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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57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0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57화

 

257화

 

 

 

 

 

 

하늘이 무너져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는 위지천백으로서도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앎으로써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천자무서를 익혔느냐?”

 

“익혔지. 그리고 다른 무공도.”

 

독고무령은 무심히 말하며 검을 사선으로 들어올렸다.

 

“스승과 같던 사람을, 친구라 불렀던 사람을 배신하고 은혜를 피로 갚은 그대는 천자무서를 얻었어도 익힐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욕망에 물든 짐승이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크하하하! 헛소리 말아라! 네놈은 욕망이 없단 말이냐? 암천회를 만든 것이 정녕 복수 때문이더냐! 내가 본 네놈은 나와 다를 게 없는 놈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나 역시 욕망이 있다. 그러나 사람임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것이 그대와 내가 다른 점이지.”

 

“흥! 그 따위 말로는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 모든 것은 힘이 결정할 터! 네놈은 절대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위지천백은 이를 악물고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독고무령이 백장명과 고은선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그의 야망을 멈추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독고무령만 죽이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일.

 

다행히 전세도 제왕성에 유리하게 흐르고 있었다.

 

“안 됐지만, 오늘 죽는 사람은 네가 될 것이다, 독고무령!”

 

위지천백은 두 눈에서 살광을 흘리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두 손뿐만이 아니라 전신에서 홍광이 스멀거리며 피어났다.

 

그때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소리가 관제산을 뒤흔들었다.

 

두두두두두…….

 

격전장의 소란마저 뚫고 들리는 말발굽소리.

 

아직 거리가 먼 것 같은데도 대지가 흔들린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적어도 수백 마리가 달려오는 소리다.

 

거기다 누군가의 외침이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비켜라! 황군의 앞을 막는 자는 누구든 용서치 않을 것이다!”

 

“도지휘사의 행차시다! 강호의 무리들은 비켜서라!”

 

위지천백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밤이 늦어서 아침에나 올 줄 알았거늘.’

 

그들이 아니어도 승리는 제왕성의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군의 출현은 그에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큼 더 쉽게 상황을 끝낼 수 있을 테니까. 피해를 덜 보면서.

 

“우후후후, 독고무령! 하늘은 결국 나를 선택한 것 같구나!”

 

독고무령은 입을 꾹 다문 채 위지천백만 바라보았다. 그것이 마치 패배에 직면한 적의 수장처럼 보인 듯했다.

 

위지천백은 한껏 자신감이 생긴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용서한다 해도,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독고무령은 몰라도, 천룡방과 삼성맹은 황군을 상대로 싸울 수 없다. 나라를 상대로 싸웠다가는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테니까.

 

이제 싸움은 끝난 거나 같았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독고무령도 검을 사선으로 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태천일심의 기운을 끊임없이 휘돌리며, 수천제마구겁무 중 여덟 번째 춤과 아홉 번째 춤을 떠올렸다.

 

아직 두 가지 춤은 벽에 막혀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위지천백과의 격전 덕분에 마지막 벽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두 사람의 대치가 길어지는 사이, 말발굽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두두두두두!

 

관제산을 흔드는 말발굽소리에 난전이 벌어지던 전장도 조금씩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외곽에서 싸우는 일반무사들만 손을 멈추고 대치하고 있을 뿐, 중앙에서 벌어지는 고수들 간의 접전은 더욱더 치열해졌다. 황군이 들이닥쳐 싸움을 방해하기 전에 상대방을 끝장내겠다는 듯.

 

특히 진사혁과 영호진광, 주호성과 우덕청과 제왕수호대는 상대를 쓰러뜨리기 전에는 싸움을 끝내지 않을 듯했다.

 

진사혁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 영호진광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주호성과 우덕청은 구겨진 체면을 세우기 위해 싸웠다.

 

의외라면, 밀천객이 북리중현과 싸우다 말고 갑자기 몸을 빼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북리중현은 밀천객을 쫓아가지 않았다. 그를 쫓아가는 것보다 비세에 처한 상황을 바꾸는 것이 더 급했다.

 

“이놈들! 여기도 있다!”

 

그는 각진 대사와 허운 진인과 황보광을 몰아붙이고 있는 자들을 향해 쌍장을 쳐냈다.

