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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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46화
245화. 거짓으로 현혹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고작 도둑놈 따위가 그것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청의 전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네놈은 진정한 마천비고의 비밀을 몰라.
“…….”
-마천비고에는 네놈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얻기 위해 마천비고를 찾아갔다가 빛무리에 휩쓸려 과거로 돌아오고 말았지.
-개소리!
-개소리? 멍청한 놈. 만상귀혼진(萬象鬼魂陣), 불귀미궁(不歸迷宮), 일천의 청동상(靑銅像)까지…… 무엇 때문에 그런 장치들을 만들어 놓았을 것 같으냐? 도적에 불과했던 내가 어찌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강해졌다고 생각하나? 너처럼 삼궁의 정수를 얻은 것도 아니고, 그저 사천의 작은 표국인 진가의 아들로 돌아왔는데…….
종리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고 있음을 소청은 놓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마천비고에서 한 가지 무공을 얻었다.
“…….”
-그리고 지금! 전생에 얻지 못했던 무공의 마지막 부분을 찾으러 갈 것이다. 네놈을 죽이기 위해!
“개소리 마라!”
파앙!
종리세의 손이 강맹한 기운을 머금고 뻗어졌다.
만년빙정을 통해 흡수한 극음지기의 소용돌이가 주변을 허옇게 얼리며 쏘아져 나왔다.
소청은 재빨리 백회에 담긴 열기와 합해진 단전의 공력을 모조리 창대에 실었다.
‘크윽!’
처음 사용해 보는 거대한 기운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기에 단전이 통째로 구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색해서는 안 된다.
이제 막 놈의 관심을 이끌어 냈을 뿐이다.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핏물을 참아낸 소청은 팔뚝에 힘줄이 돋아 오를 정도로 잡은 창대를 휘둘렀다.
쩌어어엉!
“……!”
종리세의 눈이 부릅뜨여졌다.
극음지기의 기운이 상쇄되었다.
막을 수 없어야 함인데 아예 녹여 버렸다.
소청의 창대에서 엄청난 열기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극음의 한기를 단숨에 무력화시켜 버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열흘 전에 만났을 때 힘을 아끼고 있었던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한데 어찌 고작 열흘 만에 이다지도 강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무황 위도혁의 믿음.
그는 소청이 자신을 막을 수 있다 확신하고 있었다.
설마?
놈의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자신을 유인하고자 함이 아니라 마천비고에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어째서 이곳까지 찾아와 자신에게 알려주는 것인가?
만약 진짜로 그런 것이 있다면 몰래 그곳으로 향했어야 했다. 힘을 얻고 난 뒤에 돌아와 자신을 상대해야만 했다.
종리세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어째서 네놈을 찾아왔는지 궁금하겠지.”
소청은 더 이상 전음으로 말하지 않았다.
상대를 흥분시키기 위함이다.
마치 종리세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미산에서 네놈을 상대하고 나서 힘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열흘 동안 내가 알고 있던 마지막 단계를 이루었지. 좀 전에 보여준 힘이 그것이다.”
“…….”
“그리고 지금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은 네놈에게 상대가 되지 않겠지. 하지만 마천비고에 남겨진 무공을 완전히 익히고 나면…… 네놈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
종리세는 더 이상 무심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표정이 수도 없이 바뀌었다.
거짓말일 것이다.
아니 거짓말이 확실하다.
놈은 함정을 만들어 두고 자신을 유인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저 여유만만한 표정을 무엇이란 말인가?
“종리세.”
“…….”
소청의 표정이 사악하게 변했다.
“네놈이 무너뜨려 버린 마천비고의 입구. 지금의 나라면 다시 열 수 있다.”
“…….”
“중원 따위가 어떻게 되든지 내 알 바가 아니지. 하지만 네놈은 반드시 죽여주마. 네놈을 죽이고 세상을 훔치겠다. 과거에는 그저 물건이나 훔치는 도적이었을 뿐이지만 이제는 네놈을 죽이고 중원무림의 군림자로 살아갈 것이다.”
