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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64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64화

 

  "능력 있으면!"

 

  마치 약올리듯 말하는 소천악의 언변에 열불이 터진 구백천이 버럭 소리쳤다.

 

  "내 오늘 네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네놈 아들이다."

 

  "당신같이 성질 더러운 아들은 영 사양이오."

 

  "으아아~ 이런 개새끼가."

 

  "얼래. 아버지한테 개새끼라 부르는 호래자식이 여기 있네."

 

  말로는 한마디도 지지 않는 소천악의 화려한 언변에 더 이상 말을 섞기를 포기한 구백천이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물론 소천악도 말만 그럴 뿐 이미 내공을 끌어올려 받아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구백천은 천년마교의 비전절기인 천마신공을 운용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천하제일을 다투는 신공답게 걸음걸이마다 뭉클거리는 검은 기운이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묵기는 흙에 닿을 때마다 꺼멓게 색깔이 변해갔다. 가공할 위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소천악은 경각심을 가지고 천천히 혈천신공을 운기했다.

 

  "오늘이 싸가지 없는 네놈 제삿날이다."

 

  "주둥이로만 떠들지 말고 어서 덤벼라."

 

  소천악의 느긋한 대꾸에 자칫 피가 역류할 뻔한 위기를 겨우 넘긴 구백천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검을 치켜들었다. 말로는 어려운 상대란 걸 느끼고 무공으로 나왔다. 소천악도 마주 검을 겨누며 빈틈을 노려갔다.

 

  갑자기 구백천의 신형이 무섭게 빨라지며 소천악의 주위를 소용돌이치듯 거세게 맴돌았다. 소천악은 시력보다 청력을 키워 전혀 미동 없이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돌던 구백천이 빈틈을 본 듯 원을 그리던 신법이 직선으로 바뀌며 번개 같은 쾌검으로 소천악의 심장을 노려왔다. 마치 태산 같은 압력이 밀려드는 느낌에 소천악의 신형이 가볍게 흔들렸다.

 

  아주 촌각의 시간이었지만 구백천의 검은 빈틈을 헤집고 순식간에 소천악의 심장 일 척 가까이 밀려왔다. 막 심장이 갈라지려는 순간 눈으로 보기 힘든 속도로 소천악의 검이 마주쳐 올라왔다.

 

  차차창!

 

  한 번의 격돌에 무려 세 번의 공방전이 벌어졌다. 쾌검과 쾌검의 격돌이었다. 섬전 같은 구백천의 검에 비슷한 속도로 막고 오히려 역습을 시도하는 소천악의 검도 만만치 않았다. 수십 초의 격전을 비등하게 마치고 일단 물러선 구백천의 입에서 경탄이 흘러나왔다.

 

  "주둥이만큼 실력도 되는구나."

 

  "이거 기본입니다. 자, 오시죠. 오랜만에 적수를 만나니 온몸이 즐거움에 아우성을 치네요."

 

  여유 있게 대답하는 소천악을 바라보던 구백천의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의 경멸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도 혈교의 교주이기 전에 무인! 호적수를 만난다는 건 무인으로선 너무도 즐거운 일이었다.

 

  "좋다. 오늘 누가 이기든 간에 신명나게 놀아보자."

 

  "당연한 말씀. 자, 오시지요."

 

  어느덧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처음처럼 격한 언사를 잊어버린 채 흥겨움에 젖어들었다.

 

  "이번엔 조심하게."

 

  "교주님도 조심하십시오. 절기를 쓰시면 저도 절기로 답례하지요."

 

  "껄껄. 대단한 호기야."

 

  속이 시원하게 웃은 구백천이 천천히 천마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게 느껴졌다. 소천악도 혈천신공을 천천히 끌어올리며 구백천의 몸놀림을 예리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조심해라. 이제부터 진짜다."

 

  "오시지요."

 

  짧게 대답한 소천악을 보며 피식 웃은 구백천은 검을 하늘로 높이 올렸다. 검끝에서는 검은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나오며 거대한 강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얼굴이 더욱 진중해진 소천악도 검을 쥔 손에 힘을 점점 주었다.

 

  착!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직선으로 쭉 뻗어왔다. 사방의 공기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 쫙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력한 기세였다.

