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6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60화
"그게 무슨 말이오?"
"폭풍문은 혈교의 주력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분명히 우리 정파에게 연합해서 막자는 제의를 해올 것입니다. 그때 바로 보내준다 하면서 온갖 핑계를 만들어내어 무사들의 파견을 늦추는 것입니다."
"아, 그러면 그렇지요."
"폭풍문은 결코 약한 문파가 아니기 때문에 혈교 주력이라도 쉽게 그들을 공략하지는 못합니다. 아마 이기더라도 커다란 피해를 보고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를 노려 우리 정파가 그들의 배후를 급습한다면 최후의 승자는 우리 정파가 될 것입니다."
"오, 놀라운 묘안이오.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조호이산지계구려."
"그렇습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제갈상린의 말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강한 적을 공멸시킨 다음에 그 배후를 급습한다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에, 자파의 피해가 적어진다는 것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자, 그럼 제갈상린 가주의 의견대로 급히 이를 시행하도록 노력합시다."
쐐기를 박는 현유자의 말에 모든 정파 수뇌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명!
귀혼신개 남유훈 개방 장문인이 어두운 얼굴로 좌중을 쓸어봤다. 그는 이미 정보를 통해 소천악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자칫하면 정파 무림인을 불신한 소천악이 어떻게 나올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맹주인 혜연 대사도 못하는 일을 자신이 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폭풍문의 수뇌진도 급히 모여 있었다. 심자앙 군사의 주도에 전략회의에는 많은 폭풍문 수뇌부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앉아 있었다. 단 한 사람, 소천악만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심자앙 군사의 첫마디가 열렸다.
"그동안 보내온 첩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파 무림의 낌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아무래도 정파 무림이 우리를 배신할 움직임을 보이는 거 같습니다."
"이런 괘씸한 놈들이!"
격노한 폭풍문 수뇌부의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심자앙은 못 들은 척하고 말을 이었다.
"그건 머리를 쓰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 상태로 유지된 채 혈교를 물리친다면 우리 폭풍문의 위세는 천하를 진동할 겁니다. 더불어 정파인들은 우리 폭풍문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쁜 처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결국 우리 폭풍문의 천하 독패 세상이 열리는 것이지요. 그것을 방치할 정파는 결코 아닙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
침중한 목소리들이 회의장을 온통 감싸 돌았다. 심자앙은 자신의 말이 쉽게 먹혀들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분명히 정파는 여러 가지 계략을 꾸밀 것입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혈교와 우리의 공멸입니다."
"공멸이라…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겠군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정파에서 무슨 계략을 꾸미든 간에 혈교의 주력을 우리 폭풍문 쪽으로 돌릴 것입니다."
"혈교의 주력이라… 만만치 않은데."
"그 후 우리가 정파에게 구원 요청을 하면 일단 겉으로는 승낙을 하고 구원병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공멸을 바라는 것이지요. 우리와 혈교가 치열한 혈전 끝에 서로 힘이 소진됐을 때 들이닥쳐 달콤한 열매를 취하려는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계략을 분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소천악이 묻자 바로 심자앙의 답이 나왔다.
"역간계를 써야죠. 혈교의 주력이 우리에게 오는 것을 막아내고 정파 쪽으로 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미 혈교에서도 자신들의 주력이 향할 곳은 힘이 소진된 정파가 아니라 우리 폭풍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혈교에서는 많은 고수들을 우리 쪽으로 보낼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계략이 소용이 없다는 것이오?"
"아니지요. 역간계를 쓰는 것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이미 문주님과도 말씀이 있었지만 마교와의 사전 교감이 있었습니다."
"마교라, 천년마교를 말씀하시오?"
"그렇습니다. 문주님과 마교 교주님의 묵계에 의하여 이미 마교의 정예고수들이 속속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연락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교와의 연합이라. 이거 어찌 우리가 점점 커지는 느낌이구려."
점점 늪으로 끌려들어 가는 기분으로 말하는 소천악을 미소로 바라보며 심자앙이 말을 이었다.
"마교의 명분은 분명합니다. 반도들을 처단한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마저 이용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용한다는 말이오?"
"그들을 정파 무림 쪽으로 몰아넣는다는 소식을 은근히 흘리는 것입니다. 마교에서도 이미 사전 얘기가 되었지만 오는 고수의 삼 할이 정파 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들이 정파 방어막에 나서서 혈교를 거세게 몰아붙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죠. 마교의 주력이 당연히 그쪽으로 몰렸다고 생각한 혈교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세력을 그쪽으로 투입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쪽에서 혈전이 벌어지나요?"
"그것도 아닙니다. 마교 고수들은 그들의 비밀세력이 전장에 당도할 때쯤 거의 대부분 뒤로 빠질 것입니다. 결국 정파 무림과 혈교의 치열한 접전은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역간계입니다."
이제야 이해가 된 소천악이 감탄하며 소리쳤다.
"놀라운 계책이오."
"이 계책은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마교 고수들은 하루 거리 내로 당도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그들에게 일제히 이런 계책을 알려주고 정파 무림에 합세하기로 사전에 얘기를 끝내야 합니다."
가만히 심자앙의 말을 듣던 소천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훌륭한 계책이오. 전 심자앙 군사의 의견대로 했으면 하오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소."
"찬성입니다."
"물론 찬성이지요."
모든 폭풍문 수뇌부들은 열렬히 심자앙의 의견에 지지를 표했다. 그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구정학 마교주에게 전해줄 서찰을 든 폭풍문의 전령들이 번개같이 움직였고 밀서를 받은 구정학도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운 계책에 놀란 눈을 감추기에 바빴다.
