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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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42화
241화. 종리세만 없다면……
쾅! 콰쾅!
천지가 진동했다.
무황과 마종.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극한의 경지 마저 초월해 버린 두 사람의 싸움은 명산평의 지형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비껴간 장력은 산을 허물었고, 거칠게 밟은 진각은 지면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었다.
쩡! 쩌어엉!
명산평.
그곳은 신들의 전장으로 변했다.
혁련휘는 스승이 마종을 향해 신형을 날림과 동시에 병력을 물렸다.
제자로서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아야 함이 마땅했으나 유언을 지키는 것 또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무황은 시신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산공의 때가 끝나면 완전한 무(無)로 돌아갈 것이다.
명산평 자체가 그의 무덤이 되리라.
혁련휘로부터 무황의 뜻을 전해 들은 제갈휘문은 곧바로 퇴각을 결정했다.
진 것이다.
정면대결에서 밀려 버린 것이다.
무황의 판단이니 틀릴 리가 없었다.
고작 하루를 이어 가지도 못하고 전쟁은 끝이 나버렸다.
그들의 퇴각을 막아선 무황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서둘러 무한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곳에서 다시금 전열을 정비해 마천과 싸울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르릉! 콰쾅!
이미 산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황과 마종이 격돌하는 충격파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소청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짧은 말과 함께 혁련휘와 별동대는 전장을 이탈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황이 마종을 죽이든 죽이지 못하든 진소청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했다.
“서둘러라! 대열을 유지할 필요 없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무한을 향해 달려라!”
제갈휘문의 외침은 전령들에 의해 퇴각하는 중원 무인들의 행렬 곳곳으로 전파되었다.
또한, 전서구를 보냈으니 서천맹에 남은 이들 또한 곧바로 이동할 것이다.
* * *
“…….”
천장이 보였다.
정신을 잃은 지 정확히 열흘이 지났다.
소청은 정신을 잃은 동안 긴 꿈을 꾸었다.
자신이 가진 원래 몸의 주인 ‘진소청’의 기억.
힘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 한 사내의 삶, 그리고 염원.
“소청아!”
어머니 섭약란이 보인다.
“이 녀석…….”
아버지인 진가신의 얼굴과 뒤에 있던 진가성의 모습이 보였다.
소청은 아버지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참 만에 입이 떼어졌다.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숙부님.”
“…….”
소청의 나지막한 부름에 모두가 기쁜 표정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뭐?”
갑작스러운 소청의 말에 세 사람은 영문 모를 표정을 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를 것이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억 속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제가 며칠이나……?”
“열흘, 열흘이 지났다.”
“열흘…….”
소청이 얼굴을 찡그렸다.
자신이 정신을 잃은 동안 종리세가 공격해 오겠다 했던 시간이 지나 버린 것이다.
“허기가 질 것이요. 먹을 것을 좀 가져오시오.”
진가신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섭약란이 밖으로 나갔다.
소청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혹, 밖의 상황이 어찌 되어 가는지 들은 바가 있으십니까?”
“음, 마천과 중원의 무인들이 명산평에서 격돌하였다.”
“그렇군요.”
“안 그래도 막 서천맹에서 퇴각을 알리는 전서구가 도착하였다.”
“음…….”
퇴각.
졌단 말인가?
분명히 무황이 나섰을 것인데…….
설마 그가 졌단 말인가?
소청은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깨어났으니 되었다. 네 어미가 매일같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음식을 준비했다.”
“…….”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섭약란의 손에는 소반이 들려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에 담긴 것은 하얀 죽.
고민했을 것이다.
무엇을 처음 내어 줘야 하나 열흘을 굶은 자신이 부담스럽지 않은 음식을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 언제 깨어날지 몰라 몇 번이고 다시 만들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전해져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켜야 하는 사람들…….’
힘이 없음에 지키지 못했던 진소청의 슬픈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를 대신해서…….’
어쩌면 지독한 열망일지 모른다.
가족을 지킬 수 없었던 병약한 서생의 열망이 마천비고의 비밀에 의해서 되돌아오는 소청에게 전해진 것인지도…….
그것이 그가 병을 얻었던 그해로 자신을 되돌려 놓은 것인지도 몰랐다.
소반을 받아든 소청이 섭약란과 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허기를 채울 음식은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열흘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음에도 딱히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은 상쾌할 정도로 가뿐했고, 힘이 넘쳐 흘렀다.
‘백회와 회음. 건곤에 모인 음양의 힘.’
정신을 잃은 동안 찾아온 몸의 변화.
단중과 백회의 기운이 하나로 뭉쳐 양이 되었고, 명문과 회음의 기운이 뭉쳐 음이 되었다.
음양합일(陰陽合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 변해 있었다.
‘도움을 받은 셈인가…….’
소청은 가지런하게 놓인 숟가락으로 죽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허기가 지지는 않았으나 어머니의 사랑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간이 되지 않은 밋밋한 맛이었으나 지금까지 먹어본 그 어떤 것보다 맛있었다.
“맛있네요.”
소청의 미소에 섭약란은 아들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버리고 또 버려가며 죽을 끓였던 시간들을 보상받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많이 먹거라. 또 있으니…….”
“네.”
퇴각을 알리는 전서구가 도착했다면 서둘러 진가의 사람들을 피신시켜야 했지만 죽 한 그릇 정도는 나쁘지 않으리라.
막 그릇을 비울 때쯤,
“소청!”
소진각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휘!”
죽을 먹고 있던 소청의 얼굴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깨어났군.”
“그래, 막…….”
소청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퇴각을 했다 들었다. 무황께서 그에게 진 것인가?”
