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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5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9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56화

356화. 부자상봉 (3)

 

그때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지덕대사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대청 중앙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적운상을 향해 합장을 한 후에 입을 열었다.

“적 시주, 혹시 나를 기억하시오?”

뜬금없는 말에 적운상은 지덕대사를 잠시 응시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너무 어렸을 때라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구려. 빈승은 천룡사의 주지인 지덕이라고 하오.”

“모르오.”

“허허. 잘 생각해보시오. 어렸을 때 곧잘 천룡사로 오지 않았었소?”

“모르오.”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형산파로 오기 전의 일은 거의 기억하고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덕대사는 적운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적운상의 아버지인 적문후와 관계가 돈독했다. 그래서 서로 왕래가 잦았고, 당연히 적운상도 자주 봤었다.

십여 년이 지나 적운상의 모습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어릴 적의 모습이 약간은 남아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덕대사는 적운상의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닮은 적운상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적 시주를 오늘 처음 봤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낯이 익더구려. 그래서 한참이나 생각을 해보니 십여 년 전에 봤던 어린아이가 생각났소. 통통하니 살이 쪄서 해맑게 웃던 아이 말이오. 적 시주가 모르겠다면 적 장주에게 물어야겠구려. 적 장주.”

“말씀하십시오. 대사.”

“정녕 적 시주가 누군지 모르겠소?”

적문후도 적운상이 낯익기는 했지만 언제 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덕대사가 뭔가 알고 있는 것같이 말하자 웃으면서 물었다.

“대사께서 아시는 것 같으니 기억력이 떨어진 이 늙은이를 일깨워 주시구려.”

“하하하. 아무리 세월이 지났기로서니 어찌 아들조차 못 알아본단 말이오?”

지덕대사의 말에 적문후는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들이라니?

적문후에게 아들은 적상영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이내 기억 저편에 있는 옛일을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그렇소. 이렇게 장성해서 못 알아볼 뻔했지만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가 바로 장주의 아들인 적운상이오. 적 시주. 내 말이 맞지 않소?”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모두가 적운상을 쳐다봤다.

아까 적운상은 분명 적문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적교희는 누이동생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모두 의남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피가 섞인 것은 부인하지 않겠소.”

“허…….”

“아!”

적운상의 말에 여기저기서 허탈함과 놀라움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네가…… 네가 정녕 운상이란 말이냐?”

적문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핏줄이 당긴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사실 지덕대사나 황옥정도 알아본 적운상을 적문후가 알아보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적문후는 지금까지 적운상이 죽은 줄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적운상이 갑자기 사라진 이후로 적문후는 식음을 전폐하며 수개월 동안 찾아다녔었다. 강서지역은 안 찾아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 황옥정의 일처리가 워낙에 은밀해서 찾을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강서가 아닌 호남에 있는 형산파로 적운상을 보냈으니 더욱이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났을 때는 자연스럽게 죽었겠거니 했었다. 세상이 워낙 험한지라 아이 하나 죽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렇게 장성해서 나타날 줄 누가 알았을까?

더군다나 해룡방조차도 저렇게 몸을 사리는 천하제일의 고수라고 하지 않는가?

“운상아…….”

적문후가 적운상에게 다가가서 옷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너무나 기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이제 상황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 백면서생도 마찬가지였다. 적운상이 적문후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손을 떼야 했다. 보아하니 사이가 좋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어쨌건 부자지간이었다. 아버지가 잘못되는데 가만히 있을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

백면서생이 흑웅일도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여기서 물러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흑웅일도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적운상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본 것은 없었다. 아까 탈혼쌍도가 한 수에 당하기는 했지만 그건 그들이 적운상의 정체를 모르고 방심했을 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성격이 괄괄한 흑웅일도는 적운상과 한 번 겨뤄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개를 저은 것이다.

백면서생은 그런 흑웅일도가 답답했다. 적운상은 한 지역에서 간간이 이름을 떨치는 자들과는 달랐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고 명성이 난 사람이었다. 흑웅일도쯤은 탈혼쌍도와 마찬가지로 일 초식도 버티지 못할 텐데 저러니 용기가 아니라 만용으로 보였다.

“이쯤 하십시오.”

적운상이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적문후는 감정이 격해있어서 그러한 것을 전혀 몰랐다. 단지 사람들이 많은 데서 이러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에 그런다고만 여겼다.

“그래. 알았다. 허허.”

적운상은 어렸을 때 형산파로 보내놓고 연락 한 번 안 하다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반가운 척을 하는 적문후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진심이 전해져오고 있어서 조금 혼란스러웠고 그로 인해 짜증이 났다.

“당신들은 그만 돌아가시오.”

적운상이 표국주를 보며 말하자 그가 백면서생과 흑웅일도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갈 수는 없소.”

백면서생이 입을 열려는 찰나에 흑웅일도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당신의 명성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이번 일은…….”

“돌아가라고 했다.”

적운상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흑웅일도의 눈에서 투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잠깐…….”

콰앙!

흑웅일도는 충분히 방비를 하고 있었다. 적운상이 공격을 해온다고 해도 한 번 정도는 막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감만 그랬을 뿐 실력은 그렇지 못했다.

그걸 파악하고 있던 백면서생이 다급하니 소리를 쳤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적운상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어느새 흑웅일도 앞에 나타났고, 그걸로 끝이었다.

