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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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49화
248화. 종전, 마지막 미끼
깡! 까강!
종리세는 다급히 역천검을 휘둘러 소청의 공격을 막았다.
‘은신?’
종리세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좀 전까지와 공격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소청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기에 눈으로는 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감을 쫓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치 전혀 다른 공간 속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공격당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놈의 기척이…… 어찌 된 일이지?’
기감에서 사라져 버린 뒤로 소청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점차 몸에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쩡! 쩌엉!
‘망할 놈이!’
수도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상처가 생겼지만, 치명상은 한 군데도 없었다.
하지만 몸에 상처가 늘어가자 종리세는 점점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도무지 소청의 기척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종리세가 당황하는 사이 소청은 천뢰충파를 날리기 위해 쉼 없이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그는 백효와는 달랐다.
공격을 조금씩 비껴내며 피해를 줄이고 있었기에 소청은 완벽한 틈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한 방.
단 한 방만 격중시킬 틈을 찾으면 되었다. 놈의 검격을 뚫고 단 한 방의 공격만 할 수 있다면…….
그런데.
“잡을 수 없다면…… 모조리 터트려 버리겠다!”
분노한 종리세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뿜어져 나왔다.
쩌정! 콰아앙!
강렬한 기파와 함께 대지가 터져 오르고 반경 오십여 장이 반구형의 형태로 움푹 파여 들어갔다.
파앙!
기운이 폭발하는 순간 소청은 재빨리 은신을 풀고 물러났다.
“쳇!”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소청의 모습에 종리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네놈이 나를 아주 즐겁게 만드는구나. 아주 즐겁게…….”
“쳇, 아깝네. 그나저나 어때? 이제 좀 해볼 만하지?”
종리세를 향해 이죽거리며 신경을 거슬러 놓은 소청이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쉽게 천뢰충파를 날릴 기회를 잡지 못했다.
더욱이 조금 전 폭발로 인해 그의 주변에 깔려 있던 극음지기의 흔적들이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제길…… 어렵게 되었군.’
최고의 기회를 날려 버린 것도 모자라 화만 돋우어 놓았으니…….
이미 종리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삼궁의 정수에서 비롯된 힘.
트득, 트드득.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기운이 대기를 흔들고 지면에 거친 상처를 만들어 내었다.
그의 손에 들린 역천검에 검은 마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젠장, 결국…….’
소청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 확률이 일 할도 채 되지 않겠지만…… 남은 건 그것뿐이었다.
소청은 회음의 기운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았다.
종리세의 몸에서 더 이상 한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은신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그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씨발, 그래, 와 봐. 그냥 죽어 주지는 않을 테니까.’
소청은 회음과 백회의 내공을 그대로 남겨둔 채 단전의 내공을 모조리 하반신에 집중했다.
십만대산에 종리세보다 일찍 도착했던 소청은 내공을 회복하는 한편 그를 상대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생각했다.
물론 은신은 갑자기 떠오른 방법이었지만…….
어쨌든 이제는 마지막 방법뿐이었다.
“…….”
갑자기 소청의 몸에서 기운이 흩어져 버리자 종리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뭐 하는 거지?”
“왜, 무섭냐? 또 처맞을까 봐?”
“…….”
소청이 그의 신경을 긁어 놓았지만 멈춘 걸음을 쉽게 뗄 수가 없었다.
영악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좀 전처럼 분명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쯧…….”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신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다.
무엇을 주저하고 있단 말인가?
이제는 놈이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못할 것이다.
“왜? 두려워?”
“…….”
소청의 이죽거림에 종리세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들어와.”
저 자신감.
고작 도적놈 따위의 자신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찮은 버러지 같은 놈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얻어 탄 놈 주제에 자신의 계획을 일그러뜨린 것이…….
“이노옴!”
종리세의 역천검이 휘둘러지고 하늘이 마기로 물들었다.
세상이 소청을 짓눌러 왔다.
쥐어 터트릴 듯한 압박감이 소청을 향해 날아왔다.
파앙!
종리세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소청은 단전의 기운을 용천혈에 때려 박았다.
피부가 찢겨 나가고 머리칼이 잘려 나갔지만 검격의 날카로움만큼은 피해 내었다.
세상을 짓누르는 공격을 한 치의 간격을 두고 모조리 피하고 있었다.
몸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콰르릉!
점점 더 거세지는 종리세의 마기가 십만대산을 뒤흔들고 몰려든 구름이 천둥을 만들었다.
차라리 무황처럼 맞싸워 주면 몰라도 재빠른 경공으로 쥐새끼처럼 자신의 공격권을 벗어나는 소청의 모습에 끌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수십 초를 펼쳐도, 수백 초를 펼쳐도 소청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말머리에 달아 놓은 당근처럼 아무리 달려도 한 치의 간격을 좁힐 수 없으니 너무 화가 났다.
“하아압!”
거친 기합성과 함께 뿌려진 장력이 대기를 터트리고 횡으로 그어진 검격이 산봉우리를 잘랐다.
그럼에도 소청만은 죽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법이었다.
막 일검을 피해 내었던 소청은 찢어진 상처에서 과도하게 피를 흘린 탓인지 비틀거렸고, 종리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가슴이 활짝 열렸다.
“놈!”
슈가가각! 푸욱!
