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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전설 176화

무료소설 패왕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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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왕전설 176화

 176화

 

“네놈… 이름이 뭐냐?”

“강무진입니다.”

“패왕성의 열화마결인가?”

자신의 차가운 기운에 그 정도의 상극으로 맞설 수 있는 무공은 유양천이 알기에 오직 패왕성의 열화마결 하나뿐이었다.

“그렇습니다.”

강무진이 순순히 대답을 하자 유양천은 더 이상 뭐라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강무진을 노려보기만 했다.

강무진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같이 노려봤다.

두 사람이 그렇게 눈싸움을 시작하자 중간에 있던 공지 대사는 입장이 난처했다. 이에 웃으면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허허, 이것도 다 인연이군요. 같이 차라도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습니까? 서로 쌓인 오해는 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강무진은 그런 공지 대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유양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몰래 가져간 물건부터 돌려주시죠.”

“흥! 누가 뭘 가져갔단 말인가?”

원래 유양천은 소림사에서 아이들을 찾아오면 아무도 몰래 대환단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생각이었다. 대환단이 아무리 영약으로 이름이 높다 해도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유양천이 익힌 무공은 극음의 기운이어서 양의 기운이 가득한 대환단은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소림사하고 원한 질 일을 굳이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강무진이 대놓고 물건을 내놓으라고 하니 줄 수가 없었다. 강무진이 비록 유무화를 데려왔다고는 하나 하는 짓이 건방졌고, 무엇보다 지금 대환단을 내주면 자신이 그것을 몰래 훔쳤다는 것을 대놓고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그러니 끝까지 발뺌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짐작한 공지 대사가 두 사람을 달래면서 말했다.

“자자, 물건은 때가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유 시주?”

마치 알아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라는 말 같았다. 공지 대사가 유양천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리 말한 것이었다.

“험! 그렇습니다. 때가 되면 그리될 것입니다.”

유양천이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그렇게 말하자 공지 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강무진에게 말했다.

“강 소협이 본 문에 도움을 준 것은 잊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강무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유양천을 바라봤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후우… 만일 무화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가 북해까지 달려갈 겁니다.”

“네놈은 북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유양천의 말에 강무진이 다시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그러자 유양천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도대체 예의라고는 없군. 중원 사람들은 모두 이다지도 예의가 없단 말인가?”

“예의를 차릴 사람에게는 차립니다!”

“뭐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금방이라도 다시 싸울 것 같아지자 공지 대사가 급히 두 사람을 달랬다.

“자자… 이제 그만들 하십시다. 원 어린애들도 아니고…….”

‘아차!’

순간 공지 대사는 속으로 말실수를 했다고 느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강무진과 유양천이 동시에 도끼눈을 뜨고 공지 대사를 노려봤던 것이다. 그러자 공지 대사가 무안함에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험! 험! 다 같이 차나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뭐 하느냐? 어서 차를 가져오지 않고.”

그렇게 싸움이 일단락되자 잠시 후, 사람들이 모두 둘러앉았다. 강무진과 유양천은 여전히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강무진이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말했다.

“휴… 궁주님에게 하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강무진이 갑자기 부드럽게 말을 꺼내자 유양천도 기세를 약간 누그러트리면서 말했다.

“뭔가?”

“소호가 혹시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

유양천은 강무진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아이이건만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역시 모르고 계셨군요.”

“…….”

“소호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입니다. 제 생각에는 남자로 크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까 봐 그것을 감추고 여자처럼 키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소호의 어머니가 그렇게 했겠죠.”

“당치도 않은 소리!”

유양천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강무진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소호가 벗은 것을 본 적 있습니까? 아직 모르고 계시는 것을 보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유양천은 강무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거짓을 말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제야 유양천은 그간의 일들을 곰곰이 되짚어봤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한 번도 유소호가 옷을 벗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었다.

여자는 몸을 따뜻이 해야 하니 어렸을 때부터 몸을 가려야 한다며 유소호의 어머니인 남궁가영이 유난히 극성을 떨었었다.

유양천은 그것이 그저 중원의 풍습이거니 하고 넘겼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뭔가 이상한 점들이 많았다.

유소호의 어머니인 남궁가영은 유소호를 항상 자신이 씻겨주었다. 시녀들조차 일절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예외라면 오직 향이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많은 위험이 있는데도 유소호에게 빙정을 먹인 것도 그랬다. 어린 나이에 빙정을 먹으면 그 기운을 녹여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유소호를 유난히 귀여워했던 유양천은 빙정을 먹이지 않고도 안전한 방법으로 유소호의 무공을 늘려줄 생각이었다. 이에 유양천이 극구 반대를 했었으나 남궁가영은 끈질기게 유양천에게 부탁을 했다.

살면서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남궁가영의 모습에 유양천은 차마 뿌리칠 수가 없어 결국 유소호에게 빙정을 먹였다. 빙정은 극음의 성질이 굉장히 강해 남자아이가 먹으면 양의 기운이 확 줄어들고 음의 기운이 강하게 되어 여자아이처럼 될 수도 있었다.

