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1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15화
“왜 제자인 탁무겸과 적이 되신 거요?”
“내가 그 놈을 싫어했지. 그래서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네. 그런데 귀신처럼 눈치 채고 먼저 나를 제압한 다음, 손발에 쇠사슬을 채우고 뇌옥에 가두더군.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지. 그 후의 생활은 말하지 않겠네. 비록 힘은 잃었지만 자존심까지 버린 것은 아니니까.”
단리황의 눈이 커졌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어둠의 하늘을 지배했던 암천신마가 제자에게 당해서 십여 년 동안 짐승취급을 받았다니.
그 이야기를 담담히 하는 단목화종이 이상하게 커보였다.
떨리는 눈으로 단목화종을 바라보던 단리황이 조금은 씁쓸하고, 조금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와서 과거의 일을 따지면 뭐하겠소. 모욕을 당한 것도 내 실력이 모자랐던 탓인 것을. 오늘 부로 그대와의 일은 잊으리다.”
그러고는 미련을 버렸다는 듯 돌아섰다.
물끄러미 단리황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단목화종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보게. 혹시 그거 해봤나?”
막 방을 나서려던 단리황이 돌아섰다.
“뭘 말이오?”
“자네의 경천무원장 중 탄자결 칠 할의 힘에 중자결 삼 할의 힘을 중첩시키면 무척 재미있는 장법이 나올 것 같던데 말이야.”
단리황은 그 말을 듣고 석상처럼 몸이 굳었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강한 진기가 내부에서 부딪쳐 자칫 내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부딪치지 않는다 해도 무거운 중자결로 인해서 탄자결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게 제대로 성공할 경우 지금보다 한 단계 더 강한 장법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하겠소?”
“못할 거 뭐 있나? 공력만 조금 부드럽게 조절해서 조화를 이루면 될 거 같던데.”
단리황은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지금껏 강맹한 심법을 추구해왔다. 강맹한 힘이 강한 무공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장무적도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공력이 강맹함과 조화를 이루면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해보았다.
석상처럼 굳은 채 생각에 잠겼던 그가 천천히 두 손을 들어서 포권을 취했다.
“깨우쳐줘서 고맙소.”
“고마워할 것 없네. 빚을 갚은 것뿐이니까.”
* * *
어둑한 석실.
탁무겸은 커다란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고 앉아서 앞을 노려보았다.
석실 중앙, 묵색 무복을 입은 중년인이 엎드려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놈들이 동백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곳이 놈들에게 드러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느냐?”
“팔 할 이상입니다.”
“그럼 곧 이곳으로 몰려오겠군.”
“몰려와봐야 놈들의 무덤만 될 것입니다. 원하시면 사혼수라를 준비해두겠습니다.”
탁무겸은 중년인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말 한마디만 듣고도 뜻을 바로 알아드는 그의 태도에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야은.”
“예, 주군.”
“본좌가 도악만 보느라 그 동안 너를 너무 소홀히 했구나.”
“아니옵니다. 그러한 마음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사혼수라의 상태는 어떠하냐?”
“열둘, 모두 완성을 앞두고 있는 상태이옵니다. 사흘만 지나면 움직일 수 있사옵니다.”
“그래? 그거 기분 좋은 소식이군.”
아수라사혼대법으로 만든 사혼수라는 개개인의 위력이 독고민의 마령체에 뒤지지 않는다.
본래 그는 구천성을 멸한 후 청산궁을 상대할 때 사혼수라를 사용하려고 했다.
비록 장천운을 사혼수라의 대장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나, 현재 상태만으로도 강호를 혈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단 하나 걸림돌은 역시나 장천운이다.
그리고 동방무기가 데리고 있는 그 괴물 같은 놈 역시 신경이 쓰였고.
‘장천운, 그놈만 못 움직이면…….’
탁무겸의 검은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 * *
장철산은 씁쓸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남사명의 의술 덕분에 위험한 상황은 넘겼다.
그런데 몸보다 정신적인 고민이 더 컸다.
‘천운이 알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 뭐라고 하지?’
