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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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12화
212화
“저희는 즉시 이곳을 떠나서 화산으로 갈 생각입니다.”
“위남의 무리들이 화산을 공격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이오?”
“지금 위남에는 적들이 없습니다.”
좌소천의 말에 우경 진인은 물론이고 무림맹의 장로들이 일제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오?”
“그들은 지금쯤 영풍산장에 모여 있을 것입니다.”
“뭐요?”
우경 진인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러다 곧 자신이 너무 경망스럽게 행동했다는 것을 자각했는지 목소리를 낮추고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좌 궁주? 그럼 영풍산장이 놈들에게 무너졌다는 말씀이시오?”
“그건 아닙니다.”
좌소천은 일단 고개를 젓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말이 이어지자 우경 진인과 무림맹 장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어, 어찌 그런 생각을…….”
“참으로 대담한 발상이구려.”
조금은 어이없어하면서도, 그로 인해 자신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고 감탄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러한 감탄을 듣고 있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해서 즉시 돌아갈 생각입니다. 놈들이 이곳의 상황을 알고 움직이기 전에 타격을 줘야 저들의 세를 꺾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감탄을 하던 사람들조차 표정이 굳어졌다.
단순히 돌아가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적을 또 공격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니오?”
우경 진인의 목소리에서 절로 우려가 담겨 나왔다.
좌소천은 무심한 눈으로 우경 진인과 무림맹의 장로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심장이 터지기 전까지는 결코 무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싸움을 빨리 끝내면 빨리 끝낼수록 동료들의, 형제들의 희생이 적어집니다. 저는 그걸 위해 달리고, 싸우려는 겁니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럼에도 먼저 나서서 공세에 앞장서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고요한 가운데 좌소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할 수 없다는 것과 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풍성보에 누워 있는 일천수백의 사람들을 살리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동료와 형제들을 더 구할 수 있는데 힘들다 하여 외면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요.”
맹자가 한 말을 빗대 한마디 더 한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한동안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림맹의 장로들은 좌소천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영풍산장까지 달려가서 싸운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부상자가 너무 많네. 이곳에서 부상을 치료한 다음에 놈들을 치는 게 어떻겠는가?”
무당의 장로 현우자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장로들 대부분이 그게 낫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사도철군이 콧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킁, 우리 몸이 쌩쌩하게 나을 때까지 저들이 기다려줄지 모르겠구려. 우리가 낫기 전에 저들이 먼저 공격이나 안하면 다행이지. 궁주, 시간이 없으니 우리끼리라도 가세. 무림맹은 피냄새에 질려서 싸울 마음이 없는 모양이네.”
어깨의 상처를 대충 감싸고 있던 동천옹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가자고, 궁주.”
그러고는 무림맹의 장로들과 노고수들을 째려보며 혀를 찼다.
그에게는 오륙십대인 무림맹의 장로와 노고수들이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백 살 다 된 이 늙은이도 오가는데……. 쯔쯔쯔, 젊은 놈들이 어째 영 매가리가 없어. 좌우간 시신의 처리나 부탁하겠네. 설마 그것도 거절하진 않겠지?”
우경 진인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닙니다, 노도우.”
동천옹이 상처 난 뺨을 만지작거리며 우경 진인을 째려보았다.
“그게 아니면?”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럴 뿐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함께 갈 무사들을 소집해보겠습니다.”
“괜히 갔다가 힘도 못쓰고 죽을 놈들 말고, 튼실한 놈들로 골라.”
늙은 생강이 맵긴 매웠다.
2
상주에서 사십 리가량 떨어진 오가산(吳家山) 정상.
휘이잉!
강한 바람이 붉은 머리카락을 한바탕 흩뜨리고 지나간다.
공야황은 흐트러진 머리가 눈앞에서 어지럽게 흩날리는데도 석상처럼 굳은 채 상주가 있는 동쪽만 바라보았다.
그는 풍성보를 떠난 후 곧바로 산양으로 가지 않았다.
반 가까이가 부상자들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살릴 수 있는 사람도 피를 다 쏟아내고 죽을 판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오가산의 계곡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봄비가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계곡에는 상당한 양의 물이 흘렀다. 그는 그곳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게 하고 산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상주를 바라보다 보니 다시 분노가 치밀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고금제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만큼 분노의 크기도 컸다.
초절한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풍성보에서 끝장을 보고 말았을 것이었다.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도…….’
부서지도록 이를 악 물어봐도 터질 것 같은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좌소천! 한 번 이기고 한 번 졌을 뿐,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반드시 네놈의 심장을 꺼내 피를 마시리라!’
그때 뒤따라 올라온 은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주, 산양으로 가실 것입니까?”
공야황은 한참 동안 대답을 않았다.
은사도 더 묻지 않고 공야황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때다. 공야황이 오가산 정상의 검은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은사,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흠칫한 은사가 눈을 들고 대답했다.
“오륙백 정도 됩니다, 해주.”
“오륙백이라……. 그중 본 해의 사람들은?”
“사백 정도 됩니다.”
공야황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한 시진 후, 성한 사람만 데리고 먼저 출발한다. 하나 산양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오면 어디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던 공야황은 고개를 북쪽으로 돌렸다.
그의 입가에 핏빛 살소가 걸렸다.
“화산에 남은 자들이 얼마나 될 거라 보나?”
화산에 있던 대부분의 고수들이 이번 일에 투입되었다. 당연히 화산에 남은 자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었다.
