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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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44화
제244화. 마교(3)
두궁천을 좇아 은운곡에 도착한 오진권과 남궁휘는 산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구경하며 계단을 밟았다.
“은운곡의 경치는 언제 봐도 천하제일인 것 같소.”
“강호를 평정한 후에 무림맹을 이곳으로 옮깁시다.”
왜 여태까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확실히 새로운 무림맹의 자리로 이만한 곳은 없었다.
두 사람은 계단을 밟아 은운곡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청목들 사이로 전각들이 보이고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각들 앞에 일천 명이 넘는 무인들이 오진권과 남궁휘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인들의 중앙에는 두궁천과 벽사군이 나란히 서서 두 사람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흘러가는 상황이 뜻 같지 않다면 바로 몸을 빼야 하오, 부맹주.-
남궁휘는 오진권의 전음을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약 십장의 거리를 격하고 멈춰 선 오진권은 먼저 정중하게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
“무림맹 맹주 오진권이 은운곡 곡주를 뵈오이다.”
“어서 오세요, 오 대협, 남궁 대협.”
벽사군도 손을 모아 예를 표하기는 했으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여전히 아름답군.’
오진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벽사군을 응시하다가 두궁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대는 어찌하여 황곡 무인들을 해하고 도망을 쳤느냐? 우리는 곡주님의 영을 받아 그대를 추포하고자 한다!”
오진권의 당당한 일갈은 사정을 조금도 모르고 있는 은운곡 무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갑작스럽게 불려 나온 그들은 곡주와 두궁천을 향해 일제히 시선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두궁천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나를 해치려 한 것은 그대들이 아니었던가. 나는 곡주께 새해 문안인사를 드리려 황곡을 방문했을 뿐이다.”
흥!
오진권은 코웃음을 치며 두궁천의 말을 반박했다.
“언젠가 간악한 사련이 강호 무림을 어지럽힐 것이란 짐작은 하고 있었다. 너는 일월신교의 발호를 이용해 강호를 어지럽힐 속셈이 아니었더냐. 너는 주인으로 모시던 동천의 검신을 배신했고, 이제 일월신교와 짝이 되어 황곡의 곡주까지 배신했구나.”
오진권의 자신의 말에 저들이 전부 속아 넘어갈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일천 명이 넘는 무인들만 웅성거릴 뿐 벽사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군사께서는 저자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년 사내가 무인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군사? 은운곡에 군사가 있었던가?’
무림맹의 정보망에 은운곡의 군사는 없었다.
당황한 오진권은 사내의 얼굴을 살폈다.
“공의라 합니다.”
그래, 이자가 바로 공의였다.
서패의 총관으로 있다가 황곡으로 들어갔다는 바로 그자였다.
“곡주님께서 황곡을 비우신 모양이로군요. 벽 총관과 종 여협은 어찌 되셨습니까?”
“그들은 여전히 황곡에 있소.”
오진권이 대답을 마치기 무섭게 공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노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네놈은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만약 그분들이 그곳에 계셨다면 너희들이 아니라 종 여협과 화 여협 같은 분들이 여기 두 련주를 추격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묻겠다, 그분들은 어찌 되었느냐?”
‘제길.’
파팍!
오진권과 남궁휘는 동시에 발끝으로 땅을 밀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쐐애애액!
그리고 그 순간 두궁천의 대도가 오진권을 향해 쏘아져 날았다.
쾅!
가슴을 파고드는 대도를 검으로 후려친 오진권은 그 반동을 이용해 더 멀리 튕겨져 날아갔다.
“쫓아라!”
벽사군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일천여 명의 무인들은 일제히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죽었겠군.’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두궁천은 벽 총관과 종예의 죽음을 직감했다.
그들이 죽었다면 다른 자들도 대부분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강호 무림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전쟁이다.
시천세가 돌아온다면 무림맹과 정파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란 뜻인가.’
오진권과 남궁휘가 황곡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일월신교 때문일 것이다.
정파와 일월신교가 싸움을 벌인다면 정파는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결국 정파는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시천세의 발아래 엎드려 꼬리를 쳐야 한다.
그래서 개가 주인을 문 것이다.
선두에서 달리던 두궁천은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어차피 저들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사 따라잡는다고 해도 홀로 저 둘을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나도 적당히 몸을 빼야겠군.’
검신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려 땅을 적셨다.
황곡에 있는 무림맹 무인들을 전부 베어 버린 황옥은 깊게 땅을 파기 시작했다.
깊게 땅을 판 그는 옆에 놓여 있는 관을 땅속으로 집어넣어 앉혔다.
그리고 흙을 덮기 시작했다.
네 개의 무덤은 다섯 개로 늘어났다.
후우……
무덤을 만들고 길게 한숨을 내쉰 황옥은 어디선가 술을 찾아와 무덤 위에 뿌렸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황곡에 돌아와 마주한 것은 무림맹 무인들과 재가 되어 버린 동료들이었다.
재가 되어 버린 동료들 중에 화옥봉도 있을 것이다.
무림맹 무인들을 전부 베어버리고 단 한 명만 살려놓았다.
그자의 입을 통해 일의 전모를 알게 된 황옥은 그자의 목마저 베어버렸다.
‘복수는 해야겠지.’
주공의 원수는 연비강이었으나 그에게 복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왠지 몰라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그에게 있었다.
그러나 정파는 달랐다.
황옥은 몸을 돌려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주공과 주공의 사제들, 그리고 동료들까지 전부 죽었다.
이제 이 세상에 오직 혼자만이 살아남았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던 그는 고개를 돌려 시천세의 무덤을 쳐다보았다.
“곧 따라가겠습니다, 주공.”
황곡에 도착한 오진권과 남궁휘는 죽어 나자빠진 무림맹 무인들을 허탈하게 둘러보았다.
