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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02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은천검제 202화

은천검제

제202화

 

앉아서 암연의 기운을 쏟아내던 진무린은 불현듯 사당 앞에서 태상이 공간을 뛰어넘을 때 뿜어냈던 기운을 느꼈다.

혹시 그때처럼 강렬한 기운을 쏟아내면 통로가 열릴까.

몸을 일으킨 진무린은 어두운 하늘의 한 곳을 뚜렷하게 바라보았다.

“대사형?”

“밖의 기운이 또렷하게 전해진다.”

모려원은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다.

고개를 돌린 진무린은 먼저 느낀 바를 설명해주었다.

“사제는?”

“아직 운기 중이에요.”

진무린은 쉬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런 진무린의 표정을 보며 모려원은 곧바로 고민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대사형께서 공력으로 깨우시면 어떨까요?”

“사매는 처음부터 본문의 공부와 내 공력의 도움을 받아 묵룡심법을 깨우쳤지만, 사제는 세 가지 보물의 힘을 빌렸지. 만약 내 공력이 그 기운들과 충돌한다면 돌이키지 못할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언제 출구가 열릴지 모를 상태에서 저대로 두는 것도 문제이나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종무헌의 운기를 방해하는 것은 자칫 죽음으로 이끌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진무린은 답답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기운은 분명 연결되었는데 당장 달려들기는 곤란했다.

언제 눈앞의 공간이 열릴지 모른다.

또 언제 저 기운이 끊길지 지금으로써는 알 길이 없었다.

“장 노대가 방법을 찾은 걸까요?”

모려원의 질문을 들은 진무린은 어두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답을 하지 못했다.

확실치 않다.

너무 멀어서, 워낙 미약해서 뭐라 단언하기는 어려운데 어쩐지 장 노대의 기운이 끊긴 느낌이었다.

‘노대. 살아계셔야 한다고 그리 기운을 보내드린 것입니다. 문주로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노대가 살펴주셨던 어릴 적 진무린을 위해서 반드시 견뎌주십시오.’

어쩌면 헛된 바람일지 모를 생각을 전하며 진무린은 굳은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

 

정동추는 마교에서 교주 자리에 오를 만큼 숱한 암투를 거친 인물이었다.

‘사당을 부수는 것에 당황한다면!’

어깨를 얻어맞은 그는 곧장 몸을 비틀고는 단박에 장 노대가 가리켰던 담을 향해 내달렸다.

쉬익! 쉭! 퍽!

정동추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몸을 빼내는 정동추의 어깨를 또다시 때려낸 중년 남자가 담을 등지고 서서는 달려들지 못했다.

“담을 지키는 호위라도 된 모양이지?”

부으응! 부응!

마천강기를 손에 가득 올린 정동추는 담을 부술 것처럼 손을 연달아 뻗었다.

중년 남자는 분명 다급했다.

고작 담벼락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흥!”

코웃음을 터트린 정동추는 또다시 담벼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부응! 부으응!

중년 남자가 급하게 막아설 때였다.

마천강기를 가득 담은 정동추의 손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담을 향하던 그의 손이 뒤틀리며 삽시간에 중년 남자의 얼굴과 가슴을 향해 날았다.

네놈이 얼굴과 가슴을 방어한다면 나는 다시 손을 틀어 담을 부술 것이다.

담을 지키겠다고 그대로 있으면 얼굴을 부수고 심장을 터트려주마.

손을 뒤트는 그 수법에는 교묘한 의도마저 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중년 남자 역시 정동추의 얼굴과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함께 죽겠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정동추와 중년 남자는 동시에 상체를 뒤로 눕혀 얼굴로 날아드는 손을 피했고,

파아악!

서로의 심장을 노리던 왼손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쉴 새 없이 손을 뻗어내며 정동추와 중년 남자는 상대의 얼굴과 목, 명치, 심장을 노렸다.

어깨를 두 번이나 맞은 정동추가 약세였으나 담을 지켜야 하는 탓에 중년 남자 역시 우위를 점하지 않은 팽팽한 대결이었다.

벽계의 인물이 쏟아내는 기운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했고, 마천강기를 극성까지 끌어올려 악신의 형상이 된 정동추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머리칼이 완전히 하늘로 치솟은 정동추가 중년 남자의 손을 막아낸 직후였다.

크으응!

벽계의 기운과 극성까지 올라온 마천강기가 부딪치며 충돌의 여파로 부서진 사당의 잔해들이 날렸고, 담벼락이 흔들렸다.

