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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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21화
221화
북리환이 정신을 잃은 정수를 깨웠다.
정신을 차린 정수가 고개를 들자 싸늘한 질문이 떨어졌다.
“네놈이 말장난하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고나 있느냐?!”
질문을 한 자는 종환 진인이었다.
자신이 공격을 늦추는 바람에 천해의 무리에게 제일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잘못을 정수가 한 것처럼 몰아붙였다.
“무, 무슨 말입니까?”
“왜 정첩당의 정보를 고의로 속인 것이냐?”
정수는 더듬더듬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왜 자신을 잡아왔는지 안 것이다.
비록 어떻게 그 사실이 알려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일이라면 대충 핑계를 댈 수가 있었다.
그리고 기껏 해봐야 무림맹에서 쫓겨나 사문으로 돌아가는 정도로 끝날 것이었다.
“저는 조항이 전한 소식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장로님!”
“그대로 전했다고? 그래 ‘천해’라는 말과 ‘수상한’이라는 말도 구분을 못했단 말이냐? 거기다 오륙백을 오륙십으로 들었다고?”
“그때 바람이 워낙 세서 한두 마디를 미처 못 들었을 뿐입니다, 장로님!”
“이놈이 그래도!”
“정말입니다! 무당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정수가 무당의 명예까지 걸고 넘어가자 종환 진인도 함부로 다그치지 못했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당의 제자들은 차마 더 듣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어느 정도 아는 것이다. 정수가 어떤 사람인지.
그런 정수의 입에서 무당의 명예 운운하는 말이 나오니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입을 꾹 닫고 있던 현우자가 참지 못하고 노성을 내질렀다.
“네 이놈! 네놈이 고의로 그랬다는 게 다 드러났는데,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감히 무당의 명예를 운운해?!”
“저는 무당의 제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숙? 무당의 제자가 무당에 기대지 못한다면 어디에 기대란 말씀입니까?!”
“이, 이놈이 그래도……!”
안 그래도 침체기에 놓인 무당이다. 소림에 이어 이제는 화산에조차 자리를 내주고 중간을 겨우 따라가는 무당이다.
더 싸워봐야 무당의 이름에 먹칠만 할뿐.
현우자는 부끄러워서 차마 더 이상은 정수와 말다툼을 할 수가 없었다.
“알아서 하시오, 종환 도우.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소?”
“험, 그러시다면…….”
종환 진인은 마치 공동이 무당을 누른 것처럼 기고만장해서 정수를 노려보았다.
“오늘부로 너는 영원히 무림맹에 발을 디딜 수 없다. 지은 죄를 생각하면 당장 사형에 처하든지…….”
그 말만 듣고도 정수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흐르는 상황에 비지땀을 흘렸다.
‘뭐? 사형? 이런 개 같은……!’
그사이 종환 진인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면 사지근맥을 잘라야 마땅하다만, 네가 그동안 특별한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니, 너의 무공을 폐하는 것으로…….”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무공을 폐지한다고? 이 망할 늙은이가 어디서!
‘절대 그럴 수는 없어!’
그는 주위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자신의 앞에는 십여 명뿐. 나머지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
잘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정수는 눈에 질끈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나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말도 안 됩니다! 왜 제 말은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만 믿는 겁니까!”
눈물을 글썽이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짓처럼 보였다.
둘러섰던 무림맹의 간부들이 멈칫했다.
그때다. 정수가 혼신을 다해 몸을 날렸다. 그러면서도 해야 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두고 보십시오! 제가 반드시 제 결백을 밝히겠습니다!”
남들에 비해 검은 떨어져도 신법 하나만큼은 무당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간다는 정수였다.
그의 신형은 순식간에 오 장 떨어진 건물의 지붕 위로 날아갔다.
회심의 미소가 정수의 입가를 스쳤다.
하지만 그도 잠시.
퍼벅!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덮치더니 그를 건물 아래로 튕겨냈다.
“교활한 놈, 눈알 굴릴 때부터 알아봤다.”
무영자에 의해 튕겨진 정수는 안간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 그의 가슴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한 자 반 크기의 검집이 화려한 단검이었다.
