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6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67화
367화. 방문객 (2)
“뭐냐? 넌.”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연씨세가의 암영단 중 한 명이 묻는 말에 소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실 소년은 정말로 그냥 지나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암영단의 사내들은 자신들이 무시를 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양쪽이 대치해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이를 걸어가고 있으니, 괜히 신경에 거슬렸다.
“호왕문이냐?”
“아닙니다.”
“그럼 형산파냐?”
그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소년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뭐냐?”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질문을 했던 암영단의 사내는 소년이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에 좀 더 겁을 주려고 하는데 맞은편에서 호왕문의 포호대 네 명이 어기적거리면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뭐냐?”
“네놈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아이한테 볼일이 있을 뿐이다.”
포호대 중 한 명이 인상을 험악하게 쓰며 대답하고는 소년을 봤다.
“어디서 왔냐?”
“저쪽에서 왔습니다.”
“왜 여기에 온 거지?”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암영단이냐?”
“아닙니다.”
“그럼 형산파냐?”
“아닙니다.”
“그럼 뭐냐?”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암영단이 물었던 것과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그걸 보고 암영단의 사내들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보아하니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지금 누구 놀리는 거냐?”
포호대의 사내가 소년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험악한 분위기를 풍겼다. 웬만한 사람들은 그렇게 노려보면 기가 죽어서 시선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소년은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툭 질문을 던졌다.
“지금 저한테 시비를 거는 겁니까?”
“뭐?”
“저하고 싸우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쩔래?”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년의 손과 발이 움직였다. 발은 어느새 사내의 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다리를 걸고 손은 턱을 밀어올리고 있었다.
파앙!
“커헉!”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겁을 주려던 포호대 사내는 턱이 확 젖혀지자 몸이 뒤로 밀리다가 소년의 발에 걸려 붕 떠올랐다. 그리고 이 장 가까이 공중으로 떠오르던 사내는 땅에 내려서서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놀란 눈으로 소년을 봤다.
출수하는 기척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디를 어떻게 당했는지 아직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턱이 젖혀진다 싶은 순간 어느새 몸이 붕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이 자식이!”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보고 남은 세 명이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년은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드는데도 침착하게 우측에서 덤비는 사내에게로 움직였다. 그리고 아까 펼쳤던 초식을 다시 펼쳐서 발로 그의 다리를 걸고 손으로는 턱을 밀어젖혔다. 그러자 그 사내도 아까 그 사내와 마찬가지로 이 장이나 붕 떠올라 뒤로 날아갔다.
이어서 남은 두 명도 똑같은 초식에 당해서 뒤로 튕겨졌다. 그들은 소년이 같은 초식을 쓰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피하거나 막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당해야만 했다.
“좋다!”
포호대의 사내들이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모두 뒤로 튕겨지자 암영단의 사내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감탄했다. 그러자 포호대의 사내들이 발끈해서 양손에 호조를 꼈다. 진심으로 소년을 상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소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양손의 호조를 이용해서 마치 호랑이가 발톱을 세워 앞발을 휘두르는 것처럼 사납게 공격해갔지만 번번이 같은 초식에 당해서 튕겨져 나왔다. 발로 다리를 걸고 손으로 턱을 밀어젖히는 바로 그 초식이었다.
그게 자꾸 반복이 되자 암영단의 사내들은 멍하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의 싸움은 옆에서 보기에는 마치 장난을 치면서 노는 것처럼 보였다. 포호대의 사내들 네 명이 달려들면 젊은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같은 초식으로 튕겨내고 있었으니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풍겨내는 기세는 그렇지 않았다.
포호대의 사내들은 자신들이 놀림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에는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저 단순한 초식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뻔히 알면서도 당하는 기분이란 정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암영단 사내들은 소년이 계속 펼치고 있는 초식을 한 번 깨보고 싶은 승부욕이 생겼다. 그들도 무인인지라 가만히 보고 있자니 피가 끓었던 것이다.
“내가 한 번 해보겠다!”
암영단 중 한 명이 검을 뽑아 들고 소년을 찔러갔다. 노리는 곳은 어깨였다. 하지만 소년은 순식간에 그의 바로 앞에 나타나서는 역시나 같은 초식으로 그를 이 장 밖으로 던졌다.
“허…….”
그는 눈으로만 보다가 직접 당해보니 소년의 무공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포호대가 저렇게 당하고만 있는지 단번에 납득이 되었다.
