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2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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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220화
파계 9권 - 20화
후우웅- 후우우웅-
지옥의 바람 소리가 이러할까?
검은 기류를 따라 휘돌아가는 바람 소리는 듣는 이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들 정도로 음침하고 사악했다.
“행진(行陣)!”
광죽 노승의 외침과 함께 나한진이 빠르게 회전했다. 무승들의 움직임 움직임마다 강력한 기운이 용솟음치며 방어막을 더욱 강건하게 만들었다.
콰쾅-
“윽!”
“악!”
네 명의 무승들이 입에서 붉은 선혈을 쏟아내며 비틀거렸다.
위지무성의 장력은 지금의 나한진이 감당하기에 너무 강력했다. 광죽 노승이 중심이 되었다고는 해도 완벽하지 않은 구성으로 생겨난 미세한 불균형이 문제였다.
“정진(整陣)!”
다시 쏘아져오는 위지무성의 장력을 느끼며 광죽 노승이 크게 소리쳤다. 비틀거리는 무승들이 빠지고, 주변에 있던 무승들이 그 자리를 메운 나한진이 장력에 저항하는 무형의 방어막을 넓게 뿜어냈다.
쾅-
“큭!”
이번엔 여섯 명의 무승들이 나동그라졌다. 첫 번째 공격에서 받은 충격이 중첩되어 타격을 입은 것이다. 광죽 노승은 나한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대로 그냥 포기할 수 없었다.
“포진(抱陣)!”
나한진이 크게 퍼졌다가 땅에 내려서는 위지무성을 빠르게 둘러쌌다. 그리고 맹렬하게 회전하며 위지무성을 향해 일제히 주먹을 내질렀다.
쾅-
“악!”
세 명의 무승들이 마른 가지처럼 꺾여버린 팔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크하하하하!”
둘러싸여 공격을 당한 위지무성은 앙천광소했다. 그의 전신은 무적의 방어막이 쳐져 있었다. 아무리 나한진을 통해 몇 배의 힘으로 불어난 권력이라고 해도 파천혈전공의 공력으로 보호되는 그의 몸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역으로 더 큰 충격을 입을 뿐이었다.
“이게 나한진이냐. 이것이 무림 제일의 나한진이란 말이냐!”
거대하고 사악한 음공의 울림이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나한진을 구성하는 광죽 노승을 비롯한 무승들의 전신을 진동시켰다.
“정진! 행진!”
광죽 노승의 외침과 함께 무승들이 교체되고, 진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의 위력을 배가시키는 회전과 함께 무승들은 연이어 권력을 발출했다.
쾅쾅쾅쾅-
제자리에 우뚝 선 위지무성의 장력과 그를 중심으로 무승들이 맹렬하게 쏟아내는 장력이 연이어 격돌하며 그 거대한 충격음이 주위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콰쾅-
“큭!”
“악!”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신음과 함께 십여 명의 무승들이 뒤로 주룩 밀려나 주저앉았다. 위지무성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내상을 입어 쓰러진 것이다.
“크하하하하!”
활짝 펼친 양팔을 따라 위지무성의 전신을 덮고 있던 검은 안개가 넓게 퍼져나갔다.
광죽 노승과 방장 등은 황급히 쓰러진 무승들을 잡아끌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몇몇 구하지 못한 무승들은 검은 안개에 휩싸인 순간 사분오열되어 고깃덩이처럼 짓이겨졌다.
“이놈!”
뒤로 물러났던 광죽 노승이 분노에 찬 노성을 내지르며 양손을 마구 내뻗었다. 대승범천신공(大乘凡天神功)의 공력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팔십일복마장법(八十一伏魔掌法)이었다.
“크하하. 죽어라!”
위지무성은 그를 향해 쏟아지는 강맹한 장력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과광-
“크윽!”
광죽 노승의 왜소한 신형이 크게 흔들리고, 산 위쪽으로 정신없이 밀려나갔다. 소림 방장과 다른 장로들이 달라붙어 받쳐주지 않았다면 등 뒤로 높이 솟은 가파른 절벽에 틀어박히고 말았을 것이다.
“더 없느냐! 내게 도전하는 자가 더 없느냐!”
광오했다. 하지만 위지무성의 음성은 깔딱산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났고, 누구도 그런 위지무성을 상대하려고 하지 못했다. 쌍륜신군(雙輪神君) 하후진용도, 환도신군(幻刀神君) 상관승도, 그 외에 각파의 수장들이나 이전까지 열혈군에서 촉망받던 신진고수들도 감히 위지무성의 앞에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다른 여타의 혈천신교 고수들을 상대하는 것도 벅차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위지무성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다는 것이 진정한 이유였다.
