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15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15화
215화
좌소천은 못 본 척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한발 늦으면, 그만큼 동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많아진다는 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종환 진인의 눈빛이 깊게 침잠되었다.
“내 어찌 그걸 모르겠나?”
“출발은 이각 후에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몸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리시기 바랍니다.”
이각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스름이 밀려들 즈음, 숲을 나선 사람들은 영풍산장을 향해 소리없이 전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상의 모든 것이 하늘의 회색빛보다 더 짙은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어둠에 잠겨 검게 변해가는 영풍산장의 담장이 저만치 보이자, 그때부터 연합세력의 고수 중 일부가 앞서 나갔다.
묵령천의 사람들과 사도진무가 이끄는 이십팔전마 중 일곱, 그리고 소광섭이었다.
지난 칠 개월, 영풍산장에 머물렀던 사람들이다. 천외천가의 공격에 대비해 주위 지형을 자세하게 파악해 놓은 상황. 당연히 누구보다 영풍산장 일대의 지리를 잘 알았다.
어디에 초병이 있을지, 어디에 매복이 있을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십여 장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고, 사람 키 높이의 수풀이 나타나자 소광섭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수풀 속에서 뭔가가 움직인 순간, 소광섭의 탈혼시가 바람을 갈랐다.
쉬쉬쉬쉭!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세 개의 그림자가 수풀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십여 발의 탈혼시가 바람 소리에 섞여 차례대로 탈혼궁을 떠났다.
탈혼시는 빠르고도 정확했다.
희미한 어스름은 결코 장애가 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 낫에 베인 갈대처럼 십여 명의 경비무사가 쓰러졌다.
동시에 횡으로 늘어선 묵령천의 형제들과 칠전마가 몸을 낮춘 채 소리없이 바람에 묻혀 달렸다.
스스스스…….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서 짓눌린 신음이 줄지어 터져 나왔다.
“웬 놈……. 컥!”
“적……!”
뒤늦게 단말마와 경고가 터져 나왔다.
그때는 이미 삼십여 명의 경비무사가 목을 부여잡고, 뚫린 심장을 틀어막은 채 썩은 나뭇가지처럼 바닥을 뒹군 후였다.
오백 무사는 그들의 시신을 타넘어 담장 위로 날아올랐다.
2
장원 안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며 소란이 인다.
백호당의 오대주 정은이 제일 먼저 매복해 있던 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당주님, 저쪽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백호당주 남궁학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잠깐 기다리게. 아직 명이 떨어지지 않았네.”
“왜 명을 내리지 않으시는 것이죠? 좌 궁주는 바로 공격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남궁학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를 지그시 악문 채 고개를 저었다.
“적을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 맹의 맹도들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네. 조금 늦는다고 해서 설마 큰일이 벌어지기야 하겠는가?”
“당주님, 그러다 저쪽의 피해가 커지면……?”
“정은, 자넨 무림맹의 사람인가, 아니면 제천신궁의 사람인가? 우리가 왜 공격을 늦추는지 정말 모르는 건가?”
어리둥절하던 정은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서, 설마……?”
“이미 간부들끼리 합의가 된 일이네. 명에 따르도록.”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정은은 고개를 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당주님, 그건 안 됩니다. 절대로!”
“명에 따르지 않을 것이면 이번 작전에서 빠지게.”
말을 내뱉는 남궁학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제 흔들림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한둘이 나선다 해서 바뀔 계획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정은은 남궁학의, 아니, 무림맹의 확고한 의지를 읽고, 떨리는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십여 장 떨어져 있는 청룡당의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알고 있는지 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너무도 담담하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비릿한 맛이 혀를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가슴에 커다란 고드름 하나가 송곳이 되어 박힌 기분이다.
‘이건 아닌데. 정말 이건 아닌데…….’
혼자라도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하면 무당이 욕을 먹을지 모른다. 사형제들이 손가락질을 당할지 모른다.
