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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55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9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55화

 

255화

 

 

 

 

 

 

제9장 천하(天下)의 운명(運命)을 걸고

 

 

 

 

 

위지천백은 천라금쇄진이 무너진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거지? 저놈들 중에 기문진을 알고 있는 자가 있었나?’

 

천라금쇄진으로 암천회와 천룡방을 괴멸시킬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반시진은 잡아둘 수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단 일각 만에 진이 무너졌다.

 

독고무령과 북리중현이 아무리 강호에 적수가 몇 없는 절대고수라 해도, 기문진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이토록 빨리 진을 파훼할 수 없었다.

 

당금 강호에서 기문진에 대해 해박한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 그중에서도 천라금쇄진을 파훼할 정도의 지식을 갖춘 사람은 다섯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다섯 사람 중 산서에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독고무령과 함께 제왕성에 들어온 사람 중에도 없었다.

 

‘할 수 없지.’

 

이미 진은 무너진 상황. 위지천백은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진의 힘을 이용하는 것보다 힘으로 눌러주는 게 나중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독고무령의 목소리가 관제산에 메아리치며 울렸다.

 

“위지천백! 비겁하게 수하들만 보내지 말고 직접 나서라! 나를 상대할 자신이 없는가?”

 

위지천백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반문했다.

 

“하하하하! 독고무령, 너는 네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구나! 왜 내가 직접 너를 상대해야만 한단 말이더냐?”

 

독고무령은 위지천백을 직시한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위지천백이니까!”

 

애매모호한 대답.

 

위지천백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무슨 말이냐?”

 

“그대와 나는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

 

“운명? 훗,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너는, 내가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죽여야 될 놈이니까.”

 

“천하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맺어진 악연일 뿐!”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처럼 음울한 말투.

 

위지천백은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독고무령을 노려보았다.

 

분노인지, 호승심인지, 호기심인지 모를 기이한 감정이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좋아, 네놈을 죽이기 전에 반드시 그 이유를 들어봐야겠군.”

 

느릿하니 입을 연 그는 턱을 치켜들고 북리중현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죽으며 너무 억울하지 않나? 돌아서면 영광이 있을 것이다, 북리중현. 어떤가?”

 

북리중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위지천백! 미안하지만 나는 그대처럼 위선자로 살 사람은 못되는 것 같다!”

 

명백한 거절.

 

위지천백의 두 눈에서 홍광이 번뜩였다. 분노의 광채였다.

 

“그럼 더 시간을 끌 이유가 없겠군.”

 

그가 나직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날이 새기 전에 모두 정리한다. 놈들을 죽여라!”

 

순간, 위지천백의 좌우에 늘어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도왕 영호진광과 제천각주 단리황을 비롯한 장로들, 신무전주 북궁휘, 집법전주 노태릉을 비롯한 제왕성의 최고위급 간부 그리고 제왕밀위까지.

 

위지천백의 곁에는 밀천객을 비롯한 삼비객만이 남은 상태였다.

 

그들이 움직이자 독고무령 일행을 에워싸고 있던 무사들은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절대고수들의 무위가 어떤 것인지, 단 일각 만에 이백여 명의 죽음을 보며 처절하게 깨달은 그들이었다.

 

옆에 있다가 눈먼 벼락에 맞고 싶지 않았다.

 

암천회와 천룡방, 산서의 명숙들도 독고무령과 북리중현 곁으로 몰려들었다.

 

중상을 당한 사람들은 가운데에 두고, 부상이 심한 사람들은 그나마 강적이 없는 뒤쪽을 경계했다.

 

코를 찌르는 비릿한 피 냄새.

 

살을 에는 긴장감에 부상자들은 신음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제왕성 고수들의 공격이 시작된 것은 사위가 죽음과 같은 침묵으로 잠겨든 순간이었다.

 

땅을 박차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옷자락 날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둠을 가르는 검광, 도광!

 

산악을 허물어뜨릴 것 같은 기운의 흐름소리만이 대기를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쏴아아아!

 

쉬이이익!

 

고오오오오!

 

뒤이어 당금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전설처럼 전해질 혈전의 시작이었다.

 

“도왕 영호진광! 이리 와라! 당신은 나와 싸우자!”

 

곤을 힘껏 움켜쥔 진사혁이 영호진광을 향해 달려들었다.

