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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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48화
제248화. 신마(3)
끝 간 데를 모르고 치솟았던 정파의 사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은운곡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정파는 소림의 자오 대사를 잃고 남궁의 장로, 점창의 장로를 잃었다.
그리고 데리고 갔던 정파 무인들 삼백여 명이 전사했다.
“그렇게 후퇴를 하는 것이 아니었소. 분명 우리보다 은운곡의 피해가 더 막심했었단 말이오. 피해를 감수하고 밀어붙였다면 벌써 은운곡을 함락시켰을 거요.”
당가의 장로가 불만을 토로하자 청성의 장로가 그 말을 받았다.
“하나 우리 쪽 피해도 만만치 않았소. 특히 사련에서 나온 고수들의 무공은 참으로 대단했소. 그놈들이 그렇게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쳐들어간 우리의 잘못이오.”
“자, 자. 진정들 하시오. 어차피 은운곡은 우리 수중에 떨어질 거요. 첫 번째 전투에서 패했다고 이렇게 의기소침해 있다면 제자들과 가인들의 사기는 더욱 떨어지게 될 거요. 며칠 쉬면서 재정비를 하고 다시 출전합시다.”
제갈세가의 장로 제갈습이 나서서 장로들을 진정시켰다.
장로들도 그의 말을 옳게 들었는지 더 이상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제갈습은 제갈세가의 인물답게 그럴듯한 계책 하나를 내놓았다.
“삼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계책이 실패한 것은 무인들이 따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오. 다음번 공격은 고수들을 따로 뽑아 먼저 적들을 유인한 다음에 대규모 병력으로 정면을 치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소.”
“옳은 말씀이오. 역시 제갈세가는 다르구려.”
“맞소. 놈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더욱 거세게 저항을 할 것이니 퇴로를 열어 주어 우리 측의 피해를 줄여야 하오.”
이의를 제기하는 장로들이 없자 제갈습은 자신의 계책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직접 안쪽으로 들어갈 고수들을 선발하겠소.”
“수고해 주시오, 제갈 장로.”
장로들은 제갈습에게 전권을 넘겨 버렸다.
제갈세가가 권력을 얻는 것은 경계해야 했으나 앞으로 벌어질 싸움에서도 패배를 한다면 짊어지게 될 부담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제갈습도 장로들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달콤한 권력도 얻을 수 없었다.
***
숭산에 도착한 비강은 산을 오르기 전에 객잔을 찾아들어갔다.
아직 이른 점심때라 그런지 객잔에는 손님이 몇 명 없었다.
비강이 빈자리에 앉자마자 점소이가 다가왔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손님.”
젊은 점소이는 흉터가 가득한 비강의 얼굴에 잔뜩 겁을 먹었다.
“두부요리와 밥을 다오. 한 사람이 더 올 것이니 넉넉하게 준비해 주었으면 하는구나.”
“술은 필요 없으신지요?”
“백주가 있으면 한 병만 가져다주고.”
비강이 수고비를 쥐어 주자 점소이는 넙죽 허리를 숙였다.
잠시 후 두부요리와 함께 술이 나왔다.
비강은 맞은편에 놓인 빈 잔에 먼저 술을 채웠다.
빈 잔에 술을 채우자마자 객잔 문이 열리며 육선풍이 들어섰다.
육선풍은 비강을 향해 넙죽 허리를 숙이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드시오, 육 호법.”
“감사합니다, 교주님.”
두 사람은 동시에 술잔을 들어 비웠다.
“육 호법의 식사까지 준비했으니 어서 드시오.”
하하……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 육선풍은 얼른 수저를 집어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이곳저곳을 살피느라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교주님 말씀대로 가려 뽑은 녀석들로 열 명을 준비했습니다. 지금 사방에 흩어져 쉬고 있는데 어찌할까요?”
“식사가 끝나는 대로 그들을 모아 소림으로 올라오시오. 그리고 일이 끝나는 대로 서안으로 돌아가 살가와 무각주를 제갈세가로 보내 주시오.”
“알겠습니다, 교주님.”
서둘러 식사를 마친 육선풍은 객잔을 나갔다.