이들을 이끌고 십만대산을 치려했었다.
그런데 전부 죽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
오진권의 의문에 남궁휘는 손을 들어 무덤을 가리켰다.
“저길 보시오, 맹주.”
원래 네 개였던 무덤이 다섯 개로 늘었다.
새로 생긴 무덤은 만들어 놓은 지 채 하루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저 무덤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설마…….”
설마 시천세가 주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니라면 사천존이 나란히 누워 있을 리 없었다.
“그자가 이겼소, 맹주.”
남궁휘는 비강이 시천세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음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연비강이 이곳으로 와 수하들을 전부 죽이고 시천세를 묻어 주었단 말이오?”
의문을 표하던 오진권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누군가 전각을 돌아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작은 키에 퉁퉁한 몸, 그리고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은 그가 황곡의 고수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황옥.”
오진권은 황옥을 알고 있었다.
황옥은 태연하게 건포까지 씹고 있었다.
“개가 주인을 물었구나. 기분이 어떻더냐?”
오진권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기분 나쁜 놈이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에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가 시천세를 묻어 주었느냐?”
황옥은 손에 들고 있던 건포를 입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진권과 남궁휘는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로 시천세가 죽었다.
죽음과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무신이 연비강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여, 연비강은? 연비강은 어찌 되었느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오진권은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황옥은 투명한 눈으로 오진권과 남궁휘를 바라보며 건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어떤 대답을 내놓는 것이 좋을까?
주공이 일방적으로 패해 목숨을 잃었다고 할까, 아니면 연비강이 팔다리까지 잘렸다고 할까.
“죽었다. 당연한 질문을 하는군.”
오진권과 남궁휘가 바라 마지않던 대답이 황옥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 사실이냐?”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도 믿지 못하겠나.”
맞다.
생각해 보니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연비강이 살아 있었다면 황옥을 무사히 살려 보내 주지 않았을 것이다.
흐흐, 흐흐흐…… 흐하하하하하……!
오진권과 남궁휘는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웃어댔다.
웃고 있는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까지 흘러내렸다.
고통과 울분의 세월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이제 사련만 정리한다면 강호 무림은 원래의 주인인 자신들의 것이다.
자신들은 강호제일인이자 고금 제일의 영웅으로 불릴 것이다.
몸까지 떨며 웃어 대고 있는 오진권과 남궁휘를 지켜보던 황옥의 눈이 빛을 발했다.
스…… 악.
황옥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면전으로 들이닥친 황옥은 그들의 목을 베어 냈다.
희열과 환희에 젖어 있던 두 사람은 황급히 신형을 비틀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버린 일격필살의 일검은 오진권의 어깨를 가르고 남궁휘의 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콰쾅!
뒤늦게 오진권과 남궁휘가 휘두른 검에 황옥이 튕겨 날아갔다.
오진권의 왼쪽 어깨가 뭉텅 잘려 나갔고 남궁휘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줄줄 흘렀다.
“이놈!”
오진권과 남궁휘의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휘황한 빛에 휩싸인 두 개의 검신과 휘황한 빛에 휩싸인 검신 하나가 부딪쳤다.
콰쾅! 쾅! ……!
분열한 신형과 휘황한 검신은 사방을 가득 메웠다.
스걱. 스걱,
오진권의 검은 황옥의 팔을 잘랐고 남궁휘의 검은 등을 갈랐다.
팔을 자른 오진권은 다리마저 베어 냈다.
철퍽!
끄으으으……
바닥에 주저앉은 황옥은 가는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크하하하하……!
오히려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소를 토해 냈다.
스걱!
순간 오진권의 검이 황옥의 목을 치며 지나갔다.
퉤!
“빌어먹을 새끼.”
오진권은 황옥의 목을 자르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시신에 침을 뱉었다.
“매…… 맹주…….”
목을 움켜잡은 남궁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괜찮소?”
남궁휘에게 급히 다가간 오진권은 그의 목을 살폈다.
조금 깊게 베인 상처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안에 약재와 금창약이 있을 거요. 어서 들어갑시다.”
오진권은 남궁휘를 전각 안으로 이끌었다.
짐작보다 상처는 심각했다.
급한 상황이라 금창약을 바르고 깨끗한 헝겊으로 감싸기는 했지만 의원을 불러야 할 정도였다.
남궁휘를 쉬게 하고 의원을 불러 오기 위해 밖으로 나온 오진권은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런 소리에 발을 멈췄다.
잠시 후 파르라니 깍은 머리의 소림 무승들이 그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던 오진권의 안색이 활짝 펴졌다.
“됐어. 이제 됐어. 과연 소림이야.”
“아미타불! 맹주를 뵙습니다.”
무승들 또한 오진권을 발견하고는 반장을 하며 예를 올렸다.
“잘들 오셨소이다. 한데 자오 대사께서는 어디 계시오?”
“간악한 국원과 장룡을 처리하고 무림맹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듣자 하니 제갈 군사께서 살수의 암습으로 인해 입적하셨다 합니다.”
“무슨…… 제갈 군사가 죽었다고 하셨소?”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된 오진권은 크게 놀랐다.
“아미타불. 그렇게 들었습니다.”
“이런…….”
제갈 군사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매양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
그로 인해 언젠가는 그를 죽여 없앨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제갈 군사의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부탁이 하나 있소. 무림맹에 전해야 할 말이 있는데 이곳을 점령하는 중에 무인들을 전부 잃었소. 해서 여러분들 중에 두 분이 다시 무림맹으로 돌아가 이곳의 상황과 내 말을 전해 주셨으면 고맙겠소.”
중년의 무승이 앞으로 나와 말을 받았다.
“대사님께서 맹주님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복종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명령을 내리십시오.”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