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98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98화
제9장 흘러가는 시간 (2)
관도를 따라 한참을 이동하자 작은 강이 나왔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나루터였다. 거기에서 강을 건너야 했다.
한데 그 앞에서 수십 명의 무인들이 한창 싸움을 하고 있었다.
조윤은 고삐를 잡아당겨 마차를 세웠다. 그러자 추자감이 옆으로 와서 물었다.
“싸움이 진정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조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싸우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 *
“괜찮을까요?”
추자연이 물었다. 그러나 추자감은 뭐라고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조윤이 천하제일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목세가의 가주이자 신의문의 문주이니 무공을 할 줄 알거라 생각되지만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았다.
지금 나루터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얼추 백 명 가까이 되었다. 그들 틈에 끼어들면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무슨 일이죠?”
“단목 대협이 싸움을 말리려는 것 같습니다.”
추자감이 걱정이 되어 말했으나 당효주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천하에 조윤을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이 몇이나 될까?
이미 약관의 나이에 강기를 다루던 조윤이었다. 걱정을 해야 할 건 조윤이 아니라 그를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언니도 낄 거예요?”
“아니.”
당효주의 말에 낙소문이 짧게 대답했다. 추자감은 두 사람이 너무나도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자 어째서 조윤을 걱정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잠시 후, 곧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싸움을 멈추시오!”
조윤이 내공을 담아서 소리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한창 싸움 중인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조윤을 쳐다봤다. 하지만 워낙에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 갑자기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조윤은 몸을 날려 그들 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휘둘러오는 검을 피하면서 손목을 비틀고 몸을 회전시켜 옆에서 휘둘러오는 도와 검을 옆구리에 끼웠다. 그 상태에서 세 사람의 무기를 더 빼앗은 후에 내공을 끌어올렸다.
“핫!”
짧은 기합이 조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손과 옆구리에 끼워져 있던 무기들이 일제히 날아가서 사람들을 쳤다.
“컥!”
“뭐, 뭐야?”
다섯 명이 당했지만 죽은 사람은 없었다. 다들 고통에 신음하며 땅을 뒹굴고 있었다.
“공격해!”
“죽어라!”
동료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 무사들이 검과 도를 휘둘러왔다. 조윤은 그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한 명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가 확 딸려오다가 몸이 붕 뜨면서 그대로 자빠졌다. 조윤이 당긴 힘을 이기지 못해 생긴 현상이었다.
찰나에 옆에서 누군가가 검을 찔러 왔다. 조윤은 살짝 뒤로 한 걸음을 물러나며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그가 검을 찔러오던 자세 그대로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등부터 땅에 떨어졌다.
쾅!
“컥!”
조윤이 움직였다. 사방에서 무사들이 공격을 해왔다. 그때마다 조윤은 그들의 손목을 잡거나 어깨를 잡아 눌렀다. 손목을 잡힌 사람들은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서 빙글 돌아 허공에서 거꾸로 처박혔다.
어깨를 잡힌 사람은 맥없이 픽픽 주저앉았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누르는 것 같은 압력에 다리가 풀려버린 것이다.
잠깐 사이에 그렇게 스무 명이 넘게 당하자 무사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조윤은 성큼성큼 걸어가 아직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손목이나 어깨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상대와 싸우면서도 조윤이 동료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봤다. 그런 꼴을 당하느니 싸움을 멈추고 물러나는 것이 나았다.
이제 남은 건 딱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무공이 월등히 뛰어났다. 한창 싸우는 와중에 가끔씩 서로에게 검기를 날리고 있었다. 그런 것으로 봐서 양쪽의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조윤은 두 사람 사이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갔다. 그리고 서로를 공격하던 검을 손가락만으로 잡았다.
“헉!”
“무…… 무슨…….”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며 조윤을 봤다. 한창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에 끼어든 것으로도 모자라 조윤은 손으로 검신을 잡아서 멈추게 했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검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공을 운용해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조윤이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고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싸움을 멈추시오.”
