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7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73화
373화. 귀환 (2)
장사의 대로에 있는 커다란 주점.
주점이라는 곳이 술을 마시는 곳이다 보니 으레 싸움이 한 번씩 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생각보다 큰 싸움이었다. 한때 호남의 칠대세력 중 하나였던 양가장의 무사들 열다섯 명과 백검회에 속해있는 신검문의 무사 일곱 명이 붙은 것이다.
양쪽 다 상당히 알려진 곳이었고, 모두 실력이 뛰어나다 보니 싸움이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주점의 의자와 탁자가 박살이 나고 기둥이 부러지고 벽이 부서졌다.
손님들은 이미 밖으로 모두 도망간 상태였지만 주인과 점원은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주인은 계산대 뒤에 몸을 숨기고 있어서 다행이었으나, 점원은 이도 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 뿐이었다. 방년의 나이로 이제 혼인할 날짜만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무림인들의 눈먼 칼에 맞고 죽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래서 어디서든 싸움이 나고 누군가가 무기를 뽑았다 싶으면 재빨리 몸을 피해야 하거늘, 정인이 준 머리장식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걸 줍느라고 그리 된 것이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혀를 찼지만 십여 명이 넘는 무림인들이 칼을 휘두르는데 그 사이를 헤치고 가서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방금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한 중년사내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는 단단한 몸을 연상케 했고 중후한 멋을 풍기는 잘생긴 얼굴과 사람을 압도하는 시선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줬다. 그라면 그녀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말이다.
“이 자식, 죽어라!”
“시끄러워! 너나 죽어라!”
쉬쉬쉬쉬쉭! 챙챙챙챙!
악을 쓰고 고함을 지르며 칼을 휘두르고 있는데도 중년사내는 여유롭게 걸어갔다. 그러다 누군가가 뒤로 밀려나다가 그에게 등을 부딪치려고 했다.
중년사내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볍게 손짓을 한 번 했다. 그러자 손이 닿은 것 같지도 않은데 그가 다시 앞으로 떠밀려 갔다.
“어어…….”
“넌 뭐야?”
양가장의 무사 한 명이 적운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몸이 빙글 돌더니 두 다리가 붕 떠서 하늘로 향하고 머리는 땅에 처박혔다.
쾅!
“헛! 이 자식! 죽어라!”
“흐랴아압!”
동료가 당하자 양쪽에서 두 명이 동시에 공격해왔다. 중년사내는 두 사람이 휘둘러오는 도의 도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후려쳤다.
파파앙!
“헉!”
“크윽!”
갑자기 도가 손을 빠져나가면서 호구가 찢어지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서 손을 움켜잡고 물러났다. 그런 간단한 손놀림에 칼을 놓친 그들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두 사람이 그렇게 주춤하고 있자 신검문의 무사들이 그들을 공격해갔다.
그걸 보고 중년 사내가 몸을 움직이자 두 사람을 찔러가던 검이 어느새 모두 그의 손에 가있었다.
“헉!”
“이게 무슨…….”
신검문의 무사 다섯 명은 망연자실하니 몸이 굳어버렸다. 어찌나 빠른지 뭘 어떻게 당했는지 알지도 못했다. 분명 검을 찔러가고 있었는데 검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
“뭐야? 저놈은 누구냐?”
“제길! 공격해!”
중년사내의 강함을 본 신검문의 무사들과 양가장의 무사들이 서로 싸움을 멈추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런데도 중년사내는 침착하게 몸을 움직였다.
파팡! 팡!
신기한 노릇이었다. 한편으로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무사가 무기를 빼앗긴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차마 죽었으면 죽었지 무기를 빼앗기지는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중년사내가 몇 번 움직이자 너무나 쉽게 그들의 무기가 그의 손으로 가버렸다. 마치 어린아이의 손에서 막대기를 빼앗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중년사내는 그들의 무기를 모두 빼앗자 그걸 땅에 팽개쳤다. 그러고는 발로 힘껏 짓밟았다.
콰아아아아아앙!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착각마저 들었다.
신검문이나 양가장은 호남에서 알아주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무사들이 사용하는 무기도 질이 좋은 것들이었다. 보검은 아니더라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발길질 한 번에, 그것도 한 자루가 아니라 십여 자루가 완전히 부러져버렸다. 도대체 내공이 얼마나 강하기에 저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주위에 정적이 흘렀다.
