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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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45화
245화
쇠뇌의 화살은 그 위력이 일반 활에서 쏘아진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강호의 일류고수들조차 멋모르고 화살을 쳐내려다가 부상을 입기 일쑤였다.
냉정한 눈으로 상황을 살펴보던 교비은이 외쳤다.
“좌우로 펼쳐져서 공격하라!”
한 번에 쏘아지는 화살의 숫자는 백여 개. 쇠뇌의 숫자를 화살의 두 배로 잡아도 이백 대 정도라는 말. 옆으로 펼쳐지면 상대가 신궁이 아닌 이상 위험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사우는 쇠뇌로 인해 적의 접근속도를 늦췄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쇠뇌는 생각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오백 대를 구했다면 상당한 위협이 되었을 것이거늘!
하지만 이제 생각해 봐야 무슨 소용이랴.
사우는 아쉬움을 접고 명령을 내렸다.
“진을 이탈하지 말고 적을 맞이하라!”
선두를 달리던 천외천 무사들이 먼저 마도연합 무사들이 펼치고 있는 진세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이천여 무사가 밀물처럼 밀려가며 사천여 마도연합 무사들을 덮쳤다.
그로써 마침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결전이 막을 올렸다.
광기가 지배하는 지옥의 격전이!
6
풍천일행이 객잔을 나와서 마을을 빠져나가려 하는데 누군가가 달려오면서 풍천을 불렀다.
“풍 공자!”
풍천은 고개를 돌려 마을의 동쪽을 바라보았다.
험상궂은 얼굴에 칼자국이 난 장한이 헉헉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하오문 합비분타의 잡초제거기였다.
하오문 사람이 자신을 찾아올 이유는 한 가지뿐. 잠시 머리를 굴린 풍천은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먼저 가쇼. 곧 뒤따라갈 테니까.”
잡초제거기는 얼굴과 달리 말을 제법 조리 있게 했다.
“황산에서 지진이 일어난 지 며칠 후 요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요물?”
“모두 셋으로, 살이 눈처럼 하얗고 눈동자가 파란색이었는데…….”
설명을 듣던 풍천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수비 가족이 밖으로 나왔어!’
마음이 다급해진 풍천은 장한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물었다.
“그들은 어떻게 됐죠?”
“황산 일대의 무인들이 며칠 쫓았습니다만, 결국 놓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들이 요물이 아니라는 게 알려졌다고 합니다.”
“어떻게 알려진 거죠?”
“안경에 그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푸른빛이 도는 보물을 은자로 바꿔 갔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보물을 노리는 자들에게 쫓기면서 북으로 이동하고 있다 합니다.”
“그들의 위치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요?”
“쫓던 자들 백여 명을 죽이고 하남으로 들어갔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지금쯤 광산을 지나서 북상하고 있을 겁니다.”
풍천은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장한에게 말했다.
“식현분타에 최대한 빨리 연락을 취하려면 얼마나 걸리죠?”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하루 안에 연락할 수는 없수?”
“거리가 너무 멉니다요.”
풍천은 과감하게 품속에서 황금 다섯 냥을 꺼내 장한의 손에 턱 쥐어주었다.
“하루. 방법은 알아서 하쇼. 내가 알기로는 하오문도 개방처럼 빠르게 연락을 취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던데. 할 수 있수? 없으면 없던 일로 하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장한은 힘차게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요!”
“그 사람들에 대한 걸 자세히 파악하라 하쇼.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내가 갔을 때 바로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요.”
“그럼 즉시 출발하쇼.”
“예, 공자!”
장한은 행여나 손에 든 황금을 뺏어갈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즉시 마을의 서쪽으로 뛰어갔다.
육안분타에 가면 식현으로 연락할 수 있는 전서구가 있을 것이었다. 분타주에게 지급으로 부탁하려면 돈이 좀 들겠지만 황금 한 냥이면 충분했다.
넉 냥은 남는다는 말. 그 돈이면 일 년을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다.
‘크크크, 점박이 형님이 안 가려고 해서 대신 왔는데 이게 웬 떡이야? 역시 노력하는 사람은 하늘도 알아본다니까?’
제9장. 건곤일척(乾坤一擲)
1
대월산장에서 죽고 죽이는 격전이 벌어진 지 일각.
