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59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59화
불과 반각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미 혈교 선봉대는 와해지경에 빠져 있었다.
앞에서 반항하던 수많은 혈교의 고수들은 이미 폭풍문의 고수들과 소천악의 손에 핏물로 변해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혈교 고수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공포에 겨운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전위에 있던 혈교 고수들이 모두 전멸하였다. 오십 명이 넘는 혈교 고수들은 모두 일류고수가 넘어 절정고수를 넘보는 수준이었지만 소천악과 폭풍 1, 2대의 강력한 기습에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이 모두 죽어갔다. 상황이 정리되자 소천악은 다가가서 소리쳤다.
"모두 정렬을 정비하고 포로들을 압송하라."
"존명!"
승리로 신난 폭풍문의 고수들은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소천악에게 예를 표하고 곧 후미로 달려가 탁천웅이 잡아놓은 혈교 고수들을 포로로 대우하기 시작했다.
"모두 혈교 고수들에게 학대행위를 하지 마라. 항복한 이상 이들은 이미 적이 아니고 하나의 사람에 불과하다."
심자앙 군사가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만약에 여기서 혈교 고수들을 학대한다면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아 앞으로의 작전에 지장이 있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폭풍문도도 그 사실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혈교 문도를 묶기는 하되 인간적인 학대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첫 기습은 무사히 성공적으로 돌아갔다.
이후 소천악과 폭풍문은 차례차례 혈교 후미를 기습하여 하나하나씩 혈교의 정예들을 분쇄해 나가기 시작했다.
총 육 대로 나누어진 혈교 선봉대는 후미들이 깨진지도 모르고 무조건 앞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반나절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미 후미의 혈교 선봉대는 모조리 지리멸렬하여 포로가 되거나 죽는 불상사를 맞이했다.
천이백 명을 헤아리던 혈교 고수도 숫자가 크게 줄어 육백여 명이 남아 있었을 뿐, 나머지 육백여 명 중 백오십여 명이 죽고 나머지 사백오십여 명이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그제야 혈교 선봉대는 뒤에서 벌어진 비통한 비보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연락을 담당하던 혈교 무인이 선봉대를 이끌던 두수종에게 급히 보고했다.
"영주님, 후미들이 아무래도 기습을 당한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놀란 두수종이 반문하자 달려온 전령이 급히 대답했다.
"후미와 연락을 취하려다 연락이 두절되어 후미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정찰을 보내본 결과 그 뒤를 따라온 곳에 수많은 핏자국이 널려 있고 아무래도 기습을 당한 거 같습니다."
"누가 기습을 한단 말이냐? 정파연합은 우리에게 쫓겨 다니는데 그럴 여력이 없다. 잘못된 보고 아닌가?"
"아닙니다. 분명히 뭔가가 있습니다."
선봉대 군사인 척세빈이 조용히 말하자 두수종 영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일단 전진을 멈추게 하였다.
"모두 멈추어라!"
전진을 멈추고 다시 정렬을 대비한 두수종 영주는 즉시 십여 명의 무인들을 후미로 급파했다.
"모두 가서 후미 상황을 알아보도록 해라."
"존명!"
명령을 받은 십여 명의 무인들은 즉시 후미로 향하여 후미 상황을 알아보았다. 그들이 알아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소천악이 흔적을 감추었다고 하나 예리한 시야를 가진 그들을 완전히 속이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들은 가늘게 풍기는 핏자국의 냄새와 흔적들을 찾아내고 곧 기습을 당했음을 알아냈다. 그들은 신속히 본대로 돌아와 다시 보고했다.
"후미가 기습을 당했습니다. 많은 피해가 난 거 같습니다."
"어느 정도 피해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모두 전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니 누가 감히 우리 혈교의 후미를 기습할 수 있단 말인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두수종 영주는 골치를 싸매고 있었다. 그가 골치를 풀어내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또다시 들어온 정보는 분명히 폭풍문의 기습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아니 마교와 싸우던 폭풍문이 왜 여기를 왔다는 것이야?"
기가 막혀 소리치는 두수종을 바라보던 척세빈이 침통하게 대답했다.
"속았습니다. 애초에 폭풍문은 마교와 싸운 게 아니라 우리 이목을 속이고 이리로 모여든 겁니다."
그 말을 듣자 두수종도 바로 상황이 짐작되었다.
"이런 간악한 놈! 이런 계략으로 우리를 엿 먹이다니."
"이제 그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제 생각이 맞는다면 분명히 정파연합에서도 반격할 겁니다. 우리 선봉대는 이제 앞뒤가 막힌 신세입니다. 어서 후퇴해 전열을 정비해야 합니다."
"이런 괘씸한!"
노화가 하늘까지 치민 두수종이 이를 부드득 갈며 원통함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화만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바로 척세빈과 이 위기를 돌파할 비책을 연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미 혈교 선봉대의 반 이상을 박살낸 폭풍문은 정파연합과 전서구를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전서구를 받은 혜연 정파연합 맹주는 크게 파안대소하며 정파 수뇌부에게 말했다.
"폭풍문과 우리의 작전이 성공한 거 같소. 이미 혈교 선봉대는 전력이 반 이상으로 줄어들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정보요."
"이제 기습의 시간입니까?"
"이미 폭풍문은 후미를 장악하고 우리가 밀고 들어가면 후미에서 밀고 들어와서 양면협공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하오. 우리는 그 작전을 따라 움직이면 되는 것이오."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왔군요."
정파 수뇌부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렇소이다. 모든 정파연합의 고수들을 총동원하여 반격의 체제를 갖추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정파연합의 수뇌부가 일제히 자파 고수들 앞에 서 소리쳤다.