중년 남자는 아예 함께 죽기로 작정한 게 분명했다.

쉬익! 쉭!

그렇게라도 담벼락을 지키겠다는 것처럼 방어를 도외시하며 정동추의 얼굴과 목을 노렸다.

부응! 크응! 붕! 쿠응!

부서진 사당의 잔해는 반대편 담 아래로 모두 쏠렸고, 정동추가 밀어놓았던 장 노대의 시신은 옆으로 쓰러져 충돌이 있을 때마다 흔들렸다.

쉭! 붕! 크으응!

극성으로 끌어올린 마천강기가 벽계의 인물과 충돌할 때마다 담벼락이 쉼 없이 흔들리더니, 마침내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진무린은 참담한 심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깥과 연결된 기운이 강해졌다가 다시 약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점점 더 높은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몰려오는 기운의 강도가 세지는데 중간마다 평온한 날의 바다처럼 기운이 뚝 끊기는 현상 역시 계속 이어졌다.

이러다가 한순간 통로가 열렸다가 다시 닫히면 영원히 기회는 없다.

선택해라.

모려원과 종무헌을 두고 나설 것인지, 아니면 셋 모두 이곳에 영원히 남을 것인지를.

어두운 하늘이 진무린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함께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죽음이든, 끔찍한 고통이든.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그러나 그 선택 이후에 은천문의 안위는 어쩔 것인가.

불길한 짐작대로 장 노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면 또 어쩔 것인가.

진무린이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쿠으응!

세상을 울리는 듯한 충돌음과 함께 종이의 한중간에 불이 붙어 번지는 것처럼 밤하늘에 다른 공간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대사형! 교주예요!”

모려원의 놀란 소리가 터졌다.

함께 보고 있어서 진무린 역시 알았다.

마천강기를 극성까지 끌어올려 머리가 하늘로 치솟은 정동추가 벽계의 인물을 맞아 악전고투하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확실했다.

저 기운을 통해 진무린은 바깥으로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모려원까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진무린의 기운을 느꼈을까?

“무얼 하느냐!”

눈이 붉게 물든 정동추가 손을 급히 뻗으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

쉭! 부응! 쉭! 붕! 쿠으응! 쿠응!

충돌이 터지며 공간은 조금 더 넓어졌다.

“대사형은 저곳을 통해 나가실 수 있는 거죠?”

그때 진무린의 뒤에서 모려원의 질문이 건너왔다.

그리고 질문이 끝났을 때는 공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쿠으응.

“사제 때문이라면 나가세요. 소매가 있을게요.”

고개를 돌린 진무린의 시선 앞에서 모려원은 전에 볼 수 없이 강한 표정이었다.

“대사형께서 본문의 문주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문주가 사사로운 정에 끌려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문도인 소매는 대사형에게 의지하지 못해요.”

“담이 결계로 보인다. 저 담이 무너지면 영원히 돌이키지 못할 수도 있어.”

쿠으으응! 쿠응!

“무얼 하냐고!”

커다란 충돌 뒤에 익숙한 고함이 들렸고, 이어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것처럼 정동추의 상체가 흔들렸다.

“가세요, 대사형. 가셔서 저들을 모조리 쓰러트려 주세요. 소매는 당당하게 나서시는 대사형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으로 꿋꿋하게 살 수 있어요.”

쿠응! 쿠으응!

“만약 소매 때문에 이곳에 남으신다면 죽을 때까지 원망할 거예요. 문도인 소매는 문주의 명에 따라야 하겠지요. 하지만 존경하는 마음만큼은 강요하실 수 없어요. 그러니 가세요, 대사형. 가서 본문을 당당하게 세워주세요.”

강한 의지를 보이려 애썼으나 모려원은 눈가가 붉어지는 것만은 감추지 못했다.

진무린의 표정을 살피던 모려원의 눈이 흔들렸다.

“혹시 소매도 함께 나갈 수 있는 건가요?”

“자신할 수는 없지만, 시도해 볼 수는 있다.”

답을 들은 모려원의 입술 끝이 짧게 흔들렸다.

“사제는 소매가 돌볼게요.”

그 짧디짧은 끝에서 모려원은 단호하게 의사를 밝혔다.

쿠드등!

충돌 소리가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밤하늘 전체를 모두 차지할 정도로 공간이 넓게 펼쳐졌다.

시선을 돌렸던 진무린은 한쪽에 쓰러져 흔들리는 장 노대의 모습을 보았다.