“…….”
굳은 얼굴이 대답을 대신했다.
“승패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혁련휘와 함께 돌아온 소강이 그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하면 어찌 퇴각을 결정한 것인가?”
“스승님께서…….”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만났기 때문일까?
혁련휘의 눈에 참고만 있던 습막이 차올랐다가 굵은 방울이 되어 흘렀다.
“마지막이라 하셨다.”
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무황은… 지킨 것이다.
그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마천의 모두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것이 분명했다.
“혹, 열두 명의 무인이 함께였던가?”
“그, 그걸 어찌 아는가?”
눈물로 얼룩진 혁련휘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이미 만난 적이 있네.”
종리세와 함께 찾아왔던 이들.
그들의 기세는 다른 세주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강했다.
종리세와 네 명의 세주,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열두 명의 무인.
한 명의 세주는 오존이나 사도삼위보다 강하다.
그런 자들이 열둘이나 더 있다는 것은 중원 무림에 있어서 재난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들이 나선 겐가?”
“아니. 전투가 시작되고 마천은 진격을 멈추고 물러났다.”
“물러나?”
“나서지 않았다. 퇴각을 했음에도 뒤쫓지 않더군.”
“…….”
뒤쫓지 않았다?
어째서?
퇴각하는 적을 죽이는 것은 정면으로 싸우는 것보다야 훨씬 유리할 것인데?
설마 함정을 걱정한 것인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혹, 무황 어른과 마종이 대화를 나누었는가?”
“…….”
소청의 질문에 혁련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자신이 들었던 대화를 이야기했다.
십 년 전, 종리세는 무황을 찾아왔었다. 화산에서 검존과 싸운 뒤에.
그는 패배했고,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십 년 동안 세주들에게 중원 무림의 처리를 맡겨두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의 가장 큰 전력이었던 두 대공의 대막혈궁과 북해가 무너졌을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 대막혈궁과 북해가 무너졌는데도 나서지 않았던 것일까?
종리세는 분명 무황을 이길 수 있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삼궁의 정수…….’
그것이 그의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말.
[어차피 죽을 놈들이니 무덤이 어디인들 상관없겠지. 원하는 대로 해주마.]
‘그렇군.’
알 것 같았다.
뒤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종리세는 오직 무황만을 생각하고 있다.
무황만 죽이면 언제든지 중원을 짓밟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무황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가 그의 앞을 막는다면?’
소청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신은 이미 한 번 진 바 있었다. 소청은 문득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안에 이전에 없었던 힘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음양합일.
새롭게 얻은 힘.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확인을 해보아야 했다.
그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면 마천을 사천에 묶어 둘 수 있을지도 몰랐다.
“휘.”
“응?”
“마천의 세주들. 몇까지 상대가 가능하겠는가?”
마천의 세주들보다 강한 것은 혁련휘가 유일했다. 그는 권마 우도를 잡은 경험이 있으니까.
“음, 둘? 혹은 셋?”
“그렇군.”
소청은 혁련휘에게서 소강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는?”
“예?”
“사상, 이룰 수 있겠느냐?”
“아니, 그게…….”
소강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청이 희미하게 웃었다.
소강은 이미 한 명의 세주와 능히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자신감이 부족할 뿐이었다.
패월창법과 팔괘공은 ‘진소청’이 소강을 위해 만들어 낸 무공이었다.
전생의 진소강과는 달리 그의 몸 안에는 만년설삼의 기운이 가득하다.
사상을 이룬다면 능히 소청과 싸웠던 두 대공과 비슷한 경지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소강, 자신감을 가져라.”
“…….”
“가두려 하지 말고 이끌림대로 두거라. 하면 스스로 알아서 합쳐질 것이다.”
소청은 소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혁련휘와 소강.
두 사람이라면 종리세가 없는 마천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종리세만 없다면…….
소청이 고심하는 사이 혁련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데 그걸 어찌 묻는 것인가?”
“응? 아닐세. 별일 아니야.”
소청은 환하게 웃어넘겼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혁련휘나 소강이 알게 된다면 필시 따르려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리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뒤를 지켜야만 했다.
“아버님, 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퇴각 명령이 내려졌으니 곧바로 떠날 준비를 해주십시오.”
“음, 알았다.”
소청의 말에 진가신과 섭약란, 진가성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소청은 소강을 바라보았다.
“소강, 아버님과 어머님을 절강성으로 모셔라.”
“예?”
소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지만 소청은 이미 혁련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 별동대와 함께 무한으로 가게. 가서 제갈휘문을 도와 마천과 싸울 준비를 해주게.”
“자네는? 설마?”
“나는 비마대와 함께 적을 좀 살펴보아야겠네.”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려했던 대로 혁련휘가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될 말입니다.”
소강 역시 반대했다.
“소청, 너무 위험한 일이다. 스승님도 승패를 장담하지 못했던 일일세.”
“알아. 그러니 더더욱 조심해야지. 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런…….”
“자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무황께서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가능할 리가 없지. 그저 적들에 대해 파악이 필요할 뿐이다.”
“…….”
“지금 우리는 전력도 약할 뿐더러 적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네. 전략을 세우자면 적들에 대해 세세히 아는 것이 먼저야.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나와 비마대뿐이기도 하고…….”
부인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부탁하네.”
소청의 말에 혁련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걱정 말게. 파악만 하고 나면 반드시 돌아오겠다 약속하지.”
“소청…….”
“형님…….”
혁련휘와 소강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소청이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리 무모한 성격이 아니야. 무한에서 보도록 하세.”
혁련휘는 한참을 고심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