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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검제 201화

무료소설 은천검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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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은천검제 201화

은천검제

제201화

 

황종관의 도가 머리를 스친 직후에 중년 여인의 모습에 광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도와 검을 휘두른 동료들이 피를 뿌리며 죽어 가는 대결이었다.

광기를 보인다고 해서 물러날 사람들은 없어서 중년 여인을 향해 달려드는 가신들과 백호단원들의 모습은 커다란 사마귀를 상대로 끝없이 몰려드는 개미와 비슷했다.

목이 부러지고, 가슴을 얻어맞아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단원 뒤에서 가신들이 눈에 독기를 품은 채 달려들었고, 그 중간에서 피를 머금은 황종관이 매섭게 도를 휘둘렀다.

“이익!”

황종관은 특유의 거대한 기운을 쉼 없이 뿜어냈다.

그나마 백호단원과 가신들이 살아남은 것도 황종관이 뿜어내는 기운 덕분이라 할 정도인데 그만큼 내기의 소모가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쉐에에엑!

도를 휘두른 황종관은 왼손을 뻗어 백호단원 한 명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쉬익! 콱!

하마터면 머리가 부서질 뻔한 백호단원을 구한 대신 그 빈 곳에 들이닥친 중년 여인의 손이 황종관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쉑! 쉐엑! 쉑! 쉐에엑!

가신과 백호단원들이 득달같이 검과 도를 휘둘러 중년 여인을 돌아서게 했으나 이미 소매와 살점이 뚝 떨어진 황종관의 왼쪽 팔뚝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도와 검 사이를 신묘하게 파고드는 중년 여인은 이제 완벽한 귀신의 형상이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머리칼이 허공에 날렸고, 어깨와 팔뚝이 갈라져 팔을 휘두를 때마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황종관의 도법은 왼손을 자주 사용했다.

화려하게 뒤튼 도의 등을 왼손으로 밀쳐 방향을 트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왼팔을 뜯긴 이후로 힘을 제대로 싣지 못했다.

쉬익! 쉭! 쉬이익!

중년 여인은 방어를 도외시하며 밀려나는 황종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쉑! 쉑! 쉐에엑!

사마귀의 앞발을 막기 위해 달려드는 개미 떼처럼 가신들과 백호단원이 몸을 던졌으나 중년 여인은 그들을 외면하다시피 하며 오로지 황종관만을 노렸다.

“가주! 피하십시오!”

쉑! 쉐엑!

달려든 가신을 중년 여인이 양팔로 휘저어 밀쳐냈다.

가신 따위를 죽이는 데 시간을 들이느니 도주할지 모를 황종관을 먼저 끝내겠다는 강렬한 의지였다.

“맹주!”

아까 뒷덜미를 잡혀 목숨을 구한 백호단원이 손아귀를 물어뜯을 것처럼 달려들었다가 중년 여인의 손짓에 멀찍이 날아갔다.

쉬익! 쉐에엑! 카앙!

날아든 손을 도로 때려낸 황종관이 뒤로 훌쩍 몸을 날렸고, 중년 여인이 거의 동시에 앞으로 내달렸다.

가신들과 백호단원들 틈을 빠져나온 여인이 황종관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가주!”

처절한 가신의 음성이 터질 때 뒤로 반걸음을 물러났던 황종관이 손목으로 도를 비틀었다.

쉐에에엑! 쉐엑! 쉐에에에엑!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도법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하게 중년 여인이 급히 몸을 비틀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황종관은 방향을 짐작한 사람처럼 도를 뿌렸다.

최후를 짐작했을까.

쉬이이익!

피하는 것을 포기한 것처럼 여인이 손을 뻗었고,

쉐엑! 쉐에에엑! 쉐엑!

그와 동시에 허공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연속해서 울었다.

움찔하며 멈춰선 가신들과 백호단원들이 바라보는 앞이었다.

황종관과 중년 여인은 두 걸음쯤 떨어져 있었다.

“푸.”

먼저 움직인 것은 끈적하게 달라붙는 피를 뱉어낸 황종관이었다.

털썩.

그 직후에 중년 여인이 무릎을 바닥에 꺾으며 무너졌으나 곧바로 쓰러지지는 않은 채 버텼다.

“구주의 진중탈구검이라니…….” 

흐트러져 얼굴을 가린 머리칼 사이에서 빛나는 여인의 눈에는 아직 독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너희는 모른다.”

마지막 순간에도 여인은 황종관을 비웃고 싶은 눈치였다. 

숨겨둔 계획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그녀의 눈에 가득했다.

“모르는 것은 천천히 알아갈 테니 내 가신과 본맹의 소중한 단원들을 죽인 죗값을 먼저 받으시오.”

황종관은 여인의 입을 막은 뒤에 늘어트렸던 도를 옆으로 비틀었다.

휘릭! 쉐에에엑!

