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3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31화
제231화. 가자! 강호로(1)
백호대를 전부 쓰러뜨린 담혁수는 숨어 있는 적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절벽 주변을 돌았다.
적들이 흘린 피로 인해 땅바닥은 물론이고 바위 절벽까지 온통 붉은색이었다.
화살에 맞아 절벽 틈에 끼어 숨을 거둔 자들과 교주가 쏘아 보낸 화살에 맞아 빨래를 널 듯 바위에 널려 있는 자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바위를 적시고 땅바닥까지 떨어져 내렸다.
끄으으으……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는 적의 목을 베어버린 그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엎드려 있는 시신 한 구를 내려다보았다.
“그만 일어나시오.”
놀랍게도 이미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시신이 움직이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사내의 가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맙소, 부 대협.”
비강이 다가와 사내를 향해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사내는 전멸한 백호대를 슬픈 눈으로 둘러보았다.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당장 항복을 하더라도 가문이나 약림으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적이 되어 우리에게 검을 겨눠야 하지 않겠소.”
“그렇기야 하지요. 어차피 이들은 가문이나 사문을 버리지 못할 것이니.”
“잠시 몸을 피해 있다가 가문으로 돌아가시오, 부 대협. 하오문주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 주셨으면 좋겠소.”
하아……
사내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아닙니다, 연 대협. 저는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 강호가 너무 지겹습니다.”
강호를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비강을 잠시 응시했다.
“연 대협께 부탁이 있습니다. 저를 보아서라도 호남에 있는 가문은 온전하게 보존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소.”
“감사합니다.”
비강에게 머리를 조아려 고마움을 표한 사내는 몸을 돌려 강호를 떠나갔다.
사내의 이름은 부순.
북림을 시작으로 중천에 이르기까지 약추완의 호위대에 적을 두고 있었다.
또한 약추완의 명령에 의해 백리혈의 추격전에 따라나선 적도 있었다.
그때 그는 약추완에 대한 충성을 접었다.
중천이 약림으로 바뀌었을 때 그는 호위대를 떠나 백호대의 부 대주들 중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객잔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하오문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있었으나 그는 알고 있었다.
강호 전부가 동원이 되어 죽이려 했던 백리혈을 약추완이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
추격전에서 비강의 강함을 절실하게 보고 느꼈다.
그는 장차 다가온 피의 겁난으로부터 가문을 지키고 싶었다.
아니, 가문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다.
떠나가는 부손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비강은 문득 자신의 몸을 살폈다.
입고 있는 검붉은 무복은 여기저기 베어지고 갈라져 나풀거렸다.
그래도 몸은 성한 것을 보면 전보다 강해지기는 많이 강해진 모양이었다.
“그만 돌아갑시다.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약림을 이곳에서 지워 버릴 것이오.”
약림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무공이 가장 강한 림주가 한 팔을 잃은 채 돌아와 누웠고, 순찰단주 염후룡과 악추산도 중상을 입어 병상에 누워 있었다.
약림을 떠날 때의 높은 기세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불안한 눈으로 눈치를 살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순찰단주 염후룡이 가장 먼저 병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원에게 몸을 보인지 두시진 후였다.
그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부단주 염지황을 불러들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단주님. 어찌하다 이런 중상을 입으셨습니까? 백호대는 어디에 있고요?”
염지황은 염후룡을 만나자마자 질문부터 쏟아 냈다.
그러나 염후룡의 눈빛은 차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잘 들어라, 지황아. 곧 백리혈이 일월신교를 이끌고 이곳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너는 싸움이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다가 약림이 불리하다는 판단이 서는 즉시 네가 아끼는 자들을 이끌고 바로 몸을 빼내 돌아가도록 해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약림을 버리고 도망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염지황이 놀라 물었다.
“그 어리석은 년 때문에 일이 이지경이 되었다. 그년이 백리혈의 죽음을 보고 싶어만 하지 않았어도 악추산이 먼저 당할 일이 없었고, 나와 약 림주가 당할 일도 없었다. 내 말 명심해야 한다. 너는 지금부터 네가 데리고 돌아갈 무인들을 선별해 고르고 그들에게 미리 귀띔을 해 주거라.”
“형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물쭈물하는 염지황에게 염후룡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움직이지 않고!”
“알……겠습니다, 형님.”
염지황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
방에 홀로 남은 염후룡은 앞으로의 일어날 일들을 짐작해 계책을 짜기 시작했다.
‘약 림주와 악추산은 반드시 백리혈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약 림주를 대신해야 하는데 모양이 좋지 않아. 뭔가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내야 해. 약 림주가 때맞춰 병상에서 일어난다면 그를 적당히 충동질해 명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만있어 보자.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급히 방을 나온 염후룡은 약추완이 누워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나이 든 의원이 옆에 붙어 그를 돌보고 있었다.
침상에 누워 있는 약추완의 온몸은 하얀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놓은 상태였다.
으으으으……
약추완은 정신을 잃었는지 눈을 감은 채 간헐적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나가보시오. 내가 옆에 있겠소.”
“열이 펄펄 끓습니다. 자주 헝겊에 물을 적셔 열을 내려 주어야 합니다.”
“내가 하겠소.”
순찰단주의 말이라 의원은 별수 없이 방을 나갔다.
염후룡은 헝겊에 물을 적셔 땀으로 흥건한 약추완의 얼굴을 닦아냈다.
“림주님. 어서 일어나셔야 합니다. 백리혈이 언제 이곳으로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으으으으……
약추완은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염후룡의 목소리는 알아들었는지 신음 소리가 점점 높아져 갔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어서…….”
황곡으로 돌아온 비강은 각주들과 호법들의 환대를 받았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주님.”
