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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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86화
제4장 변화 (3)
지금까지 조용히 지켜만 보던 장문인이 나섰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현진아.”
“네. 장문인.”
“이제 그만해도 된다.”
장문인이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다. 애초에 내가 생각을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호갑신단이 청성파에 큰 발전을 가져올 거라 여겼다. 하지만 욕심에 눈이 멀어 모두를 진창 속에서 헤매게 만들었다.”
거기까지 말한 장문인이 모두를 봤다. 장내는 이미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다는 아니지만 장문인처럼 후회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장로들에게 묻겠다. 아직도 청성파에 호갑신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선뜻 대답을 하는 장로가 없었다. 그러다 한 명이 나서며 말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습니다. 장문인.”
“정말 그리 생각하는가? 그대는 현진의 노력을 보고 뭘 느꼈는가? 나는 청성파의 긍지를 봤네. 청성파의 자존심을 봤네. 그렇지 않은가?”
“어이없이 패배하는 것이 청성파의 긍지이자 자존심이란 말입니까?”
“정말 그리 생각하는가?”
장문인의 눈이 사납게 변했다. 그 같은 기세에 장로가 움찔했으나 이미 뱉은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하면 아까 그대는 왜 나서지 않았는가?”
“그건…….”
“아직도 버리지 못했는가!”
장문인이 크게 호통을 치자 장로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왜 그랬는가? 다 청성파가 잘되기를 원해서 그런 것 아니던가?
“장문인도 함께하지 않았었습니까?”
“그랬기에 후회를 하고 있다.”
“그래서 멈추겠다는 겁니까?”
“이전부터 그러자고 하지 않았던가?”
“보십시오. 청성파는 저런 어린놈 하나 이기지 못합니다. 현진은 후기지수 중 최고입니다. 한데 저자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습니다. 정녕 청성파에 미래가 있는 것입니까?”
“하하하하.”
장문인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자 장로가 인상을 썼다. 어이가 없다는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방금 봤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나이가 어리다 하나 강기를 다루는 것을 똑똑히 보지 않았나? 저자를 누가 이길 수 있나? 그대가 나서지 않은 것도 그래서가 아닌가?”
“그렇기에 하는 말 아니오?”
“하면 호갑신단을 먹으면 이길 수 있나? 두 번이나 세 번을 복용해서 일갑자의 내공이 는다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장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기는 내공만 강하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공은 물론이고 강기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했다.
장문인이 장로를 지긋이 보다가 그 뒤에 있는 이들을 봤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내 잘못이 크나 자네들 역시 생각이 짧았어. 다들 이제는 늙은 게지. 해서 나는 이제 장문인을 그만두려고 하네.”
“안 됩니다, 장문인.”
현진이 외치자 장문인이 미소를 머금었다.
“현진아.”
“네. 장문인.”
“앞으로는 네가 청성파의 장문인이다.”
“네?”
“장문인! 그게 무슨 말이오?”
“현진이 장문인이라니!”
장로들이 반발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장문인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현진에게 계속 말했다.
“너밖에 없구나.”
“아닙니다. 장문인도 계시고 장로님들도 있는데, 제가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내가 벌인 일은 내가 해결할 것이다. 네게 짐이 되지 않도록 해 보마.”
장문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내공을 실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청성파의 문도들은 들어라!”
장문인이 들고 있는 검은 청성파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이었다. 또한 장문인을 상징하는 검이기도 했다. 이에 모두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장로들은 탐탁지 않았으나 장문인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건 청성파의 제자임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하니 일단은 따라야 했다.
“현진을 장문인으로 인정하나니 모두 따를지어다.”
“명을 받듭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청성파의 제자들이 일시에 대답을 했다. 그러자 장문인이 현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현진은 검을 받으라.”
“명을 받듭니다.”
현진이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어 검을 받았다. 원하지 않는 일이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내 할 일을 해야겠구나. 모두 들어라. 나와 장로들은 한순간의 탐욕으로 청성파의 명성에 누를 끼쳤다. 이에 앞으로 십 년 동안 규정동에서 수행을 할 것이다.”
“장문인!”
“말도 안 되오!”
