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전설 191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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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왕전설 191화 (완결)
191화
부하의 말에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눈이 풀린 것이 멍청해 보이기 짝이 없었다.
“험! 나도 알고 있어. 그냥 물어본 거야.”
산적이 무안함에 괜히 헛기침을 하며 어벙해 보이는 사내에게 바짝 다가갔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가진 것 다 내놓을래, 아니면 우리한테 일을 의뢰할래?”
“…….”
산적이 바로 앞에서 눈을 부라리며 윽박을 지르는데도 사내는 그저 멍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 자식이 정말!”
퍼억!
“끄아아악!”
치기는 산적이 쳤는데 비명은 산적이 지르고 있었다. 이에 부하들이 놀라서 다가오며 그를 불렀다.
“헛! 조장!”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조장이라 불린 그 산적이 손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뭘 보고 있어! 당장에 이놈을 죽여!”
보통 산적이 이렇게 말하면 다 같이 덤벼들어 일단 상대를 손보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부하들은 오히려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나며 말했다.
“아, 참 나……. 요즘 방식이 바뀌신 것 모릅니까?”
“그러게요. 방금도 이유 없이 주먹 쓴 것을 두목이 알면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부하들의 반응이 이러자 조장이라는 산적은 속에서 울컥했다.
“뭐야? 이런 젠장! 그럼 이대로 물러나자는 말이냐?”
“그건 안 되죠.”
“에이, 비켜보세요. 제가 할게요.”
결국 부하들 중에 한 명이 나서서 어벙해 보이는 사내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봐. 운이 좋은 줄 알아. 요즘 우리 방식이 바뀌어서 말이지. 그러니까 지금 그냥 있는 것을 다 빼앗기면 손해잖아. 그러니까 우리한테 일을 의뢰하란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일을 완수하고 그 수고비만 받아 간다는 거지. 알아들어? 돈은 지금 없다니까 일이 끝난 후에 줘도 된다고. 어때?”
산적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 어벙해 보이는 사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손을 휘둘렀다.
“귀찮아!”
빠악!
“컥!”
가볍게 휘두른 것 같았는데 얻어맞은 산적은 무려 3장이나 날아가서 처박혔다.
그것을 보고 나머지 산적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꿀꺽!
‘니미… 이거 진짜 고수였잖아.’
조장이라고 불린 산적은 바짝 긴장을 하며 칼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그리고 어벙해 보이는 사내 앞에 서서 이빨을 꽉 깨물었다.
‘제길.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조장이라 불린 사내의 비장한 모습을 보고 그의 부하들은 속으로 설마 하는 생각을 했다.
허접한 실력을 믿고 고수에게 덤벼들었다가는 자신들까지 모두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털썩!
조장이라 불리던 그 산적이 갑자기 풀썩 무릎을 꿇더니 넙죽 엎드리며 절을 했다.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나머지 산적들이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그 조장이라 불린 산적이 그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냐? 어서 와서 용서를 빌지 않고!”
“네?”
“아…알겠습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산적들이 조장이라 불린 산적의 뒤로 가서 넙죽 엎드렸다.
조장이라 불린 산적은 과연 경험이 많은 자였다. 지금과 같이 무림의 고수를 못 알아보고 건드렸을 경우 경험이 없는 자들은 무조건 도망을 친다. 그럴 경우 열에 아홉은 죽기 마련이었다.
고수들의 명예와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그런 그들을 위협하고 도망치려 한다는 것은 그냥 ‘나 죽여주십시오.’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럴 때는 무조건 비굴한 모습으로 비는 것이 제일이었다.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고수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운이 나빠 팔이 하나 날아갈 수도 있지만 목숨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산적들이 모두 넙죽 엎드려서 애원을 하는데도 어벙해 보이는 사내는 그저 가만히 그들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도록 사내는 산적들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산적들은 혹시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면서도 슬슬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이 시점에서도 다리가 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조장이라고 불렸던 산적이 고개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쳐들어 어벙해 보이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리고 어벙해 보이는 사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팍 숙였다.
‘니미… 살리든 죽이든 빨리 뭔가를 하지……. 으… 다리가…….’
산적들은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끊어지도록 아팠으나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계속 꼼지락대고만 있었다. 그때 그 어벙해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들 산적이지?”
‘아, 나 정말……. 딱 보면 모르냐? 여태까지 그거 생각한 거냐? 이거 살짝 맛이 간 놈 아니야? 이런 놈은 정말 위험한데…….’
생각과는 달리 산적들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헤헤, 그게 정확히 말하자면 산적은 아니고요……. 산적 겸 표사라고나 할까? 하하. 뭐 그런 겁니다. 헤헤.”
온갖 비굴한 모습으로 실실거리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어벙해 보이는 사내가 쭈그리고 앉아 산적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물었다.
“누가 두목이야?”
“네? 아! 하하……. 저기 두목은 여기 없습니다. 저기 산채에…….”
‘아차!’
자신도 모르게 어벙해 보이는 사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해버린 산적은 속으로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래? 그럼 그리로 가자.”