그제야 그들은 중년사내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저 정도의 무위라면 그들의 문주가 와도 꼭 이기리라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중년사내는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무사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서 덜덜 떨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괜찮소?”
“네? 네. 네.”
그녀는 얼결에 몇 번이나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자 중년사내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멋있던지 여인은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이제는 안전하니 저쪽으로 가있으시오.”
중년사내가 여인을 잡아서 일으켜주고는 등을 다독이며 한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무사들을 보며 소리쳤다.
“대로에서 그리 싸우면 양민들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나? 그로 인해 사문에 누가 간다는 생각은 안 했던 모양이로군. 만약 아까 그 여인이 명성이 쟁쟁한 고수의 딸이었다면 어쩔 뻔했나?”
“그, 그건…….”
사내들이 서로를 보며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 사내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다,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지 않소?”
중년사내가 그를 봤다. 그러자 그는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에 움찔 몸을 떨었다. 단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다리가 떨려서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렇군. 하지만 만약 내 딸이 그런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나는 당신들을 모두 죽여 버렸을 것이다.”
중년사내가 기세를 뿜어내며 하는 섬뜩한 말에 모두 몸을 떨며 마른침을 삼켰다.
“우, 우리는 양가장 사람이오.”
겁을 먹은 누군가가 묻지도 않았는데 소리를 질렀다. 혹시나 중년사내가 손을 쓸까 봐 양가장의 이름을 댄 것이다. 그러자 중년사내가 기세를 거두고 피식 웃으면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걸 보고 양가장의 이름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사내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이름을 밝혀라!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적운상이다. 오늘 일을 따지고 싶으면 형산파로 찾아와라.”
“헉! 저, 저, 적운상!”
소리를 질렀던 사내는 어찌나 놀랐던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로 앞에 천하제일의 고수가 있었음에도 몰라보고 그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왜 그렇게 간단하게 무기를 빼앗겼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자신들의 무기가 왜 발길질 한 번에 그렇게 모두 부러져나갔는지 깨달았다.
적운상이 어떤 사람이던가?
물 위를 달리고 하늘을 날며 벼락을 다룬다는 고수였다. 그들에게 자신들은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무기를 빼앗아서 부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으리라.
적운상이 자리를 뜨고 나자 그때까지도 멍하니 넋이 나간 모습으로 있던 사내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크게 후회를 했다. 적운상이 속 좁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이 일로 인해 사문에 누가 간다면, 자신들은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러니 빨리 사문으로 돌아가서 그 뒤처리를 해야 했다.
“제길! 빨리 돌아가자!”
양가장의 무사들이 먼저 후다닥 자리를 뜨자 신검문의 무사들도 재빨리 몸을 날렸다.
* * *
적운상은 형산을 오르면서 옛 추억에 잠겼다. 여덟 살 때 관대평의 손을 잡고 이곳을 오르던 게 엊그제 같건만 벌써 삼십여 년이나 지나 버렸다.
‘그러고 보니 관 사숙은 어디에서 잘 계시는지 모르겠군.’
사부인 임옥군이 항상 돈을 벌어오라고 타박하면 마지못해서 형산파를 나서던 관대평이었다. 그러다 행방이 묘연해져서는 적운상이 형산파를 떠날 때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정문에 서서 현판에 적혀 있는 형산파라는 글자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잠시 그렇게 옛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왔다.
“실례합니다만 형산파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방문을 하신 거라면 잠시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적운상이 그를 봤다.
약관도 안 되어 보이는 사내였는데 자세히 보니 막정위를 닮았다. 그의 옆에는 초사영을 쏙 빼닮은 여인도 함께 서있었다. 적운상의 짐작대로 사내는 막정위의 아들인 막손서였고, 여인은 초사영의 딸인 초약지였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적운상은 두 사람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이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자 막손서와 초약지는 영문을 몰라 의아해했다.
“이봐요. 초면에 사람을 앞에 두고 그렇게 웃으면 실례라고요.”
초약지가 당차게 말하자 적운상은 그제야 웃음을 그치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초약지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붉혔다. 얼핏 잘생겼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웃는 얼굴의 매력이 생각보다 더했다.
“장문사형은 잘 있느냐?”
“네?”