소청은 더 이상 도망치지 못했다.
종리세의 손에 이어진 역천검이 소청의 심장을 꿰뚫었고, 검신이 반대편으로 반이나 빠져나갔다.
“우웩!”
소청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졌다.
“큭큭! 크핫핫핫! 놈, 얄팍한 수를 쓰더니…… 이제 끝이로구나!”
소청이 토한 피가 얼굴을 적셨음에도 종리세는 웃었다.
턱.
눈을 부릅뜬 소청이 그의 팔을 잡았다.
“흥! 힘조차 남지 않은 놈이 마지막 발악을 해보려는 것이냐?”
쫘악!
종리세는 소청의 팔을 뜯어 버렸다.
소청의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놈은 죽을 것이다.
이제 사지를 찢고 목을 베어 갈 것이다.
중원의 놈들이 보는 앞에서 그 머리를 으스러 절망을 안겨 줄 것이다.
중원을 모조리 피로 씻을…….
그런데 소청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크크크…….”
비릿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게 했다.
“어이, 종리세…….”
“…….”
“팔을 모조리 뜯었어야지. 이게…… 마지막 방법이다…….”
“…….”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죽음의 순간에 놈이 미쳐 버린 것인가?
소청의 남아 있는 손이 천천히 움직여 역천검을 잡은 종리세의 손을 움켜쥐었다.
“지금이라면…… 죽이진 못한다고 해도…….”
푸욱!
소청은 역천검을 향해 더욱 자신의 몸을 끌어당겼다.
“뭐 하는…….”
“크크크…… 어차피 우린……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어그러짐이었다.”
소청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종리세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우우웅!
소청의 몸이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백회의 기운과 회음의 기운이 단전을 향해 맹렬하게 내달렸다.
그리고 단전을 향해 쏟아져 거칠게 충돌했다.
콰앙!
소청의 몸 안에서 일어난 충돌이 단전을 찢어 놓을 듯이 폭발했다.
“내가…… 미끼다…… 이 개새끼야…….”
“……!”
섬뜩한 불안감.
종리세의 눈이 부릅뜨여졌다.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몸을 움직이는 순간 막대한 기운이 소청의 손을 타고 종리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미친!”
소청이 만들어 낸 마지막 천뢰충파.
백회와 회음의 공력을 충돌시키고 그 힘을 종리세의 몸을 매개체 삼아 폭발시켜 버렸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대지를 뒤흔든다.
그들이 일전을 벌인 십만대산의 봉우리가 통째로 날아갔다.
폭발과 함께 빠져나온 화기와 한기가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화기는 산림을 불태웠고, 한기는 이내 그 불을 꺼트려 버렸다.
쿠우우우.
밀려오는 먼지는 구름을 만들고 산악 전체를 집어삼켰다.
* * *
산악을 가득히 가리우고 있던 먼지구름은 삼 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걷히지 않았다.
바람이 먼지를 잠재웠을 때, 녹음으로 가득했던 산자락의 나무들은 황톳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한 떼의 인물들이 전투에 지친 표정으로 십만대산을 찾아왔다.
“형님!”
맨 처음 도착한 것은 소강이었다.
아직 마천의 전투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지는 않으리라.
그들의 수뇌들은 모두 죽었고 중원의 절세고수들인 검후, 섬뢰, 혜어화, 황보인과 서문중걸이 남아 있었다.
마천은 무너질 것이다.
적의 수뇌를 죽인 소강은 혁련휘와 함께 곧장 십만대산을 향해 달렸다.
잠을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
그들이 본 것은 황톳빛으로 물든 산림과 거대한 평원뿐이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소청도…… 종리세도…….
단지 흔적만이 남아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아아…… 아니다. 아닐 거야. 형님이 그리 쉽게…….”
언뜻 떠오른 것이 죽음이었기에 소강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량함에 소강이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은 채…….
“소강!”
뒤이어 도착한 혁련휘는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는 소강의 모습을 발견했다.
전투의 흔적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곳에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혁련휘 역시 마찬가지였다.
증발하듯 사라져 버릴 리가 없다.
분명 어딘가에 흔적이…….
그 순간, 그의 눈에 땅속에 묻힌 작은 쇠붙이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
혁련휘는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천천히 다가갔다.
“이, 이건…….”
혁련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쇠붙이의 정체는 세 자 길이의 녹슨 검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검이 꿰뚫고 있는 것은…….
검은 피풍의.
‘아…….’
비록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찢어져 버렸으나…….
어찌 알아보지 못할까?
소청이 항상 등 어림에 메고 다니던 혈잠의 보포를.
‘제길…….’
녹슨 검은 넝마처럼 찢어진 피풍의를 관통하고 있었다.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소청은 결국…… 자신들의 곁을 떠난 것이다.
혁련휘는 질끈 감은 눈으로 피풍의와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것밖에 남지 않았구나.”
혁련휘는 소강에게 다가가 검과 피풍의를 내밀었다.
“…….”
소강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혁련휘가 내민 피풍의와 녹슨 검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알기에…….
“아아…….”
소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신음을 내며 허물어지듯이 주저앉았다.
“어허엉!”
가슴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황량함만이 남아 있는 십만대산의 어느 봉우리는 주저앉은 소강이 만들어 낸 통곡으로 가득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