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52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52화
혜연 맹주마저 싸움판에 나설 정도로 전세는 급격히 악화되어 가는 정도연합 무인들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져만 갔다.
제5-5장 드디어 찾은 천생연분 정파연합을 도와라
정파연합이 하루가 다르게 궁지로 몰리고 있는 시간!
폭풍문을 향해 급하게 말을 몰아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정문을 경비하던 두 무인이 다가오는 말을 보고 긴장된 대화를 나눴다.
"저거 뭐야?"
"그러게. 혼자서 쳐들어오는 미친놈은 아닐 테고."
어리둥절하는 두 무인은 점점 다가오는 인물의 용모를 보고 얼른 말을 고쳤다.
"미친놈이 아니고 년이네."
"크흠. 일단 무슨 수작을 부리나 지켜보자고."
중얼거리는 두 무인 앞으로 달려오던 여인은 급히 말고삐를 잡아챘다.
"워워. 멈춰라. 백홍아."
말 이름을 부르며 제지하자 척 봐도 명마 티가 줄줄 흐르던 말이 거짓말처럼 질주를 멈추고 천천히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다가섰다. 혜연 대사의 부탁을 받은 주혜미였다. 그녀는 얼른 말 잔등에서 내려 무인들에게로 다가왔다. 혜연 대사의 당부로 일단 면사를 쓴 상태였다.
"실례합니다. 전 정파연합에서 보낸 사람입니다. 급한 일이오니 어서 소천악 문주님을 뵙게 해주세요."
"정파연합? 그럼 지금 혈교와 싸우고 있는 정파연합에서 보낸 분이 낭자란 이야기입니까?"
"네, 여기 정파맹주이신 혜연 소림사 장문인의 밀서를 가지고 왔다고 전해주세요."
정파연합의 수장인 혜연 대사의 밀서란 말에 기겁한 두 무인이 나는 듯이 문파 내로 들어갔다. 잠시의 소란이 있은 직후 정문으로 다가서는 이는 총당주 직을 맡고 있는 종천리였다. 그때 주혜미가 면사를 벗었다.
"정파연합에서 오셨다… 헉!"
그는 눈이 뒤집힐 것 같은 주혜미의 미모에 정신이 반쯤 나갔다가 겨우 돌아왔다. 그나마 나이가 있어 그 정도였지 젊었다면 만사 제쳐놓고 덮치고픈 마음이 들었을 거란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다.
내심 놀라움을 감추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낭자가 혜연 대사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는 분이오?"
"그렇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소천악 문주님을 뵙게 해주세요."
주혜미는 속이 타들어가는 조바심을 드러내며 서둘러 말했다.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던 종천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이리로 오시오."
주혜미를 접견실로 안내한 종천리가 빠르게 소천악을 찾았다.
"문주님, 지금 정파연합에서 보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정파연합에서 누가 왔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소천악에게 종천리는 아무 생각 없이 다음 말을 꺼냈다.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전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습……."
종천리는 말을 미처 끝내지도 못했다. 마지막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미 소천악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총알같이 접견실로 날아간 것이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종천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놈의 버릇은 언제나 고칠까."
피식 웃으면서 따라가는 종천리의 발길에는 옅은 웃음이 깔려 나왔다. 소천악은 부리나케 접견실의 문을 열고 앞에 도착했다.
바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래도 체면을 생각해서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시선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묘령의 여인이 보였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절 찾아오셨다고요."
"소천악 문주님이십니까?"
"그렇소이다만."
비로소 고개를 돌리는 그녀를 바라본 소천악은 숨이 금방이라도 멎을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하얀 얼굴의 곧게 뻗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따라간 곳에 있던 그녀는 고운 눈매와 검은 눈썹, 차가우리만큼 날카로운 콧날, 곱게 빚어낸 듯한 입술, 윤곽이 뚜렷한 턱,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릿결, 홍조 띤 피부, 긴 목과 늘씬한 몸매 등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한마디로 완전한 미인 그 자체였다.
드디어 족자 여인과 견줄 수 있는 여인을 본 소천악은 감개무량했다. 도무지 눈을 돌릴 수 없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는 소천악이다.
얼굴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를 본 주혜미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살짝 돌리며 앵두 같은 입술을 열었다.
"저는 정파연합의 혜연 맹주님이 보내신 주혜미라고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은쟁반 위에 옥구슬이 주르르 흘러가는 소리와 똑같았다. 소천악은 넋이 반은 빠진 상태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쓰며 입을 열었다.
지금 소천악의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심봤다! 이말 외에는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반갑습니다. 소천악이라 하외다."
덤덤하게 말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한마디로 족자 미인과 똑같았다.
여자의 직감으로 소천악이 자신에게 푹 빠진 걸 느낀 주혜미는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들었다. 비록 그 희망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아픔이야 있지만 대의를 위해 기꺼이 포기할 마음의 준비가 끝난 주혜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정파맹주이신 혜연 소림사 장문인의 서신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주혜미가 전해주는 서찰을 얼떨결에 받은 소천악은 서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주혜미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는 통에 절로 무안해진 주혜미가 막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다.
"문주님, 어서 서찰을 읽으셔야지요. 주 낭자 얼굴만 보면 서찰 내용이 머리에 들어온답니까?"
실실 웃으며 말하는 자는 종천리였다. 혹시나 결례를 범하지 않을까 해서 급히 쫓아온 그는 적절한 시간에 나타난 셈이다.
"어, 총당주님이시구려. 읽어야지요. 암, 읽어야지요."
