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97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97화
제9장 흘러가는 시간 (1)
태삼목은 끈질겼다. 조윤이 가는 곳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계속 문주가 되라고 권유했다. 그러니 주위에서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조윤이 곧 신의문의 문주가 될 거라는 이야기가 일파만파 퍼졌다. 행사가 끝나서 돌아간 사람들도 많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도 꽤 됐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좋은 일이라 했고, 어떤 이들은 나쁘게 생각했다. 그러나 신의문의 문주인 태삼목이 이미 정한 일이었다. 신의문에서 그의 한마디는 절대적이었다.
더군다나 태삼목 말고도 천하오대신의가 전부 조윤을 인정하고 있었다. 앞서 보여준 의술도 대단했기에 시간이 흐르자 결국 조윤이 신의문의 문주가 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되었다. 이에 조윤은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해야 했다.
“좋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문주가 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하하.”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 말해보게나.”
“앞으로 오 년 동안 오대신의가 전부 신의문에 머무는 겁니다.”
“음……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닐세.”
“안 된다면 저도 안 하겠습니다.”
“그들을 붙잡아두려는 이유가 뭔가?”
“신의문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그만큼 떠돌았으면 이제는 정착을 해서 후학을 양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 그렇지. 그래야지.”
태삼목은 조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러나 사실 조윤은 혼자 고생할 것 같아서 그들을 끌어들이려는 것뿐이었다. 천하오대신의가 모두 모여 있으면 그들의 활용도가 굉장히 컸다.
조윤이 나서지 않아도 웬만한 일들은 그들 손에서 다 해결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들 모두 한곳에 메여 있기를 싫어했고, 우선은 황궁어의라 이곳에서 오 년이나 지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일이 틀어지면 그걸 핑계로 단목세가로 돌아가려고 했다. 태삼목은 그런 조윤의 의도를 전혀 모른 채 네 사람을 설득하러 다녔다.
기라와 이자림은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들은 조윤과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아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이 있다 여겼기 때문이다.
반양도 의외로 순순히 응했다. 그는 조윤이 말한 항생제를 함께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문제는 우선이었다. 우선은 황궁어의였다. 황궁을 오래 떠나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황제를 협박하다시피 해서 나와 있는 거였다.
하지만 태삼목이 계속 설득을 하고 미끼를 던지자 결국 걸려들고 말았다.
“알았네. 그럼 황상께 고하고 이리로 오겠네. 안 된다면 어의를 그만두고서라도 오겠네. 암, 그래야지.”
“하하. 잘 생각했네.”
태삼목이 찾아와서 모두 함께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이제 조윤도 더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조윤이 그렇게 승낙을 하자 태삼목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마침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따로 초청장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그들 모두가 증인이 되면 되는 것이다.
태삼목은 불과 사흘 만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조윤에게 후다닥 문주 자리를 넘겨버렸다.
조윤은 한숨을 푹 쉬면서 조직개편부터 했다. 현대의 병원처럼 치료를 분야별로 나누고 거기에 천하오대신의를 한 명씩 장으로 임명한 후에 건물을 한 채씩 내줬다.
환자들을 그에 맞춰서 옮기고 머물고 있는 의원들도 원하는 곳에 가서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갑작스러운 이동에 의원과 환자들이 혼란스러워했으나 곧 그게 굉장히 효율적이라는 걸 알고 조윤을 칭송했다.
“대충 다 아셨을 테니 이제 저는 단목세가에 다녀오겠습니다.”
“안 오는 것은 아니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태삼목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조윤은 인상을 팍 쓰면서 대답했다. 그런데도 조금 불안했는지 태삼목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만약 자네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전부 단목세가로 옮겨 갈 걸세.”
“알았으니까 가셔서 하던 일이나 마저 하십시오. 저는 내일 일찍 떠날 겁니다. 인사를 드리지 못할 것 같아 미리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알았네. 허허. 그럼 잘 다녀오시게나.”
태삼목이 나가자 조윤은 자리에 앉아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의문의 문주가 되고 나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신의문은 덩치만 컸지 전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방법을 일러주고 확인을 해야 했다.
