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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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40화
240화
허공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린 혁련후가 질문을 돌렸다.
“아버님께선 언제쯤 도착하실 것 같습니까?”
“늦어도 사흘 이내에 도착하실 거요.”
“그때까지 공손무백이 참을 거라 보십니까?”
“지난 일 년을 봐도 그는 매우 신중한 자요. 아들의 죽음으로 아무리 분노했다 해도 무작정 공격하진 않을 거요. 오히려 철저하게 준비한 다음에 공격할 거라는 게 내 생각이오.”
혁련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때 사우가 구인창을 바라보며 물었다.
“부탁한 물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화약과 쇠뇌는 곧 우리 손에 들어올 거네. 육안의 병기창 관리자를 포섭했으니까. 그리고 암기는 본 궁에 있는 것을 모조리 쓸어 담아서 가져오라 했네.”
사우의 눈이 이번에는 지민민을 향했다.
“암기에 독을 발라도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겠소?”
“독성을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에요. 극독 형태를 유지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될 수밖에 없어요. 자칫하면 아군도 피해를 입을지 모르고요.”
“만약 상대의 몸을 마비시키는 정도라면?”
“그 정도는 크게 문제될 게 없어요. 사용할 때 조심만 하면 되니까요.”
“좋소. 그럼 암기가 도착하면 두 가지 형태로 독을 묻힐 수 있도록 미리 준비 해놓으시오.”
“알았어요, 군사.”
7
철목보를 탈환한 다음 날.
공손무백은 사람을 시켜서 백리진학과 풍천을 불렀다.
풍천은 공손무백이 부른다는 말에 눈빛을 반짝였다.
못 만날 것도 없었다. 대풍은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설령 자신을 의심한다 해도 바로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었다.
‘알아보고 다그치면, 적반하장으로 몰아붙이지 뭐.’
-대공자가 죽이려고 하는데 누굴 믿고 정체를 드러냅니까!
그렇게 말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백리진학과 함께 공손무백이 머무는 방으로 갔다.
방안에는 공손무백 혼자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풍천과 백리진학이 자리에 앉자, 공손무백은 먼저 백리진학에게 말을 걸었다.
“천중수의 위명은 많이 들었지. 탁 성주에게 들으니 본 회의 요직을 거부했다 들었네만?”
백리진학은 처음 본 상대가 하대를 하는데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위화감은커녕 오히려 하대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공손무백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엄은 대단했다.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신마성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마성이 무너지면 떠날 생각이어서 직위를 거부한 것이지요.”
“아쉽군. 그대와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을 것을.”
“본래가 단체에 속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뜻을 따라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싫다는데 어쩌겠나? 그나마 신마성을 무너뜨릴 때까지 함께 해준다니 고맙군. 혹시라도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게. 내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들어줄 테니까.”
백리진학은 낯빛 한 점 변하지 않고 담담히 요구했다.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여유가 있으시다면 은자 이백오십 냥만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전혀 생각지 못한 요구였다.
공손무백은 뜬금없는 돈 이야기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요직도 싫다는 사람이 황금도 아니고, 은자 이백오십 냥을 요구할 줄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허허허허, 더한 돈이라도 주겠네. 필요하면 말만 하게나.”
“이백오십 냥이면 됩니다. 많아봐야 귀찮기만 하지요.”
풍천은 백리진학을 흘겨보았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빚을 갚기 위해서 돈을 달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들었다.
어차피 얼굴에 철판 깔고 돈을 요구할 것이면 훨씬 더 많이 달라고 할 것이지, 달랑 이백오십 냥이 뭐란 말인가?
‘나에게 더 주기는 싫다는 거야, 뭐야?’
하지만 공손무백은 그런 백리진학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돈을 더 주기로 했다.
“오백 냥을 주겠네. 빚을 갚고 남은 돈은 필요할 때 쓰도록 하게.”
백리진학도 그것까지는 거절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풍천은 자신이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내심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 공손무백이 고개를 돌려서 풍천을 바라보았다.
묘한 표정이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풍천이라 했던가? 자네, 혹시 나를 본 적이 없나?”
‘있지.’
하지만 풍천은 처음 보는 것처럼 말했다. 평소와 달리 나름 정중한 어조로. 눈에도 힘을 주고.
“오늘 처음 뵙니다. 신검문의 말단 조장이 언제 회주를 뵐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그런가? 좌우간 자네 아우가 좌궁화를 죽였다 들었네. 사실인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좌궁화는 절정의 경지를 넘어서 절대지경을 바라보는 진짜 고수였다. 운이 좋다 해서 죽일 수 있는 자가 아닌 것이다.
공손무백은 그걸 알기에 그 대답을 듣고 풍천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
‘겸손한 성격이군.’
공손무백은 풍천을 잘 아는 사람들이 들었으면 기절했을지도 모를 생각을 하면서 풍천에게 물었다.
“자넨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신검문에 있을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자네가 원한다면 천룡회에 자리를 마련해 줄 수도 있네. 그것도 서운하지 않을만한 자리로.”
“저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언제 망할지 모를 세력의 높은 자리보다는, 그래도 신검문 비검당의 조장이 나았다.
“아쉽군. 자네처럼 젊은 사람들이 능력껏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좌궁화를 죽였으니 상을 주고 싶은데,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게.”
황금이나 몽땅 주쇼!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몽땅! 보석으로 주면 더 좋고!
풍천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 그리고 욕심 없는 청년처럼 말했다.
“저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대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선처해주십시오. 일일이 명령을 받고 일정한 곳에서만 싸우다 보니, 막상 다른 곳이 위험에 처해도 돕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본 회의 뜻에 반하는 행동만 아니라면 마음대로 하게 해주겠네.”
