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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52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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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암천제 252화

 

252화

 

 

 

 

 

 

노인은 창문에 낀 몸을 억지로 빼내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독고무령은 그를 보며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노인에게서 능히 북리중현과 비교할 만한 거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천하에서 거대한 호박처럼 생긴 절대고수는 오직 한 사람뿐.

 

금황 주호성.

 

‘제향원에 서너 명의 절대고수가 머물고 있다더니, 주호성도 그중 한 사람이었군.’

 

그런데 주호성이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온 것일까? 그것도 시험까지 해가면서?

 

그때 밖에서 한무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주,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별일 아니니 걱정 말고 쉬시오.”

 

독고무령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한무종은 두 번 다시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한무종을 안심시킨 독고무령은 담담히 웃으며 주호성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주호성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살이 많이 빠져서 충분히 통과할 줄 알았는데…….”

 

살이 빠진 게 저 정도란 말인가?

 

그럼 살이 쪘을 때는 얼마나 더 뚱뚱했을까?

 

독고무령은 더욱 짙게 웃으며 주호성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금황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일단 좀 앉고 보세.”

 

주호성은 뒤뚱거리며 독고무령 앞으로 다가오더니 의자를 빼내 엉덩이를 걸쳤다. 비록 반밖에 걸쳐지지 않았지만.

 

독고무령은 그의 앞에 찻잔을 밀어 놓고 찻주전자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러고는 찻물이 데워진 다음에야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을 채웠다.

 

주호성은 덩치와 다르게 찻잔을 홀짝거리며 천천히 비웠다.

 

그가 입을 연 것은 잔이 완전히 비워진 후였다.

 

“오후에 위지천백을 만났다네.”

 

그는 그 말만 하고, 칼자국처럼 가는 눈으로 독고무령을 빤히 쳐다보았다.

 

독고무령은 할 말이 있으면 마저 해보라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호성이 가느다란 눈을 두어 번 깜박이더니, 졌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젊은 사람이 꽤나 묵직하군. 내가 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말씀해보시지요.”

 

하기 싫으면 말고. 꼭 그런 투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히 말해야 한다는 것처럼도 들리고.

 

주호성은 별 희한한 놈 본다는 듯 고개를 모로 꼬았다.

 

커다란 호박이 꼭지가 끊어져서 밑으로 뚝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주호성은 꼭지가 떨어질 것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나직이 말했다.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 나는 장사꾼이거든.”

 

독고무령은 서두르지 않고 그의 말이 계속되길 기다렸다.

 

“사실 제왕성은 큰 먹잇감이라네. 거래를 틀 수 있다면 적잖은 이득이지. 사실 그게 아니었다면 낙양에서 거래를 하다말고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야.”

 

“거래는 잘 되었습니까?”

 

“이야기를 나누긴 했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네.”

 

“그런데 왜 저를 시험하면서까지 만나려고 하신 겁니까?”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해도 절대 손해 볼 거래가 아니라 생각했지. 해서 내일 아침에 만나면 거래를 해볼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네. 웬 줄 아나?”

 

“저 때문입니까?”

 

“맞아. 자네 때문이야. 내가 봤을 때, 자넨 제왕성에 충분히 위협이 될 사람이거든. 다시 말해 자네가 나타남으로써 내가 거래를 하면 손해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는 거지.”

 

순간이었다. 칼자국처럼 가늘어 감은 것처럼 보이는 주호성의 눈에서 서릿발 같은 눈빛이 반짝였다.

 

은은한 황금색이 일렁이는 눈빛!

 

기(氣)만 실을 수 있다면 상대의 목을 단숨에 잘라버릴 것처럼 예리한 눈빛이었다.

 

독고무령의 무심한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상하군요.”

 

“뭐가 말인가?”

 

“오래 전 선친께 금안마존공(金眼魔尊功)이라는 희대의 괴이한 무공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지요. 삼백 년 전 금안마신이라는 마도의 절대고수가 창안했다고 하는데, 그 무공을 만든 본인 외에는 누구도 익히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주호성의 눈빛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독고무령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걸 느끼고 마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주 노선배의 눈빛을 보니 갑자기 그 무공이 떠오르지 뭡니까?”

 

주호성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커험, 식견이 제법이군.” 

 

“그럼 정말 금안마존공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네.”

 

“금안마존공을 익히면 눈동자에 은은한 금광이 어려 있다고 하던데, 주 노선배님은…….”