더구나 좌소천이 영풍산장에 있던 고수들 중 최정예를 모조리 끌고 나온 상황이 아닌가.
공야황의 입가에 피어난 살소가 점점 짙어졌다.
“순우연도 지금쯤 움직였을 것이야. 놈들이 상주에 머물며 전력을 정비하는 동안, 우리는 영풍산장과 화산을 쓸어버린다.”
3
주인 없는 영풍산장을 차지한 천외천가는 날이 샌 후에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근거리에 연합세력과 무림맹의 군웅들이 모여 있다는 생각을 하니 신경만 곤두섰다.
그렇게 오시가 넘어갈 무렵, 화산을 염탐하던 자들로부터 자세한 정보가 전해졌다.
“연화봉 아래쪽에 모여 있다 하는데, 철저히 진세를 이루고 있어서 공격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가주.”
“그럼 이대로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묻는 순우연의 얼굴에 언뜻 짜증이 비친다.
순우기정은 곤혹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대답했다.
“저들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차라리 상주의 상황을 봐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조용히 있던 척발조가 별걸 다 걱정한다는 듯 말했다.
“이미 끝났을 거네. 단지 놈들의 피해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게 문제지.”
“그래도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야 합니다.”
순우기정을 바라보는 척발조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훗! 상주에는 해주님과 이사, 오암을 비롯해서 본 해의 정예 칠백이 모여 있네. 천가의 무사 삼백과 섬서에서 모집한 사람까지 합하면 근 천오백에 가깝지. 저들이 삼천에 이르는 숫자라 해도 상주를 어떻게 해본다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야.”
순우기정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척발조와 말씨름을 해가며 자신의 불안감을 말할 수는 없는 일. 순우기정은 불안감을 속으로만 삭였다.
‘곧 소식이 오겠지.’
그때 순우연이 물었다.
“곡에서 나온 사람들은 언제 도착하는가?”
“오늘 내로 도착할 것입니다.”
천선곡에 남은 사람은 칠백여 명. 순우연은 그들 중 아녀자와 노약자와 아이들 이백여 명과 경비를 설 최소한의 사람들만 남겨놓고 쓸 만한 무사들은 모조리 불러냈다.
개중에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남겨놓았던 일백의 천가호령과 스물두 명의 원로도 섞여 있었다.
숫자는 얼마 안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천외천가의 어떤 무력보다 강했다. 천해가 뒤통수를 칠 경우를 대비해서 남겨놓은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천선곡에 그들을 남겨놓는다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전쟁에서 지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천해와 암중다툼을 할 일도 없고, 천선곡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아, 그들이 오면… 상주의 일과 상관없이 화산을 친다.”
4
화창하던 하늘에 구름이 밀려들더니, 출발할 즈음에는 하늘이 완전히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검으로 콕 찌르면 깨진 독에서 물이 쏴아 쏟아지듯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날씨가 어떻든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맹에서 내놓은 전력은 사신당의 인원 삼백, 천무단원 오십, 그리고 무림맹을 돕기 위해 몰려온 군웅 중 백여 명이었다.
우경 진인은 내상을 입은데다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해서 풍성보에 남기로 했다.
거기에 목령대와 금강대의 인원 중 몸이 성한 사람 팔십 명이 더해졌다.
모두 일천이 조금 못되는 인원.
좌소천은 그들을 다섯으로 나누어 이동시켰다.
무림맹의 군웅들은 앞서 가는 제천신궁과 전마성의 무사들을 따라 연초록 들판을 달렸다.
모두가 무거운 표정들이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아침에만 해도 마주 보며 웃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한데 슬퍼할 시간도 없이 또 길을 떠나야만 했다.
“제기랄, 놈들을 다 쳐부수고 나면 사흘 정도 술독에 빠져 지내야겠어.”
“지미, 함께 빠지자고. 피 냄새 좀 씻어내게.”
비감을 떨치려는 듯 간간이 욕지거리가 섞인 너스레가 흘러나오고, 옆에서 뒤에서 킬킬대며 맞장구를 친다.
“크크크, 사흘 마셔서 되겠어? 한 보름은 줄창 마셔야지.”
“낄낄, 기왕이면 계집 있는 술집에서 마시자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그래도 웃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친구가, 사형제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지가 잘리고, 목이 잘리고, 심장이 터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도, 당시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에 급급했다.
자괴감에 목이 메어도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살기 위해 미친 듯이 적의 목을 치고, 가슴에 검을 꽂았다. 뿜어지는 피를 뒤집어쓰고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때만큼은 스스로 악마가 되기를 주저치 않았다.
아니, 어쩌면 겁에 질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피를 머금은 입을 달싹거리며 자신들을 바라보던 그 간절한 눈빛, 눈빛들.
적아가 따로 없었다. 눈을 감으면 그 눈빛이 바로 앞에 떠오를 것 같아서 눈을 감는 것조차 두렵기만 했다.
그제야 알았다. 자신들 역시 자신들이 혐오하는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은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마와 협이라는 게 결국 종잇장의 양쪽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먹물이 조금만 더 깊게 스며들면, 앞쪽에 쓴 글씨가 뒤쪽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가. 제천신궁과 전마성 무사들의 등을 바라보는 무림맹 군웅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다.
보라! 이렇게 함께 달리고 있지를 않은가!
무겁게만 보이던 그들의 표정도 조금 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