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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제 246화

무료소설 암천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암천제 246화

 

246화

 

 

 

 

 

 

* * *

 

 

 

구월 칠일.

 

제왕대전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자 군웅들이 관제산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히 천하의 모든 무인들이 모조리 몰려드는 것만 같았다.

 

산서의 무인들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남, 하북, 섬서, 산동의 무인들도 소문을 듣고 수천 리 길을 달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수십 년 만에 무림왕의 칭호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무림왕이라면, 말 그대로 천하무림의 제왕이라는 말이 아닌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사람들의 면면도 각양각색이었다.

 

강호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얻은 자도 있었고, 이 기회에 이름을 날려보고 싶어 온 자도 적지 않았다.

 

또한 죽기 전에 희대의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겠다고 천 리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사람도 있었다.

 

정오가 다 된 시각. 제왕성의 성문을 바라보며 혀를 차는 노인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더럽게 많이도 몰려드는군.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쯔쯔쯔…….”

 

노인은 머리를 길게 땋아서 목에 두르고 있었는데, 양손에 구리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굵은 환을 두 개씩 차고 있었다.

 

옆을 지나가던 장한 하나가 노인의 말을 들었는지 가래침을 퉤, 뱉고는 툭 쏘아붙였다.

 

“그러는 노인장은 뭐 하러 왔소? 손자 궁둥이나 두들겨 주고 있을 것이지.”

 

노인은 가만히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장한이 뱉은 가래침이 신발 끝에 살짝 묻어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든 노인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신발 끝을 가리키며 장한에게 말했다.

 

“닦아.”

 

장한은 기도 안 찬다는 듯 피식 웃었다. 

 

강호에서 조심해야 할 사람이 노인과 여자와 아이들이라지만, 눈앞에 있는 노인은 아무리 봐도 별 볼일 없어 보였다.

 

무기도 없고, 눈빛도 탁하고, 뼈가 다 드러난 주름진 손은 시골노인의 전형적인 손이었다. 척 보니 농사나 짓다가 구경거리가 생겼다니 밥이나 얻어먹으러 온 노인 같았다.

 

“늙은이, 내가 누군지 알아? 정양의 도귀 만살도 유광이 바로 나야. 알았어?”

 

“네놈이 누구든 상관없어. 혀를 잡아 빼기 전에 어서 닦기나 해.”

 

“뭐? 혓바닥을 잡아 빼? 하! 이 늙은이가 미쳤나? 노망이 들었으면 집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하지만 장한은 끝까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노인의 손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싶은 순간, 뼈만 남은 손가락이 목 깊숙이 박혀버린 것이다.

 

“끄으으…….”

 

노인은 혀를 길게 내뺀 장한을 보며 또다시 혀를 찼다.

 

“좋은 말로 할 때 듣지, 쯔쯔쯔…….”

 

장한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어떻게 된 건지 손끝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노인이 말한 ‘혀를 잡아 빼기 전에…….’라는 말만 귓전에서 맴돌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안됐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쯔쯔쯔, 어디 건들 사람이 없어서 제정신이 아닌 늙은이를 건드렸누.”

 

혀를 찬 사람은 몸이 통통한 노인이었다.

 

얼굴이 어찌나 둥근지, 둥근 호박을 어깨 위에 올려놓은 것만 같았다. 

 

거기다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가는 눈은, 마치 누군가가 호박에 칼자국을 내놓은 것처럼 보였다.

 

동환을 차고 있는 노인은 머리가 호박 같은 노인을 보더니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돈벌레가 냄새나는 굴속에서 기어 나왔군.”

 

“이제 정신을 차릴 나이도 되었을 텐데, 설마 아직도 취미삼아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겠지?”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 벌레를 죽일 뿐이지.”

 

“클클, 벌레치고는 조금 크군. 그럼 눌러죽이든 밟아죽이든 일 보게. 나 먼저 들어갈 테니까.”

 

머리가 호박 같은 노인은, 동환을 찬 노인이 장한을 죽이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뒤뚱뒤뚱 제왕성 정문으로 향했다.

 

동환을 찬 노인은 여전히 짜증난 표정으로 장한을 쳐다보았다.

 

그냥 목뼈를 부러뜨려 죽이고, 죽은 놈의 옷자락에 대충 신발을 닦으면 될 일이었다. 

 

전이었다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었다.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쯤은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말도 섞기 싫은 뚱보가 거보라는 듯 이죽거리는 꼴은 참을 수가 없었다.

 

“바쁘니까 딱 한 번만 더 말하마. 닦을래, 죽을래?”