숨이 끊어진 지 한참 된 모양으로 낯빛이 퍼렇게 변했는데 입가에는 흙가루가 진하게 묻었다.

“장 노대마저 절명했어요. 대사형께서 안 가시면 본문은 문을 열 기회조차 없이 영원히 강호와 멀어져요.”

쿠으응!

충돌음이 이전으로 돌아가며 공간은 삽시간에 하늘 구석만큼이나 작아졌다.

한계에 다다랐는지 정동추는 고함조차 지르지 못한 채 연신 중년 남자의 손을 피하기에 바빴다.

더는 지켜보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왈칵 달려든 모려원이 진무린의 양 볼을 감싸고는 급하게 입을 맞추었다.

쿠응!

그 뒤에 모려원은 입술을 떼고 진무린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대사형! 소매는 이것으로 됐어요! 언제고 오실 거라고 믿고 본문의 제자다운 모습으로 기다릴게요.”

두 걸음을 물러난 모려원이 왼손에 든 검을 살짝 치켜들었다. 더 시간을 끈다면 스스로 목을 가르겠다는 강렬한 의지였다.

“사매.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온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세상 모두가 주저앉는 일이 있어도 사매와 사제를 데리러 오겠다.”

눈시울이 붉어진 모려원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쿠응!

이제는 보름달만큼이나 좁아진 공간을 향해 진무린은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퍼러럭!

그런 뒤에 한 마리 새처럼 몸을 솟구쳤다.

빛살처럼 날아간 진무린의 모습이 담기는가 싶은 직후에 공간은 어두운 하늘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모려원은 제 모습을 찾은 어두운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턱에 걸렸다가 처마에 걸린 빗물처럼 속절없이 떨어져 내렸는데도 모려원은 하염없이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

 

장 노대가 그토록 바라던 여명이었다.

세상이 어슴푸레 밝아질 때 정동추는 다시금 피를 머금었다.

“퉤! 어찌 된 영문인지 강호에만 나서면 피를 머금는군.”

담을 지켜낸 벽계의 인물 또한 가슴과 어깨에 부상이 있기는 했으나 정동추에 비해서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제 목을 내놓아라.”

“본교는 그렇게 내놓는 법이 없으니 어디 가져가 보시오.”

극성까지 끌어올렸던 마천강기를 모두 소진한 탓에 정동추의 머리칼은 겨우 어깨 위로 들린 정도였다.

“은천문 것들을 위해 나서는 것이 아니었어. 분명 기운이 느껴졌는데 그 공간을 뛰어넘지 못하다니! 세상 강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아직 할 말이 남았더냐?”

벽계의 남자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말끔하게 쓸려나간 바닥 위를 달린 그의 기운이 정동추의 옷깃과 머리칼을 흔들었다.

저런 기운을 아직 지니고 있다니.

맞붙는 순간 정동추는 견디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본교에 말을 전해주시겠소?”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기운을 끌어올린 중년 남자가 눈 끝에 완벽하게 비웃음을 담았다.

“본교에 전해주시오. 절대로 은천문에 속한 것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돕지도 말고, 그들과 섞일 짓은 소면 한 젓가락도…….”

말을 하던 정동추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한 얼굴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시던 말씀의 끝이 궁금합니다.”

얕은수를 쓰는가 싶어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졌던 중년 남자가 옆으로 펄쩍 뛰어 몸을 피했다.

그 직후에 뒤의 담에서 진무린이 걸어 나왔다.

“흐허허허! 흐하하하하! 흐하하하하!”

뭐가 그리 통쾌한지는 몰라도 정동추의 웃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진무린은 먼저 정동추의 곁으로 걸어가 손을 잡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웃음을 멈춘 정동추는 대꾸하지 못했다.

웅혼한 기운이 들어오는데 하나라도 놓칠까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정동추를 살핀 진무린은 곧장 옆으로 쓰러진 장 노대를 향해 걸었다.

중년 남자가 눈치를 살피며 담장을 보았을 때였다.

쉐에에에엑!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고, 정동추가 돌아보았을 때 진무린은 장 노대를 향해 몸을 숙이고 있었다.

“곱게 죽고 싶다면 얌전히 순서를 기다려. 원한다면 네놈을 갈가리 찢은 뒤에도 숨이 붙어 있게 해주마.”

털썩.

발목이 잘려 넘어지는 중년 남자를 보며 정동추는 아예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이십 년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 됐구나. 절대 불가능한 일이 됐어.”

그리고는 그만 알아듣는 혼잣말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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