이후 마교 정예고수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일부는 정파 무림 쪽으로 서둘러 움직였고 나머지는 조용히 폭풍문이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계략과 모략이 판치는 격동의 강호무림이었다.
정파연합으로 향하는 마교의 움직임은 바로 혈교의 첩자들의 눈에 들어왔다. 놀란 그들이 다급히 전서구에 정보를 넣어 혈교 수뇌부로 보냈다. 정보를 받은 혈교 측은 긴장감이 감돌며 즉시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 구백천 혈교주는 곡무릉 군사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교주님, 지금 마교의 쓰레기들이 정파와 함께 우리 혈교를 막고 있다고 하옵니다."
"무어라. 천년마교가?"
"그렇습니다. 마교의 정예무인들이 합류한다면 우리 혈교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은 뻔한 일이고 첩자들도 공통적으로 보고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구백천 혈교주는 머리를 싸매고 고심에 빠져들었다. 언젠가 마주칠 천년마교였다.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게 골치가 아팠으나 이내 털고 고개를 들었다.
"지금 바로 비밀로 숨겨놓았던 혈강시를 그쪽으로 투입하라."
"아니 교주님, 혈강시는 이미 폭풍문을 상대하기로 결정된 거 아닙니까?"
"지금은 마교가 우선이다. 그들의 저력은 상상외로 막강하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이상 후퇴란 없다."
"그럼 폭풍문은 어떻게 처리하실 요량이십니까?"
"당연히 그놈들을 먼저 제압하고 방향을 틀어 폭풍문을 제압한다. 우선 폭풍문은 내가 친히 가서 견제하겠다."
"알겠습니다. 바로 투입을 명하겠습니다."
"신속하게 투입해. 자칫하면 선봉대가 전멸한 후에 도착할 수 있다. 시간을 놓쳐 선봉대가 전멸한다면 네놈 목숨으로 책임을 묻겠다."
"바로 전개하겠습니다."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곡무릉 군사가 황급히 대전을 벗어나자 구백천 혈교주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비겁한 놈들. 전에도 중원정복을 미루어 우리 조상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더니 이제 다시 우리의 발길을 막다니. 지옥에서도 잊지 못할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아무리 천년마교라 할지라도 우리 천마각을 막지는 못한다. 우리 천마각은 마교에서도 최고의 정예로 구성된 무인들이라는 걸 보여주마."
으스스한 한기를 뿜으며 내뱉는 그의 입가에 살기가 잔뜩 서렸다.
한편 정파연합 수뇌부는 갑자기 나타난 마교 정예들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을 도우러 왔다는 말에 별다른 말은 못 하고 환영할 수밖에 없었지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특히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상린은 골치가 아파왔다. 뭔지 몰라도 자신의 계책이 틀어진다는 기분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도와주러 온 마교를 내칠 수도 없었다. 강력한 무공에 자존심을 가진 그들을 괄시했다간 자칫 마교와의 원한이 생긴다면 정파연합으로선 득보다 실이 많았다.
무엇보다 현재 혈교와 대치 중인 정파연합으로선 가뭄에 단비 같은 마교 응원군을 버릴 입장이 아니었다. 정파와 합류한 마교 고수들은 느긋한 마음으로 혈교와의 싸움터로 향했다. 천년마교의 고수란 자부심은 단지 말뿐이 아니었다. 구파일방의 고수보다 한 수 위의 무공실력을 지닌 그들은 이미 싸움판의 상황을 모두 간파한 상태였다.
혈교 선봉대가 강하긴 하나 자신들에 비해 한 수 이상 떨어진다는 걸 파악한 후라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모두 혈교의 쓰레기들을 치워버려라."
"존명. 뭣들 하느냐. 어서 쓸고 술이나 한잔하자."
마교의 고수들은 온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피비린내 나는 혈전장을 보자 너 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마교의 비전절기를 갈고닦은 마교 고수들이 우수수 싸움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모두 가차 없는 비정할 살검을 흩뿌리며 혈교 고수들과 사생결단을 낼 듯이 밀려갔다. 마교 고수의 합류로 전세는 확 뒤집어졌다. 일방적으로 밀리던 정파 무림 측이 갑자기 나타난 마교 고수의 응원에 힘입어 없던 힘도 내며 혈교 선봉대를 몰아붙였다.
"이런 빌어먹을. 저 마교 놈들이 우리를!"
분기가 치민 선봉대 수장인 천인귀 당주가 벼락같이 소리치자 옆에 있던 노휘수 부당주가 서둘러 말했다.
"당주님, 이대로라면 전멸입니다. 어서 후퇴명령을."
"이런 제길. 고지가 바로 저긴데."
"어서 명령을 내리십시오."
"조용히 해라. 가뜩이나 성질나는데."
공연히 화풀이를 하며 싸움판을 노려보던 천인귀 당주가 어쩔 수 없이 명을 내렸다.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방치했다간 전멸이라는 아픔이 올 걸 모르지는 않았다.
"모두 후퇴하라."
"당주님의 명령이다. 모든 혈교도는 지체 없이 퇴각하라."
천인귀 당주의 말에 힘겹게 싸우던 혈교 선봉대가 일제히 물러서며 몸을 돌렸다. 마치 썰물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는 혈교 선봉대는 후퇴하면서도 대열을 유지해 엄청난 훈련을 쌓은 자들임을 여실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