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제 2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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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암천제 245화
245화
“정말 대단한 놈입니다.”
“대단하긴 대단하지. 천하의 밀천객을 도주하게 만들었으니 말이야.”
“형님…….”
“하하하, 놈은 등후양과 혈왕의 합공마저 받아낸 놈이네. 패했다고 해서 너무 낙심하지 말게나.”
“끄응, 지금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형님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천하는 넓네. 그리고 숨겨진 강자도 많지. 나이를 떠나, 놈은 그러한 자들 중 하나일세.”
위지천백은 아직도 남호종의 가슴에 난 상처를 잊을 수가 없었다. 백리환이 그의 손에 죽은 것은 필연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더 강해졌다면 이제는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있을 터. 떠오르는 태양인 독고무령을 무릎 꿇리고 천하에 우뚝 섰을 때를 상상하니 묘한 쾌감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일단 놈을 끌어들여볼 생각이네. 그러나 나를 따르지 않겠다면, 아깝긴 해도 완벽히 제거해야겠지.”
순간이었다. 밀천객의 눈 깊은 곳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광이 반짝였다.
* * *
‘천룡방과 황보세가의 사람들이 도착한다면, 힘에서는 밀리지 않을 것 같은데…….’
그들만 합세하면,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세력에 있어서는 제왕성에 그리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다름 아닌 위지천백인 것이다.
그가 제왕성과의 세력을 비교하고 있을 때였다.
덜컹! 문이 열리고 운양이 뛰어 들어왔다.
굳은 얼굴, 심상치 않은 눈빛이었다.
독고무령은 평소와 다른 그의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가?”
운양이 그답지 않게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 소저가 태원으로 들어왔네!”
“무슨 말인가? 숭산에 있어야 할 유유가 왜 태원에 왔단 말인가?”
“나도 잘 모르겠네. 초운이가 서문 쪽으로 갔다가 봤는데, 장주님 부부와 함께 서문을 통해 들어왔다고 하는군.”
“그분들까지?”
초운이는 선평원으로 심부름을 간 적이 있어서 장이생 부부와 장유유의 얼굴을 알고 있다. 잘못 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았다. 설령 숭산을 떠나 돌아온다 해도 장가장으로 가는 게 옳았다.
그런데 곧바로 태원으로 왔다. 그것도 서문을 통해서.
마음이 다급해진 독고무령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보세.”
* * *
성문을 통과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장유유는 기이한 느낌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누가 우리를 주시하는 거 같아요.”
그녀가 속삭이듯이 말하자, 장이생은 슬쩍 주위를 살펴보고 나직이 대답했다.
“나도 느꼈다. 혹시 소매치기들일지 모르니 조심해라.”
장유유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훔쳐갈 것도 없는데요, 뭐.”
“하긴…….”
장이생은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등에 업힌 소설향을 바라보았다.
“힘들지 않소?”
무공을 모르는 소설향이 밤길을 빠르게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대부분 산길이 아닌가.
결국 날이 새기도 전에 그녀는 발목이 접질려 퉁퉁 부어버렸다.
그때부터 장이생이 그녀를 업고 걸었다.
문제는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날 때면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집중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안함으로 빨개진 얼굴을 장이생의 등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사흘이 지나자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보다는 행복감이 배는 더 컸다.
“저는 괜찮아요.”
“어디 가서 좀 쉽시다.”
“그래요.”
장이생 부부와 장유유가 어느 객잔으로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장한 하나가 옆을 스쳐가며 나직이 말했다.
“어르신, 저를 따라오시지요.”
공손한 목소리.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이 제법 공손해 보인다.
태원은 암천회가 득세하는 곳.
장이생은 직감적으로 장한이 독고무령과 연관된 사람임을 알고 두 말 없이 뒤를 따라갔다.
장한은 장이생 부부와 장유유를 골목길로 데려간 후 미로를 빠져나가듯 요리조리 돌더니, 결국은 만금도국 뒤쪽의 작은 장원으로 데려갔다.
“저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장한이 세 사람을 안내한 곳은 거기까지였다.
“고맙소.”
장이생은 간단하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장한이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장이생은 심장이 턱 막히는 희열의 충격에 걸음이 절로 멈춰졌다.
방 안에 독고무령이 있었던 것이다.