흠칫한 정수는 몸을 가누기 힘든 중에도 재빨리 손을 뻗어서 단검을 쥐려 했다.
그런데 그가 막 단검을 쥐려는 순간, 오동통한 손이 먼저 단검을 낚아챘다.
“그, 그건 내 것……. 돌려주시오!”
정수가 고개를 들고 손을 내밀었지만, 동천옹은 정수에게 단검을 돌려주지 않고 고개만 모로 꼬았다.
“이상하네…….”
동천옹이 딴청만 피우자 지붕에서 내려온 무영자가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뭔데 그러냐?”
“이거, 꼭 내가 아는 물건 같거든.”
“제법 귀하게 생겼는데?”
바닥을 기다시피 다가온 정수가 간절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왜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겁니까? 돌려주시오!”
그때였다.
동천옹의 눈빛이 묘하게 번뜩였다.
“탐내? 흐흥! 탐낸다 말이지? 그래, 이제야 알겠군.”
동천옹은 정수를 벌레 보듯 한번 쳐다보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무림맹의 간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종환!”
“예, 노도우.”
“이놈, 무공을 폐지시킬 거라고 했나?”
“예? 예, 그랬습니다만…….”
순간!
퍽!
갑자기 동천옹이 정수의 단전을 걷어찼다.
“커억!”
일 장 밖으로 나가떨어진 정수가 부들부들 떨며 입에서 선홍빛 피를 게워냈다. 단전이 부서진 그의 입에서 목소리가 짓씹혀 나왔다.
“어, 어억! 아, 안 돼!”
갑작스런 동천옹의 행동에 무림맹의 간부는 물론이고, 멀리 떨어져 있던 좌소천까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동천옹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현우자를 바라보았다.
“현우 말코!”
“예, 노도우.”
“내가 왜 이런지 의문이지?”
“예? 예, 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 노하신 겁니까?”
동천옹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
“흥! 아마 현우 말코가 알면 나보다 더 화가 날걸?”
“무슨 말씀이신지요?”
동천옹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군. 산적, 그놈 좀 들고 안으로 들어가자.”
북리환이 동천옹의 뒤통수를 슬쩍 노려보고는, 군말 없이 정수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영풍전 안으로 들어갔다.
‘지미, 사람도 많은데, 산적이 뭐야, 산적이? 좋게 부르면 입술에 주름이 생기나?’
그때 무림맹의 장로들이 따라 들어오려 하자 동천옹이 눈을 부라렸다.
“단전이 파괴되었으니 너희들이 줄 벌은 끝났잖아! 들어오지 마! 쌍도끼, 다른 사람들 얼씬 못하게 해!”
덜컹!
전각의 문이 닫힌 후에야 동천옹이 손에 쥔 단검을 정수에게 내밀었다.
“너, 이거 어디서 났지?”
정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숙인 채 가로저었다.
동천옹이 가소롭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
“훗!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겠다?”
그러고는 염불곡을 불렀다.
“염가야! 너 이 자식에게 귀령 좀 심어라. 들을 말이 있으니까.”
염불곡이 다가오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라면 하겠습니다만, 이유 먼저 좀 알면 안 되겠습니까?”
그때 바로 뒤까지 다가온 좌소천이 말했다.
“저도 궁금하군요.”
동천옹은 정수를 벌레 보듯 쳐다보며 말했다.
“운강이 그러더군. 범인이 집안사람들을 죽이고 가보 하나를 가져갔다고. 그러면서 그 가보에 대해 말해주더군.”
좀처럼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 좌소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영자는 아예 억, 소리를 내며 정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럼 이놈이……?!”
동천옹이 통통한 손가락을 뻗쳐 정수를 가리켰다.
“그래, 이놈이 청봉의 단리가를 몰살시킨 놈이야. 바로 단리가의 보물인 이 단검이 탐나서.”
그제야 동천옹의 말을 알아들은 현우자와 정은이 득달같이 다가왔다.
“그게 사실입니까, 노도우!”
“이 단검이 단리가의 가보인 것은 분명해. 단리공선의 아들인 단리운강이 설명한 단검과 완전히 똑같거든. 그러니 이제부터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자고. 염가야, 시작해!”