손목을 틀어 커다란 도를 움직였던 황종관이 단숨에 중년 여인의 목을 갈랐다.

털썩.

여인의 몸이라고 하기에는 커다란 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여인의 머리가 데굴데굴 구르는 것으로 힘겨운 싸움은 끝났다.

“쓰러진 가신들과 단원들을 살펴. 살릴 수만 있다면 지닌 것을 아끼지 마라.”

“예!”

명령을 받은 가신들과 단원들이 바쁘게 움직일 때, 부상이 가벼운 가신 둘이 황종관을 부축했다.

바닥에 앉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황종관의 부상은 심했다.

“고작 한 명을 상대로 이 모양이라니. 구대문파에게 전해달라며 얻은 진중탈구검이 아니었다면 몰살당할 뻔했구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신들과 대원들을 바라보며 황종관은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

 

진무린이 암연의 기운을 쏟아내는 동안은 벽계의 인물이 장 노대를 발견하기 어렵다.

사당 밖의 숨 막히는 상황을 알 길 없을 텐데, 어쩐 일인지 진무린은 암연의 기운을 줄기차게 쏟아내서 사당 주변에 뿌리고 있었다.

장 노대는 태어나서 가장 간절하게 여명을 기다렸다.

성공한다는 장담은 못 하나 그렇더라도 그때가 이곳을 빠져나갈 확률이 가장 높은 까닭이었다.

어둠은 짙어가고, 숨소리마저 죽인 장 노대가 할 것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끝없이 뿜어지는 암연의 기운 속에서 장 노대는 진무린을 떠올렸다.

‘문주께서 이 늙은이를 지켜주시는구려.’

장 노대가 진무린의 기운에 감복할 때였다.

뜨끔.

그의 목덜미에서 따끔한 통증이 피어났다.

이렇게 몸을 숨길 때면 벌레에게 당하는 일은 자주 있었다.

그런데 이번 통증은 예사롭지 않았다.

분명 따끔한 정도였는데 숨 한 번 쉬고 나자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피어났고, 이어 비수로 후비는 듯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바뀌었다.

‘오독오공?’

움직이면 들킨다.

숨소리조차 크게 내도 안 된다.

통증보다 독을 지닌 지네에게 물렸다는 사실이 장 노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장 노대가 겨우 놀란 가슴과 거칠어지려는 숨소리를 눌렀을 때였다.

턱과 볼을 타고 올라온 지네가 귀를 파고들었다.

‘안 돼! 제발!’

뜨끔. 뜨금.

간절한 바람을 외면한 모양으로 장 노대의 귓속에서 연달아 통증이 피어났다.

처음 물렸던 목에서는 쇠꼬챙이로 후비는 듯한 통증이 몰려오는데 귓속에 갇힌 지네는 갑갑한 모양으로 온몸을 비틀며 또다시 귓속을 물어뜯었다.

여명은 아직 한 시진쯤 남았는데 장 노대는 그때까지 살아 있기를 바라기 어려웠다. 더구나 당장 숨소리마저 거칠어지고 있어서 벽계의 인물에게 발각되는 것을 피할 방법도 없었다.

의식이 혼미해진 장 노대가 억지로 눈을 부릅떴을 때였다.

전중방의 바깥에서 몸을 날린 이가 곧바로 사당의 지붕에 내려섰다.

여기까지인가.

진무린은 아직 암연의 기운을 뿜어주며 애쓰고 있는데 문도이자 암연의 수장이라는 자가 이리 허무하게 은천문을 영원히 은거하게 만든단 말인가.

‘천지신명이시여. 이 몸을 갈기갈기 갈라도 좋으니 부디 본문을 열 방법을 주소서.’

장 노대가 애절한 심정으로 기원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암연의 기운인데? 누구냐? 본교의 앞에서 발각된 경험이 있는데도 이리 조심하지 못해서야 목숨을 부지할 수나 있겠냐?”

상상하지 못했던 음성이 지붕 위에서 들렸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는 하늘이 장 노대를 가엽게 여겨 준 마지막 기회였다.

“교주시오?”

본교의 앞에서 발각된 경험을 말할 사람은 교주 정동추밖에 없다. 

틀렸다 해도 다른 선택이 장 노대에게는 없었다.

퍼럭.

짧은소리와 함께 장 노대의 앞으로 정동추가 떨어져 내렸다.

“벽계의 인물이 숨어 있어 나서지 못했소. 이것을 진 문주께 전해주시오.”

장 노대는 급히 품에 지녔던 기물을 꺼냈다.

그리고는 왼손의 손바닥을 입에 물었다.

으드득.

핏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왼손으로 기물을 문지른 장 노대가 묘한 기운을 뻗친 뒤였다.

“교주.”

기물을 내밀던 장 노대가 얼굴과 몸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정동추는 먼저 기물을 받았다.