비강도 식사를 끝내고 객잔을 나섰다.
숭산으로 향하던 비강은 수많은 향화객들과 섞이게 되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소림으로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강호인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소림을 오르고 있는 향화객들은 홀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비강의 얼굴을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거미줄 같은 검상으로 가득한 얼굴 때문이었다.
비강의 얼굴을 흘깃거리는 자들 중에는 젊은 무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남녀로 구성된 네 명의 젊은 무인들이었다.
호기가 만장한 젊은 무인들은 비강에게 다가왔다.
“그 얼굴로 소림에 들어가게 되면 소림승들이 놀라 자빠질 거요.”
비강은 젊은 무인들의 말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피식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일부러 그런 검상을 그려 넣기도 힘든데 어디서 그런 상처를 얻으셨소?”
“천하제일인이 그려 주더이다.”
응?
젊은 남녀 무인들은 얼른 비강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하하하……
한참 그러다가 겨우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설마 천하제일인이었던 시천세를 말하는 거요?”
“그렇소.”
푸하하하하하……
젊은 무인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럼 당신이 무림맹의 오진권 맹주나 남궁휘 부맹주라도 된다는 거요?”
비강은 웃으며 왼손을 들어 보였다.
왼손의 검은 반지를 발견한 그들은 또다시 웃어 젖혔다.
하하하하하……
“참으로 재미있는 사람이로군. 이미 죽은 자의 흉내를 내고 있다니. 이름이 어떻게 되오?”
“비강이오.”
“정말 못 말리겠군.”
젊은 무인들은 비강이 지금 말장난을 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소림의 산문이 보이기 시작하고 향화객들은 활짝 열어 놓은 산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산문을 지키는 두 명의 승려는 인자한 얼굴로 반장을 하며 향화객들을 안으로 맞이해 들였다.
스으으으……
산문이 가까워지자 비강의 전신에서 살을 에는 살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던 젊은 무인들은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췄고 향화객들은 산중에서 범이라도 만난 듯 그 자리에 서서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비강의 몸에서 흘러나온 살기는 소림승들이 지키고 있는 산문까지 집어삼켰다.
일개 소림승들이 비강의 살기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컥! 커억!
소림승들은 피를 게워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강은 주저앉은 소림승들의 사이를 지나쳐갔다.
꽈지지직! 쿠쿵!
비강이 산문을 지나가자 높이 솟아 있던 산문은 반으로 쪼개져 양옆으로 쓰러졌다.
아아악! 아악!
그제야 향화객들은 비명을 질러 대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콰콰콰…… 콰쾅!
산문을 들어선 비강은 하얀 악마를 불러내 불전을 부숴 버렸다.
꽈드드드드…… 콰쾅!
불전이 쓰러지며 뿌연 먼지를 피워 올렸다.
쓰러진 불전의 지붕 위로 사뿐히 올라선 비강은 눈앞에 보이는 또 다른 불전을 향해 종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쾅! 콰쾅! 콰콰쾅……!
예기를 머금은 강기들이 무더기로 날아가 불전의 기둥들과 대들보를 부숴놓았다.
콰드드드드……. 쿠쿵!
또다시 불전 하나가 주저앉자 사방에서 소림 무승들이 쏟아져 나왔다.
“백팔나한진을 발동하라!”
소림승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고, 비강은 기다렸다는 듯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똑. 똑……
붉은 핏물이 검신을 타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비강의 눈앞에 서 있는 자들은 겨우 스무 명 남짓이었다.
끌끌끌끌……
늙은 노승은 피를 뒤집어쓴 채 서 있는 비강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 노승은 강호에서 금강선사로 불렸고 나이가 많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오늘만은 그의 정신이 멀쩡했다.
“무신이 마왕의 심보를 가졌구나. 감히 신성한 불전을 어지럽히고 살생을 하다니…….”
비강은 금강선사의 꾸짖음을 맞받아쳤다.
“신성이라고 했나? 탐욕에 찌든 자들이 모여살고 있는 곳을 어찌 신성한 장소라 할 수 있겠느냐?”