“제왕성의 눈이 여기저기 깔려 있어서 모시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장유유는 왈칵 솟구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오빠…….”
“어떻게 된 거냐?”
“허엉!”
장유유는 외마디 울음을 터트리며 독고무령의 가슴을 향해 교구를 날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지만, 터질 것 같은 가슴 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독고무령은 차마 피하지 못하고 가슴에 안겨든 장유유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이제 안심해도 된다. 누구도 너와 부모님을 건들지 못할 것이다. 천하의 어느 누구도.”
“정말?”
“그래, 내가 지켜줄 테니까.”
장유유는 그제야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독고무령의 품에서 떨어졌다.
독고무령은 장유유가 눈물을 소매로 찍으며 뒤로 물러나자 장이생의 등에 업힌 소설향을 바라보았다.
“어디 다치셨습니까?”
“음?”
장이생이 움찔하며 등에 업힌 소설향을 돌아다보았다.
하도 오랜 시간을 업고 있다 보니 등에 소설향이 업혔다는 것도 잊은 상태였다. 소설향도 마찬가지였고.
“어머, 내려줘요.”
“조심하구려.”
“버틸 만하니 걱정 말아요.”
“험, 네 어머니는 발목을 살짝 접질렸다. 그리 심하진 않다고 하는데, 오래 걷지를 못한다.”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푸는 것보다 소설향의 부상을 손보는 게 먼저였다.
“제가 좀 보겠습니다. 일단 이리 앉으시지요.”
소설향이 절룩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독고무령은 그녀의 발목을 살펴보고는, 두어 군데의 혈을 누른 다음 발목을 주물렀다.
뚜두둑.
뼈마디가 어긋나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곧 소설향의 표정이 편해졌다.
독고무령은 어긋났던 소설향의 발목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일단은 장이생 부부와 장유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웃으며 말했다.
“소천이를 찾았습니다.”
소설향은 물론이고, 장이생과 장유유의 눈도 한껏 커졌다.
“소천이를? 그게 정말이냐?”
“어디 있느냐?”
“소천 오빠 어디 있어? 만나기만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독고무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장이생에게 말했다.
“조금 먼 곳으로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오실 줄 알았으면 다른 사람을 보냈을 텐데…….”
“아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사하다는 말이니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장이생의 말에 소설향과 장유유도 내심 안도했다.
그랬다. 중요한 것은 장소천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독고무령은 세 사람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듯하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장이생은 잠시 망설였다.
그는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말이 자칫 엉뚱한 일로 비화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큰 피해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실과 거짓을 반반씩 섞어서 말했다.
“숭산 자불원에 머무는데, 제왕성에서 사람이 왔더구나. 가기 싫었지만 혹시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서 하는 수 없이 제왕성에 다녀왔다.”
“제왕성에요? 그들이 무슨 이유로 어르신을 청했단 말입니까?”
“허허허, 그들이 원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우리 유유지.”
이상한 일이었다. 장유유를 왜 그들이 초청한단 말인가?
장이생이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자불원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유유를 본 사람이 제왕성에 말한 모양이다. 그들이 글쎄, 우리 유유 예쁜 건 알아가지고, 며느리를 삼았으면 하지 뭐냐? 하지만 우리가 싫다고 하니까, 그냥 보내주더구나.”
며느리를 삼으려 했다면 위지성의 혼인 상대로 데려갔다는 말이다.
이야기 중에 의문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숭산까지 가서 데려와 놓고 왜 순순히 보내줬을까? 그냥 싫다고 해서?
위지천백은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독고무령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장이생의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의문점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소설향이 다리를 접질렸을 뿐 크게 다친 곳도 없어 보이고.
진실은 자신이 알아내면 될 일.
‘만일 어떤 문제가 있었다면,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그 일을 묻지 않고 소설향을 바라보았다.
“어머님, 발은 어쩌다 다치신 겁니까?”
소설향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산길을 내려오다 돌을 잘못 밟았단다. 걱정 말아라, 너도 봤다시피 심하지 않으니까.”
하긴 자신이 봐도 단순히 접질린 것뿐이었다.
독고무령은 안도하며 장이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버님, 팔을 내밀어 보십시오. 몸 상태를 살펴봐야겠습니다.”
장이생이 선뜻 팔을 내밀었다.
독고무령은 맥문을 잡고 장이생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공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을 뿐, 내상은 거의 다 나은 상태였다. 최근에 충격을 받은 적도 없는 것 같고.