숨기는 것도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미 단목화종도 입이 근질거리는지 엉뚱한 소리를 곧잘 했다.
게다가 무 노인까지 나타나지 않았는가.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냥 말해버릴까?
그런 후 장천운의 선고를 기다리는 거다.
하지만 장천운이 자신을 원망하며 냉정히 돌아서 버리면…….
밝혀지기 전에 도망칠까?
한편으로는 그게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도망가자니 이러다 자식과 영원히 헤어질 것 같고, 말하자니 장천운의 반응이 걱정되고.
만약 장천운이 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면 못 견딜 것만 같았다.
“무슨 걱정을 하느라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모르느냐?”
갑자기 옆에서 단목화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장철산은 고개를 돌렸다.
“오셨습니까?”
“네놈 명이 질긴 걸 보면 천운과의 일도 잘 해결될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느냐?”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그래도 전보다는 낫구나. 갈등이라도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지금 밝히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 상황을 봐서 말하는 게…….”
“그러다 시간만 가고, 영원히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정말로 미안해질 거다.”
“저도 압니다.”
“고집쟁이 같은 놈.”
단목화종이 뭐라 하던 장철산은 마음을 굳혔다.
“천운이 눈치 채기 전에 떠나야겠습니다. 숙부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놈이 떠나면 나 혼자 남아서 뭐하게?”
“천운이에게 줄 것 있으면 빨리 주십시오. 빠르면 내일이라도 떠날지 모르니까요.”
“청산자를 죽인 놈인데, 내가 가진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그래도 있지 않습니까?”
“뭐가 있어?”
“탁무겸에게 당하고도 삼층 지하뇌옥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방법 말입니다.”
탈출방법을 말하는 게 아니다.
탁무겸이 단목화종을 뇌옥에 가둘 때 공력을 멀쩡히 놔두고 가두었을까?
아니었다. 탁무겸은 단목화종의 혈도를 철저히 폐해서 무공을 쓰지 못하게 했다. 기해혈을 막아버린 것은 기본이었고.
그런데도 탈출했다. 공력을 칠 할이나 보유한 채.
장철산은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탁무겸도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
“어머니가 그러셨죠. 혹시라도 숙부님을 만나서 싸우다가 운 좋게 제압할 수 있으면, 절대 혈도만 제압하지 말고 천잠사를 사용해서 두 손을 뒤로 묶은 다음 다리를 부러뜨려야 못 도망간다고요.”
단목화종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썩을…… 동생이라고 달랑 하나 있는 게…….”
“불사회환공인가 뭔가 하는 괴상한 무공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숙부님이 젊을 때 우연히 얻은 그 괴상한 무공이 혈도 제압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면서요?”
“뭐,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데 탁무겸이 혈도를 제압했을 때는 왜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혈도를 옮기거나 풀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그랬지.”
공력이 삼 할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혈도를 풀어도 도망칠 수 없었다. 괜히 탁무겸의 신경을 건드려봐야 더 험한 꼴만 당할 뿐.
“좌우간 그걸 천운에게 주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겁니다.”
더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죽으면 갖고 갈 것도 아니니 못줄 것 없다. 그런데 그녀석의 공력과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나중에 조건을 걸고 주려 했는데…… 자신을 외할아버지로 인정하면.
그래서 한 번 더 오기를 부려보았는데 소용이 없었다.
“금혼액을 복용하고 녹령마기를 흡수했는데도 멀쩡한 걸 보면, 그 괴상한 무공과도 잘 맞을 겁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불사회혼공 역시 마기와 잘 어울렸으니까.
더구나 장천운 아닌가 말이다. 이제 겨우 이십대 초반에 초인경에 올라선 진짜 괴물.
“끄응, 알았다. 주면 될 거 아니냐?”
* * *
사밀령을 통해서 구천성과 각 지부에 연락을 취하고 암천문의 총단이 발견되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사마경의 몸은 빠르게 좋아졌다.
