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2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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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208화
208화
4장 금선탈각(金蟬脫殼)
1
영풍산장도 서서히 이전의 활력을 되찾아갔다.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슬프지만, 언제까지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위남으로 천외천가 지부의 무사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 수가 사흘 사이 일천에 이른다. 기존에 있던 사람들까지 합해 모두 이천에 달하는 숫자다.
목적은 분명했다.
“놈들이 뭘 노리는 거라 생각하는가?”
사도철군의 질문에 공손양이 답했다.
“힘이 모아지면 놈들이 공격을 감행할 것입니다.”
“대책은 있나?”
공손양이 대답 대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묵묵히 앉아 있던 좌소천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생각해 놓은 게 있습니다만, 저희들만 움직여서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일단 무림맹 측의 의견을 들어보고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사도철군이 코웃음을 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흥! 도무지 무림맹 놈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저번 일만 해도 그렇지, 하다못해 지원무사를 보내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은가?”
모두가 그 생각을 했었다.
그토록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도, 그들은 기껏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그것만 조사해 갔다.
물론 낙남의 일로 인해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화산에 웅크리고 있는 인원 중 이삼백이라도 보냈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좌소천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감정에 치우쳐서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어설픈 무사 이삼백이 와봐야 작전에 혼란만 올 뿐이니까요.”
그때 밖에서 사인학의 목소리가 들렸다.
“군사, 무림맹의 제갈 군사께서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공손양이 밖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게.”
사인학이 방 안으로 들어와 공손양에게 서신을 건넸다.
공손양은 서신을 펼쳐 보고는, 곧 굳은 표정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화산에 있던 무림맹 무사들이 위가장으로 집결 중이라 합니다. 제갈 군사의 말로는 상주를 치기 위해서랍니다, 주군.”
사도철군이 탕! 탁자를 치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뭐야? 우리와 상의도 없이 상주을 친다고?”
“지금까지 낙남에 총 이천오백의 무사가 모였다 합니다.”
사람들의 눈이 좌소천을 향했다.
공손양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천오백의 무사가 모였다 해도 당장 상주를 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내일 오전 중에 칠 생각인가 봅니다.”
사도철군이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짜증내듯이 툭툭 말을 뱉어냈다.
“맹주 이 양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우리가 움직이면 위남의 천외천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직일 텐데……. 좋지 않을 때 무림맹이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문제네! 도와주러 갈 수도 없으니…….”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좌소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요.”
2
마기가 제거된 소영령은 단 사흘 만에 팔성의 내력을 되찾았다. 이대로라면 곧 십성의 내력을 모두 되찾을 수 있을 듯했다.
신녀가 힘을 되찾는다는 것. 그것은 비단 소영령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그간 알게 모르게 그녀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그녀의 회복을 반겼다.
벽여령에게 막강한 적이 나타났다며 은근히 눈치를 주었던 동천옹조차 그녀가 언제 완벽히 회복되는지 궁금해 할 정도였다.
한 사람의 고수가 아쉬운 시기. 연합세력에게는 천군만마였다.
그리고 천외천가에게는 영원히 잠든 줄 알았던 지옥사신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직 그녀의 존재가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이걸 써봐.”
좌소천이 얇은 뭔가를 내밀자 소영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예요?”
“인피면구. 면사를 쓰는 것보다 훨씬 자유로울 거다.”
소영령이 장난스럽게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제 얼굴이 그렇게 보기 싫어요?”
좌소천이 무뚝뚝하니 대답했다.
“아니, 남이 보면 닳을까 봐 그래.”
“에……? 풋.”
소영령이 발그레한 얼굴로 실소를 터뜨린다.
좌소천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후우, 무영자 어르신께 부탁해서 인피면구를 얻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군. 내가 봐도 이러니…….’
그때 소영령이 손에 들린 인피면구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근데 이걸 어떻게 쓰는 거예요?”
“내가 도와줄게.”
철저하게 변신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다. 남이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다 보니 강력한 접착 물질을 이용해 붙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얼굴에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되었다. 그러한 약물은 얼마든지 있었다.
좌소천은 면구에 꼼꼼히 약물을 바르고 소영령의 얼굴에 붙였다.
조금 주름진 곳은 삼매진화를 약하게 끌어올린 손바닥으로 쓸어내리자 판판하게 펴졌다.
진짜 살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붙여놓으니 언뜻 봐선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제 분만 칠하면, 어색한 부분은 물론 눈과 입과 코 등 구멍 난 부분의 경계마저 완벽히 가려지고 더욱 완벽해질 것이었다.
좌소천은 인피면구와 함께 가져온 분통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분은 네가 칠해라.”
“오빠가 해줘요.”
“내가 하면 못난이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면 해주겠다만.”
소영령이 입을 삐죽였다.
좌소천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게 싫었다. 면구를 쓰는 것도 조금은 불만이었다. 하물며 분을 잘못 칠해서 이상하게 보인다면 더 큰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못난이처럼 보이고 싶은 여인이 누가 있을까?
“됐어요. 그냥 내가 할게요.”
좌소천은 조용히 웃으며 소영령을 바라보았다.
주근깨가 많고 약간 누렇게 보이는 시골 처녀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쓸 터. 이 정도면 누구도 소영령이 신녀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 소영령이 동경을 보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툴툴거렸다.
