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7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71화
371화. 적운혜 (3)
“제법이다만 내 상대는 아니다.”
“놔줘요.”
“물론 놔줄 거다. 하지만 네 그 탐스러운 몸을 실컷 욕보인 후다.”
“그랬다가는 당신은 무사하지 못해요.”
“이제야 내게 겁을 주려는 거냐? 하지만 나는 소림사나 무당파가 나선다 해도 겁이 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 이름을 듣고도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뭐? 하하하하. 물론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네 애비가 황제라 해도 내가 두려워할 것 같으냐?”
“적운상이에요.”
“뭐?”
“우리 아버지 이름이요. 적운상이라고요.”
방금까지 호탕하게 웃던 두육택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네 말은 십여 년 전에 천하제일고수라 불렸던 그 적운상이 네 애비라는 거냐?”
“맞아요.”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저 칼이 보이지 않나요? 태룡도라는 칼이에요. 아버지가 들고 다니던 거죠. 그래도 믿음이 안 가면 형산파에 확인해 보던가요.”
적운혜의 말에 두육택이 벽에 꽂혀 있는 태룡도를 봤다. 보통 칼이 아니었다. 용의 머리 모양으로 되어 있는 호수나, 그 용의 입에서 길게 뻗어있는 도신이 한눈에 봐도 보도 같아 보였다.
적운상에 대한 이야기가 하도 돌다보니 두육택도 그에 대한 것을 들었었다. 적운상의 특색을 꼽을 때는 잘생긴 얼굴과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 보기만 해도 오줌을 지릴 정도의 박력, 그리고 저렇게 생긴 칼과 하얀색의 검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태룡도를 잠시 뚫어져라 보던 두육택이 적운혜의 허리에 매달려있는 백운검으로 향했다.
“흥! 네 애비가 당장에 이곳으로 오지 않는 이상 상관없다. 나는 너를 여기서 개처럼 범해서 엉망으로 만든 후에 죽여 버리겠다. 그럼 누가 너를 죽였는지 네 애비가 찾지 못할 거다.”
“정말 바보네요.”
“뭐야?”
“아버지가 혈마사를 멸문시킨 이야기를 모르세요? 혈마사는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몇 달 만에 찾아내서 멸문을 시켰죠. 혹시 왜 그랬는지 알고 있나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지금은 적운상의 부인이 된 주양악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 이야기 때문에 젊은 여인들은 한때 일부러 납치되어 자신들의 연인들을 시험하기도 했었다.
두육택이 망설이며 갈등하는 기색을 보이자 적운혜가 무표정하니 말했다.
“할 수 있으면 해봐요. 사실 당신은 오늘 운이 좋았어요. 만약 아버지가 여기에 있었다면 당신은 단 일 초식도 받지 못했을 거예요.”
“네가 네 아비를 너무 믿는구나. 좋다. 그렇다면 잠시 동안 너는 나와 함께 다녀야겠다. 네 애비가 그리 대단하니 한 번 겨뤄봐야겠다.”
“말했잖아요. 당신은 아버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요. 내 동생에게도 당신은 십 초식도 못 버틸 걸요.”
“그거 흥미가 이는구나. 그럼 네 동생도 잡아야겠다. 네 동생은 어디에 있느냐?”
“나를 찾으러 나왔을 테니 아마 형산파에 있을 거예요. 내 동생과 겨룰 용기가 있거든 그리로 가 봐요.”
“클클. 어린 것이 제법 머리를 쓰는구나. 좋다. 가주지. 사람들이 왜 나를 반선도귀라도 부르는지 똑똑히 알게 해주마. 뭣들 하느냐? 어서 갈 준비를 해라.”
두육택의 말에 부상을 당한 살도와 귀도가 재빨리 주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마차를 한 대 구해왔다.
“가는 동안 너를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봐야겠구나. 하지만 무사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과연 당신의 뜻대로 될까요?”
“흥!”
코웃음을 한 번 친 두육택이 적운혜를 끌고 주점 밖으로 나갔다. 그걸 보고 화적성과 혁이태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지만 그게 한계였다. 부상이 심해서 더 이상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 * *
“여보! 여보!”
연무장에서 한창 땀을 흘리고 있는데 은서린의 목소리가 들리자 혁무한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숨이 차도록 달려와?”
“큰일 났어요. 이태가 왔는데 큰 부상을 당했어요.”
“뭐? 이태가?”
혁무한은 놀란 얼굴로 되묻다가 후다닥 의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막정위가 와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형님.”
“나도 모르겠네. 이렇게 크게 다쳐서는 자네만 찾았네.”
혁이태는 정신을 잃은 채 침상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화적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누워있었다.
“이자는 누구입니까?”
“파천일도 화적성일세.”
“그가 왜 이태와 함께 있는 겁니까? 혹시 둘이 비무를 하다가 이렇게 된 겁니까?”