 

독고무령이 말을 길게 끌며 주호성의 눈을 직시했다.

 

주호성의 눈은 워낙 가는데다가, 눈두덩의 살과 속눈썹으로 가려져 있어서 눈동자를 볼 수가 없었다.

 

그때 주호성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래봐야 칼로 호박에 흠집을 내고 살짝 벌려본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눈에 어려 있는 은은한 황금빛이 어렴풋이 보였다.

 

“정말이었군요. 지난 삼백 년 간 아무도 익히지 못한 걸 익히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호들갑을 떨지 않고, 무심한 표정에서 눈만 크게 뜨며 칭찬을 하니 더 진실처럼 느껴진다.

 

주호성은 작은 입술을 비틀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 하. 뭐 그 정도야…….”

 

“그러고 보니, 눈이 원래 작은 것은 아니었나 보군요. 혹시 금안마존공을 감추기 위해서 억지로 눈을 가늘게 뜨신 거 아니었습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눈을 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모두 주호성의 무공내력을 알아챌 테니까.

 

그런데 주호성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작아. 조금 전처럼 뜨려면 힘 좀 줘야 하지. 눈두덩이 두꺼워서 말이야…….”

 

독고무령은 갑자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눌러 참고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조금 전에 손해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응? 아, 그거?”

 

주호성은 독고무령의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게…… 어…… 뭐 원래 손해 볼 여지가 있으면 거래를 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럼 그 거래, 저와 하지요.”

 

주호성이 움찔하며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와? 어떤 거래인지도 모르면서?”

 

“빈손으로 돌아가면 그것도 결국 손해 보는 일인데,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잖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

 

독고무령은 대충 얼버무리는 주호성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눌한 말투. 천진한 표정. 독고무령은 주호성의 그런 겉모습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

 

금황 주호성은 단순하게 물건만 거래하는 장사꾼이 아니었다. 때로는 사람도 거래하고 문파를 통째로 거래하기도 했다.

 

종남파의 장문인 정광자가 장난으로 종남파를 팔아달라고 했다가 진짜 팔릴 뻔했던 일은 지금도 강호의 호사가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금황이 팔 수 없는 물건은 세상에 없다. 구매자가 살 수 없는 물건도 없고. 가격이 비싸다는 게 문제일 뿐.

 

그것이 강호에 알려진 금황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금황과의 약속을 어기면, 가문이든 문파든 일 년 안에 멸문 당한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고.

 

어쨌든 금황과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반대 상황이면 그만큼 힘들어질 테고. 그것이 어떤 거래든.

 

‘다행이군. 큰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모를 뻔했어.’

 

안 이상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 독고무령은 금황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뭔가 결정을 내기로 작정했다.

 

거래를 하든, 아니면…… 죽이든. 위지천백과 손을 잡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주호성을 바라보며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저와 거래를 하면,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의례적인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손해 볼 일은 없다지 않는가 말이다.

 

주호성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한, 이해타산이 오가는 거래에서 ‘절대’라는 건 없다. 

 

그 말을 하는 놈은 대부분이 거래의 ‘거’ 자도 모르는 초보들뿐이다. 아니면, 남을 등쳐먹는 사기꾼이든지.

 

저놈은 초보일까, 아니면 사기꾼일까?

 

주호성은 나름대로 독고무령을 저울질하며 머리를 굴렸다.

 

그때 독고무령이 주호성의 가슴을 망치로 치듯이 말했다.

 

“위지천백과 거래를 하면 역도로 몰릴 겁니다. 그래도 좋다면 그와 거래를 하십시오.”

 

역도!

 

주호성이 실눈을 깜박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미미한 떨림이었지만.

 

“무슨…… 말이지? 무림왕이 왜 갑자기 역도가 돼?”

 

“그 일에 대해선 거래가 이루어지면 말씀드리지요.”

 

“말을 해줘야 거래를 하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거래를 하지 않을 사람에게 말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요합니다. 이해하십시오.”

 

기막힌 요리를 맛만 보게 하고는 요리가 든 그릇을 감춘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

 

주호성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거래를 하자고 할 수도 없고…….

 

“정말…… 말해주지 않을 건가?”

 

“안 됩니다.”

 

“안 된다고? 지금 나를 놀리겠다는 건가?”

 

주호성의 전신에서 무거운 기운이 스멀거리며 흘러나왔다.

 

‘헹, 어디 네 맘대로 되는가 보자!’