조윤이 잡고 있던 검신을 놓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두 사람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힐끗 자신들의 부하들을 봤다. 서 있는 사람들보다 누워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더구나 대부분 조윤이 지나온 길을 따라 자빠져있었다.
“음…… 당신은 누구요?”
“단목조윤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름만 밝혀서 충분했다. 그 정도로 조윤의 명성은 높았다.
“천하제일의?”
“맞소.”
“하…… 소도파에서 당신을 부른 거요? 능력도 좋군.”
사내가 허탈한 듯이 말했다. 단목조윤이 누구던가?
단목세가의 가주이자 신의문의 문주였고, 수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었다. 선의로 의술을 베풀어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시기심과 질투로 그를 비방했다가 수많은 사람의 돌팔매질을 받았던 사건은 이제 대단하게 생각되지도 않는 일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권력세가나 강호에서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무림세가 역시 그에게는 무조건 한 수 접어줬다. 난다 긴다 하는 의원들 대부분이 단목세가나 신의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니오. 나는 소도파가 어디있는지도 모르오.”
“그럼 왜 우리를 공격한 거요?”
“나는 단지 싸움을 멈추게 하고 싶었을 뿐이오. 자세한 이야기는 부상당한 사람들을 살펴본 후에 합시다.”
조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부상당한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당했던 사람들은 전부 타박상이었다. 멍은 좀 들었을지언정 크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전에 서로 휘두르는 검과 도에 다친 사람들은 상처가 중했다.
조윤은 그들의 상태를 살피면서 빠르게 응급처치를 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낙소문과 당효주가 와서 도왔다.
“상처가 중한 사람들은 이쪽으로 옮겨주세요. 조심조심해야 해요. 상처가 벌어지면 안 돼요. 경상을 입은 사람들은 저쪽에서 잠시 기다리시고요.”
당효주가 멀뚱멀뚱 서 있는 무사들에게 겁도 없이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그들이 잠시 망설이다가 곧 당효주의 말대로 따랐다. 동료들을 치료해주는데 뻗댈 이유가 없었다.
낙소문은 말없이 가볍게 다친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했다. 원래 그녀는 의술을 몰랐다. 그러나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어깨너머로 배운 의술이 제법 뛰어났다.
선녀처럼 아름다운 낙소문이 거리낌 없이 몸에 손을 대며 치료를 하자 다친 사람들은 넋을 잃고 쳐다봤다. 어떤 사내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렇게 일차적인 치료가 대충 끝나자 조윤이 양쪽의 수장을 불렀다.
“미안하오. 주제넘게 끼어들 생각은 없었소. 하지만 이곳은 무림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오가는 나루터요. 이렇게 싸우다가 그들이 다칠 수도 있기에 끼어든 것이오. 게다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칼보다는 말로 해결을 하시오. 정 칼을 휘둘러야 한다면 비무로 결정을 하고. 이리 목숨을 걸고 서로를 죽이려 드는 것은 자멸을 뜻하오. 사람이 있어야 문파도 있고 세력도 있는 것 아니겠소?”
맞는 말이었다. 큰 문파에서도 일을 해결할 때는 가급적 말로 한다. 정 안 될 경우 비무를 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 이런 전쟁이었다.
목숨을 걸고 서로 칼부림을 하면 반드시 사상자가 나온다. 그게 누가 되었든 그만큼 전력이 줄어든다. 운이 나빠 문파의 장이나 후계가 죽게 되면 그때는 정말 철천지원수가 된다.
“음…… 단목 대협의 고견이 옳습니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는 소도파의 부방주인 한태라고 합니다.”
“저는 우화방의 방주인 손부라고 합니다. 평소 명성을 듣고 흠모하고 있었는데 이리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왕지사 이리된 것 조금 더 도움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한태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조윤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말해보십시오.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 돕겠습니다.”
“이곳 나루터는 원래 소도파에서 관리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우화방에서 욕심을 내서 빼앗으려 들려기에 이런 상황까지 왔습니다.”
