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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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22화
157장 초대(招待)
찬바람이 누그러지고 햇살이 유난히 따뜻한 날 오후.
마침내 척마대가 구천성에 도착했다.
우문각과 전무궁 등 소성주파 간부들은 북문 밖에까지 마중 나가서 척마대를 맞이했다.
공손백을 비롯한 반대파들도 속이 쓰렸지만 방안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척마대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구천성으로 귀환했다.
의외라면 찬강과 금룡장 무사들이 구천성까지 동행했다는 것이다.
장천운의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은 찬강이 양적과 의논해서 지부 중 하나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구천성의 지부 중 최강지부가 탄생했다.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도착한 사마경은 모든 일정을 다음 날 이후로 미루었다.
“몸이 아직 안 좋아요. 자세한 것은 내일 아침 회의에서 말하도록 해요.”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말은 훌륭한 핑계거리가 되었다.
귀찮은 사안을 모두 뒤로 미룬 그녀는 구천무원에서 오랜만에 마음 편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장천운은 편히 쉴 팔자가 아니었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할 일도 많았다.
장천운은 구양명에게 호위 임무를 맡겨놓고 우곡을 찾아갔다. 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좀 어떻습니까?”
“이제는 어떤 놈하고 붙어도 자신 있소이다. 아! 소사조만 빼고 말이오.”
“정말 다행입니다.”
안부 인사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장천운이 넌지시 말했다.
“저…… 전에 총사에게 얻어온 그림 좀 봤으면 하는데요.”
“명월나녀도 말이오?”
“예.”
“잠시만 기다리시구려.”
우곡은 깊숙한 곳에서 족자를 꺼내왔다.
그러고는 장천운 앞에서 쫙 펼쳤다.
장천운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림을 바라보았다. 특히 그림의 얼굴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우곡이 넌지시 물었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소?”
“아뇨, 너무 아름다워서요.”
생각지 못한 대답에 우곡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하긴 소사조도 피가 팔팔 끓는 청년인데…….’
하지만 그가 생각한 것과 다른 이유가 있었다.
“총사가 그러시더군요. 돌아가신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고……. 저는 어머니를 한 번도 못 봤지요. 그런데 이 그림과 어머니가 닮았다면…… 어머니도 참 아름다우셨을 것 같습니다.”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명월나녀도를 들고 있던 우곡의 손끝도 가늘게 떨렸다. 괜히 눈자위가 찡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이 그림을 소사조께 드리리다.”
아쉬웠지만 장천운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양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천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비슷할 뿐 어차피 어머니의 초상도 아닌데요 뭐. 그림은 우 노선배님이 가지세요.”
“그래도…….”
“도망친 아버지를 잡으면 어머니 초상을 그려달라고 할 겁니다.”
도망친 아버지?
우곡은 눈을 껌벅였다.
‘무슨 소리야? 소사조는 고아였다고 안했나?’
그가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장천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철산을 생각하니 또 화가 났다.
저렇게 아름다운 어머니를 혼자 놔두어서 역병에 걸려 돌아가시게 만들다니!
‘만나기만 해봐라!’
* * *
장천운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청묵전이었다.
공손백은 혼자서 당당하게 자신을 찾아온 장천운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소성주의 마기가 무사히 제거되어서 다행이네.”
“감사합니다, 대령주.”
“전에 자네가 한 말, 나의 과거를 모두 묻겠다는 말, 잊지 않았겠지?”
“물론이지요. 이제는 그 일로 대령주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고맙군.”
“앞으로도 소성주께서 구천성을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그럴 생각이네.”
오랜 만에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졌다. 최소한 겉으로나마 그렇게 보였다.
“동백을 풀어줄 생각입니다. 그런데 다른 세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지요?”
“알고 보니 그들 셋은 동백의 꼬임에 빠졌을 뿐이더군. 해서 다시 거둘까 생각 중이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십니다.”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네.”
장천운은 그 후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일각쯤 더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게나.”
공손백은 장천운이 나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곧 방문이 닫히면서 장천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네가 이겼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인 법…….’
차가운 눈빛을 번뜩인 그는 몸을 돌려서 청묵전 안쪽으로 향했다.
* * *
청묵전을 나와서 우문각을 만난 장천운은 그간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정유에게 다 들었을 테지만, 그가 모르는 것도 있었다.
특히 단목화종에 대한 이야기는 우문각조차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장천운은 소천과 장철산에 대한 또 다른 비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기도 좀 애매했다.
‘알고 보니 장철산이란 분이 제 아버지더군요.’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글쎄, 전대 성주께서 살아계시지 뭡니까?’라고 하면 미친놈 취급받을지 몰랐다.
그가 살아 있다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면 되고, 죽었다면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무 할아버지 말대로 죽은 사람은 죽은 것으로 하는 게 나았다.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마친 장천운은 비령각을 나왔다.
그러고는 전무궁을 만나서 두어 가지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 사이 밤이 되었다.
구천성을 나선 장천운은 남풍루로 갔다.
먼저 와있던 이응이 그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령주.”
“그 노인네는?”
“창고에 있습니다.”
“별 일 없었소?”
“저…….”
이응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소? 또 그가 독을 만들었소?”
전에 독을 만드는 걸 보고 이중삼중으로 철저히 감시하라고 했다. 자칫하면 엉뚱한 사람들이 죽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 일 때문은 아닌 듯했다.
이응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이틀 전에 회주님께서 오셨다 갔습니다.”
“왕 회주가?”
“예. 그런데…… 좀 팼습니다.”
장천운은 귀독마종이 있는 창고로 갔다.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었고, 팔다리도 다친 듯 움직임이 굼떴다.
