를 격퇴한 요문은 수없이 늘어선 무림맹 무인들을 향해 오연한 시선을 던지며 검을 늘어뜨렸다.
누구든 덤비라는 패기.
그에게서는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전장에 나선 수장답게 만인지상의 위엄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천하제일로 불리던 불제의 십팔항마장은 무형의 권기를 바탕으로 한 번 펼쳐질 때마다 오 장의 범위를 초토화시켜 지상 최강의 무공이라 칭했었는데 그런 불제마저 격퇴시킨 요문을 누가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무림맹 측에서 움직임이 없자 요문의 눈이 스산하게 변했다.
그런 후 천천히 검을 들며 좌우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느냐. 아무도 없다면 나는 이 검으로 저자들을 죽이겠다. 그래도 상관없겠느냐!”
그의 일갈에 무림맹이 술렁거렸다.
단호한 뜻.
상대가 나서지 않으면 전장에서 치열하게 접전을 펼치고 있는 초인들의 싸움에 가담해서 협공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무서운 협박이다.
만약 정말 그가 절대고수 간의 싸움에 난입한다면 무림맹의 고수들은 모조리 목숨을 잃을 것이 자명했다.
점창 무인들이 무림맹의 숲을 뚫고 앞으로 나선 것은 그가 광소를 터뜨릴 때였다.
“크하하하하…….”
그는 말처럼 초인들의 싸움에 가담하는 대신 미친 듯이 웃음을 흘려냈다.
광소였지만 사람의 심장을 찌를 것처럼 아프다.
그가 흘린 웃음은 서편 하늘에 걸쳐진 붉은 노을처럼 그렇게 슬픔이 잔뜩 담겨 있었다.
운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서 그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평생을 바쳐 온 꿈이 사라지는 순간.
어느 누가 허망하고 괴롭지 않겠는가.
자신을 따르던 수많은 무인들이 피로 물든 들판에 쓰러져 있었다.
그들의 눈은 이루지 못한 꿈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감겨지지 않은 채 허공을 향하고 있으니 참으로 원통한 일이었다.
하늘을 바라본 채 끝없이 웃던 요문이 검을 세운 것은 운호가 자신의 검을 천천히 꺼내 들었을 때였다.
“그대는 누군가?”
“마검이오.”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말이오?”
“그렇다.”
“왜 기다리셨소?”
“점창의 마검이니까. 너는 모르겠지만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꿈을 막은 만천자도 천왕성에서는 마검으로 불리웠었다. 마검… 참으로 지겨운 인연이지.”
“그렇구려. 이제야 이해가 가오.”
“태양을 베는 검을 가지고 왔느냐?”
“그건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구려.”
“하긴 그렇기도 하지. 그럼 시작해 볼까!”
요문은 말을 끝내고 천천히 검을 들어 운호를 가리켰다.
운호 역시 흑룡검을 들어 진격세를 만들고 요문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천하쟁패의 꿈은 깨졌으나 광소가 걷힌 요문의 얼굴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남지 않았고 오로지 마지막 승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였다.
요문의 검이 스르륵 빠져나와 슬쩍 운호의 흑룡검을 때렸다.
이제 시작할 테니 준비하라는 말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그 행동은 검에서 번개를 뿜어내며 사실로 드러났다.
그의 검은 천왕검법을 펼쳐 내며 운호를 향해 끝없이 전진해 들어왔다.
불제와 겨룰 때와는 전혀 다른 치열함이 그의 검에 들어 있었다.
운호는 천둥과 번개를 수시로 때려내며 접근하는 요문의 천왕검법에 맞서 분광과 회풍을 전력으로 시전했다.
이제 그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검기는 선명함을 넘어 완연한 실체를 담고 있었다.
팽팽한 접전.
처음에는 춤추듯 움직이던 그들의 신형이 어느샌가 사라지고 오직 검에서 흘러나온 검기들만 공간 속에서 너울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공간 속에서 붙어 있던 두 사람의 신형이 분리된 것은 석양이 마지막으로 꿈틀거리며 지평선을 향해 들어갈 때였다.
피로 물든 두 사람의 모습은 달아오른 노을과 함께 동화되어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움직임도 없었고 서로의 대한 증오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인으로서 지상 최강의 적을 꺾고자 하는 의지뿐이었다.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그림이 깨지면서 먼저 움직인 것은 요문이었다.
요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운호를 향해 수없이 많은 빛을 난사했다.
천왕검법의 마지막 초식 천뢰광참(天雷光斬)이 펼쳐진 것이었다.
아무도 막아낼 수 없는 무적의 초식.
그가 펼친 번개는 하나하나가 모두 실체였고 하나가 소멸되면 두 개가 생성되며 천망을 형성했으니 막아낼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운호가 흑룡검을 하늘로 치켜세운 것은 번개가 몸에 근접해 왔을 때였다.
공간참.
운호의 검에 의해 공간이 찢어지면서 지평선으로 지던 태양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서평의 서쪽 하늘을 가득 채웠던 석양은 마치 거짓말처럼 두 쪽으로 갈리며 수없이 날아온 번개를 잡아먹어 버렸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고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었던 전설의 검이 운호를 통해 세상에 나와 태양을 베는 장면은 시간을 멈춰 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