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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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48화
247화. 피의 격전지
콰앙!
거친 충격파에 수마의 몸이 쭉 하고 뒤로 밀려났다.
입에서는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고, 입고 있던 옷은 갈가리 찢겼다.
눈앞에 선 사내.
검은빛이 감도는 칼 한 자루로 만수곡의 무인을 막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혁련휘였다.
“어린놈이 어찌 이런 무공을…….”
수마가 피와 함께 거친 숨을 토해내며 혁련휘를 노려보았다.
설마하니 마천의 세주인 자신을 이리도 쉽게 몰아붙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더욱이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수마는 미친 듯이 날뛰는 기혈을 간신히 잠재우고 다시금 내공을…….
“비켜…….”
하지만 수마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혁련휘의 일도가 횡으로 뻗어졌고, 둔탁한 충격이 가슴에 전해져 왔다.
“……!”
소용돌이처럼 생겨난 작은 점이 갑자기 거대해지며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끄으…….”
억눌린 신음과 함께 수마의 눈동자가 폭풍을 만난 돛단배처럼 흔들렸다.
마치 공간을 넘어온 것 같은 일도가 가슴에 남긴 소용돌이.
그리고 시작된 변화는 그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세주님!”
만수곡의 무인들이 그를 부축하고 일부가 혁련휘를 공격하는 순간 창을 든 소강이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하압!”
콰아아앙!
창대에서 뿌려진 기운이 지면에 닿는 순간 대지가 부채꼴 모양으로 터져 나갔다.
천뢰충파.
잔인하게 뿌려지는 핏물과 육편이 수마의 시선을 가득 채웠다.
‘제길…….’
너무 강했다.
한 번도 자신이 나약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수마였다.
쫘자자작!
수마의 가슴을 때린 혁련휘의 검격, 축도의 만경창파.
뒤늦게 시작된 변화는 수마의 몸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거대한 해일이 되어 마천의 무인들을 쓸어 갔다.
두 사람의 공격에 수백의 무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여력이 생긴 중원의 무인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마천의 무인들의 몸에 검을 꽂아 넣었다.
“소강!”
“예. 형님!”
“황보인은 어디 있나?”
“좌측 십여 장, 놈들의 수뇌와 싸우고 있습니다.”
“가자!”
단숨에 눈앞의 적을 쓸어 버린 혁련휘와 소강은 쉬지 않고 적진의 중심을 헤집고 달렸다.
혼전이고 난전이었다.
무인의 자존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최단 시간에 적의 수뇌를 죽일 수 있다면 합공이 아니라 군문의 대포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마천의 진격을 알린 전서구 이후로, 은수에게서 도착한 또 하나의 전서.
소청은 십만대산으로 향했다.
마천의 고향과도 같은 곳임은 이미 소청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소청은 그곳으로 종리세를 유인했다.
소청과 종리세는 끝이었고 시작이었던 곳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소청,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라.’
혁련휘의 눈에 불길이 토해졌다.
휘두르는 검에 머뭇거림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조바심이 가득했다.
이미 스승을 잃었다.
슬픔이 가슴에 사무치지만 예견된 죽음이었다.
그런 와중에 친구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소청을 도우러 가야만 했다.
아니, 전쟁이 끝나지 않더라도 전황이 우세하게만 흐른다면 곧장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천의 무인들은 자신의 발목을 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켜라!”
혁련휘의 고함이 전장을 울리고 칼이 춤을 추었다.
조바심을 느끼고 있는 것은 소강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죽음의 길을 스스로 택했다. 막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함께 가자 할 것을…….’
소강은 형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자신을 책망했다.
자신에게는 가문을 지키라 말하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소청이 원망스러웠다.
“하압!”
거칠게 내질러진 주먹에 와류가 만들어져 대기를 뒤틀어 놓았다.
그에 맞서기 위해 검을 뽑아 든 흑묘는 목 어림을 스치는 진한 매화향에 급히 고개를 꺾었다.