 

  마주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박살을 내며 사산조각을 낼 듯한 기세를 보인 소천악은 곧 검을 들어 가볍게 원을 그리며 있는 힘을 다해 마주쳐 갔다. 소천악의 검은 직선으로 뻗어오는 검을 사선으로 때리며 매섭게 부딪혔다.

 

  쿵! 쿵!

 

  두 사람의 검이 마주치자 거센 폭음이 일며 사방으로 검은 물길과 시퍼런 혈기가 온 사방으로 퍼져갔다.

 

  무려 십 장 가까이 퍼진 묵기와 혈기는 십 장 내 모든 물건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바위가 박살이 나 모래조각처럼 후르르 흘러내렸고 나무는 갈기갈기 찢어져 천지사방에 흩날렸다.

 

  "흑!"

 

  "끅!"

 

  짧은 두 마디의 비명과 함께 두 사람은 뒤로 서너 발자국 물러나 비틀거렸다. 소천악의 손은 거의 마비가 올 듯이 저려옴을 느꼈다. 내장에서는 피가 솟구치는 듯 간신히 막아냈으나 온갖 힘을 쏟아야만 했다.

 

  가볍지 않는 내상이 그의 온몸을 휩쓸었다. 구백천도 비슷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도 소천악보다 그리 나을 게 없는 신색이었다. 두 사람의 옷은 어느덧 넝마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온몸에서는 가늘게 핏줄기들이 솟구쳐 올랐다.

 

  "역시 대단하구나. 그런데 네놈은 혹시 혈검신마와 무슨 관계냐?"

 

  구백천의 말이 스산하게 변해갔다. 그가 이 검법을 잊을 리가 없었다. 중원정복을 앞두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혈검신마의 비전절기를 잊는다는 것은 그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불가능했다.

 

  소천악은 구백천과 혈검신마에 얽힌 비화를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혈검신마가 설명해 준 말에 조심하라는 만겁마황의 검법이 왠지 모르게 구백천의 검법과 너무도 흡사함을 느꼈다.

 

  "그런 당신은 만겁마황과 무슨 관계입니까?"

 

  소천악의 반문에 혈교주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만겁마황은 나의 사부님이셨다."

 

  대답을 들은 소천악은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듯이 드디어 마주친 만겁마황의 제자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유가장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라 그다지 큰 두려움은 없었다. 사실 지금 그의 경지는 혈검신마와 싸우더라도 그다지 밀릴 것 같지 않았다.

 

  "그랬군요."

 

  소천악의 덤덤한 말에 구백천은 혈압을 올리며 다시 물었다.

 

  "너는 왜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느냐?"

 

  "맞습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혈검신마는 제 사부님이셨습니다."

 

  "부드득."

 

  이를 거세게 가는 소리가 구백천 혈교주 입에서 흘러나왔다. 소천악은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반문했다.

 

  "왜 그렇게 갑자기 적의를 불태우는 것입니까?"

 

  "네가 정녕 모르는 것이냐? 너의 사부 혈검신마 때문에 우리 사부가 중원정복을 포기하셨고 나 또한 쓰라린 패배를 맞봐 중원정복의 길을 늦추는 통한을 겪고야 만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그것은 사부님이 나한테 말해 주지 않아서 모릅니다."

 

  "무엇이라? 사부가 내 얘기를 안 했단 말이냐?"

 

  "사부는 오로지 만겁마황을 조심하라고 했지 당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소천악의 극히 솔직한 대답이 들려오자 구백천은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알고 보니 혈검신마는 자신을 적수로 여기지도 않고 그저 노리갯감으로 여겼다는 것이 느껴지자 수치심과 모욕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은 점점 혈안이 되어가고 있었고 몸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오냐. 내가 오늘 너의 사부에게 당한 치욕을 너에게 풀고야 말리라."

 

  "왜 사부님한테 당하고 나한테 화풀이를 하려고 하시죠?"

 

  "사부와 제자는 원래 일심동체이니라. 사부가 없다면 네가 그 죄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스산하게 말하는 구백천을 바라보며 소천악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정히 그러시다면 한번 해보셔도 괜찮습니다만."

 

  "뭐라 이놈이 감히… 좋다, 이제부터 나의 진신절학을 보여주겠다."