비꼬는 종천리의 말에 토도 달지 않고 서찰을 힘차게 펼쳤다. 서찰을 펼쳐 읽어 내리는 소천악의 안색은 시시각각 급변했다.
<정파연합의 맹주를 맡고 있는 소림방장 혜연이외다.
소천악 문주님이 지금 폭풍문 개파로 어수선한 걸 잘 압니다만 현재 정파연합의 사정이 너무도 안 좋습니다.
우리가 무너지면 다음 목표는 어차피 폭풍문이 될 겁니다. 물론 제가 시주의 입장이라도 서로 상잔하여 힘이 쇠진한 다음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원래 무림이란 정사가 균형을 유지해야 평화로운 법입니다. 만약 정파가 무너지고 사파가 득세한다면 그 어지러운 불안은 모두 문주님이 뒤집어쓸지도 모릅니다.
멀리 보시고 정사의 힘을 모아 혈교의 야욕을 잠재웁시다.
정파연합 맹주 혜연 배상.> 서찰을 접고 가만히 생각하던 소천악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아무리 여색에 빠졌다 해도 일은 일이었다. 자신의 능력 밖이란 생각에 얼른 입을 열었다.
"이건 중요한 사안이라 아무래도 우리 군사님이 계셔야 할 듯하네요."
"편한 대로 하세요."
"종 총당주님, 지금 즉시 심 군사님을 이리로 모셔오세요."
"존명!"
말은 정확해도 고개는 어정쩡하게 숙이며 사라지는 종천리의 무례는 이미 관심에도 없었다. 다만 주혜미의 얼굴에 집중된 시선은 도무지 철판을 깐 듯 움직이질 않았다.
얼마 후 허겁지겁 들어온 심자앙에게 서찰을 넘겨주자 심각한 안색으로 끝까지 읽는 그였다.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하던 그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이게 혜연 맹주님의 뜻인가요? 아니면 정파의 뜻인가요?"
"네? 그게……."
심자앙의 예리한 질문에 주혜미는 순간 할 말을 잊고 머뭇거렸다. 일이 풀리려면 정파의 뜻이 맞았으나 아직 정파의 의견이 모아진 건 아니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으로선 혜연 소림장문인의 의지로 쓴 서찰일 뿐이었다. 심자앙의 눈이 묘하게 빛을 발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폭풍문이 일개 방파이지만 그 세력은 실로 막강하오. 이런 문파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아무리 정파맹주라 하지만 엄연히 정파의 의견이 아닌 개인의 의사로 함부로 움직일 만큼 가볍게 보다니 섭섭하구려."
"그게 아니고……."
답변이 궁색한 주혜미가 말을 얼버무리자 날카로운 심자앙의 추궁이 이어졌다.
"그게 아니면 정파 무림인 전부가 동의한 일이란 거요?"
"아직은 아니지만 결국은 그리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낭자 혼자만의 생각에 불과하오. 강호무림에서 정파와 사파는 영원히 앙숙이었소. 지금 정파가 아무리 힘들 다 해도 그들의 자존심상 우리의 개입을 반길 리는 만무하오."
"……."
마땅한 답이 없어 주혜미가 침묵하자 그제야 느긋해진 심자앙이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우리도 돕고 싶소만 불청객 신세로 도와준다는 건 영 꺼림칙하오."
"아무리 그래도 어려울 때 도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 잘했소이다. 그래서 정파는 사존맹이나 집마부가 무너질 때 손 걷고 나서서 도와줬나요?"
"그건……."
주혜미는 갈수록 논리적으로 밀리자 선녀 같은 이마가 곱게 찌푸려지며 안타까운 심정을 대변했다. 묵묵히 두 사람의 설전을 바라보던 소천악은 영 심사가 불편했다.
이러다가 주혜미가 홧김에 뛰쳐나가기라도 하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이 될 형편인 걸 깨달은 소천악이 말했다. 물론 심자앙의 눈치를 살살 보는 건 당연했다.
"허, 이거 어려운 문제군요. 중원무림을 위해서라면 당장에라도 떨쳐 일어나야 하는데 현실은 어려우니."
"문주님, 이건 사사로운 개인의 정리로 움직일 게 아닙니다. 아차 하면 폭풍문의 수많은 문도들이 죽어 나자빠질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심자앙은 바로 소천악의 내심을 짐작하고 강하게 질렀다. 자칫 잘못 판단하면 폭풍문이 개파하자마자 멸문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당연히 소천악도 그런 정도를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다만 주혜미의 미모에 홀려 판단력이 흐려졌을 뿐이다.
"자, 이러지 말고 좀 더 시간을 두고 논의해 보기로 합시다."
얼른 사태를 얼버무리려는 소천악의 속셈에 찬물을 뿌리는 심자앙의 답이 나왔다.
"논의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문은 아직 정비도 허술하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정파가 어렵다고 해도 당장 어쩔 수 있는 상황은 절대 아님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누가 뭐라나요?"
약간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소천악이다. 자신의 이상형 여인을 눈앞에 둔 이 역사적인 시점에 방해하는 심자앙이 이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심자앙은 비록 욕을 먹더라도 이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지를 않았다.
"문주님의 결정에 수천 폭풍문도의 생사가 달렸다는 걸 생각하셔야 합니다. 순간의 판단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는 법입니다."
"알았어요. 일단 여기까지 하고 심 군사님은 물러가시오."
단호하게 말하는 소천악의 심사가 극도로 불편해졌다. 더 이상 말해 봐야 좋은 소리도 안 나올 걸 직감한 심자앙이 마지막 말을 던지며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