강무진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러한 것들을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유양천이었다. 그러나 지금 막상 이야기를 듣고 나니 유소호나 그 어미인 남궁가영이 가끔 그렇게 행동을 했던 것들이 확실히 이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강무진의 말대로 유소호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고 남궁가영이 그것을 숨기려고 했다면 그런 이상한 행동들이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그랬었나? 허…….’

유양천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까지 속일 수가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자신에게까지 그렇게 속이다니 정말 심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유양천의 모습을 보며 강무진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라도 했으니 유소호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누군가의 손에 당했을 겁니다. 제 생각이 맞는다면 소호의 어머니는 소호가 중원에서 자유롭게 남자로서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북해신궁에서 여자로 사느니 그것이 낫다고 여겼을 겁니다. 게다가 소호의 나이 벌써 열두 살입니다. 조금만 더 크면 남자라는 것을 숨길 수도 없었겠죠.”

유양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유양천도 뒤늦게나마 둘째 부인의 소행이 너무 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인 유정을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악독한 짓을 서슴없이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던 것이다.

그러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일은 벌어진 상태였고, 유일하게 뒤를 이을 수 있는 자식이라고는 유정뿐이었다. 그런 유정의 어미를 죽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유양천은 그녀를 멀리했다. 그녀가 설왕태상을 적극적으로 유혹하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궁주인 유양천이 자신을 멀리하자 불안해졌던 것이다.

그때 뜻하지 않게 첫째 부인이 임신을 했고 아들인 유무화를 낳았다. 이에 유양천은 유무화만큼은 그녀의 손이 미치지 못하게 보호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국 유무화는 북해를 떠났다. 첫째 부인이 유양천의 생각도 모르고 둘째 부인에게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고 도망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유소호까지 사라졌다. 그때는 왜 유소호까지 없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강무진의 말을 들으니 이제야 이해가 갔다. 유무화와 마찬가지로 둘째 부인의 독수에 당할까 봐 북해를 떠나보냈던 것이다.

유양천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강무진을 향해 물었다.

“소호는 어디 있나?”

“이리로 오고 있을 겁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유양천의 얼굴에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을 보고 공지 대사가 낮게 불호를 외면서 말했다.

“아미타불. 사람 일이라는 것이 모두 그렇지요. 그때그때 그 상황을 정확히 깨닫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대현인들뿐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유 시주.”

“고맙습니다, 대사님. 대사님 말을 들으니 조금은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유양천이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조그만 상자 하나를 꺼내서 공지 대사에게 내밀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급해 이런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아미타불. 아니외다. 용서라니요. 하하. 이런, 차가 다 식었군요.”

공지 대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유양천이 내민 상자를 받아서 품에 넣었다. 그 안에는 소림사의 보물이라는 대환단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자, 식은 차이지만 쭉 들이켜고 지난날의 과오는 잊읍시다. 앞으로 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공지 대사의 말에 유양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은 차를 쭉 들이켰다. 평소에는 그리 쓰지 않은 차였건만 오늘은 왠지 쓰게만 느껴졌다.

 

북해신궁의 좌호법 구혁상은 설왕 등과 함께 소림사가 있는 등봉현에 도착하자 일단 객잔을 하나 잡았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설왕과 월계지에게 말했다.

“소림사 안에서 싸우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곳으로 불러내서 싸워야 합니다.”

“나는 소림사가 두렵지 않네. 소림사의 방장과 한번 겨루어보고 싶군.”

구혁상은 설왕의 말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설왕이 아무리 무공이 대단하다 해도 결국 그건 개인의 힘이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있다지만 소림사에서 함부로 날뛸 수는 없었다.

무림에서 소림사를 상대로 큰소리칠 수 있는 문파는 어디도 없었다. 그만큼 대단한 소림사이거늘 북해신궁의 모든 세력을 끌고 왔다면 모를까 안 그러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런 소림사를 업신여기며 하는 설왕의 말에 구혁상이 코웃음을 칠 만도 했던 것이다.

설왕은 북해에서 오로지 무공만 익히며 살았기 때문에 그만큼 순진한 면이 많았다. 아직 세상이 어떤지 잘 몰랐던 것이다.

구혁상은 자신의 말이 먹힐 것 같지가 않자 월계지에게 살짝 눈짓을 줬다. 그러자 월계지가 설왕에게 찰싹 달라붙으며 말했다.

“호호, 당신의 무공이 천하제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우선 유양천을 상대하는 것이 먼저이니 소림사의 화상들과는 나중에 겨루도록 해요. 알았죠?”

“응? 하하. 그럼 그렇게 할까?”

월계지의 말에 설왕이 당장에 했던 말을 번복하면서 술잔을 들었다. 그러자 월계지가 술병을 들어 그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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