 

  "좋습니다. 저도 혈검구식의 참다운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드리지요."

 

  소천악은 말과 동시에 강호에 출두하고 처음으로 전신공력을 끌어올렸다. 공력을 끌어올리자 혈천신공의 특기인 잠재력이 끌려나오는 것을 그의 전신에서 느껴졌다. 곧 그의 전신으로 핏빛의 혈기가 쭉쭉 퍼져 나오고 그것은 곧 검으로 통하여 검에서도 혈기가 퍼져 나왔다.

 

  "역시 혈검구식이었군. 내 오늘 기필코 혈검구식의 신화를 깨뜨리고야 말겠다."

 

  구백천은 이를 꽉 물고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극성으로 끌어올린 천마신공이 펼쳐지자 그의 몸에서는 곧 아수라 형상과 같은 검은 연기가 서서히 형태를 그리기 시작했다.

 

  소천악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천천히 검을 좌측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구백천이 스산하게 말했다.

 

  "너와 나의 경지라면 여러 초가 필요 없다. 일 초로 승부를 보자."

 

  "동감합니다."

 

  "받아라, 혈교의 최절정마공 천마신공의 위력을 보여주마."

 

  말과 동시에 구백천의 몸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대로 직선으로 떠오르는 그의 몸에는 가공할 묵기가 흘러나오며 소천악을 압박해 들어갔다. 하지만 소천악의 혈기도 묵기에 마주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갔다.

 

  파방팡팡!

 

  묵기와 혈기가 마주치는 곳에 거대한 폭음이 들리면서 사방으로 거센 공력이 휘몰아쳤다. 아직 진검승부를 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피 튀기는 조짐이 보였다.

 

  "받아라. 천마신검!"

 

  "오시오. 혈검구식!"

 

  검은 아수라를 담은 검이 소천악의 몸으로 짓쳐들자 소천악은 혈검구식을 제일초부터 오초까지 순차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점점 가열되는 혈기와 묵기의 대결은 거센 폭음과 함께 서서히 몸을 접근시켜 갔다.

 

  그들 사이에서 휘몰아치는 잠력은 무림의 초절정고수라고 할지라도 단순에 피떡이 될 만큼 가공할 공력으로 사방을 흩뿌렸다. 드디어 천마신검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검은 소천악의 온몸을 짓쳐들어갔다.

 

  검은 분명히 하나인데 보이는 것은 수십 개로 늘어나 소천악의 전신대혈을 노렸다. 소천악은 전혀 두려움 없이 혈검구식을 전력으로 전개했다.

 

  콰과과광!

 

  보통 사람에게 일 초의 격돌이었지만 그 사이에 수십 초의 격돌이 이어지고 있었다. 소천악이 대등하게 천마신검에 맞서자 구백천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막으로 남은 한 푼의 공력까지 최후의 공력을 끌어 모아 드디어 천마삼검의 절정 초식인 천마절멸의 초식을 전개했다.

 

  온 사방이 갑자기 어둡게 변하면서 전신을 거세게 압박해 들어갔다. 소천악은 안색을 침중히 굳히며 드디어 처음으로 제육 초식을 전개했다.

 

  "혈멸! 피의 기운은 온 세상을 멸절시키리라!"

 

  "천마군림! 천마의 검은 온 세상을 발아래 굽어보리라!"

 

  두 사람은 서로의 승리를 외치며 거세게 부딪혔다.

 

  쿠르릉!

 

  거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폭음이 들리며 산정상이 온통 묵기와 혈기로 거센 수난을 겪었다. 산봉우리가 움푹 파이고 집채만 한 돌덩이가 날아다녔다. 잠시 후 가공할 최후 결전이 끝난 모습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소천악은 뒤로 열 걸음 이상 물러난 채 입에서 피를 연신 토한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는 대여섯 군데나 깊이 파인 칼자국이 있어 적지 않은 외상과 내상을 입었음을 보였다.

 

  소천악은 서 있기도 힘은 몸을 검을 짚어 버티며 매섭게 구백천을 노려보았다. 그의 모습은 소천악보다 훨씬 비참했다. 그는 이미 안색이 파랗게 변한 채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통에 땅속에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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