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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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20화
이제 장천운도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
“철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장철산이란 분 말입니까?”
“그래.”
“왜 그분 일 때문에 저에게 미안하다는 겁니까?”
“너에게서 아버지를 뺏어갔으니까.”
“제 아버지요? 제 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던 장천운이 입을 다물고 무 노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서, 설마……?”
“그래, 철산이 네 친아버지다.”
쇠망치에 뒤통수를 얻어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천하의 초인경 고수도 충격은 어쩔 수 없었다.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네가 아버지라고 불렀던 그 친구는 철산의 수하였지.”
“하, 하지만 그분은 이십여 년 전에…… 아들이 죽었다고 했는데…….”
“이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
“네가 네 어미의 뱃속에 생겼을 때부터.”
장천운은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모든 일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 보면 거짓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더 어이가 없고 혼란스러웠다.
이를 악물고 겨우 정신을 차린 그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그분도…… 장⋅철⋅산! 그분도 알고 있습니까?”
무 노인이 그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더니 저 멀리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고 있다. 그래서 도망간 것 같다. 너에게 혼날까 봐.”
“…….”
* * *
태양이 서쪽 산봉우리로 넘어간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석양이 지기까지 한 시진 정도 남았을까 싶었다.
척마대 무사들은 음양곡을 출발하기 위해서 한쪽으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침중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동굴 앞의 기문진은 파훼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곳에 들어간 자들을 구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암천문의 살귀들에게 모두 죽었을지도 몰랐다.
설령 살아 있다 해도, 그들이 구출되기를 기다리다가는 중상을 입은 사람들이 죽을 판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만 출발합시다, 소성주.”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사마경이 출발을 미루려 하자, 구평추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성주 마음을 모르지 않소만, 저녁이 되면 정말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소이다.”
단리승도 그의 말을 거들었다.
“그렇소, 소성주. 밤에 암천문 놈들이 동굴을 나와서 공격하면, 어찌어찌 놈들을 막아낸다 해도 피해가 더 커질 거요.”
사마경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일천의 시신을 놓고 가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까지 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유가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의견을 말했다.
“일단 감시조만 남겨놓고 이곳을 나간 다음, 최대한 빨리 전열을 정비해서 다시 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제야 사마경이 할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알았어요. 그럼 출발해요.”
암봉 쪽을 바라보고 있던 장천운도 고개를 돌렸다.
결국 무 노인과 소천은 합류하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사마경에게 말하지 않을 생각인가?
혹시 소천이 죽기라도?
많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갔다.
“뭐해? 안 갈 거야?”
옆에서 사마경이 다그치듯 말한 후에야 장천운은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면 시간 내서 장철산이란 분을 찾아봐야겠군.’
아직은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색했다. 화도 나고.
‘애도 아니고…… 왜 도망가?’
척마대 무사들은 무거운 마음을 간직한 채 음양곡을 출발했다.
중상자들이 많아서 험한 계곡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출발한지 반 시진이 넘어설 때쯤에서야 진입작전을 세웠던 넓은 장소에 도착했다.
척마대는 중상자 때문에 잠시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잠깐 쉬어간다 해도 해가 지기 전에는 계곡을 벗어날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계곡 양쪽에서 세찬 바람에 나뭇잎이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츠츠츠츠츠츠.
사마경 옆에 있던 장천운이 제일 먼저 고개를 쳐들었다.
‘살기!’
나뭇잎이 쓸리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가 아니었다. 바람이 거의 없었으니까.
대신 살기가 밀려들었다.
인간만이 내뿜는 더러운 살기가!
“적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뒤늦게 살기를 느낀 고수들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적이 온다!”
“부상자와 시신을 가운데 두고 진형을 갖춰라!”
척마대 무사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적을 맞이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로부터 열을 셀 즈음, 일갈이 계곡을 뒤흔들었다.
“공격해라!”
