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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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13화
213화
앞서 달리는 사람들은 조금도 심각한 표정이 아니다. 어찌 보면 정말 목숨을 걸고 적을 치러 가는 사람들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유는 하나다.
절대공자 좌소천! 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왠지 모르게 자신들도 물이 들었다. 뒤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잔뜩 굳었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맹주님과 전마성주가 합공을 하고도 이기지 못한 천혈마신을 단신으로 쫓아냈다잖아?
―은사인가 하는 그 늙은이도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던데?
―다 생각이 있으니까 이런 계책을 세운 거 아니겠나? 영풍산장을 버리고 단숨에 풍성보로 달려온 걸 봐?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어?
―여러 말 할 것 없어! 어차피 맡겼으니까, 믿자고!
여기저기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시간이 흐르면서 군웅들의 표정에 잔뜩 끼어 있던 무거움이 사라진다.
몸놀림도 처음보다 부드러워진다.
무림맹의 무사들을 이끌고 있는 백호당주 남궁학은 무림맹 사람들의 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알고는, 다른 사람과 달리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이대로 가면 누가 있어 저자의 앞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5
천이당의 전령이 상주에서 화산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서 승전보를 전했다.
일각에 걸쳐 자세한 소식을 듣고 난 공손양은 즉시 허운자를 찾아갔다.
“피해가 많았다고 합니다만, 다행히 상주에서 적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오오! 정말 다행이네!”
“조금 있으면 더 자세한 소식이 전해질 것입니다.”
그동안 피를 말리는 긴장 속에 상주의 소식을 기다렸던 허운자였다. 피해가 많고 적음을 떠나 허운자의 얼굴에 화색이 짙어졌다.
공손양은 그런 허운자를 향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
“주군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허운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좌소천이 돌아왔다는 것은 이미 들은 터다. 그러나 그는 무림맹을 지원하기 위해서 상주에 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슨 말인가? 좌 궁주는 상주에 갔다고 하지 않았나?”
“가셨지요.”
“그런데 어떻게 온단 말인가?”
“싸움이 끝났으니 돌아오는 것이지요. 적은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럼… 설마?”
허운자가 누군가?
당금 구파오가 중 가장 성세라는 화산을 이끄는 장문인이 아니던가.
그는 단 몇 마디로 공손양의 말뜻을 알아듣고 얼굴이 굳어졌다.
“가능하겠나?”
“장문인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시 생각하던 허운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공손양이 그리 묻는 이유를 짐작한 것이다.
“우리가 뭘 도와주면 되겠나?”
자신이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넋을 잃고 있는 적의 뒤통수를 칠 기회였다.
문제는 과연 그만한 여력이 남았느냐 하는 것인데, 공손양이 자신에게 계획을 털어놓았을 때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기에 한 말 아니겠는가.
그때 공손양이 허운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영풍산장의 천외천가마저 큰 타격을 입으면 적은 더 이상 화산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이제 힘을 아껴둘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만.”
순간, 허운자의 기다란 눈썹이 바람도 없는데 잘게 떨렸다. 공손양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화산파에선 힘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가을의 대격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의 힘으로도 막지 못할 정도면 화산의 모든 힘이 투입된다고 해도 별 차이가 없을 터. 그렇다면 최후의 힘을 남겨놓아야 했다.
최악의 경우가 닥칠 경우 화산을 재건해야 할 사람은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기에 허운자는 화산이 이십 년에 걸쳐 키운 일백의 천매검수와 심처에 은거 중인 일곱 명의 장로를 전쟁에 투입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당시의 허운자로선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소림의 장문 법요 대사가 백팔철나한을 파견하지 않고 소림에 남겨둔 것이나, 무당의 장문 현고자가 일곱 조의 무량칠성검진을 본산에서 내려 보내지 않은 것도 그와 같은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변명보다 솔직한 마음을 내보였다.
