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7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72화
372화. 귀환 (1)
“누이가요?”
적운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적운혜가 어떤 사람이던가? 항상 멍하니 있기는 하지만 무공도 강하고 머리도 총명했다. 그런 적운혜가 납치되었다니 선뜻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 지금 백방으로 찾고 있다고 하니까 곧 연락이 올 거야.”
나연란의 말에 적운휘는 잠시 굳은 얼굴로 있다가 질문을 했다.
“누가 납치를 했다고 합니까?”
“반선도귀 두육택이라고 불리는 자인데 평판이 아주 안 좋아.”
“찾아봐야겠습니다.”
“응? 응. 그래. 같이 가자.”
나연란은 요 며칠간 적운휘와 다니면서 상당히 친해진 상태였다.
처음에 봤을 때 적운휘는 상당히 냉정한 성격 같아 보였는데 함께 다녀보니 그렇지 않았다. 말투가 조금 딱딱해서 그렇지 의외로 정이 많았다. 게다가 나연란을 친누이처럼 잘 따랐다.
사실 적운휘는 적운혜와는 완전히 다른 나연란의 모습이 좋았다. 적운혜한테는 항상 당하기만 했었는데 나연란은 하나에서 열까지 자상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형산파를 나서자마자 적운휘는 경공을 펼쳤다. 나연란은 그런 적운휘의 옆에서 나란히 달렸다.
적운휘는 적운상이 익힌 금안뇌정신공을 익혔다. 그래서 적운혜처럼 그렇게 내공이 뛰어나거나 하지는 않았고, 당연히 경공도 고만고만해서 나연란이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었다.
적운휘는 마을로 내려와서도 경공을 계속 펼쳤다. 사람들이 많은 대로를 피하기는 했지만 건물의 지붕이나 담을 밟고 휙휙 날아다니니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남악현이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무공 한가락씩은 할 줄 알았고, 나연란이 같이 다니는 것을 보고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을을 벗어나 관도를 따라 달리던 적운휘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다 멀리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한 노인을 보고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커다란 대도를 차고 있는 노인은 어디론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기분 나쁜 살기를 연신 뿌려대고 있어서 그게 적운휘의 신경에 거슬렸던 것이다.
“아! 저 사람 혹시…… 에이 그럴 리 없겠지. 아닐 거야.”
나연란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적운휘가 그녀를 봤다.
“뭐가 아니에요?”
“아니, 저 사람 말이야. 인상착의가 내가 듣던 반선도귀 두육택하고 너무 똑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이렇게 쉽게 만날 리가 없잖아.”
“그래요?”
“응. 하지만 두육택은 살도하고 귀도라는 제자들과 함께 다니는데 그 사람들도 아주 큰 도를 들고 다닌다고 했어. 그런데 저 사람은 혼자잖아.”
“이유가 있어서 헤어졌을 수도 있잖아요. 여기에 있어요.”
“어? 야, 기다려! 적운휘!”
나연란이 놀라서 큰 목소리로 적운휘를 불렀지만 이미 그는 경공을 펼쳐서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이에 나연란도 다급하니 땅을 박차고 경공을 펼쳤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두육택은 옆에서 적운휘가 빠르게 다가오자 여차하면 대도를 휘두를 준비를 했다. 그러다 적운휘가 적운혜와 닮았다는 것을 알고는 망설이지 않고 대도를 휘둘렀다. 자신의 동생을 만나면 십 초식도 받아내지 못할 거라던 적운혜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후우우우우우웅!
대도가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면서 적운휘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적운휘는 전력을 다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걸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칼을 뽑아서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뒤를 따라오면 그걸 보고 있던 나연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저대로라면 적운상이 두 조각이 날 것 같았다.
그때 적운휘의 손에 뇌기가 약간 맺혔다.
파직! 콰아아아아아앙!
“헉!”
두육택이 놀라서 몸을 휘청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대도는 보통의 도보다 더 크고 무게도 많이 나가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득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도를 휘두르는 속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두육택은 놀라운 근력과 내공으로 인해 오히려 웬만한 쾌검을 구사하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대도를 휘두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적운휘가 그렇게 빠르게 내려쳐지고 있는 대도의 도면을 장으로 후려친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 실린 힘이 만만치 않아서 두육택은 한순간 휘청할 수밖에 없었다.
파직!
적운휘의 주먹이 두육택의 턱을 노리고 들어왔다. 두육택이 대도를 수직으로 세워 도면으로 그 주먹을 막았다.