소청이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놈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었다.
놈은 반드시 자신이 던진 미끼를 물것이라 확신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늘의 뜻을 거슬러 온 것도 모자라 이십 년을 어둠 속에서 기다려 온 놈이다.
그 목표에 방해물이 생겼으니 참고 있을 리가 없었다.
“후후, 그럼 기다리고 있어라. 종리세.”
파앙!
소청은 곧바로 회음의 기운으로 단전을 채우고 도망쳤다.
수만?
무인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의 경공술을 따라잡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종!”
소청을 뒤쫓으로 종리세가 움찔하는 순간 흑묘가 그의 앞을 막았다.
“거짓입니다. 놈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저 마종을 유인하기 위함입니다.”
안다.
알고도 남는다.
놈이 늘어놓은 말들은 얼토당토않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가 오류투성이였다.
흑묘의 말처럼 함정을 파고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의 힘.
만년빙정을 통해 흡수한 극음지기를 날려 버렸다.
고작 열흘 만에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기에는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만약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중원 정벌.
오랫동안 염원해 온 목표가 눈앞에 있었다. 작은 오점도 남기지 않으리라.
“흑묘!”
“예, 마종!”
“무황은 죽었다.”
“…….”
“놈을 죽이고 오겠다.”
“마종!”
“중원을 향해 진격하라.”
“…….”
흑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째서…….
중원이 눈앞에 있는데…….
하지만 명령을 내려졌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중원을…… 정벌하겠습니다.”
“…….”
종리세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쓸어보고는 마천비고가 있었던 십만대산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젠장…….”
종리세가 떠나 버린 뒤 흑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마천의 무인들을 향해 외쳤다.
“명령은 내려졌다! 진격을 시작한다!”
또다시 중원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돌아온 자들이 아닌 원래 있었던 자들에 의해…….
무황의 시신을 재선에게 맡긴 은수는 서천맹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소청의 말대로 되었다. 종리세가 소청의 뒤를 쫓아 서천맹을 빠져나갔다.
“패월…….”
그는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종리세를 떼어 놓음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머뭇거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소청이 만든 기회를 날려 버리지 않기 위해서 서둘러 알려야 했다.
푸드득 거리며 날아가는 전서구를 바라보던 은수는 곧바로 종리세가 몸을 날린 방향으로 움직였다.
전쟁에서 그가 할 일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지켜보는 것이다.
중원과 마천의 전쟁이 아닌 진소청과 마종 종리세의 싸움을…….
그리고 그 결과를 알려야 했고, 할 수 있다면 소청의 시신을 수습해 주어야 했다.
그가 죽는다면 그 죽음이 쓸쓸하지 않도록…….
* * *
무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퇴각하고 있던 제갈휘문은 은수가 보낸 전서구에 급히 말고삐를 잡아 당겼다.
@[마종, 이탈. 총공격]
“……!”
소청이 종리세를 꾀어내어 남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급히 마천을 쳐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혁련 소련주!”
제갈휘문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혁련휘를 불렀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혁련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망할…….”
적에 대해 파악하겠다 했던 소청이 이런 짓을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찌 이리 무모하단 말인가!”
종리세는 자신의 스승을 죽인 자였다. 어찌 홀로 그 대단한 자를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머뭇거릴 시간이 없소. 이미 무한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고 하니, 서둘러 마천을 공격해야 합니다.”
“…….”
“혁련 소련주! 진 공자가 어렵게 만들어 준 기회를 날려 버릴 참이오!”
제갈휘문이 혁련휘를 다그쳤다.
그의 말이 맞았다.
종리세가 돌아오기 전에 마천과 결착을 보아야 했다.
그가 없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천의 세주들에 버금가는 자들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중원이 모든 전력을 쏟아붓는다면 해볼 만한 전쟁이었다.
