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53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53화
"심사숙고하셔야 합니다."
"알겠소이다. 염려 놓으시고 가시구려."
얼른 보내고픈 마음에 대충 대답하는 소천악을 영 미덥지 않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심자앙이 사라졌다. 이제 접객실에는 소천악과 주혜미 두 사람만이 남아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소천악이 아무리 살펴봐도 족자 미인과 전혀 손색이 없는 주혜미였다.
어떻게 첫마디를 꺼낼까 고민하는 소천악을 바라보던 주혜미가 결심을 굳혔다. 보아하니 이 문주란 작자가 자신에게 빠져도 아주 홀랑 빠진 게 느껴졌다. 방금 전 폭풍문 군사를 보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거 같은 자였다.
일의 성공 여부는 소천악에게 달렸다는 생각이 들자 미인계를 쓰기로 결정하고 앵두 같은 입을 열었다.
"문주님, 제발 우리 정파연합을 도와주세요."
"허, 이거 참 난처하군요. 마음이야 굴뚝이지만 현실이 아시다시피 이런 처지라."
말은 어렵다고 하지만 소천악은 주혜미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점점 약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천지에 다시없는 미녀를 바라보는 소천악의 마음은 거세게 두방망이 치며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바로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주혜미는 그런 소천악의 마음을 여자의 예리한 감각으로 집어냈다.
"문주님, 그러지 마시고 저의 말을 들어주세요. 아무리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평화로운 중원이 사악한 혈교에게 짓밟히는 것을 묵과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우리 폭풍문이 아직 정비가 안 돼서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기분 같아서야 당장에라도 혈교와 한판 하고픈 마음입니다."
소천악은 안간힘을 다해 주혜미의 유혹을 뿌리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미모에 눈이 팔려 심자앙을 방에서 몰아낸 일이 후회스러웠다.
"문주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저는 문주님의 어떠한 부탁이든지 다 들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헉, 무슨 그런 말을……."
소천악은 숨이 막히는 듯한 것을 느끼고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이상형의 여인이 자신을 유혹한다는 느낌이 들자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느꼈다. 주혜미는 단단히 결심한 듯 소천악 주위로 다가왔다.
다가올수록 풍겨 나오는 그녀의 살내음과 머리 향기에 소천악은 정신이 아롱거리며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끈을 느꼈다.
"제발 부탁이에요, 들어주세요."
향긋한 그녀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단내가 풍겨 나오며 소천악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금방이라도 덮치고 싶은 유혹은 꾹 참아낸 소천악은 냉정을 찾으려 애를 썼다. 자신 하나의 목숨을 거는 문제라면 얼마든지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결정에 따라 수천의 폭풍문도들이 죽음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집어던지고 그녀와 함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를 보았을 때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과 함께 간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결국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줘야만 자신의 목적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소천악은 아득한 절망감마저 들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소천악은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은 쉬시고 제가 오늘 수뇌부 회의를 통해서 결정을 내려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혜미는 더 이상 소천악을 핍박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저와 정파연합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간절히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만 결과는 장담할 수가 없군요."
가까스로 냉정을 찾은 소천악의 말이 나오자 주혜미는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누구 없습니까?"
"네, 문주님."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종천리 총당주가 나타나 소천악에게 말했다.
"지금 주 낭자를 숙소로 안내해 주시고 바로 수뇌부 회의를 할 준비를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수뇌부들이 바쁜 일이 있어 오늘은 어려울 거 같습니다만……."
"그러면 내일 아침에 회의를 갖도록 주선해 주세요.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으니 신속히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죠, 문주님. 자, 주 낭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주혜미는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여 소천악에게 마지막 유혹을 던지며 사라져 갔다. 소천악은 그때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제길! 내 이상형이 왔는데 이건 무슨 개 같은 경우냐? 사랑을 따르자니 정이 울고 정을 따르자니 사랑이 우는구나.'
머리를 휘어잡고 고심에 빠진 소천악이었다.
그날 밤 숙소에서 소천악은 밤늦도록 아무런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을 그리며 창가에 기대앉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놓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점이 산적해 있는 것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여자가 소중하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수많은 사람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를 얻는다 한들 그 행복이 오래갈까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밤마다 꿈에 나타난 사람들의 원한 섞인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문주님 계십니까?"
밖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요?"
"지금 주 낭자가 급히 문주님을 찾습니다."
문도의 말에 소천악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유혹을 뿌리칠 힘은 그에게 도저히 없었다.
"알겠습니다."
소천악은 짧게 대답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사람이 물러나는 것을 느끼고 방 밖을 몰래 나갔다. 자신이 주인인 곳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사방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주혜미의 숙소로 향하는 소천악의 가슴은 거칠게 쿵쾅거렸다.