쓰라림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뒤이은 쾌검이 그의 전신 요혈을 노려왔다.
빠가가가강!
다급하게 회선칠류를 펼쳐 막은 흑묘는 멀찍하게 물러났다.
자신을 공격한 자는 셋.
화산의 옥명자, 서문중걸, 황보인이었다.
“치잇!”
십이마령들을 여러 곳으로 나눈 것이 실수였다.
중원의 고수들이 합공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들은 중원의 본대와 떨어져 별동대처럼 우측을 뚫고 공격해 왔고, 차근차근 마천의 수뇌들을 죽이고 있었다.
일단 몸을 빼야 했다.
십이마령들을 모아 저들을 먼저 섬멸해야 했다.
“하압!”
자신의 좌측에 있는 운(雲)과 합류하기 위해 회선칠류를 극한까지 끌어 올린 흑묘는 셋을 동시에 공격했다.
잠시 머뭇거릴 틈만 만들면…….
푸욱!
“끄윽…….”
흑묘는 뒷목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고통에 고개를 돌렸다.
길게 뻗어진 창.
그리고,
쉬이익!
짧게 그어지는 검은빛의 검.
혁련휘와 소강이었다.
흑묘는 온 힘을 끌어 올려 눈앞의 고수에게 회선칠류를 펼친 터라 그들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했다.
푸시시.
무형검은 안개처럼 흩어져 버렸고 눈조차 감지 못한 흑묘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곧바로 다음으로 이동해라!”
“황보인! 아군의 공격을 도와 승기를 잡으면 곧바로 뒤를 따라라!”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흑묘의 목을 베어 버린 혁련휘가 다음 전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전쟁은 숨조차 고를 수 없이 치열하게 이어졌다.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시체의 수가 더 많아져 가고 있었다.
질 수 없는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콰콰콰쾅!
천지를 진동시키는 폭음과 함께 십만대산 전체가 뒤흔들렸다.
폭발이 만들어 낸 공진의 틈 속으로 일어난 먼지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들어갔다.
하늘을 울리고 땅을 뒤집어 놓는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
검은 마기로 온몸을 채운 종리세는 허공에 선 채로 손을 뻗었다.
차가운 한기를 머금은 수십 다발의 강기가 뻗어진 손을 따라 쇠뇌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득! 콰드드득!
비처럼 쏟아지는 강기을 피해 소청의 몸이 수십 개의 잔영을 만들며 움직였다.
“쥐새끼 같은 놈… 놓칠 것 같으냐!”
종리세의 손이 움켜쥐어지자 쏟아져 내리던 강기 다발이 유도체처럼 휘어져 지면을 스친다.
‘젠장… 무지막지한 놈!’
계속 피해 다닐 수만은 없었던 소청이 몸을 세우고 창대를 쉬지 않고 휘둘렀다.
콰우우우…….
창대가 만들어 낸 궤적이 수백 개로 늘어나는 순간 거대한 회오리가 만들어졌다.
패월창법 태월식.
창의 회전력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어 적의 공격에 담긴 힘을 흩어버리는 초식이었다.
드드드.
태월식의 흡입력이 소청을 뒤쫓던 강기를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콰르르르.
하지만 실린 공력이 너무 강했다.
“하압!”
소청은 온 힘을 다해 소용돌이의 방향을 비틀어 올렸다.
콰우우우!
비틀림 소용돌이를 따라 종리세의 강기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쿠우우…….
용권풍처럼 솟구친 강기에 하늘을 채운 구름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후우, 후우…….”
가까스로 막아 낸 소청의 모습은 온전하지 않았다. 상의는 완전히 찢어져 나갔고 드러난 몸은 피투성이였다.
스윽.
입가에 흐르는 선혈을 닦아 낸 소청이 허공에 선 종리세를 노려보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북천대공이 사용했던 옥령한기와 비슷했다.
하지만 위력이 배 이상은 강했다.
마치 순수한 한기와 같은 기운이었다.