“한태!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이곳이 어째서 소도파의 것이란 말이냐? 그게 아닙니다. 단목 대협. 저자의 농간에 속지 마십시오.”
“뭐야? 네가 아직 혼이 덜 났구나.”
“흥! 그런 실력으로 누구를 혼내겠다는 거냐?”
“두 사람 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시오.”
조윤이 중재를 하자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다가 검에까지 손을 가져갔으나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조윤은 조용히 말을 했으나 그 목소리에 담겨진 힘이 사뭇 대단했다.
은근한 기세에 눌려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조윤의 눈치를 살폈다.
* * *
“우화방에서는 왜 갑자기 이곳을 원하는 거요?”
조윤이 묻자 우화방의 부방주인 손부가 난감해하며 대답을 했다.
“갑자기가 아닙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공들 중 한 사람이 내 먼 친척입니다. 한데 소도파에서 부당하게 돈을 뜯어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아봤더니 사실이었습니다.”
“당치 않은 소리! 누가 부당하게 돈을 뜯어간다는 거냐?”
“흥! 그럼 말을 해봐라. 네놈들이 사공들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는 거냐?”
“우리가 물러나면 우화방이라고 다를까? 그냥 돈 때문에 이곳을 빼앗으려 한다고 솔직히 말해라. 가증스럽게 둘러대지 말고.”
조윤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왜 이렇게 싸우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에 어떻게 할지를 잠시 고민했다.
가장 좋은 건 이들 모두 이곳에서 얼쩡거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개입을 할 거라면 확실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안 그럼 당장은 따르는 척을 해도 나중에 보복을 하거나 은근슬쩍 손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럼 사공들이 괴로우니 안 도와주느니만 못하다.
“두 분의 말을 들어보니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겠소.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갔으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이리 내용을 상세하게 알게 되었고, 소도방에서 도움을 청하니 주제넘게 개입을 하겠소.”
조윤이 운을 떼자 두 사람이 조용히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선 소도방은 이곳에서 물러나시오.”
“하지만 그건…….”
한태가 뭐라고 반발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조윤이 손을 들어 제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화방에서는 이곳을 관리하되 돈을 받지 마시오.”
“음…….”
조윤이 말한 건 양쪽에 모두 이득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손해를 봤다. 소도방은 이곳의 수익을 잃었고, 우화방은 이곳을 관리하며 돈 한 푼 받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제시한 것이 싫다면 말하시오.”
당연히 싫었다. 그러나 한태와 손부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위기가 왠지 싫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묻겠소. 싫다면 지금 말하시오. 혹여 추후에 어느 쪽이든 지금 정한 것을 어길 시에는 단목세가와 신의문을 무시한 걸로 알겠소.”
“아, 아닙니다. 따르겠습니다.”
“우화방에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단목 대협이 직접 그리 말을 하시니 따르기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리하면 어느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합니다. 그건 대협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바로 사공들입니다.”
“아.”
그제야 한태는 물론이고 손부도 조윤이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생각해보시오. 이곳의 사공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오. 그런 사람들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소? 그런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는다는 건 여러분 같은 협객들이 할 일이 아니오. 사내답지 못하지 않소? 여러분이 무공을 익힌 이유가 뭐요? 몸과 정신을 굳건히 해서 스스로를 지키고 가족과 지인들을 지키고 더 나아가 나라가 부강해지기를 바라서 그런 것 아니오?”
조윤의 말에 두 사람은 멍하니 할 말을 잃었다.
“혹시 사공들에게 돈을 걷지 않으면 소도파와 우화방이 살 수 없는 거요? 그렇다면 말을 하시오. 내 그 돈을 대신 주리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세상엔 받아도 될 돈과 받지 말아야 할 돈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조윤이 준다는 돈은 절대로 받아서는 안 되는 돈이었다. 그들은 그 뒷감당을 할 자신도 없었고, 힘도 없었다.
“잘 생각하셨소.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하시오. 적극 나서서 중재를 해드리겠소.”
절대로 그럴 일은 없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조윤이 나서면 무조건 피해 다니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