어느덧 일천오백이 죽어가고, 그들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황량한 땅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새들도 그들이 있는 곳으로는 날아오지 않았다. 시신을 찾아다니는 까마귀조차 멀리 나무 위에 앉아서 인간들의 아귀다툼을 지켜만 보았다.
그저 누가 이기든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하지만 천룡회와 마도연합의 누구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 상황. 오직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무기를 휘둘렀다.
사선으로 그어지는 칼날에 팔이 떨어지며 피분수가 솟구친다.
비명이 가시기도 전에 한 자루 검이 목에 꽂힌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 살 수 있을까?’
진노교는 피로 물든 검을 들고 눈을 번뜩였다.
살고 싶다. 역겨운 피비린내가 싫다.
왜 자신은 이곳에서 남의 피를 갈구하며 검을 휘두르는가!
미쳤다. 모두가 미쳤어!
그러나 죽지 않으려면 검을 휘둘러야만 한다.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한다.
정의? 협의?
할일 없는 놈들이나 하는 말이다. 그런 말 하는 놈들도 이곳에 와보면 벙어리가 될 것이다.
봐라, 저기 천의맹의 고매하신 구대문파 제자들도 상대의 목숨을 뺏기 위해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지 않은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숨소리가 미친 말처럼 거칠게 뿜어졌다.
“으아아아! 죽어라, 이놈들!”
“조심해, 진 조장!”
석초산은 눈이 뒤집힌 진노교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자신부터 지켜야 했다.
그도 살고 싶었다. 아주 절실히!
하기에 희망을 담아서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곧 풍천이 올 것이다! 그가 올 때까지만 견뎌라!”
여기저기서 풍천을 욕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자식은 왜 안 오는 거야!”
“개새끼! 꼭 필요할 때는 없다니까!”
“풍천, 이 씨발 놈아! 빨리 오면 내가 술을 사주마!”
그런데 묘했다. 욕을 해대는 사람들의 눈에서 생기가 번뜩였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희망이 담긴 표정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 했던가? 그들은 자신들의 욕을 듣고 풍천이 빨리 나타나기를 바랐다.
공손무백은 혈전이 격화되는 걸 보며 혁련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나서지 않아도 될지 몰랐다. 하지만 천하에 우뚝 서기 위해서는 구마존의 첫째인 남천신마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어차피 혁련궁만 죽이면 싸움은 끝난 거와 다름없는 일이니까.
천궁위사 여덟이 그를 호위하기 위해서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혁련궁! 나와 단둘이 싸울 의향이 있다면 이리 나와라!”
혁련궁도 밀리지 않았다.
“클클클, 어린놈이 말을 싸가지 없게 하는구나! 네 애비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격장지계를 쓸 생각이라면 좀 더 그럴듯하게 말해라, 혁련궁!”
“자식을 죽인 놈이 별말을 다 하는 구나!”
그 말은 확실히 공손무백의 마음을 흔들었다.
공손무백은 땅을 박차고 혁련궁을 향해 날아갔다.
신마성의 무사 서너 명이 혁련궁의 앞을 막았다.
순간 공손무백이 쌍장을 뿌리듯이 휘둘렀다.
쾅!
신마성의 무사 둘이 태풍에 휘말린 가랑잎처럼 튕겨졌다.
공손무백은 다시 한번 쌍장을 떨쳐서 나머지 두 무사마저 날려 보내고는, 혁련궁을 향해서 날아가며 두 손을 쭉 뻗었다.
후우우웅! 쩌저저적!
이지러진 대기가 터져나가며 장력이 밀려든다.
혁련궁은 지금까지의 이죽거리던 표정을 지우고 전 공력을 끌어올렸다.
“오냐, 이놈! 네가 원한다면 내가 상대해주마!”
자신이 누군가. 천하제일을 다투는 남천신마가 아닌가.
그는 천하의 누구에게도 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일순간, 두 절대 고수의 장력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고오오오오!
콰르르릉!
연이어 터져 나오는 번천지복의 굉음!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출렁였다.
누구도 두 사람 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천궁전의 호위무사도, 십이마영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행여나 자신들의 주군에게 방해가 될까 봐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
막상막하(莫上莫下)!