“구차하게 이런저런 말을 하지는 않겠네. 화산을 지켜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봐야 변명으로 들리기밖에 더 하겠는가? 하나 좋네, 이제 화산의 힘을 다 내놓지.”
“고맙습니다, 장문인.”
허운자가 쓴웃음을 매단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인사는 군사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것 같군.”
공손양이 보일락 말락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6
공야황은 무사 육백오십 명을 이끌고 오가산을 출발했다.
빠르게 북상한 지 한 시진이 지날 무렵. 그들은 홍문하(紅門河)를 지나던 중에 북쪽에서 내려오던 표행 한 무리와 마주쳤다.
모두 열세 명으로 이루어진 표행은 장안 최대 표국인 장안표국의 표행이었다.
표사라면 강호 정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 유사는 그들을 붙잡아서 북쪽의 상황을 물었다.
사실 크게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인근의 형세에 대해서는 제아무리 정보에 밝은 표사들이라 해도 자신들만큼은 모를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표사의 입에서 나온 한 가지 소식만큼은 유사와 은사는 물론 공야황마저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풍산장이 어제저녁에 천외천가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어르신!”
유사는 즉시 공야황에게 달려가서 그 소식을 전했다.
뜻밖의 소식에 공야황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러니까, 영풍산장에 있던 자들이, 장원을 비우고 화산으로 이동했다? 현재 영풍산장은 순우연이 차지한 상태고 말이지?”
“그렇다 합니다, 해주. 그리고 좌소천이 그중 일부를 이끌고 상주로 온 듯합니다.”
“그럼 순우연은? 그가 화산을 쳤나?”
“그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뭐야? 그럼 도대체 뭐 하고 있었단 말인가! 좌소천과 사도철군이 정예들을 데리고 남하한 상태면, 그들 힘만으로도 충분히 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좌소천과 공손양이라는 애송이가 잔꾀를 부린 것 같습니다.”
공야황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노기를 드러냈다.
“이런, 이런! 놈들을 치겠다고 허락까지 구할 때는 언제고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었단 말인가? 좌소천과 사도철군이 없을 때 쳤어야지!”
“아무래도 좌소천이 돌아온 것을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순우연뿐이 아니었다. 자신들 역시 작수에 나타난 것이 좌소천일지 모른다는 짐작만 했을 뿐, 그가 돌아와 있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도 순우연과 자신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빌어먹을! 코앞에 있으면서도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순우연이나 순우기정이나, 제 딴에는 머리 좀 굴린다는 것들이 어째 그리 둔하단 말이냐?”
유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차라리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해주.”
공야황과 은사의 고개가 유사를 향해 돌아갔다.
유사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상주의 좌소천이 움직이기 전에 화산을 접수하고 나서, 순우연을 앞장 세워 거꾸로 낙남과 상주를 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영풍산장을 먼저 치고 나서 화산을 무너뜨리려 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화산만 무너뜨리면 되었다.
공야황의 두 눈에서 서서히 혈광이 피어올랐다. 희열에 찬 혈광이었다.
“흠, 좋아, 놈들의 피로 화산을 씻어버리고 곧바로 낙남으로 내려가자.”
하지만 그로부터 일각.
한껏 고조되었던 기분이 싸늘히 식었다.
풍성보가 무너졌다지만, 천외천가의 천유각이 상주에서 화산까지 펼쳐 놓았던 감시망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그들의 눈에 좌소천 일행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놈들이 북상한다고?”
공야황의 표정이 이지러졌다.
은사가 그 표정을 보고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항상 바위 같던 그의 표정이 언제부턴가 자주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좌소천을 만난 작년 가을부터인 듯했다.
그가 없는 동안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은사는 저 밑바닥에서 스멀거리는 기이한 감정을 억누르고 천유각의 무사가 전해온 소식을 전했다.
“행여나 화산이 공격당할까 봐 급히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여우 같은 놈!”