“이번에는 나다!”
다른 사내가 검을 뽑아 들고 외치면서 소년의 하체를 베어갔다. 이렇게 하면 발로 다리를 거는 동작만큼은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소년의 재빠른 신법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알면서도 계속 당했던 이유는 소년의 신법이 워낙에 뛰어나서 제대로 공격을 하기도 전에 되레 당했기 때문이었다.
파앙!
검이 다리를 베어가기도 전에 소년은 그를 이 장 밖으로 날려 버렸다. 이쯤 되자 남은 두 명도 가만히 서있을 수만은 없었다. 두 사람 다 검을 뽑아 들고 동시에 소년을 공격해갔다.
“우리도 합세하자!”
먼저 튕겨졌던 암영단 두 명과 포호대 네 명이 거기에 합세를 했다. 총 여덟 명이 그를 포위하고 쉬지 않고 달려들었다.
언덕에서 내려오던 혁무한은 그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곤란을 당할까 도와주려던 마음은 이미 싹 사라져버렸다. 저 정도의 무공이라면 연씨세가의 가주인 연석강이나 호왕문의 문주인 마청기가 직접 온다고 해도 한 번 겨뤄볼 만했다.
‘누구지? 어째 낯이 익은데…….’
싸움을 지켜보던 혁무한은 소년의 얼굴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어디에선가 한 번 만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펼치고 있는 초식도 분명 전에 한 번 겪어봤던 초식이었다.
그때 멀리서 대치하며 지켜보기만 하던 암영단과 포호대 십여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동료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혹시나 다시 붙는 줄 알고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와서 보고는 놀라서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덟 명이, 그것도 연씨세가와 호왕문의 정예라는 암영단과 포호대가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년을 상대로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같은 초식 하나에 상처 하나 없이 이 장 밖으로 튕겨졌다가 다시 덤비는 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저, 저게 대체…….”
“헐…….”
그들은 끼어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소년의 무공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어쨌건 여덟 명이나 합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정을 봐주며 다치지 않게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희롱을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진지한 소년의 얼굴을 보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더 이상 해봐야 바뀔 것도 없고 승산도 없다고 생각한 사내들이 하나 둘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헉헉…… 져, 졌다. 도, 도대체…… 넌 누구냐?”
두 손 두 발 다 들은 포호대가 물었다. 어린 나이에 무공이 이리 대단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소년이 십분 양보를 해서 손에 사정을 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양보를 한 방법이 조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모두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놀린다는 생각에 인상을 팍 쓰던 사내들은 무표정하니 대답하는 소년을 보면서 생각을 조금 달리했다. 이제 보니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뭔가 대화의 핵심이 조금씩 엇나가고 있었다.
“그걸 묻는 것이 아니다. 이름이 뭐냐?”
“아, 이름을 묻는 것이었군요. 제 이름은 적운휘입니다.”
사내들은 소년의 반응을 보면서 자신들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았다. 소년은 대화법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묻는 말을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적운휘? 처음 듣는 이름이군.”
사내들은 적운휘라는 이름의 저런 젊은 고수가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하지만 적씨 성을 가진 사람은 기억에 없었다.
“사문이 어딘지 물어봐도 되겠냐?”
“사문은 없습니다.”
“그럼 누구에게 무공을 배운 거냐?”
“아버지와 어머니들께 배웠습니다.”
“끙.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 아니 이름이 어떻게 되냐?”
“아버지의 이름은…….”
적운휘가 대답을 하려는데 혁무한이 끼어들며 물었다.
“혹시 적운상 아니냐?”
생각지도 못한 말에 모두 혁무한을 봤다.
적운상이 누구던가?
현 무림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고수들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천하제일의 고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적운상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더욱이 적운상이 형산파 출신이다 보니 같은 지역에 있는 호왕문이나 연씨세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그에 대해서 잘 알았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적운상의 무용담을 들으며 웅지를 키울 정도였다.
그런 적운상이 아버지란 말인가?
사람들은 ‘설마’하는 눈빛으로 적운휘를 봤다. 그러고 보니 그는 성이 적운상과 같은 적씨였다. 단순한 초식을 그리 잘 쓰는 것도 과거 적운상의 싸움방식과 닮았다.
“맞습니다. 아버지는 적씨 성에 운자 상자를 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