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99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99화
제10장 장자지몽 (1)
조윤이 나루터에서 일을 처리하는 걸 지켜본 추자감은 크게 감동했다. 힘이 있으나 함부로 쓰지 않고, 적절한 방식으로 중재해서 일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런 조윤이 이끄는 신의문에서 아들이 의술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신의문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조윤 일행을 반겼다. 기라와 이자림은 조윤이 올 때면 항상 정문 앞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이 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덩달아 함께 기다리곤 했다.
“오셨군요. 스승님.”
“어서 오십시오.”
“이러지 마시라고 했는데도 그러시는군요.”
“하하. 좋아서 하는 거니 말리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날이 좋아 잠시 산책을 나온 것뿐입니다.”
기라가 하는 말에 조윤은 웃음이 나왔다. 날씨가 이리 추운데 날이 좋아 산책을 나왔다니,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두 분 사모님께서도 오셨군요.”
“별고 없으셨죠?”
“물론입니다.”
당효주는 살갑게 그들과 인사를 나눴고, 낙소문은 살짝 목례만 했다.
“이분은 추가장의 장주이십니다. 장남이 여기에서 의술을 공부한다고 합니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오셨으니 지내는데 불편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추자감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이리로 오시오. 일단 쉴 곳을 안내해드리겠소. 이후에 아들을 찾아봅시다.”
“고맙습니다.”
조윤이 안으로 들어가자 마중을 나와 있던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그러자 각자의 일을 하던 이들이나 심지어 환자들까지 조윤을 보고 인사를 했다.
조윤은 그게 부담이 되어서 처음에는 절대로 못하게 말렸었다.
하지만 어째 바뀌지를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 죽어 가던 지인들을 살려주고,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은혜를 입었다.
또한 의원들은 예전보다 몇 배나 좋은 환경에서 의술을 공부할 수가 있게 되었다. 더구나 천하오대신의보다 실력이 더 높다는 조윤이 아니던가?
하니 아무리 말려도 다들 조윤만 보면 인사를 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조윤은 시녀에게 차를 부탁하고 자리에 앉아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일은 천하오대신의가 알아서 다 처리를 했다. 그러나 꼭 그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일단 급한 것부터 확인을 했는데도 어느새 한 시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조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풀면서 창가로 갔다.
이곳은 삼 층이라서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보였다. 여러 채의 건물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것이 보였다. 환자와 의원 외에도 많은 이들이 있었다.
현대에서라면 꿈에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정수현은 동생인 하연이를 살리기 위해서 오로지 의학만 공부했었다.
그러나 하연이는 그가 치료를 하기도 전에 죽었다. 그 허탈함에 정수현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었다. 한데 깨어나 보니 조윤이 되어 있었다.
그때 정수현의 나이가 스물여섯 살이었다. 지금 조윤의 나이도 스물여섯 살이다. 같은 스물여섯 살인데 극과 극이었다.
멀리서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나는 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태삼목이었다.
조윤은 그를 보자 미소가 지어졌다. 태삼목은 의술 말고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조윤에게 선뜻 문주자리를 넘겨주지 않았던가?
“왔느냐?”
빠르게 울리는 발소리가 나더니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는 조윤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던 일을 전부 제쳐두고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물론이다.”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연구에 뭔가 성과가 있으신 것 같군요.”
“보면 알 것이다. 함께 가자꾸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조윤은 확인하던 서류를 한쪽으로 잘 정리를 한 후에 태삼목을 따라나섰다.
그는 예전에 그의 조부가 머물던 초옥으로 갔다. 문주에서 물러난 이후로 태삼목은 모든 연구를 그곳에서 했다. 이에 조윤이 올 때마다 그곳으로 가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보거라.”
태삼목이 흥분하면서 내미는 것을 본 조윤은 적지 않게 놀랐다. 그건 현미경이었다. 휴대용으로 쓰는 작은 거였으나 그것만도 이곳에서는 굉장히 귀했다.
“이걸…… 어디에서 찾으신 겁니까?”
“흐흐.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리 와 보거라.”
태삼목이 조윤의 손을 잡아끌고 한쪽 방으로 갔다. 그러더니 선반에 놓인 그릇을 돌렸다.
쿵!
“어?”
“여기에 비밀통로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아냈다. 횃불이 있어야 하니까 잠시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태삼목이 횃불을 가지러 간 사이 조윤은 바닥에 생긴 틈을 살폈다. 아까 선반 위의 그릇을 돌리자 생긴 거였다. 그걸 밀자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정도의 통로가 나왔다.
때마침 태삼목이 횃불을 가지고 왔다.
“가자꾸나.”
* * *
통로는 밑으로 향해 있다가 앞으로 쭉 뻗어있었다. 태삼목을 따라 한참을 가자 조금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여기다.”
태삼목이 벽에 있던 횃불에 불을 밝혔다. 그러자 안이 환해지면서 주위가 보였다.
거기에는 각종 의료기구가 잔뜩 놓여 있었다. 대부분 현대에서 쓰던 것들이었다. 그걸 살피던 조윤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예전에 봤던 것처럼 전부 현대에 있던 물건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보다 조금 못했다. 전부 이곳에서 만든 것이다.
좌측 벽에는 온갖 약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환약이 종류별로 있었다.
가까이 가서 그걸 살펴보던 조윤은 크게 놀랐다. 약을 분류하기 위해 적어놓은 글씨 때문이었다.
‘영어다!’
오래돼서 많이 지워졌으나 영어가 분명했다. 이런 곳에서 영어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조윤이 놀라서 글씨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태삼목이 다가왔다.
“이곳은 조부님의 비밀 연구실이었던 것 같네.”
