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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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38화
237화. 신호탄이 오르다
“와아아!”
함성과 함께 거대한 두 세력이 서로를 향해 곧장 내달렸다.
공격의 선후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콰아앙!
달려온 이들은 마치 성벽을 부수는 충차(衝車)처럼 충돌했다.
뼈마디가 부서지고 살점과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모든 무인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가 적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선두를 자청했던 이들은 산산이 으깨져 형체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졌고, 그 위를 무수히 많은 발이 짓밟아 놓았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 있는지 알 수가 없었고, 우세한 것이 마천인지 중원 무림인지도 불명확했다.
서로에게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물어뜯는 모습은 혀를 내두를 만큼이나 잔인했다.
“하압!”
중앙을 맡은 태존의 송문고검이 빛을 발하며 허공을 꿰뚫듯이 쏘아진다.
빛의 창처럼 변한 검에 달려드는 마천의 무인 수십이 꿰뚫렸다.
극의에 다다라 이기어검의 경지를 바라보는 태존의 태극혜검.
척!
되돌아온 검을 잡은 태존은 곧바로 거악의 기운을 담아 적들을 향해 내리쳤다.
쩌어엉!
거칠게 뻗어 나간 기파가 전방의 적을 모조리 짓이겨 버렸다.
“후우…….”
첫 번째 격돌에서 얻어야 할 것은 기세였다.
하기에 태존은 자신이 가진 힘을 모조리 토해 내었다.
하지만 무리한 기의 운용으로 인해 막아두었던 현음신장(玄陰神掌)의 독기가 그의 가슴을 침범해 왔다.
“음…….”
그가 멈칫하는 사이에 무너뜨렸다 생각한 중앙부에 마천의 무인들이 또다시 채워졌다.
“제길…….”
무리임을 알고 있었지만 기세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가볍게 호흡하며 기운을 가라앉힌 태존이 이를 악물고 적들을 향해 다가서는 순간.
그 앞의 공간이 거울이 부서지듯 수백, 아니 수천 갈래로 찢겨 나갔다.
혁련휘가 태존을 뛰어넘으며 곧바로 만경창파의 초식을 축도로 펼쳐 내었다.
전방의 적을 갈가리 찢어버린 혁련휘가 태존의 앞을 가로막았다.
“태존 어른! 잠시 기력을 보충하십시오. 제가 맡겠습니다.”
“아, 고맙네.”
태존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혁련휘의 신형은 마천의 전선을 향해 파고들었다.
검은빛을 띄는 칼, 흑룡아는 그 이름처럼 거대한 용의 이빨이 되어 적들을 찢어발겼다.
“밀리지 마라! 적이 전선을 뚫고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철혈군은 조를 이루어 뚫린 곳을 지원해라!”
혁련휘의 외침이 전선을 쩌렁쩌렁 울렸다.
“허, 대단하군. 과연 무황의 제자인 것인가?”
혁련휘와 철혈군으로 인해 여유가 생긴 태존은 한 마리 범처럼 전장을 쓸고 다니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만변을 머금은 그의 도법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또한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 놓을 만큼 웅혼한 긍지를 품고 있었다.
“나를 배려한 것인가? 헛헛, 나도 늙었군.”
혁련휘는 태존이 물러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앞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뒤에서 태존을 지원하며 싸운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나서자 태존이 있었을 때보다 훨씬 더 전장을 유리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미 넘어선 것이다.
진소청이 그러하듯 사도련의 후계자는 이전 시대를 이끌어 온 절대자들을 뛰어넘고 있었다.
혁련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태존은 문득 새 시대를 이끌어 갈 거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서둘러 기력을 회복해 그의 뒤를 지켜야겠구만.”
태존은 뒤로 물러나며 서둘러 독기를 몰아 가두고 단전의 내공을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
길게 늘어선 전선의 중앙부는 혁련휘와 철혈군으로 인해 점차 마천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곳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별동대를 비롯해 중원 최고수들이 빠져버린 다른 곳의 전선은 마천의 세주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었다.
“중원 놈들, 꽤 많이도 모아뒀구나!”
전선의 좌측 끝.
거대한 체구의 노인, 요마 이옥상의 양손에 끝이 뱀의 혓바닥처럼 갈라진 검, 사설(蛇舌)이 들려 있었다.
“죽어라!”
난전 속에서 내질러진 창이 요마를 향해 날아왔다.
푸욱!
분명 꿰뚫었음인데 이옥상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크크크.
“……!”
그리고 잔인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은비림. 청소를 시작하라!
도무지 어디서 들리는 것인지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걱! 푸학!
무언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보이지 않는 칼날의 공포는 순식간에 중원 무인들의 틈을 파고들며 피를 뿌려놓았다.
“흐흐흐, 바로 이거야. 전율할 정도로 짙은 피 냄새. 이래야지. 전쟁은 바로 이래야 하는 거야!”
붉은 혀를 내밀어 검에 묻은 피를 핥아낸 요마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지어졌다.
“죽여라! 포로 따위는 필요 없다. 모조리 죽여라! 온 세상을 피로 물들여라!”
요마는 사방에 가득한 혈향을 헤치며 중원 무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푸욱!
요마의 검이 몸에 박혔다가 빠져나올 때면 그 갈라진 끝에 걸린 내장들이 모조리 끌려나왔다.
목이 날아가거나 복부에 검이 박히고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까앙!
“……!”
순간 요마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난전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검을 튕겨 내었다.
그것도 주먹으로…….
“제법 쓸 만한 놈들이 끼어 있군? 대가리를 보니 소림승인가?”
“……!”