“상처를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네. 일단 진정하고 잠시 있게나. 천고가 상태를 보고 있으니 별일 없을 거네.”
막정위의 말에 그제야 혁무한은 조금 마음을 가라앉혔다. 혁이태는 혁무한의 형인 혁강운의 아들이었다. 통천문의 차기문주로 정해져 있는 터라, 혁무한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런 꼴이 되어 있으니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음…….”
“이태야! 정신이 드느냐?”
대답은 혁이태가 아니라 화적성에게서 들려왔다.
“으…… 거 조금만 조용히……합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이태와 함께 이렇게 된 거냐?”
“두육택에게 당했소.”
“두육택? 혹시 반선도귀라 불리는 두육택을 말하는 거냐?”
“그렇소.”
“그자가 왜 이태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냐?”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화적성이 크게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적운혜 소저를 구하려다 그리 된 거요. 나도 마찬가지고. 두육택 그자가 적 대협의 딸인 적운혜 소저를 데려갔소.”
“적운혜라면…….”
혁무한이 막정위를 봤다. 그러자 막정위의 눈에 다급함이 서렸다. 적운휘가 말하던 누이가 틀림없었다. 그래도 확인 차원에서 다시 물었다.
“그녀가 적 사제의 딸이 확실한가?”
“그렇소. 직접 그렇게 말했소. 저기…… 증거가 있소.”
화적성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침상 한쪽에 태룡도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그의 이야기를 확신한 막정위가 불안감을 감추며 물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지?”
“이곳으로 올 거요. 두육택을 속여서 이곳으로 오게 했소. 그 사실을 알고 우리는 지름길로 먼저 온 거요.”
“자네는 이곳에 있게. 나는 가봐야 할 것 같네.”
“알았습니다.”
막정위는 급히 그곳을 나와 사제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방금 화적성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두육택을 찾으러 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 * *
“너는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두렵지 않으냐?”
마차 안에서 두육택이 적운혜를 보며 물었다. 지금 마차 안에는 단둘밖에 없었다. 살도와 귀도는 마부석에서 마차를 몰고 있었다.
“두렵지 않아요. 당신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든 당신은 반드시 죽게 될 테니까요.”
두육택이 뚫어져라 적운혜를 노려봤다. 정말 적운혜는 조금도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두육택이 아직도 적운혜에게 아무 짓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은 그녀의 말대로 적운상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적운상은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보통은 무림제일의 고수라고 하면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을 받는 한편, 그 무위를 확인하거나 명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도전을 받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에게만큼은 도전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가 보여준 인간 같지 않은 무위 때문이었다. 다른 것을 떠나서 등평도수를 하고 허공답보를 하는 고수를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그것을 한두 명이 봤다면 소문이 좀 과장되었거니 할 것이다. 하지만 적운상의 혼례식에 왔던 사람들은 천여 명이 넘었다. 그것도 모두가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누가 의심을 하겠는가?
두육택이 아무리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다지만 적운상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고,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운혜가 너무나 예쁜데다 묘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까지 있어서 이대로 놔주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품자니 두려워 두육택도 속으로는 조금 난감한 상태였다.
지금 형산파로 가고 있는 이유도 적운휘와 겨루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녀가 가자니까 가고 있는 것이었다. 적운혜와 함께 있는 핑계를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서 납득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두육택은 그녀를 데리고 가까운 객잔에 방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녀를 침대에 던져놓고 술을 시켜서 벌컥벌컥 마셨다.
지금껏 그는 술을 즐기기는 했지만 이렇게 마구 마신 적은 없었다. 악랄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두육택에게는 적이 많았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 암습을 당하지 몰라 항상 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시고 싶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두육택은 침대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는 적운혜를 봤다. 그녀는 마혈이 짚여 있어서 입을 열 수도 없었다.
“흐흐. 네 아비가 무섭냐고 했었냐?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당장에 보여주마.”
두육택이 음침한 기운을 풍기면서 적운혜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거칠게 그녀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그때였다.
“내 딸이 여기에 있다고? 어디냐? 어디에 있는 거냐?”
밖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두육택은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적운상이 온 줄 안 것이다.
“제길!”
두육택은 대도를 들고 방문을 열고 나가 밖의 상황을 살폈다.
그때 창문이 벌컥 열리면서 복면을 한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재빨리 적운혜를 둘러메고 창문을 부수며 밖으로 몸을 날렸다.
콰앙!
“뭐야?”
밖의 동정을 살피려다가 두육택이 놀라서 대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복면을 한 사내는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감히!”
두육택도 창문으로 뛰어내려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멀리서 지붕을 타고 달려가는 사내가 보였다. 그 짧은 시간에 저기까지 갔다니 경공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거기 서라!”
두육택이 사력을 다해서 그를 쫓았지만 그럴수록 거리만 더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