단순히 혈도를 제압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끄응, 그놈이 왔었네.”
장천운은 왕유를 탓할 마음이 없었다. 그가 귀독마종을 팬 이유를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했소?”
귀독마종이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켰지 않은가.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왕유가 많이 참은 것이었다.
“나는 나를 죽이려는 놈들에게 잡히지 않으려 했을 뿐이야.”
“아무리 그래도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죽인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오. 아마 왕 회주가 당신을 죽였다 해도, 나는 당신을 조금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요.”
냉랭히 쏘아붙인 장천운은 한쪽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귀독마종은 얼굴을 씰룩이더니 고개를 돌렸다. 주름진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그때 장천운이 툭, 말을 던졌다.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소.”
순간, 귀독마종이 홱, 고개를 돌려서 장천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 말이 맞았다고?”
“뇌혈산. 그것으로 한 사람을 죽였다 살렸소. 그리고 사도의 대법을 펼쳐서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만들었소.”
“그, 그게 사실이냐?”
“당신의 사형이라는 사람이 그 일에 참여한 것 같소.”
“그, 그런…….”
“동방무기라는 이름을 아시오?”
귀독마종의 주름진 눈꺼풀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동방 형님이…… 그분이 그럼……?”
그가 형님이라고 존대하며 부를 만한 사람은 세상에 둘밖에 없다.
사형인 독선자(毒仙子)와 사형의 유일한 절친인 동방무기.
그가 하늘 아래에서 존경하는 단 두 사람.
그 두 사람이 벌인 일이라면 이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랬군, 그랬어……. 그분들이 했던 일이었어. 그러니 내가 모를 수밖에.”
“내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기 때문이오.”
“뭘 알고 싶은가?”
“그 대법이 펼쳐진 사람을 본래대로 되돌릴 수 있소?”
* * *
무적장 사람들은 이틀을 머문 후 남쪽으로 내려갔다.
단리성우는 따라가지 않았다.
단리승은 그를 위해 호위 열둘을 남겨주었다. 아들이 왜 남겠다고 하는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들의 편이었다. 그 자신도 부친과 가문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평범한 일반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지 않은가 말이다.
십 리 밖까지 배웅한 단리성우는 무적장 사람들이 언덕길을 돌아가며 보이지 않자, 후다닥 몸을 돌려서 구천성으로 달려갔다.
구천성으로 돌아오자마자 의당으로 달려간 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연송하의 방문을 열었다.
“연 소저! 할아버님과 아버님께서 가셨소. 이제 언제든 만날 수 있소.”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던 연송하도 그를 웃으며 맞아주었다.
단리성우가 장난으로 찔러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그의 진심에 감동했다.
아버지가 흑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아온 그녀였다.
그에 대한 이야기도 단리성우에게 했었다. 그 이야기를 하면 단리성우도 결국 자신을 외면할 거라 생각해서.
무적장의 후계자가 자신 같은 흑도출신의 여인을 받아들이겠는가.
그런데 단리성우가 말했다.
“장 대주도 무창의 흑도출신이었다 하오. 당신 눈에는 내가 장 대주보다 잘난 사람으로 보이오?”
“정 그게 마음에 걸리면, 나도 흑도에 한번 몸담아 보지요 뭐.”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할 것 같았다.
연송하는 장천운과 단리성우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마음을 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새로 의지하게 된 남자를 위해 조언을 하나 해주었다.
“혹시라도 오라버니가 특별교육을 하자고 하면, 제가 찾는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오세요.”
* * *
쌀쌀하던 바람이 이제는 차갑게 느껴졌다.
누렇게 변한 낙엽들이 겨울이 밀려드는 것을 알리며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마경이 돌아오고 닷새가 지났다.
청산궁과 암천문의 무리에 대한 소문이 간간이 들렸지만, 그들은 이제 구천성을 넘볼 수 없었다.
새해까지 남은 기간은 이십여 일.
한 달 후면 신임성주가 정해질 것이다.
구천성 사람들 중 사마경이 성주가 되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첫눈이 내리던 날, 공손백이 사마경을 비롯해서 구천성의 간부들을 청묵전으로 초대했다.
십이월 십이일.
그날은 공손백의 육십 회 생일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서너 군데서 소란스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고위간부 중 십여 명이 출동한 상태였다.
대부분 소성주파에 속한 주요간부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은 공손백 쪽에 속한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다수가 부상자였다.
그러다 보니 청묵전에 모인 간부는 오십여 명에 불과했다.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백부.”
“허허허허, 별 말씀을. 소성주께서 기꺼이 와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오.”
서로 인사가 오가면서, 생일잔치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천외와의 전쟁이 끝난 후 구천성은 다시 천하제일세의 위명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마도사파는 앞 다투어서 예물을 보냈고, 충성을 맹세했다.
모두가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장천운도 조용히 사마경의 옆에 앉아서 식사를 즐겼다.
그는 술과 음식을 미리 맛보면서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술과 음식, 어디에도 수상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잔치가 무르익어갈 즈음, 은창현이 건배를 제의했다.
마침 내놓았던 술이 거의 다 떨어진 터였다.
“어허! 뭐하느냐? 빨리 술을 가져와서 어른들의 잔을 채워라!”
시녀들이 급히 술을 가져와서 잔을 채웠다.
잔이 채워지자 모두들 술잔을 높이 들었다.
“자! 임시성주이신 소성주님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하면서 건배를 합시다!”
“소성주님의 건강을 위하여!”
“임시성주님의 건강을 비외다! 하하하하!”
“이제는 성주님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공손백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 말이 맞소! 그럼 성주의 건강을 위해 건배합시다!”
모두가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사마경도 일어나서 술잔을 높이 들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한 건배였다. 사양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