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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53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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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253화

 

253화

 

 

 

 

 

 

제8장 천라금쇄진(天羅禁鎖陣)

 

 

 

 

 

밤이 깊었는데도 제왕전의 황촛불은 더욱 강하게 타올랐다.

 

제왕전에는 위지천백만이 아니라, 제왕성의 모든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심지어는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까지.

 

“아무래도 그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전하.”

 

능효는 영빈원의 상황을 보고하고 위지천백의 말을 기다렸다.

 

위지천백은 눈살을 찌푸리며 태사의의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그 두 늙은이들이 독고무령을 찾아가다니……. 지금도 그곳에 있느냐?”

 

“예, 전하.”

 

능효의 대답에 위지천백의 눈이 한쪽을 향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밀천객과 백의, 흑의를 입은 두 명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삼비객 중 두 사람, 인객 인환과 지살객이었다.

 

위지천백이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왜 그를 만나러 갔다고 보는가?”

 

지살객이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주호성은 장사꾼입니다. 아마 양다리를 걸치기 위해서 갔을 거라 사료됩니다.”

 

“우덕청은?”

 

“그자는 단순한 구경꾼에 불과하지요. 아마 주호성 때문에 갔을 뿐,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들이 독고무령 쪽에 붙었을 확률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입니다. 말 몇 마디로는 그들을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순하면서도 확신에 찬 대답이다.

 

지살객은 공노명과 함께 모든 계획을 입안한 자. 위지천백은 그의 판단을 믿었다.

 

설령 판단이 잘못되었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큰 틀에서 움직여야 할 때다. 방해가 되면 제거하면 그뿐.

 

“좋아, 더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어차피 끌어들일 수 없다면 미리 제거하는 게 깨끗하겠지.”

 

위지천백은 마음을 결정하고 능효에게 물었다.

 

“현재 그들의 상황은?”

 

“영빈원과 진평원에 나누어져 있사온데,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사옵니다.”

 

“북리중현에게선 답이 오지 않았느냐?”

 

“생각해 보겠다고만 하고는 아직 확답을 주지 않고 있사옵니다.”

 

“그래?”

 

‘상황이 흐르는 걸 보고서 결정을 내리겠다는 건가? 너무 소심하군.’

 

북리중현이 자신의 뜻에 따라준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답을 줄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상황을 만들어주면 돌아서겠지.’

 

그렇게 생각한 위지천백은 일단 북리중현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독고무령은 그리 만만하게 볼 놈이 아니다. 놈이 자신 있게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한 계획이 있다는 말이겠지. 빈틈을 보이지 말고 철저히 옭아매야 할 것이야.”

 

“놈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하늘의 그물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걱정 마소서.”

 

“하긴…….”

 

천라금쇄진이 아홉 겹으로 펼쳐지면 천라지망이 형성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절대고수들이 사이사이 끼어들면, 독고무령이 제아무리 천하를 농락할 재주가 있어도 빠져나갈 수 없을 터였다.

 

‘후후후후, 어리석은 놈, 죽더라도 후회하지 마라. 어차피 천하의 주인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니까.’

 

위지천백은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 막히는 정적.

 

제왕성의 모든 간부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그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내일이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그 전에 놈들을 처리하고 새로운 태양을 맞이할 것이다. 모두 준비하고 명을 기다리도록.”

 

 

 

* * *

 

 

 

사경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

 

영빈원에 있던 암천회와 천룡방의 사람들이 모두 독고무령의 방으로 모였다. 주호성과 우덕청은 제향원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이자 한무종이 말했다.

 

“영빈원을 중심으로 방원 오십여 장 안에 오백이 넘는 무사들이 모여 있는데, 철저히 삼인일조로 움직이며 거미줄처럼 영빈원을 감싸고 있습니다.”

 

독고무령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단순히 감시하기 위한 인원치고는 너무 많다.

 

그때 운양을 대신해 잡다한 일을 맡은 양우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진세가 펼쳐진 것 같습니다, 회주.”

 

독고무령이 탁자를 가리키며 한무종에게 물었다.