오래전 아저씨가 앉았었고, 그 후에는 시천세가 앉았던 회의실 의자에 앉은 비강은 살각의 각주인 살가를 응시했다.
“수고하셨소, 살각주.”
“아닙니다. 제자들 중에 넷이 적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 저의 불찰입니다.”
“아니오. 실전과 훈련은 다른 법이니 실수가 있을 수 있소. 내가 데리고 갔던 수하들 중에도 목숨을 잃은 자들이 있소.”
비강이 데리고 간 수하들 중에 다섯 명이 전사했다.
하지만 안타깝기는 할지언정 애통하지는 않았다.
원래 강호란 그런 곳이니까.
“살각주.”
“말씀하십시오, 교주님.”
“전에 살각주는 풍 림주를 암살하기위해 북림으로 쳐들어가지 않았소? 해서 하는 말인데…… 그 일을 이번에 다시 해 주실 수 있겠소?”
살가는 얼마나 놀랐는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비강을 쳐다보았다.
“지금 약 림주와 수하들 대부분이 이곳에 있으니 약림의 방비는 허술할 거요. 그곳으로 숨어 들어가 약추완의 아들을 죽이시오. 가능하다면 약림을 송두리째 태워 버렸으면 좋겠소.”
“해…… 해 보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 일을 완수하겠습니다.”
살가의 목소리는 격하게 떨려나왔다.
지난날 그곳에서 수많은 살수들이 죽었고 자신은 한 팔을 잃었다.
천하제일의 살수로서 그때 느낀 좌절과 절망은 아직까지도 가슴속의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방비가 허술하다고는 하나 꽤 많은 무인들이 남아 있을 것이니 조심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교주님. 길이 머니 채비를 마치자마자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오. 채비가 끝나면 따로 내게 보고할 필요는 없소.”
“알겠습니다. 그럼 강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살가가 먼저 임무를 맡아 회의실을 나갔다.
비강은 회의실에 앉아 있는 두 호법과 두 각주를 차례로 응시했다.
“닷새 후에 황곡을 나갈 것이오. 한 번의 싸움으로 약림을 멸절하겠소. 그 한 번의 싸움을 멸살 대회전이라 부르고 싶소.”
“존명.”
“약림을 멸절한 후에 감숙에서 약림에 협조한 무가들을 전부 쓸어버리시오.”
“존명.”
비강은 지난날 사패가 행했던 일을 다시 하려 하고 있었다.
그때 사패는 항복한 자들은 죽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비강은 항복한 자들에 대한 처분은 말하지 않았다.
삶에 대한 본능 때문인지, 아니면 권력에 대한 욕망인지는 몰라도 약추완은 불과 사흘 만에 병상을 털고 일어났다.
그가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제일 처음 물은 것은 악추산의 상태였다.
악추산은 아직까지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약하림이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황곡의 백리혈은 어찌하고 있는가?”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림주님.”
“나가봐야겠소. 무인들을 전부 불러 모아 주시오.”
염후룡은 급히 약추완의 옆으로 다가갔다.
“제가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아닐세. 내가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저들의 사기가 살아날 것이네.”
약추완이 부축을 거절하자 염후룡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비록 무수한 배신으로 여태까지 살아남아 권력을 손에 거머쥐기는 했지만 확실히 인물은 인물이었다.
“백호대는 어찌 되었는가?”
“살아남은 자가 없습니다. 수하들에게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백호대 대부분이 전사한 후였다고 말을 해 두었습니다.”
“잘하였네. 어서 나가보시게.”
염후룡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서던 약추완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빙글빙글 돌자 얼른 문설주를 짚었다.
‘여기서 쓰러져서는 안 돼.’
등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이마에서 콧등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소매로 땀을 훔치고 걸음을 옮긴 그는 낭하 앞의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섰다.
잠시 후 약림의 무인들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인원이 몰려든 탓에 마가의 연무장과 정원은 무인들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수천 명이 몰려들었지만 누구 하나 함부로 입을 열지는 못했다.
“잘 들으시오!”
약추완은 무인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애석하게도 백호대는 백리혈과 그자를 추종하는 마인들의 함정에 걸려 전멸을 당했소! 나와 순찰단주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이 목숨을 잃은 후였소! 백리혈과 마인들은 나와 순찰단주를 죽이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들었소! 나와 순찰단주는 백리혈과 일천 명이 넘는 마인들과 악전고투를 펼쳤지만 아쉽게도 백리혈을 처단하지 못했소! 이제 그대들이 나서야 하오! 나와 순찰단주가 앞장을 서고 그대들이 뒤를 받쳐준다면 백리혈과 마인들을 쳐부수고 백호대의 원수를 갚을 수 있소! 백리혈과 마인들을 죽여 백호대의 원수를 갚고 강호의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만방에 보여줍시다!”
일장 연설이 끝나자 약림의 무인들과 강호인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
“와아!”
“강호의 정의를 위하여!”
약추완의 연설 한 번으로 죽어 있던 기세가 되살아났다.
다른 꿍꿍이가 있던 염후룡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도 나를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무인들의 앞에 서 있던 약추완의 제자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존명!”
약추완은 이제 되었다 싶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다른 소리를 내는 자가 있었다.
바로 염후룡이었다.
“저도 림주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하나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차라리 잠시 후퇴를 하였다가 내년 봄에 다시 출전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약추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성을 발하자 염후룡은 얼른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리석은 의견일 뿐이었으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끄으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네.”
약추완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너무 무리를 한 탓인지 하늘까지 누렇게 보였다.
‘되었다.’
염후룡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번 싸움에 패한다면 강호인들은 림주에게 잘못을 돌릴 것이다.
‘문제는 무림맹이야. 그자들이 움직인다면 모든 계획이 허사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