요마의 투실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를 가로막은 것은 소림이 자랑하는 사대금강이었다. 통성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마천은 신승을 해한 마도의 무리이자 중원에 살겁을 가져올 마귀들이었다.
사대금강의 눈에는 승려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짙은 살기가 지어져 있었다.
“승려라는 놈들이 눈빛하고는…….”
“…….”
의외라는 표정은 사라지고 요마의 얼굴에 자리 잡은 것은 비웃음이었다.
사대금강은 요마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에워쌌다.
요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기운과 살기만으로도 사대금강은 그가 마천의 세주 중 하나임을 직감했다.
전투에 나서기 전 제갈휘문은 횡진을 구성한 곳곳의 고수들에게 신호탄을 나누어 주며 말했다.
세주로 보이는 자가 나타나면 곧바로 신호를 보내라 했다.
그러나.
사대금강은 오랫동안 단련해 온 자신들의 무공을 믿었다. 천년을 이어온 소림이 뒤진다 생각하지 않았다.
“적의 수괴다! 금강복마진(金剛伏魔陣)을 펼쳐라!”
수좌인 법정의 외침에 사대금강이 마름모꼴로 요마를 둘러싸고 불기를 끌어올렸다.
은은한 금빛 서기가 일시에 뿜어져 나와 합쳐졌고, 순식간에 요마를 감추어 버렸다.
우웅!
진한 떨림과 함께 금강진의 압력이 요마를 짓눌렀다.
항마력에 있어서는 중원 최강이라 부리는 소림의 불기였다. 사대금강은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듣기만 했지 마천의 세주라는 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했다.
“흐흐흐, 잡스러운 것들…….”
“……!”
짧은 비웃음과 함께 진에 갇혀 있던 요마의 몸이 허공에 뿌려진 모래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그의 존재가 사대금강의 기감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이런…….”
푸학!
요마의 뒤를 지키던 법혜의 목이 날아가는 순간 금강복마진은 제 위력조차 발휘해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법혜!”
법정이 놀란 표정으로 경악성을 토했다.
“놀라기는. 고작 이따위 잡기로 나를 막으려 한 거야? 시시한 놈들 같으니…….”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법혜의 머리를 움켜쥔 요마가 잔인한 눈동자로 사대금강을 쓸어보았다.
“이노옴!”
분노한 법정과 사대금강이 요마를 향해 동시에 뻗어 나갔다.
“흐흐흐.”
그리고 잔인하게 웃음을 머금은 요마의 사설검이 휘둘러졌다.
사대금강은 소림을 대표하는 든든한 무인이었으나 요마의 일초지적조차 되지 못했다.
소림의 무공을 펼치기도 전에 목이 달아나고 허리가 잘려나가는 것은 한 호흡조차 되지 못했다.
“크으…….”
피와 내장을 쏟아내며 무릎을 꿇은 법정은 원독에 찬 눈으로 요마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피로 물든 손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호오? 신호탄인가?”
“…….”
요마는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이 그가 하는 냥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찌이익!
신호탄 하단의 줄이 당겨지고.
피융! 퍼엉!
짧게 솟구친 불꽃이 폭발했다.
그리고 법정은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엎어졌다.
콰직!
요마는 그의 머리를 짓밟아 으깨버렸다.
“어디, 어떤 놈을 불렀는지 기다려줘 볼까?”
* * *
“대군사님! 신호탄입니다!”
난전이 펼쳐진 전선의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소강이 터져 오른 신호탄을 가리켰다.
피융! 퍼엉!
뒤이어 모두 네 곳에서 신호탄이 연이어 터져 올랐다.
세주들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기다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혁련휘와 태존이 이끄는 중앙부가 적을 밀어냈으나 나머지 전선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마치 포위되고 있는 형세였다.
밀리고 있는 곳은 모두 네 곳, 신호탄이 터진 곳이다. 그곳에 전투의 향방을 가를 마천의 세주들이 있는 것이다.
전선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단을 만들고 전장 전체를 지켜보고 있던 제갈휘문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마종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황.
그리고 그의 옆으로 세주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조바심을 내며 기다린 무인들.
“지금입니다! 지금 즉시 마천 수뇌들의 목을 잘라주십시오! 기세를 끊고 나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가겠습니다!”
소강이 짧게 인사함과 동시에 맨 처음 신호탄이 쏘아진 전선의 좌측을 향해 몸을 날리자 악이군과 승혜가 그 뒤를 따랐다.
“우리도 서두르지!”
검후 역시 뒤지지 않으려 검을 뽑고 몸을 날렸고, 서문중걸과 팽천기가 그 뒤를 따랐다.
“뒤질 수 없지!”
혜어화와 옥명자, 섬뢰와 황보인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처음은 서로가 맞부딪치며 시작되었고, 이로써 전투의 향방을 결정할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종이 나서질 않는군요.”
“음…….”
제갈휘문의 말에 무황이 그들처럼 전선의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종을 바라보았다.
백여 장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그의 얼굴 표정 하나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마치 전선의 모습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듯한 표정이었다.
사두마차 위에 올라 한가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불안감이 들었다.
마종 종리세의 옆을 지키는 자들…….
모두 열두 명이다.
한결같이 검은 천을 두른 복장으로 서 있는 열두 명의 무인.
꽤나 먼 거리에 있지만 그들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대군사.”
“예, 연맹주님.”
“어쩌면 자네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지도 모르네.”
“예?”
무슨 뜻일까?
제갈휘문은 무황의 말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제갈휘문 역시 전황의 전체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무황만큼 세세하게 살필 수는 없었다.
“만중.”
“예.”
무황의 부름에 혈랑대주 만중이 다가와 혈도, 참작을 내밀었다.
“움직일 때가 멀지 않은 듯하구나. 놈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듯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