“본문을 열 수 있도록 진법을 기물에 옮겼으니 부디 문주께 전해주시오. 그리고 지금 사당과 담벼락을 부숴주시오. 그리하면 문주가 나오실지 모르…오.”

마지막 남은 기력을 쥐어짜 뜻을 전한 장 노대는 사당의 벽에 기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오독오공에게 당했구나. 사천이 아니고는 해독할 방법이 없으니 살 가망은 없다. 어떻게 하겠나? 한 시진을 고통에 몸부림칠 텐가, 아니면 내가 숨을 끊어줄까.”

“부디 문주께…….”

차가운 눈을 한 정동추가 왼손을 들어 장 노대의 정수리를 덮었다.

“잘 가게.”

이미 심하게 흔들리는 장 노대의 입에서 하얀 거품이 피어났고, 눈이 뒤집혀 흰자위만 가득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끝이었다.

한순간 움찔했던 장 노대가 고통을 털어낸 것처럼 늘어지더니 사당의 담에 기댄 모습으로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정동추는 주저앉은 장 노대를 잠시 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아직 암연의 기운은 없어지지 않았다.

“사당과 뒤편 담을 부수면 나올 거라 했었지? 그렇다면 지금도 느껴지는 암연의 기운이 진 문주의 것이란 의미인데?”

사당과 그 뒤편의 담을 돌아보며 정동추는 비릿하게 웃었다.

“은천문에 속한 것들은 문주나 수하들이나 교주인 나를 마치 종 부리듯 하는군. 이걸 전해주고 사당과 담을 부숴라?”

말을 마친 정동추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계의 인물이 숨어 있다고 들었는데?”

정동추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담장 밖에서 사람의 형상이 불쑥 안으로 날아들었다.

“늙은이가 나설 때를 기다렸더니 교주 덕분에 숨은 사유까지 알지 않았나. 그 물건을 이리 내놓게.”

“흐하하하하!”

벽계의 인물 앞에서 정동추는 참으로 통쾌하게 웃었다.

“이것 보라지! 본교의 위상이 얼마나 바닥에 떨어졌으면 은천문의 수하는 물론이고, 벽계의 무명잡졸까지 교주인 나를 우습게 대한단 말인가!”

“이놈!”

“무명잡졸이라니 기분이 안 좋으신가? 그렇다면 이름을 말씀해 보시오.”

중년 남자는 볼을 씰룩일 뿐 입을 열지 못했다.

“흥! 이름도 없는 잡졸이 감히!”

후아아아악.

정동추가 마천강기를 뿜어내자 삽시간에 바닥에 있던 흙먼지가 바깥으로 피어났고, 소매가 부풀었으며, 그의 머리칼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전에 당한 것이 있어 절치부심 오늘을 기다렸다. 본교와 나의 무서움을 분명하게 보여주마!”

정동추가 내뿜는 기운이 어찌나 강렬한지 주저앉은 장 노대의 머리칼과 소매가 흔들릴 정도였다.

정동추는 진무린과 함께 태상을 상대했었고, 비록 죽을 만큼 부상을 입기는 했으나 벽계의 인물을 죽여본 경험이 있었다.

벽계의 무공을 겪어본 터이고, 최상이라는 태상의 무공마저 눈에 담은 터라 두려울 것도 없었다.

기운을 끌어올린 중년 남자가 정동추를 잡아먹을 듯 노려볼 때였다.

쉬이익!

삽시간에 몸을 날린 정동추가 오른손으로 사당의 담벼락을 커다랗게 때렸다.

콰자자작!

제대로 쌓지 못한 담벼락이 거칠게 부서지는 것을 본 중년 남자가 곧바로 몸을 날렸다.

부웅! 쉭! 쉬익! 부응!

두 사람 모두 무기를 들지 않았다.

손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독특한 소리가 울려 나왔는데 확실히 정동추는 중년 남자에게 쉽게 밀리지 않았다.

쉬익! 쉭!

중년 남자가 뻗어낸 손짓을 피해 사당 쪽으로 몸을 뺀 정동추는 커다랗게 양팔을 휘둘렀다.

콰작! 콰자자작!

보란 듯이 아직 서 있는 사당을 부순 정동추에게 중년 남자가 또다시 급하게 달려들었다.

쉬익! 붕! 콰작! 콰자작!

중년 남자의 공격을 피하는 건지, 원래 사당을 부수려고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정동추는 사당의 탁자를 부쉈고, 이어 남은 것들을 발로 밟았다.

휘익! 툭!

자세를 낮춘 정동추는 중년 남자의 발을 걷어차는 동작의 뒤에서 무너진 잔재에 깔린 장 노대의 시신을 전중방의 안쪽으로 밀었다.

벽계의 인물을 상대로 그 정도는 너무 여유를 부린 것일까.

쉬익! 퍼억! 쉭! 붕! 부응!

이어진 손에 어깨를 얻어맞은 정동추가 휘청하며 뒤로 물러났고, 중년 남자가 매섭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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