 

 

 

신이당주 능효는 덩치가 불곰 같은 장한이 엎드려서 노인의 신발을 핥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러다 동환을 찬 노인이 정문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는 수하에게 몇 마디 일러놓은 후 돌아섰다.

 

일각 후, 능효는 제왕전으로 들어가서 위지천백에게 현 상황을 보고했다.

 

“금일 오시까지 성에 들어온 사람이 천이 넘었사옵니다.”

 

찻잔을 내려놓은 위지천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신마벌에서도 왔느냐?”

 

“오대신마 중 화양신마(火陽神魔) 탁무원과 삼음신마(三陰神魔) 호금청이 이십여 명의 신마벌 주요 인사들을 이끌고 아침에 도착했사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광환마종(狂環魔宗) 우덕청과 금황(金皇) 주호성이 성내로 들어왔사옵니다.”

 

신마벌에서 오대신마가 왔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올 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덕청과 주호성의 등장은 위지천백조차 의외였다.

 

광환마종 우덕청은 가장 젊은 나이로 중원구마에 속했던 자. 당금 마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금황 주호성은 정사(正邪)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 오존 중 한 사람이었는데, 누만금이 걸린 일이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자가 아닌가.

 

‘하늘이 나를 돕는군. 그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천하의 기인이사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몰려든다. 

 

하늘조차 자신을 천하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아닌가.

 

위지천백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천하는 야망을 꿈꾸는 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곳이지!’

 

 

 

 

 

 

 

제6장 제왕성(帝王城)으로

 

 

 

 

 

제왕성 신이당의 이향주인 조규는 일과를 마친 후 일야루(一夜樓)에서 술 한 잔 마시는 것을 즐겼다.

 

그가 그곳을 자주 들르는 것은 꼭 술을 마시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일야루는 태원성 서문 근처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자그마한 주루였는데, 온갖 부류의 손님들이 들끓었다.

 

덕분에 가끔은 태원성 뒷골목에서 벌어진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재수가 좋으면 제법 비밀에 속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술도 마시고, 정보도 얻고. 그것이 바로 조규가 일야루를 자주 찾는 진짜 이유였다.

 

오늘만 해도 그는 괜찮은 정보를 하나 얻었다.

 

술병이 거의 다 비었을 즈음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왔는데,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의 입에서 풍운장에 대한 정보가 하나 흘러나온 것이다.

 

 

 

“천룡방과 암천회의 사이가 멀어졌다고 하네.”

 

“그거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일 아닌가? 그러니 천룡방의 사람들을 풍운장에서 쫓아냈지.”

 

“우리 객잔에도 천룡방 무사들이 가끔 오는데, 불만이 많더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하북제일세라는 천룡방의 정예무사들이 찬밥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야.”

 

“내가 듣기로는 한단으로 돌아간다는 말도 있다고 하던데…….”

 

“그건 모르겠고, 이번 제왕대전에 가도 따로따로 행동한다는 말은 들리더군.” 

 

“그래? 근데 자넨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아나?” 

 

“이 사람아, 내 친구 중 하나가 풍운장에 있지 않은가?”

 

 

 

비록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위해 술을 한 병 더 마시긴 했지만, 조규의 기분은 어느 때보다 좋았다.

 

‘하기는 천룡방 사람들이 암천회의 명을 들을 사람들이 아니지.’

 

두 사람은 흑사회의 똘마니들이다.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천룡방 사람들이 객잔에서 불만을 말하는 것은 자신도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었다.

 

마지막 남은 한 잔을 마저 목구멍에 털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난 조규는 기분 좋게 주루를 나섰다.

 

오늘하루도 별일 없이 넘어갔다.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이 지겨운 임무를 마치고 성으로 돌아가게 될 터. 그런 마음 때문인지, 오늘따라 술이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뒷골목 판자촌의 거처에 도착한 조규는 구석에서 문방사우가 담긴 상자를 꺼냈다.

 

평소였다면 두 번, 세 번 더 생각해보고, 좀 더 확실한 사실을 알아본 다음에 붓을 들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조급했다.

 

한 병씩 마시던 술을 두 병이나 마셔서 그런가 싶었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조규는 특수한 먹이 든 병을 꺼내서 세필(細筆)을 적셨다. 그러고는 손바닥만 한 종이를 편 후 그곳에 깨알만 한 글자를 빠르게 써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전서구 한 마리를 달도 뜨지 않은 어둠속으로 날려 보냈다.

 

이상한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놈들이 왜 여태 안 돌아오지?”