계약 양쪽 중턱에서 무사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들은 들키지 않으려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덕분에 척마대는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대신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공격을 시작할 때쯤에는 척마대도 진형을 거의 다 갖추고 있었다.
“저들은 파천회요! 조심하시오!”
모용문태가 적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양쪽에서 쏟아져 내려온 파천회 무사들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구천성 무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도의 무리를 처단하라!”
서문주경이 자신 있게 소리쳤다.
척마대가 암천문과 싸우는 걸 멀리서 지켜본 그였다. 싸움이 어찌나 치열한지 보는 내내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탁무겸과 장천운와 대결도 보았고, 탁무겸이 죽어가는 것도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다.
소문보다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장난하듯 내려친 장천운의 검에 탁무겸이 쓰러지는 모습은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그들보다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훨씬 더 굉장했다.
싸움이 거의 끝나갈 때쯤 본 터라 자신이 미처 못 본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마나 차이가 나랴.
오죽하면 ‘내가 저런 놈들을 두려워했다니.’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직접 죽일까? 그럼 저놈의 명예가 고스란히 내 명예가 될 텐데.’ 그런 욕심도 들었다.
어쨌든 결국은 탁무겸이 죽고, 암천문은 안쪽으로 도망쳤다.
피에 절은 척마대 무사들도 부상자가 태반이었다.
반면 파천회에는 강호 정파의 내로라하는 고수 상당수가 합류해 있었다.
무림맹이 구천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자 실망해서 파천회에 합류한 고수들.
개중에는 칠절에 속한 고수가 셋이나 되었고, 그들 외에도 정파를 대표하던 고수들이 삼십여 명이나 되었다.
더구나 파천회 쪽 무사의 수가 척마대에 비해 두 배 이상 되었다.
절호의 기회!
혹시나 했던 우려를 멀리 날려버린 서문주경은 자신이 직접 앞으로 나섰다.
몇몇 고수들도 그를 따라 신형을 날리며 악을 쓰듯 소리쳤다.
“구천성 무리를 제거하여 강호에 정의를 세우자!”
“놈들은 얼마 안 된다! 모조리 쓸어버려!”
척마대 무사들은 핏발 선 눈으로 이를 갈았다.
정의를 앞세운다는 놈들이 암천문과 싸우고 나온 자신들을 급습하다니.
“개만도 못한 놈들! 네놈들은 정의를 내세울 자격도 없다!”
“남의 위기를 틈타서 습격하는 놈들이 정의라고? 쥐새끼나 다름없는 놈들이 정의를 모욕하는구나!”
“네놈들이 더 더럽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쏟아졌다.
파천회 무사 중 몇은 부끄러움을 느낀 듯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은 신경 쓰지 않고 살수를 펼쳤다.
척마대원들도 살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치밀어 오른 분노가 부상과 지친 체력을 대신했다.
숫자가 적고 부상을 당했다지만 개개인의 실력을 따지면 그들이 한 수 위였다.
물러서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시간이 가면서 계곡 안에서 벌어진 난전은 점입가경으로 치달렸다.
서문주경의 안색도 굳어졌다.
처음에만 해도 싸움에 지친 척마대 무리를 금방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적의 저항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셌다.
우세를 점하고 있긴 하나 파천회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빌어먹을!”
서문주경의 입에서 욕설이 절로 터져 나왔다.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장천운은 사마경을 호위하며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일대가 넓다 하나 삼천여 명이 싸움을 벌이자 개미떼가 구덩이에 가득 찬 듯했다.
중앙에 척마대를 두고 파천회가 둘러싼 형국.
그 바람에 파천회 무사들은 아직 사마경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천운, 나는 염려 말고 흑월대와 흑영대를 데리고 나가서 싸워. 저들에게 뭘 잘못했는지 알려줘.”
사마경이 장천운에게 출전을 명했다.
“괜찮겠습니까?”
“걱정 마, 저들이 여기까지 들어올 정도면 천운이 옆에 있어도 못 막아.”
