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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50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50화

 

  "그렇다고 항복은 안 할 거 아닌가?"

 

  "항복을 권유해서는 안 됩니다. 정파 무림인들은 의외로 자존심이 강해 항복을 권유한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제일 좋은 방법은 봉문을 시키는 방법입니다. 아예 문을 걸어 잠그게 하면 생존이 보장되니 격렬한 저항이 다소 완화될 겁니다."

 

  곡무릉 군사의 계책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구백천 혈교주가 말했다.

 

  "봉문이라, 그거 묘안이군."

 

  "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에게도 덤비는 법입니다. 저들에게 우리의 힘이 강함을 보여주고 50년 봉문을 명한다면 저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저들은 참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그 50년 동안 우리가 천하를 완벽히 휘어잡아 버린다면 저들은 더 이상 나설 곳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제자들을 모으지 못하게 은연중에 방해한다면 저들의 힘은 급속도로 악화되어 50년 후에는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혈교의 천년만년 천하가 다가오는 건 기정사실로 변할 겁니다.

 

  "

 

  "그렇군, 묘안이구먼. 역시 군사야."

 

  구백천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곡무릉 군사를 칭찬했다.

 

  "그렇다면 우리 전력상으로 큰 어려움은 없겠는가?"

 

  "정파 무림인들을 완전히 박멸한다면 큰 피해가 있겠지만 봉문시키는 게 목표라면 큰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파 문제는 그렇다 치고 폭풍문은 어떻게 할 것인가?"

 

  "폭풍문에 대해서는 일단 저희가 감시의 눈동자를 늦춰서는 안 됩니다. 이미 제가 폭풍문 근처에 많은 첩자들을 숨겨놓았습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모두 보고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놨습니다."

 

  "잘했군. 그래, 저들의 움직임은 어떠한가?"

 

  "저들은 지금 금방 만들어진 신생 문파이기 때문에 문파를 정비하기도 바쁜 처지라고 보인다는 것이 첩자들의 공통적인 평가입니다."

 

  "그럼 당장은 우리와 싸울 일은 없다는 거네?"

 

  "예, 그렇습니다. 일단 정파 무림인들을 제압한 후에 저들을 상대한다면 크나큰 어려움 없이 저들마저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좋아. 군사의 말대로 일단 폭풍문은 제외한 채 중원공략을 시작할 수 있도록 신속히 준비하라."

 

  "존명!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모여 있던 장로와 수뇌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외치자 장내는 일시에 살기 그득한 살벌한 곳으로 돌변했다.

 

  며칠 후.

 

  일전 삼각 육당으로 이뤄진 혈교는 서서히 기지개를 펴며 총출동 준비를 마쳤다. 소속 고수 한 명 한 명이 일류고수 이하인 자는 전혀 없었다. 적어도 천하를 논하는 집단답게 놀라운 무력을 지닌 강파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항상 조용하게 움직이던 총단이 오늘따라 유난히 활기를 보이는 기분이었다.

 

  혈교의 심장부라 일컬어지는 혈교주전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아침부터 모여 심각한 기색으로 머리를 마주 댔다. 중앙에 마련된 태사의에는 사십대로 보이는 중년인이 전신에서 살벌한 기세를 뿜으며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구백천 혈교주였다. 화려한 형형색색의 비단옷을 입은 채 위엄을 쭉쭉 뿌렸다. 그의 눈빛 하나에 혈교를 쥐락펴락하는 당대의 거물들이 설설 기는 기색이 확연했다. 한참을 그리 침묵을 지키던 대전이었다. 마침내 구백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가 떨쳐 일어나 강호에 나설 때가 온 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교주에게 잽싸게 한 사람이 대답했다. 혈교의 모든 지략을 담당하는 군사인 곡무릉이었다.

 

  "이제 드디어 혈교천하가 다가온 듯합니다, 교주님."

 

  "기나긴 세월 동안 우리 형제들이 어둠에서 고생했구나. 이제 그 대가를 천하에게 받아내리라."

 

  "교주님 천세!"

