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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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35화
234화. 동생을 위한 선물
패월창법은 신투가 되기 전 동정호에 살았던 막야에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뒷골목 배수였던 그가 우연히 얻은 비급이었다.
버려진 비급.
당시에 그는 그다지 똑똑하지 않았다.
막야는 생전 처음으로 얻은 비급을 외우고 또 외웠다.
하지만 그 비급은 초심자가 익히기에도 너무 쉽게 쓰여 있었다.
그때는 이름 없는 이의 것이려니 생각을 했었다.
신투가 된 이후로 패월창법의 기원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었으나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시초가 원래의 진소청이었다.
그렇기에 패월창법은 월식창법의 발전형처럼 보인 것이다. 애초에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하나에서 파생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패월창법과 팔괘공의 연이 이어져 진소청의 몸으로 깨어났던 것인가?’
그저 추측일 뿐이다.
애초에 사람이 죽어 과거로 돌아온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리 믿고 싶었다.
연이 닿아 있었음을 믿고 싶었다.
병약했던 진소청.
하나 패월창법과 팔괘공이라는 뛰어난 무공을 만들어 낼 정도로 천재였던 그.
하지만 그 역시 전생의 신투처럼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었다.
다른 인생이지만 같은 무공을 가진 둘의 염원이 시간을 거슬러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형님.”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정체는 진소강이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약하기만 한 진소강이었다.
“들어오너라.”
혹여 동생이 볼까 피 묻은 헝겊을 모아 엉덩이 밑으로 감춘 소청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으로 들어오는 진소강의 모습.
“또 이러고 계십니까?”
“…….”
진소강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보인다.
여전하다.
그는 전생에도 후생에도 제 형을 너무도 아끼고 따르는 녀석이었다.
“형님,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몸 생각을 해서 무리하지 마시라 하지 않았습니까.”
“괜찮다. 괜찮아. 표행을 떠난다지?”
“예. 아버님을 따라 감숙성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꽤나 긴 여정이 되겠구나.”
“하지만 어르신들께선 이번 여정이 진가를 조금 더 나아가게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겠지.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당가가 독점권을 준다 하였다지?”
“예. 아버님께서는 이번 일로 좀 더 좋은 의원을 모실 수 있을 것이라 기뻐하셨습니다.”
“휴우…… 부질없는 짓인데…….”
“형님!”
진소청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표국의 대부분의 수입이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열세 살에 찾아온 병은 벌써 일곱 해를 넘기도록 낫지 않고 있었다.
낫기는커녕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좋은 영약을 구해 소강에게 준다면 가문을 더욱 뛰어난 모습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인데…….
“휴우, 그보다 팔괘연환공의 수련은 어찌 되어 가느냐.”
“형니임…….”
“소강.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어차피 해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
넋두리 같은 진소청의 말에 진소강은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사상을 이루었습니다.”
사상을 이루었다고?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소청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비급에는 분명 팔괘연환공을 합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었다.
소청도 무의식중에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소청은 혹여 둘의 대화 내용을 놓칠까 싶어 숨소리마저 줄였다.
“하면 이제 남은 것은 건(乾)과 곤(坤)에 담는 것이구나.”
건과 곤?
소청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건과 곤이라면 하늘과 땅이 아닌가?
‘건곤……. 혹시?’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운기를 위해 좌정을 했을 때 가장 높은 곳이 백회였고 가장 낮은 곳이 회음이었다.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예. 두 개의 기운을 백회와 회음에 담아 음양을 이루면 될 것입니다.”
역시!
“잘하였다. 과연 천재라 할 만하구나.”
진소청의 칭찬에 진소강이 부끄러운 듯이 볼을 붉게 물들였다.
“모두가 형님께서 알려 주신 것을요.”
“아니다. 내 말은 모두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을 이룬 것은 모두가 네 공이 아니냐.”
진소청이 고개를 내저었다.
“일반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공이다. 합일을 함에 어려움이 있지 않더냐?”
“예. 독맥 여덟 혈에 쌓인 내공을 단중, 백회, 명문, 회음에 합일했으나 모두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음……. 하나 주의해야 한다. 가두려 하지 말고 이끌림대로 두거라. 하면 스스로 알아서 합쳐질 것이다.”
“예.”
“단중의 화기, 백회의 뇌기, 명문의 한기, 회음의 지기. 이제부터는 이 네 가지가 고루 힘을 가지도록 수련하거라. 각각의 기운이 완전한 특성을 지니면 건의 기운인 화기와 뇌기가 백회에 모여 양(陽)이 되고 곤의 기운인 한기와 지기가 회음에 모여 음(陰)이 되어 음양합일을 이룰 것이다.”
“예, 형님.”
‘아!’
소청이 마음속으로 나지막하게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건 패월창법이라는 무공이다. 월식창법을 보완한 것이나 아직은 허점이 많다. 수련을 하며 계속해서 보완해야 할 것이다.”
진소청이 그에게 탁자 위에 있던 서책을 덮어 내밀자 진소강이 공손하게 갈무리를 했다.
“그만 나가 보거라.”
“예, 형님. 부디 약을 거르시지 말고 몸을 챙기십시오. 형님께선 진가의 기둥입니다.”
“녀석, 기둥은 네가 아니냐. 병약한 이 형을 대신해 진가를 책임질 소가주가 되었으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형님…….”
“걱정 말거라. 내 꼭 너의 소가주 임명식은 보고 가려 한다.”