드디어 입구에 들어서자 입구에는 시녀 두 명이 다소곳이 지키고 있었다. 더 이상은 피할 길이 없어 소천악은 떳떳이 걸어 들어갔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시녀들은 소천악을 알아보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수고 많으십니다. 주 낭자가 저를 뵙자고 하셨다고요."
"네, 그렇다고 전해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천악은 똑똑 문을 두드리며 방에 들어섰다.
"저 소천악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문주님."
아리따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천악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방문으로 들어섰다. 방문을 닫고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소천악은 헉하니 숨을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입었던 옷을 벗어버리고 가느다란 나삼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나삼은 속살이 훤히 비쳐 그녀의 모든 몸매가 어렴풋이 드러나 소천악의 가슴을 진탕시키고 있었다.
"아니 이 밤중에 어인 일로 절 부르셨습니까?"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소천악이 말하자 주혜미는 휙하니 웃으며 소천악에게 술을 권했다.
"잠도 안 오고 해서 문주님과 그냥 담소나 나눌까 해서 불렀습니다."
"그러셨군요."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들킬세라 소천악은 얼른 고개를 돌리며 의자에 말없이 앉았다. 의자 위에는 어느새 준비했는지 조촐한 주안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잔 받으시지요, 문주님."
"고맙습니다, 낭자."
술잔을 들이밀자 술병을 든 주혜미가 다소곳이 술을 따랐다. 그 순간 스치듯 지나가는 그녀의 손끝의 감촉에 소천악은 몸이 자지러지는 듯한 전율을 느끼고 어쩔 줄을 몰랐다. 어색한 술자리가 한동안 이어지는 동안 소천악은 술잔만 연신 비우고 있었고 주혜미는 회심의 미소를 띄우고 술잔을 따르기 바빴다.
바로 근처에 앉아 있자 살 냄새가 은근히 풍겨 소천악의 정신을 혼돈스럽게 만들었다. 드디어 주혜미의 본격적인 본론이 터져 나왔다.
"문주님."
"예, 말씀하시죠, 낭자."
"문주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소곳한 물음에 소천악은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장담합니다. 제가 본 모든 여인 중에서 주 낭자는 최고의 미녀입니다."
"그러면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할 수만 있다면 낭자와 함께 평생을 해로하고 싶은 마음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면 되잖아요."
"그냥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주혜미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살아왔던 과정을 쭉 얘기했다. 자미혈성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어렵게 살아온 자기의 생을 얘기하는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어느 정도 맺혀 소천악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의 얘기가 모두 끝나자 소천악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생각을 했다.
"아픈 기억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저도 유년시절이 결코 행복하게 보냈다고 할 수 없지만 낭자에 비하면 그래도 저는 행복한 편이었군요."
"문주님도 힘드셨나요?"
"말도 마십시오. 순악질 사부에게 맞걸려 십여 년 동안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겨우 강호에 나온 몸입니다."
"그랬군요. 우리는 어렸을 때 서로 아픈 기억을 가진 동병상련을 가졌군요."
얘기를 하면서 머리를 슬쩍 쓸어 올리는 아찔한 유혹에 소천악은 참기 힘든 유혹은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탁 잡고 말했다.
"주 낭자! 저는 당신만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이 정말이신가요?"
"물론이오. 이것은 내 진심이오."
"그렇다면 저를 이렇게 살려주고 돌봐주듯이 저를 도와주세요. 아니 정파연합을 도와주세요."
"아, 낭자. 그것은 정말 힘든 부탁이오만……."
"그 부탁만 들어주신다면 저는 저의 모든 것을 문주님에게 위탁하고 평생을 살아갈 자신이 있어요."
그 말 한마디가 결정타였다. 소천악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내맡긴 듯한 그녀의 말을 듣자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그녀를 가슴에 푹 안을 수밖에 없었다. 착 감겨들어 오는 부드러운 감촉에 소천악의 정신이 아찔해지며 이성이 바로 무너졌다. 그 텅 빈 빈자리를 욕망이라는 놈이 거세게 뇌리를 치고 올라왔다.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한 감정에 서둘러 인세에 보기 드문 미인인 주혜미를 안고 싶은 간절한 욕망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불이 꺼지고 꿈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만리장성을 쌓은 두 사람은 서로 대조적인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주혜미는 각오한 일이고 자신이 만들었지만 정작 일이 벌어지자 처녀 특유의 알지 못할 아픔에 눈물을 비쳤다.
소천악은 드디어 찾은 이상형의 여인인 주혜미를 소유했다는 행복감과 이제 벌어질 일들이 무수한 걱정으로 다가오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저기요."
수줍은 듯 겨우 말을 꺼내는 주혜미를 본 소천악은 더욱 사랑스러운 감정이 들어 바로 대답했다.
"주저 말고 말하시구려. 이제 우리가 무엇을 부끄러워하겠소이까!"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된 처지라 느긋해진 소천악이었다.
"이제 소녀는 당신의 아내가 되었군요."
"물론이오. 절대 후회가 안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