 

  모여 있던 혈교인들 사이에서 광폭한 외침이 흘러나오자 만족감을 드러낸 구백천 혈교주가 내공을 담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이제 모조리 짓밟아라. 우리를 가로막는 놈들이 누구건 간에 싸그리 쓸어라."

 

  "존명. 혈교는 영원하다."

 

  장내에 있던 혈교 무인 수백 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소리치자 전각이 순간 무너질 듯한 광기의 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출전을 위한 의식은 길게 진행되었고 혈교인들의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어 갔다. 마침내 모든 의식이 끝나자 혈교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광분했다.

 

  "어둠의 세월에 피의 복수를!"

 

  구백천은 비릿한 미소로 혈교인들에게 손짓하며 의식을 종료시켰다. 잠시 후 혈교주 집무실에는 수뇌부가 일제히 모였다. 먼저 구백천이 강단 있게 입을 열었다.

 

  "우리의 대업의 성공 확률은?"

 

  "현재로선 구 할 이상입니다."

 

  "좋아. 의외의 변수는 없는가?"

 

  "딱 하나 변수였던 혈검신마가 아직도 종적을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죽었거나 은거에 들어간 거로 보입니다."

 

  "음, 그자만 없다면 우리 갈 길에 장애물은 없을 텐데."

 

  "그렇게 그자가 대단합니까?"

 

  "엄청난 놈이지. 진신절학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는 자야. 그가 정파의 편을 든다면 대업이 힘들 수도 있지."

 

  나지막이 말하는 구백천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배어져 나왔다. 그의 기억은 멀리 과거로 여행했다. 석년 그의 사부였던 만겁마황 진강뢰가 들려준 당시 겪었던 쓰라린 경험을 잊지 않았다.

 

  만겁마황!

 

  세인들은 몰랐지만 전대 혈교주였다. 그는 천마신공을 오 성 이상 대성한 인물이었다. 대단한 성취였다. 현재 마교주 구백천이 불과 육 성에 불과한 걸 생각하면 가공할 무재임에 틀림없었다. 수련 기간의 차이가 만든 성취일 뿐 똑같은 시간이었다면 만겁마황은 칠 성 아니 그 이상 이룰 천재였다.

 

  그런 그가 강호로 나가기 전 돌아가는 정세를 살피려 출행했다가 우연히 혈검신마와 시비가 붙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검에 죽일 요량이었으나 오산이었다. 혈검신마는 결코 만만한 상대도 아니었고 자신에게 시비를 건 인간을 용서할 아량도 없는 골치 아픈 자였다.

 

  무려 삼 일에 걸친 혈전!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펼치고서도 전혀 우세를 점하지 못하는 피 말리는 접전이었다. 삼 일이 지날 때 혈검신마가 한 말에 혈압이 올라 뒤로 넘어갈 뻔한 진강뢰였다.

 

  "야, 그만 하자. 이제 비전절기를 쓰면 네놈이야 죽겠지만 나도 무사하긴 어려우니 그 짓을 내가 왜 하냐. 정 하겠다면 일단 유서라도 쓰고 마지막 승부를 하든지."

 

  "이런 황당한."

 

  만겁마황은 분함에 치를 떨었지만 혈검신마의 무공에 질려 있는 터라 순순히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티는 안 냈지만 내상이 극심해 바로 혈교로 돌아가 진기요상을 얼마나 해야 할지 암담한 처지였다.

 

  혈검신마는 가면서도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꼴을 보아하니 나름대로 힘깨나 쓸 거 같은데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은 법이야. 내상이 심하니 어서 가서 치료나 해. 후후."

 

  차갑게 비웃으며 떠나는 그를 눈빛으로 죽일 수 있었다면 골백번은 죽인 만겁마황이었다. 바로 혈교로 돌아온 그는 진기요상으로 치료를 시도했지만 워낙 내상이 깊어진 걸 알고 탄식을 터뜨렸다.

 

  "휴, 이런 황당한 일이."

 

  만겁마황은 뒤늦게 혈검신마가 누군지를 알았다. 그 후 이 년간 병석에서 골골거리며 겨우 생을 이어가던 그가 죽기 직전 지금의 혈교주인 구백천을 불러 조용히 당부했다.