진소청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있는 듯이 어두운 낯빛으로 웃었고 진소강은 그런 형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한참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진소강이 비급을 품고 물러났다.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능히 한 세대를 풍미하고도 남을 녀석인데 별 볼 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재능조차 펴지 못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영약 하나만 취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이 형이 네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구나.”
방문 밖에서 더 이상 진소강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진소청이 장탄식을 흘렸다.
병상에서 모든 심력을 다해 그가 만든 두 개의 무공.
그것은 동생을 위한 마음이 발현된 것이었다.
사천당가라는 거대한 그림자 속의 약하디약한 표국에서 태어나 자신의 재능조차 발현시키지 못한 동생을 안타까워하며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불태워 만든 선물이었다.
각혈을 하며 몇 번이나 정신을 놓으면서 완성한 그런 무공이었다.
하지만 소강이라면 다를 것이다.
음양을 넘어 능히 합일을 이루고 가문을 키워 나갈 것이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음양을 이루고 나서 백회와 회음의 혈에 쌓인 기운을 단전에 뭉쳐 태극을 이루면 적어도 절정의 경지에는 오를 수 있으리라.
“하늘에 신이 있다면 우리 소강이를 보살펴 주시길…….”
나지막하고 힘없이 읊조리는 진소청의 목소리에 담긴 슬픈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주르륵.
소청은 문득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방 안의 모습들이 사라지고 또 다른 모습이 그려졌다.
슬픔이 가득하다.
많은 사람이 엎드려 통곡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한 채로 땅바닥만을 연신 때렸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세 대의 달구지가 있었다.
달구지 위에는 무언가를 거적으로 덮어 두었다.
진소청은 왕칠의 부축을 받으며 떨리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 발, 또 한 발…….
온 힘을 다해 달구지를 향해 다가갔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청도 의아함을 느끼고 달구지를 향해 다가갔다.
진소청이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히지도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거적을 걷어 내었다.
“으아…… 으아아…….”
그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거적 아래 드러난 얼굴은 숙부인 진가성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아버지인 진가신이 있었다.
“기련산께에서 마성에 빠진 악귀를 만나는 바람에…….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으으으…….”
진소청의 눈은 화등잔만 해지고 턱 언저리를 쉴 새 없이 떨어 대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달구지.
진소청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해졌다.
아니길…… 제발 아니기를 빌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동생의 얼굴을 지워 버리고 싶었다.
도저히 거적을 젖힐 수가 없었다. 거적의 끝을 잡은 손이 쉴 새 없이 떨려 왔다.
아니어야 한다.
제발 아니어야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소청마저 아니기를 빌고 또 빌었다.
진소청의 숨소리가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거칠어졌다.
천천히 거적이 젖혀지는 순간.
“으아아아!”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슬픈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슬픔은 고스란히 소청에게로 전해졌다.
“아, 아버님……. 숙부……. 소, 소가앙…….”
진소청은 허물어졌다.
단장의 고통이 그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컥, 쿨럭, 쿨럭!”
기침과 함께 목구멍을 타고 오른 핏물이 입으로 흘러 바닥을 흠뻑 적셔 놓았다.
“크, 큰도련님!”
왕칠이 급히 부축을 다가서지만 진소청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더 이상 깨어나지 못했다.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을 이겨 내지 못한 섭약란은 미쳐 버렸고 진가의 역사는 그렇게 끝이 나 버린 것이다.
* * *
소진각의 방 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청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청아!”
소청의 부상 소식을 듣고 차마 피난을 가지 못한 섭약란이 갑자기 흐르는 눈물에 화색을 띠었다.
“상공! 상공!”
그의 부름에 진가신이 방문을 열고 뛰어들어 왔다.
“소청이가 깨어나려나 봐요!”
“오!”
섭약란의 말에 진가신의 얼굴마저 기쁨으로 물들었다.
“헛헛, 거 내 뭐랬소. 우리 큰아들이 얼마나 강건한 녀석인데. 곧 깨어날 것이라 하지 않았소!”
진가신이 우쭐하며 말했지만 섭약란은 곱게 눈을 흘길 뿐 탓하지 않았다.
아들이 돌아와 누운 지 닷새를 넘기고 있었다.
마천과의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무인들이 모두 빠져나갔고 대부분의 식솔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지금의 진가에는 진가신과 섭약란을 비롯해 스물도 채 되지 않는 인원밖에 없었다.
섭약란은 아들의 곁을 지켰고 진가신은 몇 날 며칠 동안이나 소진각 앞을 서성거렸다.
“게 우찬이 있는가?”
“예, 가주님.”
“오늘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저녁을 준비해 두게. 닷새나 굶었으니 일어나면 배가 고플 게야.”
“알겠습니다, 가주님.”
우찬이 반가운 기색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소청은 깨어나지 않았다.
눈물이 멈추고 자정이 넘어서도 깨어나지 않았고 준비했던 음식은 그 누구의 입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식어 버렸다.
잠시나마 기뻐했던 진가신과 섭약란, 진가의 사람들은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깨어날 기미가 있으니 걱정은 조금 던 셈이었다.
긴 꿈속에 있었던 소청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속에 있었다.
아비와 어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고 기뻐하는 모습도 모두 느끼고 있었다.
관조의 영역에 있었지만 스스로 깨어날 수가 없었다. 단전은 완전히 치료된 뒤였고 몸은 더없이 가뿐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몸에서 변화가 생겼다.
몸 안에 자리 잡은 네 가지 기운들이 자신이 가진 힘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