콰아아아아앙!
“흡!”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대도를 잡고 있는 손을 통해 찌릿하니 뇌기가 파고드는 것이 상당히 신경에 거슬렸다.
후우우우우웅! 파파파파파파팡!
적운휘의 주먹이 연속으로 두육택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두육택은 적운휘가 너무나 바짝 접근해서 주먹을 휘두르니 대도를 휘두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도의 도면으로 몸을 가리며 주먹을 막아내야 했는데, 그때마다 몸이 쭉쭉 뒤로 밀리면서 뇌기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망할…….”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아직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새파란 애송이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니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하압!”
두육택이 크게 일갈하며 도면에 어깨를 대고 적운휘를 밀어붙였다. 그러자 때마침 다시 도면을 강타했던 적운휘의 주먹이 이번에는 오히려 튕겨져 나왔다. 그런데도 두육택은 멈추지 않고 계속 그 자세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그대로라면 도면에 가슴을 받칠 상황이었다.
적운휘는 재빨리 양 손바닥을 뻗어 다시 한 번 도면을 때렸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원하는 만큼의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파아아아앙!
“크윽!”
적운휘의 발이 땅에 깊은 고랑을 남기면서 주르륵 밀려났다. 그러다 밀려나는 뒷발에 힘을 주고 몸을 멈춰 세우나 싶었는데 갑자기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으며 두육택의 다리를 쓸어 찼다.
“헉!”
잔뜩 힘을 실어서 앞으로 밀고 들어가던 두육택은 갑자기 거기에 맞서던 힘이 사라지자 다급하게 중심을 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 다리에 묵직한 충격이 오면서 세상이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콰앙!
팔을 들어 머리부터 땅에 처박히는 것을 간신히 면한 두육택이 몸을 굴려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가슴이 다 으스러지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적운휘의 강맹한 주먹이 그의 가슴을 직선으로 때린 것이다.
두육택의 등이 확 꺾이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연란은 적운휘의 주먹이 그대로 그의 몸을 뚫어버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두육택이 오 장이나 날아가서 땅을 뒹구는 걸로 끝이 났다.
끔찍한 장면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연란은 놀란 눈으로 적운휘를 봤다.
경공술을 펼치는 것을 보니 내공이 그리 대단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렇게 무공이 뛰어나다니, 솔직히 많이 의외였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적운휘는 내공의 우위로 이긴 것이 아니었다. 시기적절한 임기응변과 초식의 교묘함으로 이겼다.
적운휘가 펼친 것은 그녀도 익히 알고 있는 풍뢰십삼식이었기에 그러한 것이 다 보였던 것이다. 그녀 자신이 만약 두육택과 싸웠다면 풍뢰십삼식을 그렇게 펼칠 수 있었을까?
아니었다. 내공은 적운휘보다 그녀가 조금 뛰어날지 몰랐지만 상황을 읽는 능력이나 초식의 운용은 한참이나 떨어졌다.
적운휘는 피를 흘리며 끙끙대고 있는 두육택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아서 작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당신이 반선도귀라는 두육택인가요?”
“으…….”
두육택은 사실대로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적운혜를 복면을 쓴 쥐새끼 같은 놈에게 빼앗겼지만 그걸 말해봐야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속이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러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이런 애송이에게 당한 것도 화가 나는데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니 자존심이 용납을 하지 않았다.
“맞다. 내가 두육택이다.”
“아!”
가까이 다가오던 나연란은 그가 두육택이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혹시나 했었는데 정말 두육택이었던 것이다. 이에 새삼스럽게 적운휘가 적운상의 아들이라는 것이 다시금 생각이 났다.
저 나이에 두육택을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호남에는 없었다. 천하제일고수라 불리는 적운상 정도 되니까 저렇게 아들을 길러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누나 알고 있죠?”
“음…….”
두육택은 뭐라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적운휘가 다시 물었다.
“우리 누나 어디 있어요?”
“모른다. 오는 길에 복면을 한 놈이 데리고 갔다. 크아아아악!”
말을 하던 두육택이 갑자기 크게 비명을 질렀다. 적운휘가 그의 등을 살짝 눌렀기 때문이다.
등이 눌리자 으스러진 가슴에서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어찌나 아픈지 두육택은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적운휘가 손을 뗐다.
“우리 누나 어디에 있어요?”
“방금 말했지 않느냐? 웬 복면을 한 놈이, 크아아아아아악!”
“우리 누나 어디에 있어요?”