 

  명심해라. 혈검신마 그자를 죽이기 전에는 절대 강호를 넘봐서는 안 된다. 비록 그가 정사지간의 인물이라 하지만 변덕이 죽 끓듯 하니 만약 방해한다면 우리 혈교로서는 이백 년 전의 아픔을 다시 느낄 수밖에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어서 쾌차하시지요."

 

  "이 자식이. 누굴 놀리는 거야? 이제 죽기 전에 마지막 유언인데 쾌차라니."

 

  화를 벌컥 내던 만겁마황은 울화병이 도져 며칠 못 살고 죽고 말았다.

 

  그 후 교주에 오른 구백천은 세력을 키우는 한편으로 혈검신마의 제거에 혈안이 되어 온갖 권모술수를 총동원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회한에 잠긴 구백천을 바라보던 곡무릉 군사가 눈치 빠르게 교주의 심정을 짐작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말했다.

 

  "후후, 교주님. 염려 마십시오. 전에 멍청한 정파 놈들이 우리 첩자의 충동질에 속아 그를 무림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곡무릉의 말에 만족한 듯 파안대소를 터뜨린 구백천의 입이 흐뭇하게 열렸다.

 

  "하하, 그게 최고의 성과였지."

 

  "설령 그가 다시 강호에 나온다고 해도 자신을 무림공적으로 몰아붙인 중원무림의 편을 들 리가 만무합니다."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고심이 섞인 교주는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그는 이미 이십 년 전에 강호를 정벌할 욕망을 불태웠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막 일어서려는 순간 우연히 강호정찰길에 관도에서 혈검신마와 시비가 붙었다. 노화가 치민 그가 혈검신마를 단번에 죽이려 했으나 한마디로 착각이었다. 상상외로 고수였던 혈검신마는 차갑게 비웃으며 오히려 그를 사경에 몰아붙였다.

 

  일대일에 밀리는 걸 본 혈교장로들이 기겁해 체면을 버리고 합공을 펼쳤으나 모두 중상을 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혈검신마가 자신들의 정체를 몰랐다는 점이다. 졸지에 혈교의 수뇌부가 몰살당할 위기에 몰리자 구백천 혈교주가 다급한 김에 바친 무공비급과 전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치욕적인 일이 있었다.

 

  놀란 구백천과 장로들은 일단 강호정벌 계획을 미루고 혈검신마에 대한 조사를 펼쳤다. 결과는 한마디로 절망이었다. 하필이면 사부인 만겁마황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바로 그 자였다.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는 혈교였다.

 

  혈검신마는 이미 천하제일인으로 정사를 오가는 말 그대로 신비인이었다.

 

  고심에 빠진 혈교 수뇌부는 정공을 피하고 모략전을 펼쳤다. 정파를 충동질해 그와 상잔하거나 무림공적으로 만들 묘안을 짜냈다. 결과는 비록 죽이지는 못했으나 무림공적으로 만드는 건 일단 성공했다. 그가 무림공적으로 몰려 은거했다는 소식을 들은 구백천 혈교주와 장로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얼마나 기뻤으면 삼 일 동안 전 혈교도에게 잔치를 베풀었을까!

 

  그날 이후 혈교는 죽을힘을 다해 중원정복의 야욕을 가지고 착착 계획을 진행시켰다. 과거의 회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 구백천이 벅찬 마음으로 떨리는 음성을 꺼냈다.

 

  "모든 혈교도를 모으시오. 이제 출정식을 가지고 중원을 짓밟을 일만 남았소."

 

  "존명."

 

  장로들이 깊이 고개를 숙이며 흩어졌다.

 

 

 

  얼마 후 혈교주전 앞에는 수천 명의 혈교 고수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들의 기다림은 그리 오래지 않아 실현됐다. 구백천 혈교주가 검은 무복을 차려입고 단상에 올라 사방을 쭉 둘러보고 만족한 어조로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혈교도여! 이제 이백 년간 기다려왔던 우리의 시대가 열렸다."

 

  "우와!"

 

  함성을 지르는 혈교도를 손으로 제지시킨 구백천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정파의 쓰레기들은 우리가 무서워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서 보여주자, 이백 년의 한을 품고 살아온 우리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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