“네? 저……. 그…그것이…….”
“왜? 싫어?”
그렇게 묻고 있는 어벙해 보이는 사내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조장이라 불린 사내는 알고 있었다. 저런 어벙해 보이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무림인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헛! 아닙니다. 싫기는요.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산채까지 데려가서 처리한다. 크크. 거기서 한번 죽어봐라.’
현재 산채에는 무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땀 흘리며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고수들도 상당히 많았다.
조장이라 불린 산적은 이 어벙해 보이는 사내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산채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 산적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벙해 보이는 사내는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산적의 뒤를 따라 팔공채로 향했다.
나른한 봄날이었다.
황랑은 이런 따뜻한 날씨가 좋았다. 요즘 그는 자신이 만든 팔공당랑공을 부하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연공을 하기에는 이렇게 따뜻한 봄날이 좋았던 것이다.
“뻗을 때는 확실히! 사마귀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하란 말이다!”
“넷!”
30여 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대답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들은 모두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땀으로 인해 번들거리고 있었다.
“보법은 날렵하게! 마치 원숭이가 움직이듯이!”
황랑이 다시 크게 소리치자 부하들이 또다시 일제히 움직였다.
“넷!”
촤촤촤촤악!
현재 팔공산에 있는 팔공채는 완전히 부활해서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팔공당랑공을 대성한 황랑의 무공은 이제 예전의 그 삼류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부하들을 모아 철저하게 훈련을 시키니 그들의 무공도 쑥쑥 늘어났다.
이에 이제 단순한 산적이 아니라 표국의 일까지 겸하고 있었다. 팔공산을 넘는 사람들의 짐을 보호해서 목적지까지 가져다주고 돈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산적질을 하는 것보다 수입이 몇 배나 좋았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 부하들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오며 황랑을 불렀다.
“두목! 두목!”
“뭐야? 지금 다 같이 연공 중인 거 안 보여?”
“헉! 헉! 그, 그것이 지금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네. 그게, 일을 나갔던 놈들이 웬 어벙해 보이는 놈을 데려왔습니다.”
“뭐야? 겨우 그딴 일로 지금 내 연공을 방해한 거야?”
황랑이 화를 내며 소리치자 그가 찔끔하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그 어벙해 보이는 놈이 엄청난 고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고수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말을 똑바로 해!”
“일단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에잉! 귀찮게시리. 부두목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런 일에 일일이 두목인 내가 나서야 하니…….”
황랑은 그렇게 투덜대면서 밖으로 산채의 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문득 예전에 이런 일이 한 번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가 또다시 이곳으로 올 리가 없지 않은가?
이에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보고를 한 부하에게 말했다.
“가보자.”
“넷!”
부하와 함께 밑으로 가자 산채의 중앙에 있는 공터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한 사내를 둘러싸고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부하들이 워낙에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뭐야? 벌써 죽은 거 아냐?”
“아닙니다.”
“뭐?”
“그게, 그러니까, 안 죽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후려쳐도 끄떡도 안 합니다.”
“…….”
‘설마…….’
잠시 말이 없던 황랑은 부하를 향해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부하가 다가오자 그의 뒤통수를 힘껏 후려쳤다.
따악!
“컥!”
“꿈은 아니구나. 설마 그가 돌아왔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라니요?”
“비켜!”
황랑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에 겹겹이 있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치면서 그들을 옆으로 밀어냈다.
“비켜! 비키란 말이다! 자식들아!”
황랑이 그렇게 부하들을 밀치면서 앞으로 달리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그때까지 그 어벙해 보이는 사내에게 무기를 휘두르던 산적들은 황랑이 놀란 눈을 하고 멍하니 서 있자 모두들 동작을 멈추었다.
“가…강 부두목! 크하하하!”
황랑은 미친 사람처럼 크게 웃어젖혔다. 그러다 강무진을 향해 달려가 그를 꽉 껴안으며 기뻐했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응? 하하하. 왔으면 바로 나를 찾지 않고…….”
그렇게 강무진을 보고 기뻐하던 황랑이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자식들아!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앙? 내가 그렇게 입에 침이 닳도록 이야기했던 강 부두목이다. 하하하하.”
“에에?”
황랑의 말에 부하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했다. 황랑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그동안 부하들에게 틈만 나면 강무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하하하하. 자자, 안으로 들어가세나.”
황랑이 그렇게 말하면 강무진을 잡아끄는데 그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부두목이야?”
“응?”
황랑은 강무진의 이상한 반응에 멈칫했다
‘뭐야, 이거? 설마…….’
그때였다.
“아항. 내가 여기 부두목이었구나.”
강무진의 말에 황랑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젠장! 야! 너 빨리 패왕성에 가서 패왕 강무진이 여기 있다고 알리고 와.”
“네? 패왕성이요?”
부하가 놀라서 그렇게 묻자 황랑이 신경질을 팍 내면서 소리쳤다.
“그래! 패왕성 말이다. 패왕성!”
황랑으로서는 옛날과 같은 고생을 또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