끌끌끌…….
“마왕 놈아. 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우리 소림승들이 비록 탐욕에 찌들었을지 몰라도 부처를 모시는 불전은 언제나 신성한 곳이로다. 그러니 우리를 죽일지 언정 더 이상 불전은 어지럽히지 말거라.”
“목숨보다 불전이 더 중요하단 말이냐? 그것이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 주지.”
비강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금강선사는 주먹을 내질렀다.
쐐애액,
비강이 얼굴을 젖히자 몸뚱이를 당장이라도 뭉개버릴 것 같은 강력한 풍압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뺨이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금강선사는 공중으로 몸을 띄우며 양 주먹을 뻗어 냈다.
강력한 풍압이 날아들고 그에 맞서 하얀 악마들이 튀어 나갔다.
하얀 악마들은 풍압을 잡아먹고 금강선사와 뒤에서 달려들고 있는 소림승들을 휩쓸었다.
콰콰콰…… 콰쾅!
하얀 강기로 이루어진 악마들은 금강선사와 소림승을 휩쓸고 지나가 뒤에 서 있는 불전까지 찢어발겼다.
“미안. 당신이 말한 소원을 깜빡 잊었어.”
끄르르르……
사지가 찢어져나간 금강선사는 마지막 힘을 다해 비강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 잔인한…….”
털썩.
금강선사가 쓰러지자 비강은 아직도 두 발로 버티고 서 있는 소림 장문인을 향해 걸어갔다.
쿨럭! 쿨럭! ……!
그가 기침을 할 때마다 입안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비강이 일장 앞까지 다가갔지만 소림 장문인은 철장을 땅에 짚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부디…… 쿨럭…… 강호에 자비를…… 쿨럭…… 베풀어 주시오…… 정파는 너무도…… 많은 시련을…… 겪었소.”
비강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장문인의 목을 쳐 냈다.
“교주님.”
등 뒤에서 육 호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강이 몸을 돌리자 육 호법과 수하들이 허리를 숙였다.
“너무하십니다. 교주님과 함께 소림을 깨부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었소. 값나가는 것들을 찾아 신교로 옮기시오.”
“존명. 한데 아직 남아 있는 불전들은 어찌할까요?”
비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을 내놓았다.
“그냥 놔두시오.”
“알겠습니다.”
소림을 나선 비강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소림을 찾아왔던 수많은 향화객들이 멀찍이 물러서 소림을 나서는 비강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비강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숭산을 내려갔다.
“백리혈이 살아 있었어.”
“백리혈이 아니라 이제는 마교의 교주로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소림을 저 꼴로 만들어 놓았으니 마왕이라 불러야겠지.”
“마왕이 무신이라니…… 도대체 강호 무림이 어찌 되려고 그러는지…….”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는 비강을 놀렸던 젊은 무인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지금 공포에 질려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광포한 죽음이 자신들의 곁에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은 그 죽음을 알아보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젊은 무인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마…… 마신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겠어.”
“무신이자…… 마왕이니…… 신마라 칭해야 할 거야.”
가려 뽑은 정파의 무인들이 은운곡을 달려 올라갔다.
거침없이 은운곡을 치고 올라간 무인들이 마주한 것은 쓸쓸하게 비어 버린 전각들이었다.
무인들은 눈에 보이는 전각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해 보았지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쌀가마니들만 남아 있었다.
“도망쳤군.”
뒤늦게 은운곡을 밀고 올라온 제갈습이 보고를 받고는 탄식을 쏟아 냈다.
하아……
“어찌 이렇게나 간교하단 말이냐. 사군아…… 사군아…… 너를 살려 두면 강호의 큰 우환이 되겠구나.”
당가의 장로가 제갈습의 탄식을 듣고는 얼른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분명 사련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오. 추격해야 하오.”
제갈습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계집은 분명 무인들을 여럿으로 나누어 사련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오. 뭣들 하느냐? 어서 추격하라!”
제갈습의 명령이 떨어지자 선두에서 치고 올라왔던 무인들은 다시 은운곡을 달려 내려갔다.
그들의 선두에는 당가의 장로가 함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