“좋습니다. 흩어진 전력을 모으고 놈들의 이동 경로를 속히 파악하시죠.”
“알겠소.”
“이번 전투는 속도전입니다. 소청이 종리세를 꾀어냈다고는 하나…….”
차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군사.”
“말씀하시오.”
“전장의 지휘를 맡아주시오.”
“…….”
“나는 소강를 비롯한 별동대와 함께 저들의 주력 고수들을 상대하겠소.”
“알겠습니다.”
제갈휘문의 대답과 함께 퇴각하던 중원 무인들에게 새로운 명령이 하달되었다.
전생의 소청이 경험했던 마천 정벌 때처럼,
전신 혁련휘와 신산자 제갈휘문에 의해 다시금 중원의 명운을 건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광동과 광서의 경계를 가르며 대륙을 휘감았다가 대해에 이르러 곤두박질치는 산세와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는 울창한 밀림이 뒤덮인 십만대산.
그곳에 자리 잡았던 마천.
서천맹을 떠난 소청은 십만대산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후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달려왔기 때문일까?
내력이 바닥을 보이고 온몸은 땀투성이였다.
호흡을 고르는 소청의 시선에 멀리 은하촌의 전경이 보였다.
“꽤 오랜만이군.”
시간이 꽤나 흘렀지만 무림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그곳은 처음 왔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빨래터는 여전히 아낙들로 가득했고, 그물을 손질하던 어부들은 잠시 쉬는 틈에 백주를 놓고 떠들고 있었다.
소청은 가쁜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천천히 은하촌을 거슬러 올라갔다.
시간은 충분하다.
종리세가 십만대산에 도착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그사이에 전쟁은 시작될 것이다.
소청은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종리세를 붙잡고 있으면 되었다.
굳이 조바심을 낼 필요 없었다.
전생에 그랬던 것처럼 중원은 잘 이겨낼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전생에 비하면 훨씬 더 유리한 싸움이 아닌가.
마천을 이끌었던 세 명의 후계자가 없는 싸움이었다.
정사의 무인들은 그때보다 건재했고, 오존들 중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자가 검후뿐이었지만 황보인, 옥명자, 서문중걸이 있었다.
더욱이 소강까지 있지 않은가?
이길 것이다.
중원은 마천이라는 시련을 충분히 이겨낼 것이다.
자신이 충분히 시간만 벌어준다면…….
“쳇, 너무 오지랖이었나?”
문득 웃음이 났다.
자신이 중원 무림의 명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마천비고를 다시 찾고 싶었을 뿐인데…….
정천 오존이 의지하는 무인이 되었고 제갈휘문을 대놓고 무시할 정도가 되었으며 시대의 영웅이었던 전신 혁련휘와 친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진가를 천하제일의 가문으로 부른다. 천하제일 표국이라 부른다.
진가신과 섭약란은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고, 소강은 정천의 다음 대를 책임질 무인으로 성장했다.
자신과 동시대를 살았던 진소청의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계단처럼 경작된 논밭을 지나 산자락에 빼곡한 집들을 지나 은하촌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소청이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허상처럼 하늘 위에 진소청의 얼굴이 그려졌다.
“이만하면 만족하겠지?”
소청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내게 좋은 건 하나도 없군. 마천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신투로 살 걸 그랬나? 어차피 마천이든 중원이든 도둑으로 사는 데는 아무 상관없었는데…….”
소청이 중얼거리며 절벽을 바라보았다.
십만대산의 봉우리와 이어진 절벽.
“자, 그럼 가볼까!”
파앙!
지면을 거칠게 밟은 소청의 몸이 오십여 장에 달하는 계곡을 넘어 반대편 절벽 면으로 사라졌다.
“어헉!”
은하촌 촌장의 아들 일만이 밖으로 나왔다가 날아가는 소청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넙죽 엎드렸다.
“아이고, 산신님!”
몇 해 전, 십만대산에 사는 산신을 보았다는 아비의 말은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