“화타가 아니고요?”
“그분은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네. 신의문의 시조이기는 하지만 그분의 흔적은 자네가 봤던 유물 몇 개가 다라네.”
알 수가 없었다. 화타가 현대에서 온 사람인 건 확실했다. 그러나 태삼목의 조부는 아니었다. 한데 어떻게 영어를 아는 걸까?
혹시 이 그릇도 유물일지 몰라 자세히 살펴봤으나 아니었다. 그때 태삼목이 조윤을 향해 책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이걸 한 번 보게. 알아볼 수 있겠나?”
조윤이 받아보니 의술 서적이었다. 한데 한자가 아니라 영어로 쓰여 있었다. 그림도 있었는데, 원래는 사진이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가 현대의 책을 베껴서 사본을 만든 것이다.
“알아볼 수 있겠나?”
“네. 예전에 스승님에게 배운 적이 있는 문자입니다.”
“그게 정말이나? 오…… 역시 자네에게 보여주기를 잘했군. 나는 여기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했다네. 하지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뭘 연구하셨던 건지는 알 수가 없었지.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나? 혹시 조부님의 연구일지는 아닌가?”
“아닙니다. 이건 의술서의 사본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럼 원본이 있다는 뜻인데, 아, 혹시 화타가 쓴 책일 수도 있겠군. 맞아. 그렇지 않으면 조부님이 그런 사본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내용이 궁금하군. 뭐에 대한 건가?”
조윤이 잠시 살펴보니 의술 전반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이었다.
“어르신도 대부분 아는 내용입니다. 의술의 기초학입니다.”
“그런가?”
태삼목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그는 이곳을 발견하고 잔뜩 기대를 하면서 조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그럴 듯한 성과가 없자 허탈한 심정마저 들었다.
“조금 더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일세.”
조윤은 세심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태삼목의 조부는 어쩌면 현대에서 온 걸지도 모른다. 여기에 적혀 있는 영어는 전부 그 의미를 알고 적은 것이었다. 태삼목의 조부가 화타가 남긴 것을 연구해서 영어를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쓰인 것을 보면 마치 한자보다 영어가 편하다는 듯이 적어놓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생각을 했었는데 자신의 경우를 생각하니 금방 이해가 되었다.
조윤은 현대에서 정수현으로 지내다가 눈을 뜨니 이곳에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랬던가?’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인 종이들을 보다가 작은 수첩을 발견했다. 그걸 펼쳐보니 일기였다. 전부 영어로 쓰여 있었으나 조윤은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했다.
“그게 뭔가?”
“아마도 어르신의 조부님이 남긴 일기 같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어디 한 번 보세나.”
태삼목이 크게 놀라며 조윤의 손에 있던 수첩을 가져갔다. 그러나 전부 영어로 쓰여 있는 것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허 참. 이래서는 못 읽겠군. 자네는 뜻을 알 수 있겠지.”
“저도 배운 지 오래되어서 전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한 번 보겠습니다.”
“그래주게.”
조윤이 수첩의 내용을 봤다. 거기에는 태삼목의 조부가 이곳에서 지내다가 죽기까지의 과정이 적혀 있었다. 간단하게 몇 글자만 적혀 있는 날도 있었고, 꽤 장문으로 적어놓은 날도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날에 적어놓은 것을 보고 조윤은 적지 않게 놀랐다.
‘이럴 수가…….’
“왜 그러는가?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는 건가?”
조윤의 표정이 심상찮은 것을 보고 태삼목이 물었다. 그러나 조윤은 수첩의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아냈다.
* * *
조윤은 현기증이 일어 잠시 비틀거렸다. 그러자 태삼목이 부축을 해줬다.
“자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는 건가?”
“후우……. 잠시만 시간을 좀 주십시오. 혼자서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습니다.”
“음, 알겠네. 하면 잠시 나갔다가 오겠네.”
“죄송합니다.”
“아닐세. 대신에 좀 진정이 되면 무슨 내용인지 전부 이야기를 해줘야 하네.”
“물론입니다.”
“그럼 한 식경쯤 뒤에 오겠네.”
태삼목이 그렇게 말하고 그곳을 나갔다. 홀로 남은 조윤은 몇 번 심호흡을 했다.
그는 지금껏 현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곳에 적응하기에도 벅찼고,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미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모르기에 돌아갈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태삼목의 조부는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든 현대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수첩의 내용을 보면 태삼목의 조부는 의술을 연구하는 한편 현대로 돌아가려는 방법을 부단히 찾아다녔다. 그 때문에 막대한 돈이 들었으나 신의문의 문주인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당파의 도사를 한 명 알게 되었는데, 그 역시 현대에서 온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함께 현대로 돌아갈 방법을 연구했고, 드디어 그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맞는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찾은 방법이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태삼목의 조부는 높은 곳에서 사고로 떨어졌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 세계였다. 그리고 무당파의 도사도 상황이 비슷했다. 암벽등반을 하던 도중 실수로 떨어졌는데 이곳이었다.
그건 조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연이가 죽고 나서 그가 자살을 선택한 방법이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같은 방법으로 이곳에서 죽으면 현대로 갈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정말 그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첩 마지막 장에는 무당파의 도사가 먼저 그 방법을 택했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태삼목의 조부도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렇게 하기로 정했다고 적혀 있었다.
수첩의 내용을 몇 번이나 읽은 조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충격이 컸으나 생각해보니 그럴 이유가 없었다.
조윤은 현대로 갈 마음이 없었다. 이곳에는 그가 사랑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한 현대에 있을 때보다 훨씬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죽을 때가 되면 한 번 생각해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조윤은 수첩을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니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