"급반전하여 혈교 놈들을 주살하라. 지금 폭풍문이 우리 정파연합을 도우려 혈교 후미를 박살냈다는 소식이다. 우리도 어서 남은 혈교 무리들을 깡그리 쓸어버리자."
"와아!"
폭풍문이 왔다는 소식을 이제야 들은 정파연합 고수들의 사기가 급격히 올라가며 검을 다시 한 번 힘차게 움켜쥐고 혈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두수종이 지휘하는 혈교 선봉대는 급히 퇴각한 후라 텅 빈 들판만이 그들을 기다렸다.
씁쓸한 승전을 한 정파연합은 새삼스레 폭풍문의 위력과 놀라운 기동력을 보고 적잖이 경각심을 가져야만 했다.
혜연 맹주와 구대문파 장문인 그리고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한결같이 굳은 얼굴에 침통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무지 승리한 자들이라곤 보기 힘든 안색이었다. 이겼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폭풍문의 기세에 정파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이란 불안감이 드러났다.
먼저 무당 장문인인 현유자가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 정파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혈교를 물리친다 해도 이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진 폭풍문의 위세를 막아낼 방도가 현재로선 전혀 없습니다."
"큰일이오. 이미 사마외도의 세력은 우리 정파를 크게 앞질렀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 정파는 앞으로 사마외도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 판입니다."
얼른 맞장구를 쳐주는 제갈상린 가주에게 고마운 눈빛을 보낸 현유자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혈교도 혈교지만 이쯤에서 폭풍문의 위세를 꺾을 비책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맞소이다."
좌중이 현유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일자 가만히 앉아 있던 정파연합 맹주인 혜연 대사가 조용히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이 시점에서 그 문제를 논한다는 건 아직 시기상조임에 분명합니다. 혈교의 세력이 아직도 멀쩡한 판에 동맹을 맺은 폭풍문을 약화시킬 궁리를 한다면 장차 혈교의 침공을 어찌 막을 요량이십니까?"
"맹주님, 일을 추진할 때는 멀리 보고 움직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지금이 어렵다 해도 나중을 생각하면 꼭 선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제갈상린이 거세게 반발하자 난처해진 혜연 맹주가 좌중에게 물었다.
"허허. 이런 낭패가. 모든 분의 의견이 같습니까?"
"……."
장내에 모인 정파의 수뇌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여태껏 자신들이 주도한 무림을 폭풍문에게 넘겨준다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이야기였다.
혜연 맹주는 난감했다.
폭풍문이 자신의 간곡한 부탁대로 싸움에 합류해 이제 겨우 숨을 돌릴 만한데 벌써부터 자중지란의 소지가 불타오르자 입장이 난처해졌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심이 어떨지요? 이미 폭풍문의 소천악 문주로부터 혈교를 제압하고 강호를 움직이는 것에 대해 상의하기로 약속한 접니다."
간곡하게 말했지만 바로 나서는 제갈상린의 화술이 더욱 난감하게 만들었다.
"맹주님, 지금 사사로운 신의를 앞세우기는 너무도 상황이 안 좋습니다. 맹주님 말대로라면 최소한 강호를 양분하든지 아니면 폭풍문의 뒤치다꺼리를 우리 정파가 할 판인데 그걸 어떻게 눈 뜨고 바라봅니까?"
"그래도 이건 명색이 정파인인 우리가 할 일이 아니지 않소?"
"맹주님, 이건 정파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정파 무림은 앞으로 한동안 사마외도의 눈치를 보는 치욕을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허. 아미타불."
눈을 감은 혜연 맹주의 얼굴에 깊은 고심이 드러났다. 아무리 이야기해 봐야 이미 마음을 굳힌 정파 수뇌부를 설득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할 말을 잃었다. 결국 대다수의 의견대로 폭풍문을 견제하기로 결정을 봤다. 이후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가 관건일 뿐 혜연 맹주의 의견은 아예 무시되었다.
사실상 정파맹주란 허울 좋은 직책일 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가주가 결정하면 힘없이 따라야 할 숙명이었다.
제갈세가의 제갈상린 가주는 드디어 자신의 역량을 보일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걸 느꼈다.
"폭풍문을 견제하는 건 간단합니다. 강한 적과 마주치게 하여 전력을 대폭 약하게 만들면 되지요."
"어떤 묘안이 있소?"
현유자의 반문에 제갈상린은 입꼬리를 올리며 설명했다.
"있소이다. 혈교의 주력과 폭풍문을 정면충돌하게 만드는 거지요."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까요? 폭풍문에도 만만치 않은 머리를 가진 군사가 있다던데요."
걱정스런 현유자의 말에 제갈상린의 계책은 이어졌다.
"혈교의 주력을 유인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저희 정파 방어선에 절정고수들을 뒤로 빼돌리고 일류고수와 일반고수들로 구성된 방어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혈교는 당연히 방어진을 금세라도 뚫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조만간에 느낄 것입니다."
"그럼 우리 제자들의 피해가 커질 텐데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것은 병법의 기본입니다. 그것마저 무시한다면 사파 세상이 올 텐데 그것을 감수하시겠습니까?"
"……."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현유자 무당 장문인이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제갈상린의 말은 이어졌다.
"그렇다면 혈교의 주력은 당연히 금방이라도 부술 수 있는 우리 정파가 아니라 폭풍문 쪽으로 화살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혈교의 주력이 폭풍문을 먼저 두드리는 동안 거기서 본격적인 머리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