“나는 적운상이다.”
“아! 적 사숙이셨군요!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막손서는 어찌나 흥분했는지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그런 막손서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준 적운상이 초약지를 보며 말했다.
“가서 내가 왔다고 전해라.”
“네. 알았어요.”
초약지가 휑하니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적운상이 웃으면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에 난리가 났다. 은서린과 홍은령, 강은영 등이 뛰어와 눈물을 흘리면서 적운상을 반긴 것이다. 그 외에도 객방에서 머물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와서는 적운상을 반가워했다.
“하하하하. 은영이 네가 자명이 하고 혼인을 했단 말이지?”
“호호. 네.”
“형수는 아주 든든한 아들을 낳았군요.”
홍은령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답니다.”
“그런데 모두 어디 갔습니까?”
대청에 앉아서 잠시 차를 마시며 지난 이야기를 하던 적운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장문인인 막정위까지 자리를 비웠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홍은령이 차마 대답을 못하고 은서린을 봤다. 그러자 은서린이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운휘가 여기에 왔었어요.”
“훗! 그럴 거라 생각했었지. 운혜는 오지 않았나?”
“아니요. 그게…… 하아…… 실은 운혜는 지금 행방이 묘연해요.”
“뭐?”
“운휘가 운혜를 찾는다기에 모두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같이 찾아다녔는데, 반선도귀 두육택이란 자가 운혜를 붙잡아 간 거예요. 그런데 운휘가 그를 만났을 때는 운혜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붙잡혀 갔다고 해요. 그래서 그 행적을 쫓느라 모두 나가 있는 거예요.”
“하 참…… 이거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었군.”
“아니에요. 사형의 아이들인데 당연히 도와야죠. 미안해요. 사형. 저희가 그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빨리 손을 썼을 텐데…….”
“아니야. 네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운혜 그 녀석 잘못이야.”
적운상은 그렇게 말하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은서린은 딸이 행방불명되었다는데도 너무나 여유로운 적운상의 모습이 이상했다.
“걱정되지 않아요?”
“약간.”
“그게 다예요? 듣기로는 두육택에게 아주 험한 꼴을 당할 뻔했다고 해요.”
“양악이 때문에 너무 오냐오냐 하면서 키웠어. 이참에 고생을 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걱정 마. 그 녀석 내공이 무려 일갑자야. 머리도 총명하니 막무가내로 당하기만 하지는 않을 거야.”
“맙소사…….”
은서린을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는데 내공이 일갑자라니!
“혹시 주 사저가 내공을 준 거야?”
“응. 넘쳐나서 주체를 못할 지경이니 그 정도는 퍼줘도 거뜬해.”
“끙.”
그제야 은서린은 적운상이 왜 오냐오냐 하면서 키웠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며칠 전에 적운휘가 한 말뜻도 알 것 같았다.
혁무한에게 들으니 적운휘는 나이에 비해 무공이 상당히 뛰어났다. 그런데 누이인 적운혜에게는 만날 당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냥 누이니까 적운휘가 일부러 당해준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공이 일갑자에 달하면 웬만해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적운휘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공으로 눌러버리면 방법이 없었다.
“그럼 사형은 운혜를 찾으러 안 갈 거야?”
“가야지. 그래도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오면서 들으니까 혁무한은 다른 일로 나가있는 것 같던데.”
“응. 요즘 호왕문과 연씨세가가 계속 싸움을 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양민들의 피해가 커. 그래서 중재를 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아서 그걸 해결하러 가있어.”
“힘들겠군.”
“약간. 그 일 때문에 패악룡이 크게 다쳤었어.”
“그래?”
“응.”
“그럼 일단 그쪽 일부터 해결하지.”
“뭐? 그럼 사형 딸은?”
“모두 찾고 있다며? 혁무한한테 가있을 테니까 찾게 되면 연락 줘.”
“그래도…….”
은서린은 딸을 찾는 것이 먼저가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혁무한이 그쪽 일을 해결하느라 몇 달째 밖에서만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운상의 말대로 적운혜가 그리 강하고, 또 모두 찾고 있으니 적운상은 혁무한을 도와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괜찮아. 혁무한한테 가있는 동안 그쪽을 찾아볼 테니까 장문사형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말해줘.”
“응. 알았어.”
그제야 은서린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자 적운상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