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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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23화
223화
모용빈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도 동천옹이 어떤 사람인지 들어서 알았다. 비록 자신이 구마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해도 나이가 곱절에 가까운 동천옹은 자신이 걸음마할 때부터 동천자라 불리던 팔신의 일인이 아닌가.
그는 기분이 나쁘고 자시고 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자신을 향해서 ‘칼 좀 쓴다며?’ 하는 동천옹의 말투에 희미한 웃음마저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헌당 노선배.”
“자네, 새로 들어오면 원로원에 인사하러 가야한다는 거 알지?”
“예?”
“조심하게. 원로원에는 괴상한 놈들이 많거든. 저기 시커먼 놈도 그렇고, 저 염가도 정상이 아니야. 특히 염가 방은 가지 마. 방에 귀신들이 우글거리거든.”
“아, 예…….”
처음 대하는 분위기에 모용빈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빤히 바라보던 동천옹이 갑자기 낄낄거렸다.
“낄낄낄, 소문처럼 독종은 아닌 것 같군.”
모용빈이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못하자 무영자가 슬그머니 한마디 했다.
“원로원에 오면 나부터 찾아오게. 그럼 제천신궁에서 재미있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줄 테니까.”
“흥! 네가 사람 죽이는 이야기밖에 더 알아? 재미난 이야기라면 내가 훨씬 많이 알지.”
“저 애늙은이 방에는 가지 말게. 심부름이나 시킬 걸?”
옥신각신하는 동천옹과 무영자를 보고 모용빈은 은근히 마음이 편해졌다.
처음에는 어울리기가 어색할 거라 생각하고 어느 정도는 각오도 했거늘.
‘심심하진 않겠군.’
농담을 주고받는 걸 보니 이제 죽괴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떨쳤나 보다.
좌소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묵령천의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칠십여 명이 와서 살아남은 사람은 서른일곱. 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보이지 않는 사람 중에는 처음에 만났던 누하진과 목영락도 끼어 있었다.
‘저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힘든 싸움이 될 뻔했어.’
그때다. 묵령천의 형제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세 사람이 좌소천 쪽으로 다가왔다.
목화인과 헌원신우, 그리고 목영운이었다.
그들은 곧장 좌소천에게 다가오더니 다섯 자 정도 거리를 두고 자리에 앉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목화인이 좌소천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궁주를 묵령의 후계자로 인정하기로 했소.”
묵령천의 형제들은 금라천이나 환상마궁과 달리 문파를 형성하지 않고 지내왔다. 하기에 금라천의 유일한 핏줄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좌소천을 묵령의 주인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몇 사람은, 같은 형제인 환상마궁을 친 금라천의 핏줄을 후계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천외천가와의 싸움을 통해 그들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했던 사람들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주가 허락한다면, 모든 게 끝난 후 제천신궁에 자리를 잡을까 하오.”
좌소천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직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그에겐 묵령천의 사람들을 보살펴 줘야 할 의무가 있지 않던가.
“저야 환영할 일이지요.”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말씀해 보시지요.”
“우리만 따로 해서 단체를 하나 만들어주었으면 하오.”
아마도 묵령천의 이름만큼은 보존하고 싶은 마음인 듯하다.
좌소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목화인이 돌아가자 공손양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인원 재편이 끝났습니다.”
“북리 대주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 먼저 출발했습니다.”
좌소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하늘에 별이 유난히 많군.”
소영령도, 공손양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인피면구를 벗고 면사로 눈 밑만 가린 소영령의 두 눈에 구름처럼 흘러가는 별들의 군무가 가득 찼다.
“너무 아름다워요.”
그때 좌소천의 입에서 조금은 암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많은 사람이 죽었소. 그들이 모두 별이 되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소.”
섬서까지 와서 천외천가와 싸운 이유는 간단했다.
사악한 자들에게서 강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무림맹이 말하는 협의나 정의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강호를.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 저변에는 천외천가에게 복수하겠다는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이 짙게 깔려 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과연 자신의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까?
강호를 지키고 죽어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아니면 한 사람의 복수극에 희생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할까?
하늘을 바라보는 좌소천의 눈빛이 깊어졌다.
왠지 가슴이 저릿해지는 기이한 기분에 공손양도, 소영령도 말없이 좌소천의 옆모습을 바보기만 했다.
‘자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군. 그들은 강호라는 도검 위에서 살아가는 무사들, 결코 주군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요, 오빠. 오빠가 원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4
날은 여전히 쾌청했다.
동쪽 산머리 위로 치솟는 태양은 한여름의 태양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출발!”
선두에서 출발을 알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일천의 무사들은 전날과 다름없이 셋으로 나뉘어 남쪽으로 향했다.
주양을 지나면서부터는 첩첩이 쌓인 산을 타넘는 산길이었다. 그래도 사이사이로 길이 잘 나 있어 많은 인원이 이동하는 데도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
그렇게 한나절, 해가 서쪽으로 기울 즈음에는 낙하(落河)를 건너 전보산 서쪽에 이르렀다.
근 다섯 시진을 이동했는데도 불과 이백 리 길을 갔을 뿐이었다. 대신 지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선두는 자신들이 지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조금도 보폭을 줄이지 않고 남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계곡이 하나 있었다. 그곳을 지나지 않으려면 서쪽으로 백 리는 돌아서 가야 했다.
드넓은 웅이산의 서쪽에 위치한 전보산(全寶山)의 절부곡(折斧谷)이 바로 그곳이었다.