 

영호진광도 진사혁을 알아보고 마다하지 않았다.

 

진사혁이 자신의 상대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그도 아는 것이다.

 

그 사이 진원명은 단리황과 마주치고, 북천삼괴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 상대를 맞이했다.

 

개개인이 제왕성의 고수들에 비해 크게 밀리진 않았다.

 

다만 문제는, 부상자로 인해서 숫자에서 밀린다는 점이었다.

 

원진이 깨지면 당장 상황이 악화될 것을 불을 보듯 뻔한 일. 암천회와 천룡방의 사람들은 혼신의 힘을 다 끌어내 적을 상대했다.

 

독고무령과 북리중현은 그 상황을 알고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위지천백과 삼비객이 아직 움직이지 않은 상태다.

 

두 사람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들. 한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자신들이 움직이면 저들도 움직일 테니까.

 

저들이 움직이면, 자신들은 살지 몰라도 일행의 반 수 이상은 죽는다고 봐야 했다. 그건 최악이었다.

 

‘곧 그들이 올 것이오. 그때까지만 버티시오.’

 

독고무령은 피 마르는 초조함을 억누르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지금쯤은 그가 기다리는 사람들이 와야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늦다. 조금만 더 늦어지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거늘.

 

하지만 당장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위지천백과 삼비객을 못 움직이게 하고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제왕성의 다른 사람들도 두 사람에게는 달려들지 않았다.

 

고요한 것 같지만, 오 장거리를 둔 여섯 사람 사이에는 절대의 기운이 흘렀다.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애꿎은 목숨만 잃을 뿐.

 

그들 여섯의 묘한 대치는 반의 반각가량 이어졌다. 마치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이 남의 일인 양 서로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무형의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 격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와중에 부상을 당한 자가 속출했다.

 

상대적으로 무공이 떨어지는 기호정과 전학은 이미 온몸이 피로 뒤덮인 상태였다. 감가기와 고일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무종과 전유곤, 사공화정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죽었을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순간!

 

위지천백을 노려보던 독고무령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 기광이 반짝였다.

 

‘왔군!’

 

연무장을 통째로 둘러싸고 있는 제왕성의 무사들 뒤쪽에서 소란이 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모두 물러가시오!”

 

“비켜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우리도 알아야겠다!”

 

“알 필요 없소! 당신들은 숙소로 다시 돌아가 아침까지 나오지 마시오!”

 

“우리도 알아야겠다니까! 왜 제왕성이 손님으로 온 사람들을 핍박한단 말인가?”

 

“글쎄, 당신들은…….” 

 

“좀 전에 이상한 소문을 들었소! 제왕성주가 대명을 반역하고 나라를 세운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그건……!”

 

“아미타불! 반역을 하다니! 제왕성주는 확실한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이오!”

 

“무량수불! 빈도 역시 사실을 알아야겠소이다! 위지 성주는 사실을 말해주시오!”

 

황보광이 삼성맹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은 외곽을 흔들며 안쪽으로 진입했다. 

 

일반 무사들로서는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상대는 삼성맹의 장로와 황보세가의 사람들. 자칫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황보광과 삼성맹의 사람들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들어서자마자 전장으로 달려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삼성맹의 움직임에 위지천백의 눈빛이 흔들렸다.

 

일순간, 삼성맹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발견한 그의 눈이 커졌다.

 

삼성맹 사람들 사이에 다섯 노인이 섞여 있었다.

 

암천오로, 한때 제왕오로라 불리던 노인들이.

 

“오로! 그대들이 어떻게……?”

 

전장으로 다가온 막위지가 독고무령을 향해 말했다.

 

“회주! 동쪽은 모두 해결했네!”

 

오로가 따로 행동한 것은 외곽의 무사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제왕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제왕성에 미리 들어온 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중앙으로 집중된 사이 삼성맹과 함께 제왕성 동쪽을 정리한 것이다. 암천회와 천룡방의 무사들이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치우기 위해서.

 

위지천백은 뭔가를 짐작한 듯 커진 눈에서 살광을 번뜩였다.

 

“오로! 단순히 떠난 걸로 알았거늘, 이제 보니 반역을 할 마음으로 떠난 거였구나!” 

 

손양이 대소를 터트리며 소리쳤다.