 

인환과 제왕수호대 두 사람은 뒤에서 밀려드는 가공할 기운에 대경하며 옆으로 훌쩍 물러났다.

 

상대는 천룡무존 북리중현이다. 혼자서 맞서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 인환은 그런 어리석음을 범할 생각이 없었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북리중현을 상대하도록 한다!”

 

그가 소리치자 제왕수호대 두 사람도 북리중현을 향해 검을 돌렸다.

 

덕분에 각진 대사와 허운 진인, 황보광의 숨통이 터졌다.

 

그들은 북리중현에게 세 사람을 맡기고, 위기에 처한 동료들을 돕기 위해 신형을 날렸다.

 

바로 그때, 백여 명이 동쪽 전각을 넘어 연무장으로 날아 내렸다. 

 

제일 먼저 땅으로 내려선 자는 청의를 입은 청년이었는데, 그는 대동으로 떠난 장소천이었다.

 

장소천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대뜸 독고무령을 향해 물었다.

 

“무령, 너무 늦지 않았나 모르겠군! 유 소저는 무사한가?”

 

마침내 장소천이 왔다.

 

처음으로 독고무령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유하령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다니. 정말 못 말릴 친구였다.

 

“걱정 말고, 일단 저곳부터 도와주게.”

 

“알았네! 사부님들, 제가 왔습니다! 이제 놈들은 제가 맡을 테니 뒤로 물러나시지요!”

 

장소천은 쉬지 않고 입을 놀리며 오로가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의 뒤를 따라 백여 명의 무사들이 움직였다. 일원궁의 무사들이었다.

 

‘설득했나보군. 아니면 힘으로 눌렀든지.’

 

언뜻 관초악이 보였다. 어두운 표정. 아무래도 후자인 듯했다.

 

어쨌든 장소천과 일원궁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독고무령은 안도하며 위지천백을 향해 물었다.

 

“위지천백, 아직도 그대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나?”

 

“후후후후, 저놈들 정도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리석은 놈.”

 

‘글쎄, 소천이 누군지 알면 그런 말을 못할 걸?’

 

독고무령이 속으로 비웃으며 무심한 눈으로 위지천백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진사혁과 영호진광이 싸우는 곳에서 굉음과 신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콰광!

 

“크윽!”

 

신음을 흘리며 뒤로 튕겨진 영호진광은 도를 늘어뜨린 채 진사혁을 노려보았다.

 

풀어헤쳐진 머리, 혈의로 변해버린 백의. 악귀처럼 일그러진 영호진광의 얼굴에 불신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진사혁의 곤세에 심맥이 끊기고, 내장의 핏줄이 모조리 터져나간 상태. 푸들거리며 입을 여는데, 말을 할 때마다 덩어리진 핏물이 쏟아졌다.

 

진사혁도 온전치는 않았지만, 영호진광에 비하면 큰 부상이랄 것도 없었다. 

 

그는 입가의 핏물을 쓱 닦아내고 득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우리 집에 왜 쳐들어와?”

 

“크, 크, 크, 빌어먹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영호진광은 자조의 웃음을 흘리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컴컴한 밤하늘이 회색빛으로 뿌옇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치고는 더럽게 음산하군.’

 

땡그랑.

 

백령천도가 영호진광의 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곧 그의 몸이 서서히 앞으로 쓰러졌다.

 

털썩.

 

사대천왕 중 한 사람으로 천하제일도라 불리던 도왕 영호진광이, 훗날 천하제일곤으로 불릴 진사혁에 의해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위지천백은 영호진광이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쉽긴 해도 실력이 딸려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게 강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이 아니던가.

 

그보다는 밀천객이 사라졌다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어디로 간 걸까? 한 사람이 아쉽거늘.

 

그는 의혹을 품은 채 독고무령을 주시했다.

 

북리중현을 상대하던 그가 사라지고, 영호진광이 죽음으로써 우세가 반감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세가 뒤집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은근히 짜증이 났다.

 

‘어떻게 되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놈을 죽이기 위해 무리하다 다치면 나만 손해, 조급해 할 것 없어.’

 

그는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가까스로 다독였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생각과 점점 다르게 흘렀다.

 

장소천이 관초악을 비롯한 일원궁의 무사들과 함께 격전장으로 뛰어들자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나 장소천의 활약은 위지천백의 부동심을 거세게 흔들었다.