 

“그들의 위치를 이곳에 대충 그려보시오.”

 

한무종은 탁자의 한가운데에 동그라미를 그린 후 주위에 점을 찍었다.

 

“여기가 영빈원이라면, 놈들은 여기, 여기, 여기…… 이런 식으로…….”

 

한무종의 손가락을 쳐다보던 양우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진세가 분명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면, 팔문금쇄진을 변형시킨 진세 같습니다.”

 

독고무령의 눈이 양우천을 향했다.

 

“파훼할 수 있겠소?”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상대가 펼친 진세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니 뭐라 말하기가…….”

 

양우천이 자신 없는 말투로 말하자, 독고무령은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기문진에 대해 잘 아시는 분 없습니까?”

 

사람들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북리중현도, 진원명도 기문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이 나섰다.

 

“허허허, 내가 조금 아는데…….”

 

그를 바라본 사람들은 곧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돌렸다. 말을 한 사람이 치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맞아, 저 미친놈이 기문진은 좀 알걸?”

 

“킁, 저게 미치긴 했어도, 머릿속에 든 것은 많은 놈이지.”

 

독고무령은 삼불곡에 펼쳐져 있던 진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진을 설치한 사람이 바로 치선이 아니었던가?

 

비록 간단한 진이었지만, 그러한 진을 펼치는 것도 기문진에 대해 잘 알지 않고는 어림없는 일. 독고무령은 일단 치선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럼 선공께선 밖에 펼쳐진 진이 어떤 진인지 먼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진의 형태를 확인해야 파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치선이 정말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조금이나마 믿는 사람은 독고무령과 귀도, 마불에 불과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오히려 불안감만 더해졌다.

 

진을 파훼한다고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거 아냐? 그런 마음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마땅한 방법이 없는 이상은 치선에게 맡기는 수밖에.

 

그런데 치선이 말했다.

 

“허허허, 밖에 펼쳐진 것은 천라금쇄진이다. 저놈들도 제법이란 말이야, 삼백 년 전에 사라진 것을 어떻게 알아낸 거지?”

 

“······!”

 

갑자기 방 안이 조용해졌다. 옷자락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석상처럼 굳은 사람들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치선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만 빼고.

 

“흥! 제법인데? 언제 그걸 알아냈지?”

 

“킁, 그거 무서운 진이냐?”

 

치선은 ‘뭐 그 정도야!’하는 표정으로 담담히 대답했다.

 

“술을 구하러 몰래 나갔다가 봤지. 무서운 진이냐고? 아암, 아주 무서운 진이지. 잘못 걸리면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빠져나가지 못해. 진세가 상대의 공력을 무력화시키거든. 허허허허.”

 

무거운 침묵이 깔린 방 안에 나직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진세의 무서움을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웃으며 말하는 치선이다. 듣는 사람들조차 남의 일처럼 생각될 정도다.

 

치선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그렇게 무서운 진이라면 말하면서 왜 웃지?

 

파훼할 자신이 있다는 걸까? 아니면, 겁주기 위해 장난으로 하는 말일까?

 

그때 마불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가볍게 말했다.

 

“후우, 다행이군. 네가 없었으면 골치 아팠을 텐데. 그럼 어디 천라금쇄인가 뭔가 하는 진을 깰 수 있는 방법을 말해봐. 어떻게 해야 하지?”

 

치선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천라금쇄진을 깨? 그게 어떤 진인데…….”

 

말을 길게 끄는 치선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옆집 훈장 같던 그의 입에서 쌍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제기랄! 이거 큰일 났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갇혔잖아?”

 

이제야 그 무서운 진세가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자각한 듯했다.

 

환장할 일이었다.

 

“그럼, 진을 깰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독고무령이 물으며 치선을 노려보았다.

 

고개를 쏙 집어넣은 치선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데……. 뭐 무령이도 있고, 여기 북리 꼬마, 아니 북리 방주도 있고…….”

 

북리중현은 눈을 치켜떴지만 차마 발작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치선의 입에서 진을 깰 수 있는 방법부터 들어야 했다.