 

“으하하하! 위지천백! 누가 반역을 했단 말이냐? 반역은 바로 네놈이 하지 않았느냐? 이십오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황보광이 소리쳤다.

 

“영빈각과 진평원에 있는 사람들 역시 마음을 돌렸소! 이제 이곳만 해결하면 되오!”

 

그 사이 삼성맹과 황보세가의 사람들은 제왕성의 고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위지천백의 두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보아하니 삼성맹과 황보세가도 암천회와 한편인 것처럼 보였다. 여태까지 자신을 기만했다는 말.

 

“네놈들이 감히!”

 

노성을 내지른 위지천백의 전신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홍광이 뿜어져 나왔다.

 

“오냐! 죽고 싶다면 모두 죽여주마!”

 

삼비객이 무기를 뽑아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들이 움직이자 북리중현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저들은 내가 상대하지.”

 

동시에 위지천백의 명령이 제왕성을 뒤흔들었다.

 

“제왕성의 무사들은 모두 적을 공격하라!”

 

연무장을 둘러싸고 있는 제왕성의 무사들만도 칠팔백에 이른다. 지금까지는 여유가 있어 그들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삼성맹과 오로가 가세한 이상 마음 놓을 상황이 아니었다.

 

위지천백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던 제왕성의 무사들이 일제히 중앙을 향해 좁혀들었다.

 

비록 중앙에서 싸우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약하긴 해도, 그들 역시 제왕성의 정예무사들이다.

 

칠팔백 명이면 삼성맹과 황보세가의 고수들을 쓰러뜨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숫자였다.

 

거기다 곧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나머지 무사들도 집결할 터. 암천회든, 천룡방이든, 삼성맹이든 이곳에서만큼은 그저 독 안에 든 쥐일 뿐이었다.

 

위지천백은 자신감에 찬 웅혼한 목소리로 중앙을 향해 소리쳤다.

 

“본좌에 반하는 자는 누구도 용서치 않는다! 오늘 네놈들을 죽여 만천하에 제왕성의 위대함을 보여줄 것이니라!”

 

독고무령이 마주 소리쳤다.

 

“위지천백! 네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으하하하하! 누가 감히 본좌의 뜻을 막는단 말이냐!”

 

“내가 막을 것이다! 나, 독고무령이!”

 

“어리석은 놈! 사마귀가 마차바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때로는 튀어나온 작은 돌이 마차바퀴의 앞을 막기도 하지! 너는 결코 네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위지천백!”

 

“그리도 자신 있다면 어디 한번 막아봐라!”

 

위지천백은 미끄러지듯 이 장을 나아가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독고무령은 백리환을 죽이고, 영호진광과 밀천객을 이긴 절대고수다.

 

천하에서 자신과 비견할 수 있는 세 사람 중 하나.

 

하기에 그는 처음부터 천금무원기를 펼쳤다. 천금무원기라면 충분히 기선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후우우우웅!

 

일순간, 독고무령과의 사이가 진공상태로 변한 듯 어둠이 뒤틀렸다.

 

무쇠도 찌그러뜨릴 것 같은 가공할 압력!

 

이를 악문 독고무령은 마주 손을 들어 내쳤다. 그의 두 손에서 어둠을 밝히는 밝은 빛이 쏟아졌다.

 

수천제마구겁무 중 여섯 번째, 만양(滿陽)의 일식이었다.

 

찰나였다!

 

콰앙!

 

두 사람 사이의 삼 장 간격이 터져나가며, 방원 사 장 안쪽에 진기의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휘말리면 죽는다! 피해!”

 

나름 고수라 자처하는 자들조차 가공할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대경실색하며 급급히 물러났다.

 

위지천백은 자신만만하게 펼쳐낸 일장을 독고무령이 손쉽게 막아내자 안색이 대변했다. 

 

“본좌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강하구나.”

 

“그게 천벽(天壁)의 무공인가 보군!” 

 

생각지도 못한 말에 위지천백의 눈빛이 파르르 흔들렸다.

 

“네놈이 어떻게……?”

 

바로 그때였다. 두 사람이 지붕 위에서 날아들었다.

 

“조금 늦었네!”

 

“클클클, 등후양이란 놈이 제법 질기더군. 하마터면 놈의 검에 팔을 하나 잃을 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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