“그래도 천유각의 아이가 우리를 제때 만난 게 천만다행입니다. 이번에는 하늘이 저희를 돕는 것 같습니다.”
공야황의 일그러진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그러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걸렸다.
“그건 그렇군.”
은사의 표정도 오랜만에 밝아졌다.
“우리는 놈의 움직임을 아는데 놈은 우리의 움직임을 모릅니다. 좌가 애송이에게 치명타를 가할 절호의 기횝니다, 해주.”
공야황의 냉소가 짙어졌다.
“치명타 정도로는 안 돼. 영풍산장에 갈 때까지 놈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봐.”
“예, 해주.”
7
정첩당 제오향주 임사당은 황사바람에 눈을 가늘게 떴다.
저만치 십여 리 떨어진 곳의 산등성이를 타고 검은 구름이 은밀하게 밀려가는 게 보였다.
황사로 인해 희미했지만 수백 명은 되어 보였다.
눈에 눈곱이 겹겹이 끼어서 한 사람이 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지난 십 년 정첩당 향주 경험으로 판단할 때,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갈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자들이, 왜 저렇게 몰려가는 걸까?
근처에서 수백의 인원을 움직일 만한 곳은 단 네 곳뿐.
무림맹,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연합세력, 천해와 천외천가의 마귀들, 그리고 군병뿐이었다.
일단 군병은 아니었다. 군병이 저렇게 산등성이를 펄펄 날아다닌다면 무림인들은 숨 죽이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림맹의 무사들도 아니었다.
상주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이 조금 전이다. 무슨 힘이 남아돌아서 수백 명이 산을 탄단 말인가.
그리고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연합세력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조금 전에 동쪽 길로 북상해서 지금쯤 이삼십 리 밖을 달리고 있을 것이었다.
답은 하나였다.
천해와 천외천가의 마귀들!
‘근데 이상하네. 서남쪽으로 도주했다는 자들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거지?’
그것도 수백 명이나.
쫓아가서 확인하면 저들의 정체를 조금 더 정확히 알지 몰랐다. 하지만 상대의 속도로 봐서는 뭐 빠지게 쫓아가 봐야 꼬리도 잡기 힘들 게 뻔한 상황.
차라리 조금이라도 빨리 정보를 전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제길, 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지. 나야 내가 본 것만 전하면 되니까.”
임사당이 정첩당의 향주로 지낸 지 십 년. 그는 그동안 비록 큰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큰 부상 한 번 당하지 않고 욕을 얻어먹지도 않았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보를 있는 그대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전한다는, 자신이 세운 철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럴 것이었다.
“조항!”
“예, 향주.”
“상주에 전해라. 시커먼 놈 오백 정도가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임사당의 단 셋뿐인 수하 중 하나인 조항은 삼 년을 함께 지낸 만큼 임사당의 성격을 그의 부인보다 더 잘 알았다. 하기에 말꼬리를 잡고 얻어맞느니 즉시 대답하고 돌아서는 쪽을 택했다.
“예, 향주!”
꽁지에 불붙은 멧돼지처럼 달려간 조항이 그를 만난 것은 풍성보의 담장이 띠처럼 보일 즈음이었다.
‘저게 누구야? 무당의 오소리, 정수잖아?’
조항이 정수를 알아본 것처럼 정수도 조항을 알아보았다.
“이게 누군가? 조항 아닌가?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 건가?”
평소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정수다. 수하들이 자신의 말에 토를 달면 맹규를 핑계 대고 어떻게든 해코지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자.
그런 그가 앞을 가로막고 생긴 것만큼이나 재수 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제길, 똥 밟았군. 저 작자는 어떻게 다치지도 않았어?’
그래도 자신은 말단 정첩단원, 상대는 청룡당의 조장이 아닌가.
할 수 없이 조항은 불퉁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고할 것이 있어 군사께 가는 길입니다, 정수 도장님.”
“보고할 것?”
“예, 적으로 보이는 자들이 북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찰나간 정수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