냉정한 판단.
장천운도 망설이지 않았다.
“소성주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구양명과 남사명, 구천호령에게 사마경의 호위를 맡긴 그는 전장 속으로 몸을 날렸다.
현재 공력을 육성밖에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내상도 제법 심했다. 그 때문에 처음부터 공력소모가 적은 환신술을 펼쳤다.
부풍비로 십여 장을 단숨에 날아간 그의 신형이 허공에서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흑월대와 흑영대도 목줄이 풀린 미친개처럼 파천회 무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은 사마경을 호위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사망자도, 부상자도 적었다. 그 점이 다른 무사들에게 미안하던 터였다.
“우리가 맡을 테니 잠깐 숨 좀 돌리쇼!”
“다 죽여!”
“이제부터 특별교육을 시작한다! 이 개자식들아!”
유령이 바람처럼 흘러갈 때마다 피가 튀고 공포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뭐, 뭐야? 컥!”
“조심해!
파천회 무사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당한지도 모른 채 죽어갔다.
파천회 간부들은 수십 명이 그렇게 죽어간 후에야 유령의 정체를 알고 허둥지둥 대책을 마련했다.
“장천운이다! 놈이 괴상한 술법을 쓰고 있다!”
“놈의 움직임을 차단해라!”
“발견되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무력으로는 장천운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흑월대와 흑영대 쪽도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갔다.
철천지원수를 대하듯 악을 쓰며 달려드는 흑월대다. 그때만큼은 두양양조차도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흑영대도 그들에게 전염이 된 듯 무공을 펼치면서 기합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다 보면 두려움도 덜어졌고, 힘도 더 나는 듯했다.
파천회 무사들은 미친 듯 달려드는 그들을 보고 주춤거렸다. 얼굴에는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뭐 저런 미친놈들이 있단 말인가!
서문주경은 장천운이 뛰어든 이후 안색이 급변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조차 장천운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었다. 칠절 중에 속한 절대고수도 장천운의 위치를 간파하지 못해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하물며 다른 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놈의 신법이 괴이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군.’
역시 자신이 탁무겸과 장천운의 싸움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는 듯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장천운을 자신이 직접 상대하려 했으니.
한편으로는 후회도 되었다.
회주가 느닷없이 모든 걸 자신에게 맡긴다고 했을 때 쾌재를 부르며 받아들였다.
실수였다. 회주라도 이 자리에 있었으면 저놈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거늘!
‘그 영감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때였다.
“서문주경! 네 목을 잘라서 모용가의 형제들 앞에 바치겠다!”
서문주경은 분노에 찬 외침을 듣고 고개를 홱 돌렸다.
모용문태가 자신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답답하던 차에 들린 모용문태의 도발은 그의 냉정함을 흔들어 놓았다.
“오냐, 모용문태!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욱한 마음이 든 그도 마주 소리치고 몸을 날렸다.
분노가 실린 모용문태의 칼은 그가 왜 북천도왕이라 불리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콰아아아아!
푹풍 같은 도기가 서문주경을 몰아붙였다.
서문주경은 새삼 모용문태의 강함을 깨닫고 안색이 해쓱해졌다.
‘이렇게까지 강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에게도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었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남몰래 익힌 그 무공을 쓰기 위해서 기회를 노렸다.
시신이 쌓이고 피가 내처럼 흘렀다.
팽팽하게 흐르던 전세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장천운에 대한 공포가 전체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정확히는 유령에 대한 공포였다.
봉절이라 불리던 천봉일추 주극송이 장천운의 연검에 허리가 잘리면서 그 공포는 더욱 덩치가 커졌다.
사람들은 초인경의 고수가 어떤 존재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일당천.
그 단어는 단순히 과장하기 위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한 사람이 일천 명을 상대할 수 있었다.
쾅!
파천회 무사들의 공포가 커져 갈 때 한쪽에서 굉음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