 

신이당 이향에는 모두 열두 명의 수하가 있다. 그중 자신과 함께 거처를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셋. 지금쯤 돌아와야 할 그놈들이 한 놈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서 더 이상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가 귀찮았다.

 

‘술 한번 더럽게 독하군. 앞으로는 절대 두 병은 마시지 말아야겠어.’

 

고개를 세차게 저은 그는 다시 거처로 들어갔다. 다리가 반쯤 풀리고 눈앞이 가물거렸지만, 그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간 순간, 아무도 없던 판잣집 안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얼핏 보였다. 그는 그 그림자가 수하일 거라 생각했다.

 

“어? 언제 왔지?”

 

그림자가 대답했다.

 

“방금 왔지.”

 

동시에 그림자의 손이 조규의 목을 움켜쥐었다.

 

조규는 피하고 싶었지만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컥!”

 

“술을 맛있게 잘 마시더군. 제법 비싼 약이 들어간 술이라서 달짝지근했을 거야.”

 

그림자는 하얗게 웃으며 조규의 마혈을 제압하고는 구석으로 끌고 갔다.

 

“나는 기호정이라고 하지. 이제부터 너에게 몇 가지 물을 건데, 기왕이면 순순히 말해주었으며 좋겠어.”

 

기호정은 조규를 구석에 던져 놓고 품속에서 작은 집게 하나를 꺼냈다.

 

“나는 고문을 잘 못해. 그러니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아무 곳이나 막 뜯어낼 거야. 손가락이 될 수도 있고, 발가락이 될 수도 있고, 귀나 코, 아니면 양물이 될 수도 있지. 아! 수하들은 너무 걱정 마. 지옥에 먼저 도착해서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자, 그럼 시작해볼까?”

 

 

 

지난 몇 달, 밀호방과 암천삼당은 독고무령의 명령에 따라 태원성에서 활동하는 제왕성의 간자들을 파악만 해놓고 모른 척했다.

 

그러던 차에 독고무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쥐새끼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동원된 인력만 무려 일천. 밀호방과 암천삼당은 쥐새끼들의 이동통로를 철저히 파악하고, 암천회와 천룡방의 고수들이 그들을 추살했다.

 

가히 태원성 전역이 천라지망으로 변한 상황. 게다가 워낙 전격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제왕성의 간자들에겐 도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조규의 손가락이 세 개째 뜯겨져 나갈 즈음, 태원성 곳곳에서 수십 명이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죽어갔다.

 

신이당의 이향과 삼향을 비롯해서 집법전과 외육당에서 심어 놓은 간자들은 총 사십오 명. 그들 중에는 신분을 바꾼 채 암천회에 들어와 있던 자도 다섯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들 중 죽음의 손길을 피한 사람은 단 세 사람에 불과했다. 오래 전부터 암천회가 포섭한 자들만.

 

완벽한 제거!

 

첫 번째 작전은 시작한 지 단 한 시진 만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렇게 끝이 났다.

 

 

 

* * *

 

 

 

운양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보고를 종합한 후 독고무령에게 보고했다.

 

“본장에 머물던 놈들까지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회주. 최소한 태원에서만큼은 한동안 놈들의 눈과 귀가 제구실을 못할 것입니다.”

 

“외곽 쪽 상황은?”

 

“한 시진을 철저히 감시했습니다만, 성을 빠져나가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독고무령은 풍운전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암천회, 천룡방, 삼성맹, 거기에 유하령이 데려온 사람들까지 팔십여 명의 간부들이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인시 초에 출발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주시오.”

 

 

 

인시 무렵.

 

끼이이이익!

 

태원의 서문과 북문이 활짝 열리고 천팔백에 달하는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벽운장에서도 칠백의 무사가 장원을 나섰다.

 

어둠을 뚫고 내달린 그들은 서쪽 강가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준비해 놓은 오십여 척의 배에 올라탔다.

 

달도 별도 구름에 가려진 밤. 분하 건너편은 온통 검은 장막이 펼쳐진 것만 같았다. 

 

배들은 그 흔한 횃불 하나 없이 고수들에게 방향을 지시받으며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래도 워낙 많은 배가 움직이는 만큼 자칫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일. 각기 이십여 장의 거리를 둔 채 넓게 퍼져서 움직였다.

 

독고무령은 그중 한 척의 배에 호위무사대와 함께 탔다.

 

‘이제 시위에서 화살은 떠났다. 기다려라, 위지천백! 하늘이 네 편이라면, 나는 그 하늘조차 쪼개고 너의 야망을 무너뜨릴 것이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어간 아버지를 위해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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