상상한 것 이상으로 강하다. 백회의 화기를 모조리 뿜어내었음에도 막아내는 것이 고작일 줄은 몰랐다.
음양합일을 이루지 않았다면 상대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어찌 상대해야 하는가?
소청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했다. 숨겨둔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팔괘에서 이루었던 첫 번째 천뢰충파. 사상을 이루고 사용했던 두 번째 천뢰충파.
그리고 마지막.
아직 사용해 보지 않았지만 백회와 회음에 모인 기운을 충돌시킨 천뢰충파라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필요했다.
삐끗하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목숨만 잃게 될 것이 뻔했다.
죽일 수 없다면 상처라도 입혀야만 한다.
“왜 그러지? 그게 전부냐? 짖어라도 보겠다는 자신감은 어디로 간 것이냐?”
지면을 향해 천천히 내려서는 종리세가 소청을 비웃었다.
“네놈은 고작 거기까지다. 그곳이 너의 한계인 것이다. 네놈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넘어설 수는 없다.”
“…….”
틈을 찾아야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떠올려야만 했다.
자신의 장기인 빠른 움직임과 은신을 이용한다면…….
은신?
소청은 순간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에 탄성을 지를 뻔했다.
그래. 은신!
북천대공과의 싸움.
놈은 백효와 마찬가지로 극음지기를 사용하고 있다.
소청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종리세의 한기가 뿜어져 만들어 놓은 수많은 흔적들.
자신의 열기로 인해 지워진 곳이 아니라 놈의 한기가 만들어 낸 흔적 속으로 접근해야 했다.
“캬악! 퉤!”
소청은 입안에 모인 핏물을 모아 뱉어 내었다.
“후우…….”
목 어림에 막혀 있던 핏물을 가래처럼 뱉어 내자 조금 속이 시원해진 것 같았다.
“그래, 씨발. 안타깝지만 네놈이 더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 근데……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
“…….”
갑자기 자신감이 넘치는 소청의 모습에 종리세가 코웃음을 쳤다.
“이미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달았을 것인데…….”
종리세가 가볍게 손을 떨치자 한기를 머금은 얇은 강기가 소청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퓨슈슈슉!
소청은 단전에 쌓인 화기를 백회로 돌려보내고 회음의 기운을 끌어당겼다.
순행을 거스른 역행.
가야 할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기운에 사지가 찢어질 것 같은 묵직한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소청은 강제적으로 회음의 기운에 더욱 힘을 주었다.
고통은 잠시뿐이다.
종리세에 의해 죽든 역행이 잘못되어 내상으로 죽든 매한가지였다.
‘우욱! 씨발, 이 순간에도 도박을 해야만 하다니!’
강제적인 기운의 역행으로 핏물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종리세의 강기 다발이 멍청히 서 있던 소청의 몸을 꿰뚫으려는 순간.
‘됐다!’
회음의 한기가 단전의 끝자락에 닿았다.
막혔던 길이 열리고 막대한 기운이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퓻!
“……!”
쏘아진 강기가 허공을 꿰뚫었다.
소청의 신형이 곧장 종리세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멍청한 자식!”
종리세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소청을 비웃으며 손안에 기운을 모아 후려치려는 순간, 소청의 기척이 사라졌다.
마치 증발해 버린 것처럼…….
그리고.
쩍!
옆구리를 타고 흐르는 강렬한 통증.
“크윽!”
순간적으로 측면에서 나타난 소청의 창대가 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종리세가 반사적으로 역천검을 비껴 올려 막았음에도 온몸이 짜릿해져 올 만큼 강렬한 고통이었다.
‘됐다!’
소청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백효와 싸울 때와 똑같았다.
종리세가 가진 극음지기는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될 것이다.
한기에 숨어 그의 몸을 두들기다 보면 분명 틈이 생길 것이다.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틈을 찾아야만 했다.
단번에 놈을 죽일 수 있는…….
심장? 아니면 머리?
소청은 또다시 모습을 감추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종리세의 전신을 두들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