 

무형의 그 기운은 순식간에 일 장 반경을 감싸며 독고무령마저 둘러쌌다.

 

독고무령이 손을 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겁니다.”

 

순간, 불빛이 출렁이며 허공이 이지러지고, 주호성이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밀려났다.

 

주호성은 안간힘으로 버텨보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몸은 의자와 함께 석 자가량 밀려난 다음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주호성은 자신이 당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 자신이 날린 주판알을 힘들이지 않고 받아내는 걸 보고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내공에서도 자신을 앞설 정도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는 턱살을 잘게 떨며 입술을 달싹였다.

 

“이,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

 

그때 창문 쪽에서 나직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낄낄낄, 꼴좋다. 세상 우습게보며 천방지축 나대더니, 꼬마에게 혼나는구나.”

 

주호성은 벌게진 얼굴로 창문을 노려보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우덕청이 창틀에 앉아 있었다.

 

“뭐 처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따라온 거냐?”

 

“내 발로 내 맘대로 간다는데, 네놈이 뭔 상관이냐? 여기는 네 방도 아니잖아?”

 

독고무령은 이미 또 한 사람의 절대고수가 창문 밖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기에 놀라지도 않고 두 사람의 말다툼에 끼어들었다.

 

“그만 내려오시죠. 사람들이 몰려올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덕청은 훌쩍 몸을 날리더니 의자를 하나 차지했다.

 

독고무령은 우덕청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주호성과 이놈저놈 한다. 그의 신분이 주호성 아래가 아니라는 말. 더구나 내재된 기운 역시 주호성 못지않다.

 

문득, 우덕청의 팔목에 걸린 굵은 동환이 보였다. 그리고 곧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광한마종(狂恨魔宗) 우덕청?’

 

고작 서른의 나이에 구마 중 한 사람으로 꼽혔던 절대고수.

 

신마벌의 주인인 벽라천마(碧羅天魔), 전마궁의 주인인 십지마존(十指魔尊)과 함께 당금 마도의 살아있는 전설이 바로 광한마종 우덕청이다.

 

독고무령은 새삼스런 눈으로 우덕청을 바라보았다.

 

“혹시 광한마종 우 노선배가 아니신지요?”

 

우쭐한 표정. 우덕청의 턱 끝이 살짝 올라갔다.

 

“젊은 놈의 눈썰미가 제법이군.”

 

“미처 몰랐군요. 우 노선배께서도 이곳에 와 계시다니…….”

 

“그냥 구경 왔을 뿐이다. 위지천백이 무림왕이 되었다고 해서.”

 

“주 노선배님이야 하실 말씀이 있어 왔다 치고, 우 노선배께서는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건지 모르겠군요.”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주호성이 도둑놈처럼 몰래 방을 나가더니 영빈원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따라왔을 뿐.

 

하지만 독고무령에게 주호성이 밀린 걸 본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네가 암천회의 회주인 독고무령, 맞지?”

 

“그렇습니다.”

 

“암천회는 제왕성과 적이라고 들었는데, 왜 위험을 자초하고 이곳에 들어온 거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젊어서 그런지 겁이 없군. 그러다 물려죽으면?”

 

“그 정도 모험도 못할 거면 호랑이를 잡을 생각도 말아야겠지요.”

 

“정 호랑이를 잡고 싶다면, 차라리 밖에서 기다렸다가 잡는 게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시간만 많다면 그렇게 했겠지요. 하지만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다면, 호랑이가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주호성이 독고무령의 말뜻을 어렴풋이 알아듣고 입을 열었다.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다? 흠……. 제왕대전이 지나면 위지천백에게 날개가 달리기라도 한다는 거냐?”

 

우덕청이 주름진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무림왕이 된 것을 자축하는 일 정도로 날개는 무슨…….”

 

“그에게는 반드시 제왕대전을 성공적으로 끝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저로선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을 수밖에요.”

 

“이유?”

 

우덕청이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주호성은 실눈을 반짝이며 독고무령의 입을 주시했다.

 

“혹시 그 일이 조금 전에 한 말과 연관이 있느냐?”

 

독고무령은 고개를 돌려 주호성을 직시하고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지요.”

 

우덕청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독고무령이 진기로 소리를 차단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무슨 말이야?”

 

그때였다. 누군가가 방문을 두들겼다.

 

“들어가도 되겠나?”

 

북리중현의 목소리.

 

독고무령은 그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방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어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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