다음 날, 한 번 더 마기를 제거하자 녹색 그림자가 더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자청해서 호위에 나선 젊은 고수들은 그녀가 모습을 보일 때마다 멍한 표정이 되었다.
갓 태어난 사슴처럼 연약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에서 강인할 때와 또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 것이다.
장천운이야 속으로 혀를 찼지만.
‘쯔쯔쯔, 저 모습에 속다니. 소성주가 얼마나 독한데.’
단리성우와 단승, 사공명신만 멀쩡했다.
연송하에게 콩까지가 씐 단리성우에게 사마경은 그저 남보다 많이 아름다운 남의 여자였다.
단승과 사공명신이야 오직 두양양 밖에 없었고.
그런데 그날 저녁, 단목화종이 장천운을 찾아왔다.
“받아라.”
장천운은 단목화종이 불쑥 내민 책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잘해야 열 장이나 될까 싶은 얇은 책이었다.
“뭡니까?”
“네가 나를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라.”
“구해준 거야, 노선배님께서 저와 소성주를 구해주셨죠.”
노선배님이 아니라 할아버지니라!
단목화종은 목이 근질거리는 것을 꾹 참고 별 것 아닌 듯 말했다.
“좌우간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니까 받아! 힘들게 하지 말고.”
장천운은 할 수 없이 책을 받아들었다.
책에는 제목도 적혀 있지 않았다. 며칠 사이에 만든 듯 먹향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새 책이었다.
“불사회환공(不死回還功)이라는 거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익혀 놓으면 언젠가는 써먹을 때가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노선배님.”
할아버지라니까!
단목화종은 눈을 한번 부라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커험, 그럼 쉬어라.”
그날 밤, 단목화종과 장철산, 적상천이 객잔을 떠났다. 아무런 말도 없이, 몰래.
장천운은 그 사실을 알고 아쉬움이 컸다. 아마 단목화종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경우를 우려해서 떠난 듯했다.
아직은 단리황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은 듯했지만, 그의 정체가 알려질 경우 예기치 못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장철산의 정체 역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았고.
‘그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는데…….’
자신이 들어갈 때마다 기절한 듯 누워 있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 알았으면 억지로라도 깨워서 물어볼 것을.
장천운은 아쉬움을 달래려고 단목화종이 준 책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꼬박 날밤을 샜다. 기껏해야 열 장밖에 안 되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그가 책에서 눈을 뗐을 때는 이미 창밖이 환하게 밝아진 후였다.
‘세상에 이런 기묘한 무공이 있다니…….’
책에 적혀 있는 것은 그가 익힌 환술에 뒤지지 않는 괴상한 구결이었다.
무공이되 무공이 아닌 괴상한 구결.
덕분에 그는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이 불사회환공을 적절히 이용하면, 팔에 뭉쳐있는 마기를 처리할 수 있을지도…….’
* * *
“구천성이 암천문에 역공을 가했습니다. 그로 인해 탁무겸은 또다시 도주했습니다.”
“대단하군, 대단해. 암천문이 제대로 당했어.”
서문주경은 동백현으로부터 북동쪽으로 백여 리 떨어진 구호진에서 제갈승우의 보고를 받고 입술을 비틀었다.
묘한 전율이 일었다.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암천문이 그렇게 당할 줄 누가 알았으랴.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신경을 끊어질 것처럼 당기게 했던 암천신마가 하찮게 생각될 정도였다.
“사마경은?”
“병을 치료한 것처럼 보인다 합니다.”
“그래? 그럼 구천성이 다음에 어떻게 할 거라 보는가?”
“그냥 돌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서문주경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번뜩였다.
“그래, 그러겠지. 구천성의 잔여세력 중 최고의 정예를 동원했는데 그냥 가기에는 섭섭할 거야.”
“아마 암천문의 뒤를 쫓아서 목줄을 완전히 끊어놓으려 할 겁니다. 이대로 놓아주면 언제 또 물어뜯을지 모르니까요.”
“맞는 말이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회주?”
제갈승우가 한마디 던지고 서문주경을 응시했다.
서문주경이 다시 입술을 비틀며 냉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