사부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나쁜 놈! 정은, 너는 나쁜 놈이다! 친구가 저 안에 있는데 뭘 망설이는 것이냐!’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안에서 들리는 격전음도 점점 커져 갔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동쪽과 북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공손양이 이끄는 사람들과 화산의 제자들이 공격을 시작한 듯했다.
“공격을 시작하시오!”
그제야 무림맹의 수장인 종환 진인의 명이 떨어지고, 천무단이 영풍산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남궁학도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가세!”
멍하니 서 있던 정은은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쥐고 걸음을 옮겼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참담함에 젖은 눈빛.
반의반 각도 안 되는 사이, 정은의 순수함이 어둠에 물들고, 항상 고요를 유지했던 마음이 폭풍을 만난 난파선처럼 조각조각 부서졌다.
‘이럴 수는 없어! 이건 내가 바라는 협의가 아니야!’
하지만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가자! 가서 죽든지 살든지 싸워보자! 그리한다 해서 내 안의 더러움을 씻을 수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것뿐이라네, 무진!’
* * *
연합세력의 공격은 거침이 없었다.
담장을 넘은 그들을 가로막은 자들은 삼십여 명의 경비무사였다. 그들이 연합세력의 앞을 막는다는 것은 한줌 모래로 무너진 둑에서 쏟아지는 폭류를 막는 거와도 같았다.
“컥!”
“허억!”
“적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마지막 발악을 하며 적의 침입을 알리는 정도.
갑작스런 소란에 십여 채의 전각에서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는 식사를 하다 말고 뛰어나온 자들도 있었고, 운기행공을 하며 수련 중이던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연합세력의 무사들은 극도의 긴장감이 살기로 승화 된 상태. 애초에 기세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영풍산장의 내부에 대해 머물고 있는 자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아닌가.
폭풍이 담장을 넘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천지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솟구치는 수십 줄기의 검붉은 피분수!
그 선두에 두 사람이 있었다.
천외천가의 무사들은 폭풍을 이끌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두 명의 살귀를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쌍마검이다!”
혁련호정과 사도진무!
초절정에 달한 무위로 항상 경쟁하듯 선두에서 적을 죽음으로 이끄는 두 사람이다. 천외천가의 사람들에겐 두 사람의 광기 어린 검이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쌍마검(雙魔劍)’이라 부르며 두려워할까!
하지만 진정한 폭풍은 따로 있었다.
묵령천의 형제들!
그들에게 천외천가는 철천지원수.
그들은 누구보다도 지독하게 천외천가의 무사들을 몰아붙였다.
질풍노도가 따로 없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형제들의 원수를 갚아라!”
상대의 심장을 가른 검이 그대로 옆을 그으며 빠져나와 또 다른 자의 목을 가른다.
허공 높이 뻗치는 핏줄기!
피를 뒤집어쓴 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또 다른 먹이를 찾아 달려드는 묵령천의 형제들이다.
지난 수십 년간 쫓기며 죽어간 수천의 형제들의 원혼이 쳐다보고 있다.
죽여라! 놈들을 죽여 원혼을 위로하라!
그들을 이끄는 목화인도, 헌원신우도, 증모당과 기령산도 광기가 도는 눈빛으로 적의 심장과 목을 가른다.
그들의 기세가 어찌 사나운지 전마성의 싸움꾼이라는 이십팔전마조차 기가 질릴 정도였다.
삽시간에 오십여 명이 피분수를 뿌리며 무너지고, 처절한 비명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영풍산장의 서쪽 정원이 붉게 물들었다.
그럼에도 피의 폭풍은 멈출 줄 모르고 더욱 세차게 불어대 순식간에 영풍산장을 뒤덮었다.
한편, 좌소천은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내원의 전각을 향해 날아갔다.