 

그때 치선이 품속에서 커다란 주머니를 꺼내며 말했다.

 

“그보다 일단은 이 약을 한 알씩 먹어.”

 

독고무령은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 상황에 장난을 하다니.

 

“선공 어르신…….”

 

하지만 치선은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래봐야 집어넣은 머리를 쑥 내민 정도였지만.

 

“차를 마신 사람은 모두 먹어야 돼. 그래야 싸울 수 있거든.”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양우천이 물었다.

 

“설마…… 제왕성이 차에 약이라도 탔단 말입니까?”

 

“어.”

 

“.....”

 

너무나 태연한 대답. 사람들은 얼이 빠진 채 치선을 노려보았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러나 치선은 사람들의 그런 눈빛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너무 걱정 마. 극독은 아니니까. 그냥 힘을 좀 빼는 약일 뿐이야.”

 

당연히 극독은 아닐 게 분명했다. 극독이었다면 지금쯤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 아닌가? 아니면 미리 알았든지.

 

독고무령은 급히 운기를 해보았다. 별 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무령이는 괜찮을 걸? 내가 준 약을 워낙 많이 먹어서 어지간한 약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거야.”

 

독고무령은 내심 안도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꾸짖듯 말했다.

 

“왜 그걸 이제야 말씀하시는 겁니까?”

 

“미리 말했으면 약을 먼저 먹었을 거 아냐? 그럼, 안 되지. 싸우다가 설사하면 큰일 나게?”

 

“그럼 지금 복용하면……?”

 

“아침까지는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먹어.”

 

그때 뒤에서 상관연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소, 회주. 나도 모르는 사이, 내공이 삼 할 정도 약화되었소.”

 

몇 사람이 동조하듯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외다.”

 

“으음, 정말이었군.”

 

치선이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럼 내가 거짓말하는 줄 알아? 어서 먹으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갖다 주고.”

 

독고무령은 문득 궁금해졌다.

 

패해서 죽는다면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길 경우 아침이 되면…….

 

 

 

* * *

 

 

 

이 각 후, 암천회와 천룡방 사람들이 모두 마당으로 나왔다.

 

신마벌의 사람들을 비롯해 영빈원에 머물던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었다.

 

개중에는 삼성맹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독고무령과 한편이라는 것을 제왕성 측에서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적절히 이용하면 암중화살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터. 그들에게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독고무령은 걸음을 옮기며 황보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계획대로 우리가 나간 뒤 싸움이 벌어지면 움직이시오.>

 

<알겠소이다.>

 

<그리고…… 유 소저를 부탁하겠소.>

 

<최선을 다해 지키겠소.>

 

<지금 밖에는 진이 펼쳐져 있소. 방법이 있긴 한데, 확신은 할 수 없는 상태요.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게 흘러가면 즉시 사람들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하시오.>

 

황보광은 대답 대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무령은 눈을 돌려서 유하령을 쳐다보았다.

 

<유 소저, 무슨 일이 있어도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오. 당신이 다치면…… 내 친구가 슬퍼할지 모르니까 말이오.>

 

장소천을 위해 다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중간의 머뭇거림이 묘한 의미로 다가온다.

 

유하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전음으로 답했다.

 

<내 걱정 말고 당신이나 조심하세요.>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할 게요. 내가 다치면, 당신이 마음아파할지 모르니까요.’

 

독고무령은 묵묵히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유하령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자신 역시 유하령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은 두 여인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만도 벅찼다. 한 여인만 택할 수 없다는 것에 미안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유하령은 맺어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자신의 손으로 유하령의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어쩌면 유하령도 그걸 알기에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는 것일지 몰랐다.

 

‘내 친구 소천이도 괜찮은 사람이라오.’

 

독고무령은 화톳불 저 너머를 바라보며 걸음을 떼었다.

 

그때 유하령의 전음이 귓전으로 스며들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도 편안한 마음이셨을 거예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말아요.>

 

독고무령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전유곤을 향해 말했다.

 

“신호를 올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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