흑웅일도는 뒤로 날아가서 벽에 몸을 부딪치며 피를 토해냈다. 어디를 어떻게 당했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적운상이 움직이는 것조차 본 사람이 없었다.

“장 형!”

백면서생이 다급하니 흑웅일도를 부축했다. 다행히 그는 의식은 잃지 않고 있었다. 적운상이 많이 봐준 것이다. 그걸 눈치챈 백면서생이 적운상을 보며 말했다.

“손에 사정을 둬줘서 고맙소.”

“가시오. 따질 일이 있거든 이후에 다시 오시오.”

“그러리다.”

백면서생이 바로 대답을 하고 흑웅일도를 부축한 채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어정쩡하니 서있던 표국주도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들이 모두 가고 나자 지덕대사가 웃으면서 적문후를 향해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적 장주. 그리 찾던 아들을 이제야 찾았구려. 허허. 이리 대단하게 장성해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게 말이오.”

적문후는 눈물을 훔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감격에 겨워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냉정한 태도로 일관했다.

십여 년 만에 만난 아버지건만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운상이 기억하는 적문후의 모습은 늘 바쁘고 늘 냉정했던 모습뿐이었다. 그것도 세월이 많이 흘러 아주 조금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교희를 데려다주러 왔을 뿐입니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적문후와 지덕대사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러자 적문후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급하니 적운상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라.”

“왜 그러십니까?”

“이대로 돌아갈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안 된다. 못 간다. 어찌 이리 가려고 하는 거냐?”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교희를 데려다주기 위해서 왔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왕래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아들노릇, 아비노릇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살던 대로 그렇게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운상아…….”

적운상은 말없이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적문후의 손을 떨쳐냈다. 그러나 적문후는 다시 적운상의 팔을 잡았다.

“안 된다. 네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구나. 이 아비가 그동안 너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느냐? 이리 가겠다니 절대로 안 된다. 가려거든 나를 죽이고 가거라. 안 된다.”

적문후가 필사적으로 매달리자 적운상은 더 이상 뿌리칠 수가 없었다.

“원하는 것이 뭡니까? 해룡방이 두려워서 그러는 겁니까? 그렇다면 내가 그들에게 잘 일러놓겠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찾아오지 말라고. 그러니 이러지 마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이제야 네 덕을 보겠다고 이런다는 거냐? 네, 네놈이…….”

적문후는 적운상의 태도에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들었다. 그러나 적문후가 적운상을 때리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손을 휘두른 사람이 있었다.

백수연이었다.

“백 누이…….”

적운상은 적문후가 뺨을 때리려고 하자 자연스럽게 손목을 잡아채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백수연이 손을 휘두르자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백수연이 표독스럽게 쏘아보며 소리쳤다.

“놔!”

“백 누이…….”

적운상이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잡고 있던 백수연의 손목을 놓았다. 그러자 백수연이 다시 손을 휘둘러 적운상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짝!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운상이 누구던가?

무당삼현과 화산이로를 연속으로 격파하고 천하제일의 고수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적운상이 뺨을 맞다니, 더구나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아버님께 그게 무슨 무례야? 네게 어떻게 대했던 이분은 네 아버님이셔! 널 낳아준 분이라고! 그것만도 감지덕지해야지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가 있어? 아버님이 네 팔을 잘랐어? 다리를 잘랐어? 그도 아니면 너를 죽이려고 하셨어? 널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하고도 웃으면서 잘 지내면서 걱정에 지쳐 포기하고 상심했던 아버님에게 어떻게 그렇게 대할 수가 있어? 대답해봐, 적운상!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그런 마음으로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나중에 양악이의 아이와 내 아이가 그런 너를 어떻게 생각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버님의 마음을 그렇게 모르겠어?”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나무라는 백수연의 모습을 보면서 적운상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백수연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백수연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인 백태정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어머니의 정은 알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정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없는 것을 늘 미안해하며 어머니 몫까지 하려는 아버지의 따뜻함 속에서 커왔던 것이다.

“빨리 아버님에게 잘못했다고 해.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날 볼 생각하지 마.”

적운상은 백수연을 보면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까지 화를 내면서 말하는 백수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지금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정말 안 보려고 할 수도 있었다.

“알았어.”

백수연의 어깨를 다독여준 적운상이 적문후를 봤다.

“잠시 무례했습니다. 해룡방과의 일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이곳에서 머물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무, 물론이다. 이곳이 네 집이지 않느냐?”

“그럼 신세를 지겠습니다.”

“아니다. 그런데 소저는…….”

“처음 뵙겠습니다. 호남 장사에 있는 천응방의 장녀 백수연이라고 합니다. 아드님과 혼약을 한 사이입니다. 원래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당시에는 아버님께서 계시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아니오. 허허. 천응방이라면 이 늙은이도 들어본 기억이 있소. 뛰어난 도공(刀工)들이 그곳에 많다고 들었소. 잘 오시었소. 자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장소를 옮깁시다. 여러분도 다 같이 오십시오. 오늘 이 적 모가 크게 한턱 내겠습니다.”

“하하. 저리 훌륭한 아들과 상봉을 했는데 그럼 그냥 넘어가려고 했단 말입니까?”

지덕대사의 말에 모두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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