장로들이 소리치면서 항의를 했다. 그걸 보고 장문인이 현진의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걸어가며 외쳤다.
“누가 반(反)하는가? 앞으로 나서라. 내 직접 목을 칠 것이다.”
“장문인! 이건 정말 아니오. 이래서는 안 되오.”
“그래야 하겠다면 입을 놀리지 말고 검을 들라.”
“장문인!”
“나는 더 이상 장문인이 아니다. 장문인은 저기에 있지 않더냐? 나는 이제 너희의 사형일 뿐이다.”
크게 소리치면서 내공을 일으키자 폭풍과 같은 기세가 장로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로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건 단순한 기세가 아니었다. 기세 속에 강력한 살기가 실려 있었다. 그는 정말 자신들을 죽이려는 것이다.
“사형이 어찌 이럴 수가 있소?”
“시끄럽다! 따르지 않을 자들만 앞으로 나서라!”
누가 나서겠는가?
그동안 장문인을 구속할 수 있었던 것은 장로들이 합심을 해서 대항을 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지금은 장로들 중 반 이상이 후회를 하며 장문인의 뜻에 따르려 했다.
억울함에 반대하는 장로는 겨우 세 명에 불과했다. 물론 그들 세 명이 합공을 하면 장문인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장로들이 과연 가만히 있겠는가?
새로 장문인이 된 현진 역시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터, 해 보나 마나 한 싸움이었다.
장문인은 장로들을 차갑게 노려보다가 현진을 봤다.
“뒤를 부탁한다.”
“장문인…….”
현진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장문인의 판단은 옳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청성파는 바뀔 수가 없었다.
장문인이 조윤을 향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네. 그대로 인해 탁해진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가 있었네.”
조윤은 말없이 그의 인사를 받았다. 그러자 장문인이 묘한 눈빛으로 잠시 쳐다보다가 곧 몸을 돌려 장로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 * *
창문 밖으로 보름달이 떴다. 넓은 방 안에서 홀로 창을 통해 달을 올려다보는 현진은 입맛이 썼다.
청성파가 바로 서기를 원했으나 이런 식은 아니었다. 장문인이 장로들과 함께 규정동으로 간 이후로 한차례 반발이 있었다.
평소 장로들을 따르던 현적이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현진을 끌어내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 쓰디쓴 맛을 봐야 했다.
현적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 호갑신단 덕에 내공이 늘었다지만 현진의 적수는 아니었다. 더구나 지켜보고 있던 조윤이 끼어들어 도움을 주자 너무나 쉽게 끝이 나버렸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현진이 벽에 걸려 있는 검을 봤다. 장문인에게만 전해지는 보검이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사문의 어른들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심적인 부담과 불안이 컸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나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조윤이었다. 현진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늦은 밤에.”
“잠깐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조윤이 들어오자 현진이 자리를 권하고 차를 따라서 내밀었다. 그러자 조윤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용건을 말했다.
“내일 떠나려고 합니다.”
현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조윤을 봤다. 조윤 덕분에 청성파가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다들 조윤을 좋게 보지 않았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조윤 때문에 장문인과 장로들이 규정동에 갔다. 더구나 조윤은 자신들의 치부를 알고 있어 껄끄러웠다. 이에 현진은 조금 더 머물다 가라고 하지 못했다.
“당문으로 가십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단목세가를 재건할 생각입니다.”
“쉽지 않겠군요.”
“신년이 되면 연락을 한 번 하겠습니다. 그때 시간이 되면 와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꼭 가겠습니다.”
“늦었지만 장문인이 된 걸 축하합니다.”
조윤이 웃으면서 말하자 현진도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청성파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나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이번에 받은 도움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현진이 진중하게 하는 말을 듣고 조윤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그러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할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말하십시오.”
“낙 소저의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조윤은 현진이 그동안 낙소문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윤이 그걸 굳이 현진에게 이야기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말을 한 것뿐이었다.
“하아……. 그렇게 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한숨 섞인 말이었다. 정말 축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그럼 할 말을 다했으니 이만 가겠습니다.”
“가십시오.”
조윤이 방을 나갔다. 그럼에도 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이나 그렇게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