공손무백은 용화신공을 십성의 경지에 이르도록 익힌 상태였고, 혁련궁은 지난 삼백 년래 아무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마마지존공을 완성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경천동지의 격전을 벌이며 반경 십여 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 사이 혈전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잘린 팔다리가 아무렇게 나뒹굴고, 반쯤 잘린 목에서는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시뻘겋게 피를 머금은 대지는 숨을 멈추고, 하늘은 인간들의 욕망에 찬 살육을 더 이상 못 보겠는지 구름으로 눈을 가렸다.
격전이 벌어진 지 이각이 지나자, 오천에 이르던 마도연합의 무사들은 삼천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 이천여 명이던 천룡회 무사들은 아직 천오백이나 남아 있었다.
그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천외천의 무사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도연합 측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배는 더 강했다.
“놈들을 죽여라! 형제들의 한 맺힌 죽음을 잊지 마라!”
“얼마 남지 않았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그들이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수십 명의 마도연합 무사들이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죽어갔다.
콰광!
굉음이 울리더니 공손무백과 혁련궁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뒤로 날아갔던 두 사람은 땅을 딛자마자 서로를 향해서 다시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시각, 혁련후는 공손문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구인창은 탁능한을 상대하고 있었다.
천외천의 오대 고수 중 하나인 공손문은 혁련후가 자신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혁련후의 표정도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적의 수장도 아닌 자가 자신과 비슷한 무위라는 걸 알고 새삼 천외천의 가공할 힘에 진절머리가 났다.
천외천의 무사들은 수십 명의 중간간부조차 완숙한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었다. 마도연합에서 고수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 의해서 모두 손발이 묶인 상태.
게다가 일반무사들의 무위 차이는 더욱 컸다.
그러한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확연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천외천의 무사 한둘이 죽어갈 때, 마도연합의 무사는 대여섯 명이 죽어갔다.
이대로 시간이 일각만 흐르면 숫자의 우위조차 사라지고, 거꾸로 적의 숫자가 많아질 판이었다.
그러나 아직 절망할 때는 아니었다. 비명과 악다구니가 천공을 울리던 전장에 웅혼한 외침이 들려왔다.
“소성주! 한쪽은 우리가 맡겠소이다!”
섭위릉의 목소리. 후방을 교란하던 자들을 쫓아갔던 고수들이 돌아온 것 같다.
힘이 솟은 혁련후는 도를 힘껏 쥐고 소리쳤다.
“신마성의 무사들은 전력을 다해서 놈들을 쳐라!”
무려 서른 명에 이르는 절정 고수가 합류했다.
고수 하나가 아쉬운 판에 그들의 등장은 가뭄에 단비가 내린 격이었다.
마도연합의 무사들은 사기가 충천해서 혼신을 다해 적을 막았다.
“마도천하를 이루자! 힘을 내라!”
와아아아아!
점점 기울던 형세가 그나마 그들의 출현으로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었다.
2
풍천일행이 대월산장에 도착한 것은, 혈전이 벌어진 지 이각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단리욱은 날듯이 다가오는 자들을 보고 멈칫했다.
다가오는 자들은 모두 이십여 명. 그들을 본 단리욱의 표정이 급변했다.
다른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체구가 세 배나 되는 거인을 본 순간, 그는 그들이 누군지 눈치 채고 표정이 굳어졌다.
섭위릉 등이 쫓아갔던 자들. 저 거인은 좌궁화를 죽였다는 거령파천도가 분명했다.
그는 다가오는 자들을 향해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저자들을 막아!”
풍천은 날아드는 단리욱을 보며 냉랭히 명령을 내렸다.
“저자는 나에게 맡기고 공격하쇼! 초웅! 네 마음껏 놈들을 쳐라!”
그러고는 단리욱을 향해 성큼, 걸음을 떼었다.
한걸음에 죽 오 장을 미끄러진 풍천은 허리춤에서 묵전을 뽑았다.
단리욱은 상대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않고 오직 초웅만 바라보며 소리쳤다.
“비켜라!”
순간, 풍천이 땅을 박차고 죽 날아가며 단리욱을 향해 검을 뻗었다.
단리욱은 눈앞에 온통 시커먼 검만 보이자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헉!”
기겁한 그는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쾅!
귀청이 먹먹한 굉음. 손목이 부러지는 것 같은 충격.
아수라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 단리욱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풍천을 노려보았다.
풍천은 씩, 냉소를 지으며 단리욱을 향해 다가갔다.
“오랜만인데? 금귀옥에서 진 빚을 오늘에서야 갚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