절부곡은 남북을 잇는 주요 통로인만큼 웅이채 산적들의 주 활동지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두려워서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백 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일대에서 공포의 대상인 그들도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고수들에는 날아다니는 파리만큼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바로 그 절부곡 앞에 도착하자 목령대, 수룡대가 먼저 앞서 나갔다.
백여 장의 거리를 두고 좌소천을 비롯해 묵령천의 형제들과 금강대가 절부곡 안으로 진입했다.
절부곡은 계곡은 상당히 깊고 좁았다. 계곡 양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는데, 넓이가 이십여 장에 불과해서 마치 하늘의 천장이 도끼로 산을 내려쳐 갈라놓은 것처럼 보였다.
“정말 멋진 곳이군.”
좌소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놈들이 진입했습니다.”
“좀 더 놔둬라. 우리의 주목표는 좌소천과 핵심 고수들이다. 그들이 완벽히 들어온 후에 공격을 시작한다.”
순우연은 싸늘히 말하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십 리에 이르는 절부곡의 중간쯤에는 우거진 숲과 불쑥불쑥 솟은 바위들이 산재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숨어 있기에 적당했다.
더구나 그곳은 계곡의 중간에 나 있는 길에서 살펴보기가 쉽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매복하기에는 최적의 장소. 원래는 웅이채의 산적들이 애용하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천해와 천외천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좌소천, 오늘이 바로 네놈 제삿날이 될 것이다!’
순우연의 입가에 차가운 살소가 맺힐 때다.
이진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중에는 좌소천도 끼어 있었다.
‘들어오는군.’
순우연은 슬쩍 손을 들어 반대편에 수신호를 보냈다.
반대편에 있던 공야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준비해라. 바로 앞에 당도하면 공격을 시작해라.>
행여나 소리를 들을까 봐 이번에는 전음으로 말을 전했다.
고개를 끄덕인 순우기정이 좌우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세 시진의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아니, 지난 시일의 노고가 결실을 맺기 직전이었다.
순우기정이 전음으로 모든 명을 전했을 즈음, 마침내 좌소천 일행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좌소천은 고개를 들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떻소? 정말 멋진 곳 아니오, 군사?”
공손양이 조용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절부곡이라는 이름이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니군요. 앞으로는 이름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글쎄, 나는 그냥 절부곡이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소.”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제법 컸다.
은신해 있던 순우연의 귀에도 선명히 들릴 정도였다.
‘미친놈들! 곧 죽을 놈들이 이름 가지고 따지기는!’
순우연은 좌소천이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 개시 신호였다!
신호를 본 순우기정이 손을 들어 올려 앞으로 내렸다.
“놈들을 쳐라!”
찰나였다!
쏴아아아아!
수백 발의 화살이 절벽 위 양쪽에서 아래로 쏘아졌다. 그리고 곧이어 이차, 삼차, 사차. 수천 발의 화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쒜쒜쒜쒜쒜!
그런데 괴이하게도 그들의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좌소천은 화살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냉소를 지었다.
“이제 시작이군.”
화살이 쏟아지는 곳은 절벽 꼭대기였다.
목적지는 좌소천이 있는 곳이 아니라, 절벽 가장자리에 숨어 있는 천외천가의 무사들을 향해서였다.
그랬다. 화살을 날리는 자는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아니었다. 북리환이 이끄는 화정대와 웅이채의 산적들이었다.
비록 산적들이 쏘는 화살이지만, 백 장 높이에서 아래로 쏘아지는 화살이다.
더구나 일반 화살이 아닌 철시다.
제아무리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고수라 해도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잘 보고 쏴! 어떤 놈이 가운데다 쏘는 거냐! 팔을 부러뜨리기 전에 똑바로 보고 쏴라! 거기! 숨어서 손만 내밀고 쏘는 놈! 너 죽을래?”
북리환의 고함이 절부곡을 울리는 사이에도 화살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화살만이 아니었다. 화살이 떨어졌는지 어떤 자는 머리통만 한 돌을 들어 아래로 던졌다.
순우연은 어이가 없어서 잠시 동안 분노조차 일지 않았다.
그의 머리 위 다섯 자 높이에서 튕겨지는 화살을 보면서도 자신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실이었다.
탕! 퉁퉁! 투두두둥!
바위에 부딪친 화살이 볶아진 콩처럼 튀어 오르고, 눈먼 화살이 수하들의 어깨, 머리, 몸통을 가리지 않고 박혀든다.
미처 매복지에서 밖으로 나가기도 전, 수십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자신들만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편에 잠복해 있던 천해의 무사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밖으로 나가라!”
“놈들과 뒤섞이면 화살을 쏘지 못한다! 놈들을 공격하라!”
여기저기서 악다구니가 터져 나오며 수백 명의 무사가 쏟아져 나갔다.
겨우 밖으로 나선 자들 중에도 이백여 명은 하나 이상의 화살을 몸에 달고 나서야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순우연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좌소천!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다! 오늘 네놈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
순우기정도 입술을 깨물고 악을 쓰듯 외쳤다.
“앞뒤를 철저히 막아라! 놈들이 지원을 못하게 막아!”
좌소천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천외천가의 고수들을 보며 무진도를 빼 들었다.
“순우연, 누가 여기서 최후를 맞을지 아직도 모르나 보구나!”
그때 반대쪽에서 가공할 기운이 밀려들었다.
혈천마마공의 마기!
공야황이었다.
“좌소천! 오늘 누가 천하제일인지 결판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