“나와 싸우자, 이 사악한 악마야!”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 음성이 여인의 것이었고, 위지무성을 향해 검을 빼든 이가 여인임을 확인한 모두의 눈동자는 당혹스러움과 경악으로 가득했다.
“목 소저!”
목운교를 아는 이들이 놀람과 걱정으로 소리쳤다. 그 누구도 그녀가 나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니, 그녀의 존재는 이곳에서 크게 의미를 갖지 못했다.
‘어차피 살아남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자신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누가 봐도 기울어진 싸움이었고, 무림제일고수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광죽 노승을 간단히 패퇴시킨 위지무성을 대적할 고수도 없었다. 그래서 목운교가 나선 것이다. 지금껏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으니, 최후만큼은 무림인답게 죽고 싶었다.
‘그를 보고 싶었는데…….’
문득 목운교의 뇌리에 오칠의 모습이 떠올랐다. 흑천맹을 괴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그를 이곳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어쩌면 담씨 일가 등에게 끌려 다니며 목숨을 보전했던 것은 그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아서 그를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정파인들의 전멸이 바로 코앞에 이른 지금, 마지막까지 구차하게 살아남고 싶지 않았다.
“크크크, 맹랑한 계집이구나.”
위지무성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러나 그는 곧 뒤로 한 걸음 물러나야 했다. 그의 의지가 아니라 그를 강타한 하나의 화살 때문이었다.
“목 소저, 물러나시오!”
담씨 일가의 담 가주였다. 그는 구 장여 떨어진 거리에서 위지무성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머리를 향해 화살을 쏘아 보냈다.
슁- 퍽!
“…….”
전신을 뒤덮은 검은 안개가 출렁이고, 위지무성은 다시 뒤로 물러났다. 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피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백팔마공 중 하나인 철포진기(鐵包眞氣)가 응집된 절명탄궁(絶命彈弓)의 수법은 궁술이면서, 동시에 궁극의 암기술이었다. 그 가공할 속도와 파괴력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내공을 짧은 순간에 소모해야 하고, 어깨 근육에 가해지는 중압감이 너무도 엄청나서 한 번에 다섯 번 이상을 쓸 수 없는 수법이었다. 지금 담 가주는 목운교를 구하기 위해 그 절명탄궁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안전을 지키라는 교주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위지무성을 뒤로 물러나게 할 수는 있지만 절대 죽일 수 없는데도 말이다.
“목 소저!”
담 가주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절명탄궁을 벌써 네 번이나 사용했다. 공력과 어깨의 근육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럴 수 없어요!’
하지만 목운교는 물러나지 않았다. 담 가주가 왜 저렇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물러날 수 없었다. 이미 목운교는 위지무성과 싸우다 죽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슁- 퍽!
일곱 번째의 절명탄궁이 쏘아지고, 위지무성은 총 일곱 걸음을 물러났다. 이곳의 누구도 그를 그렇게 물러나게 만들지 못했기에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담 가주가 더 이상 절명탄궁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쿨럭!”
입에서 검은 피를 울컥 쏟아낸 담 가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무리하게 공력을 운용하느라 크나큰 내상을 입은 것이다. 오른쪽 어깨 근육도 한동안은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크크크, 이제 너를 지켜줄 자는 없는 모양이구나.”
위지무성은 담 가주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가 목운교에게 다시 다가갔다. 하지만 그가 다가가는 걸음보다 목운교가 앞으로 나서는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슈악-
앞으로 쭉 뻗은 검이 목운교의 손목 움직임을 따라 둥글게 회전하고 위지무성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니, 검은 안개를 비집고 들어간 것이었다.
“……!”
앞으로 전진해가던 위지무성의 걸음이 정지했다. 그리고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목운교의 검을 피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된다!’
목운교는 위지무성의 반응을 통해 희망을 얻었다. 오칠로 인해 성취를 얻고, 그 이후로 밤낮을 잊고 연마한 회풍무류검법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놀랍게도 위지무성이 회피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합!”
짧은 기합성과 함께 목운교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위로 휘둘러졌다가, 다시 반원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움직이는 검은 끊임없이 원형을 만들어내며 광채를 뿌렸다. 이전에 비할 수 없이 강렬한 검기였고, 원과 원을 이어가면서 목운교의 검은 정확하게 위지무성의 전신을 휘어 감았다. 그리고 위지무성을 보호하고 있는 검은 연기가 저항하듯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팅-
“……!”