당연히 아직 할 일이 많았지만 곧 중추절이었다. 그 전에는 단목세가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조윤은 일행과 함께 신의문을 나섰다.
* * *
단목세가에 도착하자 공소가 나와서 반겼다. 그날 저녁 조윤은 세가 사람들을 전부 불러놓고 신의문의 문주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서 두각을 좀 드러낼 줄 알았지 저리 문주가 되어서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럼 단목세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육예가 걱정을 하며 물었다.
“똑같아. 그저 내가 신경 써야 할 곳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야. 신의문은 안휘에 있어. 거리가 멀어 서로 부딪칠 일은 없어.”
“이번 중추절의 행사가 중요하겠군요.”
공소의 말에 조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윤은 단목세가의 재건을 알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중추절에 단목세가의 재건을 알리고 혼인식을 할까 합니다.”
“오…….”
“잘 생각하셨어요. 가주님!”
“멋지십니다.”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그러자 당효주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다만 낙소문은 언제나 그렇듯 무표정했다.
“그날 많은 객이 찾아올 겁니다. 그러니 소홀함이 없이 준비를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단목세가는 분주해졌다. 손님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하면서는 더 바빠졌다. 당문에서는 가주인 당수백이 직접 십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왔다. 아미파에서는 정절사태가 몇 명의 제자들과 왔고, 청성파는 이번에 새로 장문인이 된 현진이 사형제들과 함께 왔다.
인근에 있는 군소방파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러던 중 무당파의 장문인인 심허진인이 옥승진인과 함께 오자 난리도 아니었다.
먼발치에서라도 그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뒤이어 신의문에서 천하오대신의가 왔다. 그들이 조윤을 문주라고 부르자 사람들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그 많은 이들이 전부 조윤 한 사람을 보고자 온 것이다. 이에 당수백은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혼인식이 시작되었다.
붉은색 예복을 입고 붉은색 망으로 얼굴을 가린 두 명의 신부가 조윤의 양쪽에 섰다. 조윤 역시 오늘은 붉은색 옷을 입었다. 예부터 붉은색은 좋은 일을 뜻했다.
조윤이 당효주와 낙소문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정면에는 태삼목이 앉아있었고, 좌측에는 당수백과 제갈지인, 그리고 우측에는 낙명호와 유영영이 앉아있었다.
세 사람은 그들 앞에 서서 절을 했다. 그러자 축사와 함께 덕담이 이어졌고, 곧 식이 끝났다. 이에 신부 두 명은 방으로 가고 조윤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다.
늦은 밤까지 축하를 받으면서 술을 마신 조윤은 간신히 빠져나가 신방으로 향했다. 벌주니 뭐니 해서 제법 많이 마셔서 약간 취기가 돌았다.
조윤은 내공을 운용해서 술기운을 손끝으로 몰았다. 그러자 잠시 후 손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쉬고 신방으로 가려는데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당예상과 흑묘였다.
“축하해.”
“축하드려요.”
“두 사람 다 고마워.”
그 말이 다였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조윤도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조윤은 두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받아줄 수가 없었다. 이미 낙소문과 당효주를 선택했고 후회는 없었다.
“갈게.”
“응.”
“두 사람도 좀 더 즐겨.”
조윤은 뒤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말하면서 신방으로 갔다. 문을 여니 낙소문과 당효주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다 혼인식 때 쓰고 있던 붉은 면사를 아직도 하고 있었다. 그건 첫날밤 신랑이 걷어 내주기 전까지는 아무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조윤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면사를 걷었다. 낙소문의 예쁜 얼굴과 당효주의 귀여운 얼굴이 나타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행복하게 살자.”
“네.”
“물론이에요.”
“아들딸 많이 낳고.”
조윤의 말에 당효주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리고 낙소문은 생긋 미소를 지었다.
* * *
그날 이후 조윤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덕분에 단목세가는 예전보다 더 발전하고 있었다. 신의문도 조윤이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체계를 잡고 뜯어 고친 덕에 몰라보게 바뀌었다.
조윤은 몇 달씩 돌아가면서 단목세가와 신의문에서 지냈다. 그때마다 항상 낙소문과 당효주가 따라다녔다.
솔직히 행복했다. 하는 일은 다 잘되고, 아름다운 두 명의 부인이 늘 함께했다.