 

‘저놈이 누군데……!’

 

아마 황군이 제왕성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독고무령을 공격했을지 몰랐다.

 

 

 

* * *

 

 

 

두두두두두…….

 

반쯤 부서진 채 활짝 열린 정문을 통해 오백 필의 군마가 성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이 반쯤 들어왔을 때, 선두에서 달려오던 자가 격전장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싸움을 멈추어라!” 

 

“맞서는 자는 황명에 의거, 능지처참할 것이다!”

 

상대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던 양편의 고수들도 더 이상은 무신경할 수가 없었다.

 

황군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그들 오백이 제아무리 황군의 정예라 해도 강호고수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황군’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에게 맞서면 역도가 되는 것이다.

 

 

 

싸움이 멈춘 대연무장은 너무나 처참해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곳곳에 널려 있는 시신의 숫자가 족히 삼백은 되었다. 사지가 잘린 채 신음을 내지르며 바닥을 기는 자도 그 정도는 되었다.

 

대연무장의 바닥이 검게 물든 건 결코 어둠 때문만이 아니었다.

 

코를 찌르는 비릿한 피 냄새.

 

땅도, 하늘도 피로 물들었다.

 

마상에 있는 장수들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연무장을 쓸어보았다. 그들은 지옥과도 같은 연무장의 광경을 보고도 별반 놀라지 않았다.

 

전장을 누비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 이 정도의 일은 처참한 것도 아니었다.

 

삼백 필의 말이 대연무장의 한쪽을 꽉 메운 직후였다.

 

또각. 또각. 또각.

 

삼백의 기마 중 다섯 필이 앞으로 나왔다.

 

말 등에 앉아 있는 자들은 모두 삼사십 대의 장수들이었다.

 

십여 장을 앞으로 나온 그들은 거의 동시에 말에서 내리더니, 위지천백과 독고무령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위지천백이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찍 왔군. 내가 바로 위지천백이다!”

 

그는 장수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독고무령을 향해 말했다.

 

“독고무령, 황군에 대항할 생각은 아니겠지?”

 

독고무령이 무심한 눈빛으로 받아쳤다.

 

“내가 묻고 싶군.”

 

“훗, 어리석은 놈. 이들이 왜 왔는지 아느냐?”

 

“나라를 세울 욕심으로 그대가 군의 수장들을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역시 알고 있었구나. 참으로 대단한 놈이야!”

 

“비록 원수지만, 당신도 정말 대단하군. 제왕성의 주인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나라를 세우려 하다니.”

 

“으하하하하! 황궁은 주지육림에 빠져 백성을 돌보지 아니하고, 민생을 살펴야 할 관리들은 권력다툼에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있다. 그러니 나, 무림왕 위지천백이 어찌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서 검을 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위지천백의 웅혼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관제산을 흔들었다.

 

그의 말에는 누가 들어도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의 정대함이 담겨 있었다.

 

위지천백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압도당한 듯 입을 다물고 있자, 어깨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누구든 상관없다! 오늘 우리와 싸운 사람들에게도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무사들이여! 모두 들고 일어나 백성들을 저버린 대명의 부패한 권력자들을 몰아내자! 나 위지천백이, 배고픔이 없고, 힘없는 자가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것이다! 모두 나를 따라 창검을 높이 들어라!”

 

제왕성의 무사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성주님을 모시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

 

“황궁을 갈아엎자!”

 

“이 땅에 우리만의 제국을 건설하자!”

 

“성주님 만세! 무림왕 만세!”

 

“무림왕 전하를 따르자!”

 

충! 충! 충!

 

광란할 것처럼 외쳐대는 제왕성 무사들에 반해 암천회와 천룡방, 삼성맹의 무사들은 입을 다문 채 곤혹한 표정을 지었다.

 

대부분이 진실한 내막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이 듣기에는 위지천백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금 황제가 병상에 누운 이후, 환관들의 득세로 나라가 워낙 피폐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뒤집어엎고 싶어도 힘이 없는 게 원수였는데, 위지천백이 백성들을 위해 나서겠다고 하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정말 웃기는군!”

 

독고무령이 한마디로 위지천백의 원대한(?) 뜻을 밟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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