“쳇, 이게 뭐예요? 주근깨가 너무 많잖아요?”
누가 저 여인을 보고 신녀라고 생각할까?
좌소천은 웃음을 참고 몸을 돌렸다.
“잠시 후에 다시 오마. 아, 그리고 너무 분을 진하게 칠하지 마라. 점이나 주근깨가 가려지면 인피면구를 쓴 이유가 없어지니까.”
입이 한 자는 튀어나온 소영령이 붓끝에 가득 묻혔던 분을 분통에 슬그머니 반 이상 털어냈다.
“쳇.”
소영령의 방을 나온 좌소천은 이자광, 홍려운과 함께 곧바로 후원의 구석진 곳을 찾아갔다.
“저깁니다, 주군.”
앞장서 걷던 홍려운이 작은 건물을 가리키는 사이, 성큼성큼 걸어간 이자광이 경비무사들에게 문을 열도록 했다.
문이 열리자 안쪽의 광경이 보였다.
창고를 개조한 건물 안은 허벅지만 한 통나무로 만든 임시 뇌옥이었다.
좌소천은 안으로 들어가 뇌옥 안쪽을 바라보았다.
순우무종이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얼굴이 반쪽으로 변한 그는 더 이상 오만함이 하늘을 찌를 것 같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말을 못합니다, 주군. 식사도 죽밖에 못 먹고 그나마 반은 토해냅니다. 의원은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합니다.”
이자광이 넌지시 순우무종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좌소천은 묵묵히 순우무종을 바라보다 담담히 말했다.
“순우연이 포기할 만하군. 저렇게 의지가 약하니 구해봐야 쓸모도 없다 생각했겠지.”
이자광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좌소천을 돌아다보았다.
“예? 순우연이 저자를 포기했단 말씀입니까?”
“아니라면 아비 된 자가 어찌 아들을 놔두고 유리한 싸움에서 되돌아섰겠소? 보나마나 아들을 구하는 것보다 피해를 줄이는 게 더 낫겠다 싶었겠지요. 아니면 둘째 아들이 있으니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든지.”
“음, 그렇군요.”
그때였다.
뇌옥 안의 순우무종이 꿈틀거렸다.
“으음…….”
“어? 저자가 정신을 차리나 본데요?”
홍려운이 눈을 크게 뜨고 뇌옥 앞으로 다가갔다.
좌소천의 말을 들은 것일까?
하지만 지금까지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던 순우무종이다. 거짓이 아닐까 싶어서 염불곡의 귀령으로 시험까지 해보지 않았던가.
어쩌면 단순히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에 반응했을지도 모르는 일.
좌소천은 물끄러미 순우무종을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갑시다. 이제 소용도 없는 자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예? 예, 주군.”
그가 이자광, 홍려운과 함께 막 건물을 나설 때였다.
“으으음……. 으…….”
순우무종이 또 신음을 흘렸다. 몸도 덜덜 떨렸다.
좌소천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처럼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끼이익!
문이 닫힘과 동시 좌소천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그어졌다.
‘순우무종, 너의 인내력만큼은 인정해 주지. 하지만 더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3
“수락하셨단 말이지요?”
순우연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척발조가 공야황의 뜻을 전했다.
“그렇다네. 무림맹 놈들이 낙남에 집결한다는 말을 듣고, 해주께서도 이번 기회에 무림맹의 세력을 무너뜨릴 생각이신 것 같네.”
순우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잘됐군요. 놈들이 낙남으로 갔다면, 화산에도 영풍산장을 지원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순우기정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저번의 일로 봐도, 화산에선 영풍산장에 있는 자들을 도울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더구나 낙남으로 이동했다면 더 그렇겠지요.”
“맞다. 아주 좋은 기회야. 기정, 가서 간부들을 소집하게.”
“예, 가주!”
4
좌소천은 영풍산장의 장주 화운정을 은밀히 만났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작전을 시행해도 상관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해야 더 확실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영풍산장의 식솔 이백여 명의 목숨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될 터,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영풍산장을 통째로 내놓고 자신들을 도와준 화운정이 아닌가. 그리 한다는 것은 믿음에 대한 배신이었다.
“꼭 그 방법밖에 없습니까?”
“무림맹이 움직였으니 위남의 적들이 오늘내일 사이에 공격해 올 것입니다. 지금으로선 그게 저희 쪽 희생을 줄이고,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후우,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화운정은 고심 끝에 좌소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제천신궁이 모든 걸 책임진다는 조건도 조건이지만, 어차피 연합세력이 떠나면 영풍산장도 끝장이다.
이판사판인 상황. 사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화운정을 만나고 온 좌소천은 곧바로 공손양과 사도철군을 비롯해서 장로들과 주요 간부들을 불러들였다.
이제 자신과 공손양이 세운 작전을 알리고 실행에 옮겨야 할 때인 것이다.
일각이 지나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였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역시나 북리환이었다. 그가 앉자 좌소천의 눈이 공손양을 향했다.
“군사, 구체적인 계획은 세웠소?”
“예, 주군!”
“말해보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공손양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영풍산장을 떠나 상주의 적을 칠 것입니다.”
갑작스런 말에 사도철군의 눈이 커졌다.
“상주의 적을 친다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누가 생각해도 뜬금없는 계획이 아닐 수 없었다.
공손양도 그 정도의 반응은 예상하고 있던 터라 곧바로 의문에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