“이놈! 차라리 죽여라! 나를 이리 능멸할 거면…… 아아아아악!”
“우리 누나 어디에 있어요?”
“끄으…… 저, 정말이다. 그놈이 데리고 갔단 말이다! 아까도 그놈을 뒤쫓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 누나한테 허튼짓하지 않았죠?”
“할 사이도 없이 그놈이 데려갔다.”
“사실인 거 같아요. 란 누이. 이 사람은 어쩌죠? 살인을 하기는 싫은데.”
“그럼 그냥 이대로 놔두고 가자.”
“원한을 품지 않을까요? 어머니가 손을 쓰면 항상 확실하게 매듭을 지으라고 하셨어요.”
“저 상태면 살지 죽을지 알 수 없잖아. 운이 좋아 살아난다고 해도 이렇게 당했는데 설마 무슨 짓이야 하겠어? 그랬다가는 적 사형에게 목이 날아갈걸.”
“그도 그렇네요. 알았어요. 그럼 이렇게 놔두고 가죠.”
“응.”
나연란은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적운휘가 귀여워서 자신도 모르게 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줬다. 나이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적운휘도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니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는 건 웬만한 친분이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연란은 뒤늦게 그것을 깨닫고는 얼굴을 살짝 붉혔지만 적운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별생각 없었던 것이다.
“가요. 이자가 달려가던 방향이 이쪽이니, 이리로 가면 누이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어? 어. 알았어. 그래. 가자.”
“네.”
적운휘가 앞장서자 나연란이 그 뒤를 따라 달렸다.
나연란은 적운휘의 등이 생각보다 넓게 보였다. 처음부터 적운휘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한 명의 남자로 보이고 있었다.
* * *
정체 모를 복면인은 둘러메고 있던 적운혜를 침상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러다 흐트러진 적운혜의 옷 사이로 보이는 뽀얀 살결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정말 선녀가 따로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리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옷매무새를 바로 해줬다. 생각 같아서 확 덮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목이 온전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죽더라도 한 번 안아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헉헉…….”
옷을 바로 해주는데 상당한 심력을 소모한 복면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급히 방을 나갔다. 그대로 계속 있다가는 정말 사고를 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던 그가 복면을 벗었다. 그러자 생각 외로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후우…… 늘그막에 이게 무슨 짓인지…….”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건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맞은편에서 칼 같은 기세를 품은 무사 두 명이 다가와서 고개를 팍 숙였다.
“그래. 저쪽 방에 있으니까 잘 지켜라. 마혈을 짚어놓기는 했지만 또 모르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적운혜가 있는 방문 앞으로 가서 경계를 서는 것을 보고 노인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적운혜의 고운 얼굴과 뽀얀 살결이 잊히지가 않았던 것이다.
“허 참, 주책이로다. 주책이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적운혜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린 노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커다란 전각 안으로 들어가서 중앙에 있는 집무실 앞에 멈춰섰다.
탕탕!
“형님, 나요.”
“들어와라.”
안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노인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 하나, 그리고 한쪽에 서책을 꽂아두는 책장 하나가 다였다. 흔히들 가꿔놓는 화분이라든지, 벽에 걸어두는 족자라든지, 아무것도 꾸며놓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썰렁해 보이기도 했으나 육중한 체구로 앉아있는 한 노인 때문에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노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 안이 꽉 차 보였다. 단지 그의 뚱뚱한 체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존재감이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어떻게 됐느냐?”
“당연히 성공했지요.”
“잘했다.”
“아닙니다. 이게 다 세가의 발전을 위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자칫 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 일이다. 조심에 조심, 또 조심을 해야 한다.”
“물론이지요. 그나저나 그 아이 참 곱습디다. 제 생각에는 적운상과 백수연 사이에서 난 아이인 것 같습니다. 나까지도 혼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허……그 정도였느냐?”
“말도 마십시오. 참느라고 혼났습니다. 제가 십 년만 젊었어도 호민이 놈에게 넘길 생각은 안 했을 겁니다.”
“쓸데없는 말 말거라.”
“하하하. 형님도 그 아이를 보면 마음이 동할 겁니다.”
“아무튼 이 일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고 호민이에게도 잘 일러 주거라. 그 녀석이 하는 일에 세가의 존망이 걸려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걱정 마십시오. 남녀라는 것이 원래 살을 비비며 살다보면 없던 정도 생기는 법입니다.”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다 덜컥 애라도 생기면 더 없는 좋은 일이지.”
두 사람의 밀담은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