독고무령은 마치 자신의 몸이 나은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두 분께선 행복하게 사실 자격이 있으신 분들이십니다.’
마음이 놓인 그가 장이생에게 말했다.
“전에 지내던 선평원으로 모시겠습니다.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십시오. 말해 놓았으니 불편한 점은 없을 겁니다.”
소설향은 친자식을 바라보듯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마.”
“오빠, 자주 올 거지?”
장유유가 아직도 물기가 덜 마른 눈으로 물었다.
독고무령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이제 그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독고무령은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천하를 향한 욕망이 과연 가족보다 중요할까?
위지천백은 어떻게 생각할까?
* * *
구월이 시작되는 날, 천룡방의 오백 무사가 태원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함으로써 와 있던 사람들까지 합하면 무려 칠백에 이르는 숫자였다.
그것도 천룡방의 최고 정예들인 만큼, 사실상 천룡방의 육 할에 이르는 무력이 암천회에 합류했다고 봐야 했다.
북리중현은 그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독고무령에게 넘어간 주도권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풍운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최대인원은 천오백. 이미 수용할 수 있는 한계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또한 아직은 제왕성에 그들의 합류를 알려서도 안 되었다.
독고무령은 그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함과 동시에 천룡방의 힘이 집중되는 것을 막았다.
“운양, 그들을 벽운장으로 이동시키게.”
벽운장은 태원 동쪽의 산자락에 있는 장원이었는데, 풍운장만으로는 늘어나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운양이 한 달 전에 매입해 놓은 상태였다.
이미 암암리에 이백여 명이 그곳으로 옮겨갔지만, 벽운장은 규모가 풍운장보다 배는 컸다. 오백이 더해진다고 해도 지내기에는 충분했다.
“예, 회주.”
북리중현은 어깨의 힘이 빠졌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그도 모르지 않았다.
* * *
구월 사일.
제왕대전이 닷새 남은 날, 황보광이 무사 일백을 이끌고 풍운장에 도착했다.
개중에는 소림의 장로인 각진 대사와 화산의 장로인 허운 진인도 있었다.
회의 중이었던 독고무령은 한무종으로 하여금 마중하게 하고, 풍운전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황보세가의 장로들과 황보광이 데려온 삼성맹의 사람들은, 독고무령이 직접 마중 나오지 않은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며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불쾌한 마음도 잠시, 연무장이 되어버린 넓은 마당을 가로지르기도 전에 입이 꾹 닫혔다.
일반무사로 보이는 자 백 명 정도가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흐르는 기세가 여느 대문파의 정예들 못지않았던 것이다.
개중에는 능히 절정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는 자들도 몇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대부분 조장으로 불리는 것이 아닌가!
‘설마 조장이 십여 명을 이끄는 소규모 조의 장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오죽하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한무종이 그들과 함께 풍운전에 도착하자, 문 앞에 서 있던 위사가 안에 대고 소리쳤다.
“회주께 아룁니다! 황보세가의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곧 풍운전의 문이 열렸다.
순간, 두 줄로 길게 뻗은 탁자 양쪽을 꽉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상석에 앉아 있는 독고무령과 북리중현까지 합해 모두 칠십육 명.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하자 황보광과 함께 온 사람들은 숨이 턱 막혔다.
“어서 오시지요, 대공자.”
독고무령이 담담한 표정으로 황보광에서 인사를 건넸다.
“조금 늦었소이다, 회주.”
“들어오시지요. 마침 회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황보광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몇 분만 저와 함께 들어가도록 하지요.”
그의 바로 뒤에는 황보세가의 장로 세 사람과 각진 대사, 허운 진인 그리고 하남의 명숙 둘이 서 있었다.
황보광은 그들 일곱 명을 대동하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암천회가 결코 중소문파 따위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에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하나 크게 동요하지 않았을 뿐, 경악한 마음조차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정도였던가?’
그가 독고무령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독고무령이 북리중현을 그에게 소개했다.
“인사드리시지요. 천룡방의 방주님이십니다.”
북리중현이 황보광 일행을 쓸어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북리중현이라고 하네. 삼성맹의 장로들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반갑소이다, 허허허허.”
황보광 일행의 몸이 얼어붙었다.
맙소사! 천룡방의 주인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