어쩔 때는 혹여 이 행복이 깨질까 불안할 정도였다. 그렇게 몇 년이 훌쩍 지났다.
당효주가 임신을 했다. 그러자 낙소문도 곧 아이를 가졌다. 당효주는 그녀를 꼭 닮은 딸을 낳았고, 다음 해에 낙소문은 든든하니 아들을 낳았다.
사람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조윤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즐거웠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지나자 당효주가 또 임신을 했다. 이번에도 딸이었다.
어느덧 조윤의 나이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그는 천하제일의(天下第一醫)라 불리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또한 두 명의 아내가 있었고,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아, 추워.”
당효주가 망토를 여미면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조윤이 미소를 지었다. 당효주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도 여전했다.
“오라버니. 추운데 객잔에서 쉬었다 가면 안 되나요?”
“그럴까?”
조윤이 긍정의 뜻을 내보이자 함께 있던 낙소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늦어도 사흘 안에는 신의문에 도착해야 한다는 걸 잊은 건 아니죠?”
“하하. 물론이지. 하지만 날이 춥잖아. 아직은 여유도 있고.”
조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낙소문과 당효주의 손을 잡아끌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당효주가 응석을 부리면 조윤은 한 번도 거절을 하지 못했다. 물론 낙소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으나 그녀는 그렇게 애교스럽지 않았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객잔 안에는 손님이 많았다. 조윤이 낙소문, 당효주와 함께 들어서자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사내들은 낙소문과 당효주를 훔쳐봤고, 여인들은 안 보는 척하면서 조윤을 봤다.
“자리가 없나?”
“합석이라도 괜찮으면 제가 손님들께 부탁을 해보겠습니다.”
“그래주게.”
조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점소이가 자리가 빈곳이 있나 둘러봤다. 그때 안쪽의 탁자에 앉아있던 중년인이 조윤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혹시 천하제일의 단목 대협이 아니신지요?”
“맞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하하. 그럼 여기 아름다운 두 분께서는 사천이봉(四川二鳳)이시겠군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낙소문과 당효주를 하나로 묶어서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낙소문은 그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당효주는 달가워했다. 이에 당효주가 끼어들며 물었다.
“맞아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죠?”
“저는 추가장의 추자감이라고 합니다.”
“추가장이면 서창(西昌)현의 세력가라고 들었어요. 그곳을 말하는 건가요?”
“오…… 부인께서 식견이 탁월하시군요. 맞습니다. 서창추가입니다.”
추자감이 슬쩍 띄워주자 당효주가 흡족해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요즘 그녀는 그런 재미에 무림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고 있었다.
“보아하니 자리가 없어서 곤란하신 것 같은데 함께하시지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조윤은 사양하지 않고 추자감을 따라가 합석을 했다. 거기에는 추자감의 아들과 딸이 함께 있었는데, 둘 다 십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인사해라. 이분은 천하제일의 단목조윤 대협이시다.”
“처음 뵙겠습니다. 추공이라고 합니다.”
“추자연이에요.”
“반갑구나.”
다들 자리에 앉자 점소이가 왔다. 조윤은 간단한 요리와 술을 시켰다.
“단목 대협, 혹시 신의문으로 가는 길입니까?”
“그렇습니다.”
“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도 함께 가면 안 되겠습니까? 마침 저희도 신의문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신의문에는 무슨 일로 가는 겁니까? 혹시 아픈 사람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실은 장남이 거기에서 의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렇군요.”
“하하. 단목 대협처럼 훌륭한 의원이 되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아드님이 신의문에서 의술을 배운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올해로 팔 년이군요.”
“그럼 제법 잘하겠군요. 어느 분과입니까?”
“내상치료를 주로 배운다고 들었습니다.”
“좋군요. 내상치료에 대한 건 한때 황궁어의였던 우선 님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잘 대해주신다고 하더군요.”
“오라버니. 추 장주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식구나 마찬가지네요. 함께 가요.”
“그렇잖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하하.”
식사가 끝나자 일행은 객잔을 나왔다. 추자감과 남매는 말을 타고 왔기에 그대로 가고, 조윤 일행은 마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