잠시 후.
현우자는 털썩 의자에 주저앉아 반쯤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정은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본 채 굳어버렸다.
“어떻게 그런 일을…….”
정수는 청봉 단리가에 놀러갈 때마다 몰래 십여 냥의 은자를 받아 챙겼다. 나중에 단리운강에게 무당의 무공을 가르쳐 준다면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술이 거나해진 단리공선이 이런저런 자랑을 하던 중 가보에 대한 말을 꺼냈다.
궁금해진 정수는 그걸 구경하자고 했고, 단리공선은 서슴없이 가보인 태청보검을 꺼내 보여주었다.
태청보검을 본 정수는 욕심에 눈이 멀었다. 게다가 단리공선이 태청보검을 휘둘러서 쇠젓가락을 가볍게 자르는 걸 보고는, 어떻게 하든 태청보검을 차지할 결심을 했다.
그날은 조용히 지나갔다. 그리고 사흘이 지날 무렵, 신녀가 북상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태청보검을 한시도 잊지 못한 정수는 그걸 기회라 생각하고 악심을 먹었다.
―신녀가 한 줄 알겠지!
일단 실행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청봉의 흑도 건달 셋을 은자 삼십 냥에 꼬드겼다. 그리고 자시가 넘은 시각, 복면을 한 채 단리가에 몰래 숨어들어 단리공선의 방에 침입했다.
처음에는 남자 몇 명만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단리공선이 생각보다 강력히 저항하는 바람에 식구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버렸다.
그러자 정수가 나설 사이도 없이 건달들이 먼저 식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결국 정수도 거들 수밖에 없었다. 자칫 건달들에게만 맡기면 도망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그 후 정수는 건달들이 집 안을 샅샅이 뒤져서 모두 죽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태청보검을 들고 단리가를 나왔다.
그리고 단리가를 나오자마자, 돈을 준다며 세 흑도 건달을 근처의 숲으로 데려가서 모두 죽이고 파묻었다.
나중에야 아들과 딸의 시신이 없다는 게 알려졌지만, 그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옷도 바꿔 입고 복면을 하지 않았던가. 설령 봤다 해도 알아볼 수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할래? 이 자리에서 죽일 거냐, 아니면 무당으로 데려가서 처리할 거냐?”
현우자가 고개를 숙였다.
“무당에 넘겨주신다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흥! 나에게 말고, 운강에게 어떻게 보답할 건지 그것부터 생각해 봐.”
“장문인과 상의해서 그 아이에게 응분의 보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데려가. 소문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현우자의 눈 가장자리가 잘게 떨렸다.
소수의 사람들만 데리고 안으로 들어온 동천옹의 뜻을 확실하게 이해한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면, 이 시간부로 무당의 제자들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무당은 영원히 노도우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3
혈전이 벌어진 지 열흘이 지났다.
무림맹 사람들은 모두 화산과 상주로 돌아가고, 고요함 속에 영풍산장의 모든 것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갔다.
천해와 천외천가는 위남을 포기하고 종남에 틀어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사이 섬서의 강호에 은밀한 소문이 하나둘 돌기 시작했다.
―절대공자 좌소천과 무림맹의 간부들이 영풍산장의 희생자에 대한 책임 문제를 두고 대판 싸웠다고 한다.
―신녀가 좌소천과 함께 있는 걸 보고 무림맹이 등을 돌릴지 모른다고 한다.
―사도철군이 내상을 입어서 몇 달간은 운기요상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주요 고수들도 대부분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일파만파로 번진 소문은 열흘이 지나자 천 리 밖의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영풍산장에서 폭탄선언이 나왔다.
―우리는 섬서를 떠나겠다. 어디 무림맹 혼자 잘해봐라!
―천외천가와 천해가 섬서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더 이상 관여를 하지 않겠다!
무림맹도 때맞추어 입을 열었다.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도움이 없어도 상관없다. 우리의 힘만으로도 천외천가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 마도와는 더 이상 손을 잡지 않겠다. 강호의 정파들이여! 모두 일어나 무림맹으로 모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