“감사합니다, 회주.”
고개를 숙이는 풍천의 눈빛이 청광석처럼 푸르스름하게 반짝였다.
제7장. 몰려드는 군웅들
1
철목보가 무너진 지 이틀째 되던 날, 안휘와 하남에 흩어져 있던 천외천 무사 이백여 명이 도착했다.
그 이백여 명 중에는 신검문에 있던 공손문 일행도 있었는데, 공손천우는 보이지 않았다.
‘그놈이 왜 안 왔지? 혹시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 아냐?’
풍천은 별생각이 다 들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 초령이를 어떻게 해보려고 남은 것 아닐까?
하지만 그는 백초령을 믿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화문오가 눈치도 없이 그를 찾아왔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풍천은 자신을 찾아온 화문오를 보고 면박을 주었다.
“왜 찾아오신 겁니까? 지금 공손무백은 제가 대풍인 줄 모르고 있단 말입니다.”
화문오는 자신을 타박하는 풍천에게 꿍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자네를 만나기 싫었지. 하지만 외숙부님이 전하란 말이 있어서 왔네.”
“그분이요? 무슨 말인데요?”
“황산에 갔더니, 지진으로 곳곳이 무너져서 자네가 말한 곳을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
풍천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럼 벽라동은? 아수비는 어떻게 된 거지?’
빌어먹을!
황산이 무너질 정도라면 벽라동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수천 리 떨어져 있는 자신으로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얼마나 무너졌다고 합니까?”
“거대한 산이 쪼개지고, 절벽이 무너져서 발 딛기도 힘들 정도라고 하더군.”
“언제 무너진 거죠?”
“초여름에 무너졌나 보더군.”
초여름?
문득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가만? 그럼 금제가 풀렸던 그때……?’
생각해 보니 시기가 비슷했다.
‘어떻게 하지? 가봐야 하나?’
몇 달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신이 간다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가만히 앉아만 있기에는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안되겠어. 내가 직접 가서 알아봐야지.’
그런데 그가 눈빛을 빛내며 일어나려 하자 화문오가 말했다.
“그곳에 가보려고?”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군요.”
“자네가 간다 해서 달라질 건 없을 텐데?”
“그래도 여기 앉아서 나 몰라라 할 순 없어요. 그 사람들은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이거든요.”
“외숙부께서 친구들과 함께 황산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네. 그러니 자넨 이곳의 일을 처리하게나. 그분께 소식이 온 다음에 가 봐도 되지 않겠나?”
어쩌면 그것이 최선일지 몰랐다.
전쟁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중이다.
일촉즉발의 상황!
언제 건곤일척의 대회전이 벌어질지 모른다.
자신이 없으면 그만큼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다.
제기랄! 결국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
풍천은 잔뜩 인상을 쓰고서 화문오를 바라보았다.
“연락이 오면 바로 말씀해 주십쇼. 거짓 없이 사실 그대로.”
“알겠네.”
화문오는 침중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혼자 남은 풍천은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고는, 어느 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내서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봐야겠어.’
결심이 선 풍천은 간단한 말만 남긴 채 거처를 나섰다.
“잠깐 다녀올 곳이 있수. 아마 하루 정도 걸릴 거요. 제가 없는 동안 엉뚱한 일벌이지 말고 조용히 지내쇼.”
사람들은 자세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물어도 말해주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핀잔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풍천은 그렇게 거처를 나섰다.
‘하오문 합비분타에 부탁해봐야겠어.’
그들이라면 정확한 사정을 파악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가 철목보를 나서려고 할 때 한 사람이 뒤따라왔다. 다름 아닌 공손이향이었다.
그녀는 화문오가 찾아왔을 때부터 풍천의 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수상히 여기고 접근하면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화문오가 떠난 뒤 풍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어디를 간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풍천의 뒤를 따라왔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듯했다. 혼자 보내기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했다.
그녀는 급히 거리를 좁히고 물어보았다.
“어딜 가시려고요?”
풍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가보려고요?”
“아뇨. 직접 가보진 못하고 사람을 보내보려고요.”
“보낼 만한 사람은 있어요?”
“합비에 가면 적당한 사람이 있어요.”
“합비요?”
“너무 걱정 말아요. 사람만 보내고 바로 올 거니까요.”
공손이향은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말했다.
“그럼 저와 같이 가요.”
그 말을 하는데, 그동안 얼어붙은 것처럼 여겨졌던 가슴이 오늘따라 뜨겁게 느껴졌다.
풍천은 공손이향의 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합비까지 이백 리 거리다. 왕복 사백 리. 혼자보다는 둘이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것도 상대가 공손이향이 아닌가.
“그러죠 뭐.”
풍천과 공손이향은 곧장 철목보를 나섰다.
은양은 따라나서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아는 것이다. 이제는 공손이향에게 더 이상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걸. 더구나 그녀의 옆에는 풍천이 있지 않은가.
‘그래, 어쩌면 너에게는 그 작은 행복이 그 무엇보다 소중할지도 모르겠구나.’
2
공손이향은 풍천과 나란히 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몸은 차가울지 몰라도 가슴에서는 열기가 퍼졌다. 정말 오랜만의 열기였다.
영원히 이렇게 곁에라도 있을 수 있으면…….
두 사람은 해시가 되어서야 합비에 도착했다.
풍천은 합비로 들어가자마자 하오문 합비분타인 구중당을 찾아갔다.
하지만 구중당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평소 자시까지 문이 열려 있는 걸 생각하면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양반이 어디 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