위지무성의 손가락에 튕긴 검이 둥글게 휘어졌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했지만, 목운교는 신형을 뒤로 빼며 그러한 상황을 방지했다.
“재미있는 검법이구나.”
깊고 진득한 음성이 목운교의 안색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공격이 위지무성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사실이 그러했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원(圓)이라는 하나의 완성된 구형을 통해 검이 보여주어야 할 가장 안정적인 움직임을 만들어주는 목운교의 검에 작은 호기심을 느꼈을 뿐이었다. 지금은 무기에 개의치 않지만 과거에 그는 검객이었고, 그래서 조금 남아 있는 이성의 잔재가 그러한 호기심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죽어라!”
위지무성의 갈고리 같은 손이 검은 안개를 뚫고 나와 목운교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아니, 잡으려 했다. 그러나 검은 죽봉 하나가 그의 손을 막았다.
쩡-
소리만으로도 손과 죽봉의 충돌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충격을 받은 것은 녹류산장의 진 장주뿐이었다.
‘역시 파천혈전공을 당해낼 수가 없는가.’
그가 내리친 죽봉에는 백팔마공 중 하나인 상청심결(上淸心訣)의 강력한 공력과 마라이십구봉법(魔羅二十九棒法)의 절초가 담겨져 있었다. 한데, 단순히 앞으로 내밀어진 위지무성의 손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네놈도 익숙한 느낌이구나!”
뒤로 밀려나던 몸을 억지로 멈춰 세우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진 장주를 똑바로 직시하며 위지무성이 말했다. 그도 이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담 가주와 진 장주의 무공에 담겨진 배화교의 기운을 말이다. 하지만 진 장주는 위지무성이 더 물을 틈을 주지 않았다.
쾅-
떨어지는 죽봉과 위지무성의 손이 격돌하고, 응축된 기운이 터져 나오듯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바람에 밀린 목운교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왜?’
쓰러진 목운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담 가주도 그렇고, 진 장주도 왜 저렇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그저 적을 죽이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금까지의 행동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이 용기를 내어 힘껏 싸우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저들이 자신을 길잡이로 선택한 때부터 어떤 보호막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쭉 그렇게 느끼고 있었지만 그럴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죽봉을 수십 갈래로 내리치면서 위지무성을 공격하던 진 장주가 피를 뿜으며 멀리 내동댕이쳐지는 걸 보면서도, 목운교는 그녀를 지킨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길게 끌었어.”
위지무성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었다. 목운교가 앞으로 나섰던 때부터 그의 살의가 분출되기만 했을 뿐, 그가 원하는 무엇도 얻지 못했다. 주변을 강처럼 적실 붉은 피도,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인간의 찢어진 육신도. 그의 뇌리를 강렬하게 뒤흔들 수 있는 마성의 근원이 메마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건 결코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네가 시작이다!”
위지무성은 머릿속을 메아리치는 광기의 울림을 한 손에 담아 목운교를 향해 쏘아 보냈다.
후우우-
격돌의 광폭한 바람에 밀려 나동그라졌다가 일어나던 목운교는 그녀를 향해 쏘아져오는 검은 기류를 향해 검을 휘저었다. 막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너무도 컸지만, 그녀는 온 힘을 다해 회풍무류검법을 펼쳐냈다.
티티티잉-
혼신의 힘을 다했음에도 검은 가볍게 튕겨나가고, 위지무성의 손은 격돌의 충격으로 밀려나는 목운교의 머리를 움켜잡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그 손 치워!”
“……!”
갑자기 거대한 음공의 파장이 주변을 메아리치고, 앞으로 나아가던 위지무성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뒤로 돌려졌다.
‘뭐지?’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위험스런 기운이었다. 더구나 너무나 강렬하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파삭.
“크악!”
콰직.
“아악!”
위지무성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둘러싸고 정파인들을 압박하고 있던 혈천신교 무리가 마른 땅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 위, 정확히는 혈천신교 무사들의 머리를 짓밟으며 오칠이 날아왔다. 당연히 그의 뒤쪽으로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보이며 질주해오는 초왕성과 그 무리가 뒤따랐다. 하지만 초왕성 등은 곧 염마대왕(閻魔大王) 야율도동과 사백여 명의 염마지옥대(閻魔地獄隊)에 진로가 막혀 치열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꺼져!”
무엇도 거칠 것 없다는 듯 날아와 순식간에 당도한 오칠의 주먹이 공중에서 위지무성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리고 위협을 느낀 위지무성의 주먹이 마주 위로 내질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