일반 무사들은 걱정될 것이 없었다. 절정의 고수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역시도 문제가 아니었다. 접전이 길어질지는 몰라도 밀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정작 문제는 절대지경의 고수인 순우연과 척발조. 그리고 십여 명의 초절정 이상의 고수와 열넷의 사령이었다.
그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난전에 끼어들면 피해가 커질 터. 따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날아가자 네 명의 장로를 비롯해서 소영령과 사도철군이 뒤를 따르고, 백룡과 도유관 등 호법들과 전마성의 좌우호법, 귀검잔도가 좌우를 호위했다.
그때 수십 명이 안쪽에서 뛰어나왔다.
“저놈들을 막아라!”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쳐들어온 것이냐!”
멋모르고 앞을 막는 자들을 향해 좌소천의 무진도가 허공을 횡으로 갈랐다.
쉬이익!
허공에 그어진 묵선의 동선에 걸린 자는 누구도 무사하지 못했다. 무기는 부러지고 몸은 갈라져 달려들던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우르릉!
뒤이어 사도철군의 철혈마검이 대기를 터뜨리며 떨어져 내렸다.
철혈의 패검은 그 기세만큼이나 위력적이었다.
콰광! 쾅! 콰광!
일검 일검에 서너 명의 무사가 피를 토하며 튕겨진다.
그래도 남은 자들에겐 소영령의 하얀 손이 소리없이 뻗어나갔다.
이십여 명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공포가 천외천가 무사들을 집어삼켰다.
“무, 물러서라!”
“뒤로 물러서서 침착하게 대응해라!”
그때 동천옹이 호법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냐?! 너희들이 나가서 쓸어내 버려라!”
백룡과 도유관과 능야산 등 호법들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저자들은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주군!”
백룡의 검을 시작으로 도유관의 은백색 쌍부가 허공을 쪼개고, 능야산의 비도가 어둠을 뚫었다.
이자광의 주먹은 대기를 터뜨리고, 전하련의 채찍은 어둠 속에서 살아 있는 용이 되어 상대를 휘감는다.
홍려운의 대도는 쉼없이 허공을 난자하고, 종리명한의 필살검이 한 번 뻗을 때마다 상대의 몸에서 핏줄기가 뿜어진다.
거기에 더해 사도철군의 좌우호법 귀검과 잔도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상대의 몸을 갈랐다.
억눌린 신음과 비명이 줄지어 터져 나온다.
무인지경의 기세!
백 명이 넘는 적을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있다.
그때 문득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사도철군이 좌소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좌 궁주! 왜 무림맹이 공격을 하지 않지? 벌써 들어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동천옹과 무영자도 고개를 돌려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그 자식들, 엉뚱한 생각하는 것 아니야?”
동천옹의 말에 무영자가 스산한 눈빛을 빛냈다.
“잠자다 뒈지고 싶으면 뭔 짓을 못해?”
입을 굳게 닫은 좌소천의 눈빛이 밀려드는 어둠보다 더 깊어졌다.
사방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지금쯤 무림맹 무사들이 들어와서 몰려드는 천외천가의 무사들을 분산시켜야 했다.
당장은 위협이 되지 않는다지만, 숫자에서 워낙 차이가 나면 그러한 상황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적에게 막힌 것도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도철군의 말대로 지금쯤 들어왔어야 한다. 한데 들어오지 않고 있다.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고 있는가 보군, 종환 진인!’
자신이 작전을 설명할 때였다. 천무단의 제이부단주인 공동의 종환 진인, 그의 가라앉은 눈빛이 흔들렸었다.
그때만 해도 긴장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나보다.
‘나를 분노케 하지 마라, 무림맹이여!’
그때였다.
“네놈들이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당황하지 마라! 그놈들은 우리에게 맡기고 외곽 쪽을 지원해 줘라!”
내원의 안쪽에서 노성이 터져 나오고, 순우연과 순우기정이 천외천가의 고수들을 이끌고 우르르 몰려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