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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41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412화

장천운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탁무겸은 아직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알았다면 굳이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열을 셀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여기 두 사람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를 것이다.”

‘비겁한 놈!’

장천운은 분노가 솟구쳤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더 버티다가 정말로 두 사람의 손가락이라도 잘리면 큰일이었다.

탁무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자였다.

장천운은 탁무겸이 셋을 셀 즈음 나무 위에서 몸을 날렸다.

무영무종에 부풍비를 가미한 그는 한 줄기 바람처럼 공터를 가로질렀다.

순간, 좌우 절벽 쪽에서 삼십여 명이 떨어져 내리며 두 손을 휘둘렀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공터 위를 흐르는 희미한 바람이었다.

쉬쉬쉬쉭! 츠츠츠츠츠.

수백 개의 온갖 암기가 공터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장천운은 무형의 강기로 몸을 보호한 채 이동했다.

암기를 먼저 날린 암천문 무사들은 그가 있을 법한 곳을 노리고 무조건 무기를 휘둘렀다.

여명이 반사된 검과 도가 허공에서 황홀한 빛무리를 이루었다.

장천운도 피하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백이든, 이백이든, 모조리 벤다!’

살기를 일으킨 그는 연검을 쥐고 검은 그림자들 사이를 누볐다.

공격에 나선 암천문 무사들의 옷과 몸이 갈라지면서 피가 튀었다.

암천문 무사들은 동료를 미끼처럼 이용했다. 옷이 갈라지면 그 즉시 그 일대를 철저히 차단하며 공격했다.

그러나 상대는 초인경에 이른 장천운이었다.

숨 몇 번 쉬는 사이에 십여 명이 낙엽처럼 떨어져서 나뒹굴었다.

때로는 서너 명이 한꺼번에 베어져서 저승으로 달려갔다.

그런데도 물러서는 자가 없었다.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자들이 공격에 가담했다.

소리를 지르는 자도 없었고, 죽어가면서 비명을 지르는 자도 없었다. 오직 허공을 가르는 검풍 도풍만이 음산한 계곡을 난도질했다.

장천운도 살수를 아끼지 않았다. 연검에서 뻗어나간 검강이 무기와 육신을 동시에 갈랐다.

누렇게 말라가던 공터가 시뻘건 혈화와 시신으로 뒤덮여갔다.

그렇게 암천문 무사 사십여 명이 쓰러졌을 때다.

짝짝짝!

탁무겸이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암천문 무사들이 공격을 멈추고 썰물 빠지듯 뒤로 물러났다.

괴이한 정적이 공터를 무겁게 짓눌렀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정말 대단하군. 보면 볼수록 신묘한 신법이야.”

탁무겸의 감탄 섞인 칭찬이 다시 계곡을 울렸다.

장천운도 모습을 드러냈다. 탁무겸이 나선 이상 환술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었다.

탁무겸까지의 거리는 오 장 정도. 그는 연검을 사선으로 내린 채 탁무겸을 노려보았다.

“그분들을 보내주시오.”

“사마경을 데려와라. 그럼 보내주지.”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아실 텐데?”

“그럼 나도 풀어줄 수 없다.”

“소성주를 부인으로 삼겠다고 하지 않았소?”

“분명히 그랬지.”

“그럼 일단 살려야하지 않겠소?”

“그러니 데려오라는 것 아니냐?”

“소성주께선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시오.”

“오기 싫다면 죽어야지. 본좌를 거부하는 계집은 죽어도 싸다.”

의외로 강경한 탁무겸의 말에 장천운은 입이 바짝 말랐다.

초조해진 그는 탁무겸의 자존심을 건드려보았다.

“당신도 남자라면, 여자의 목숨을 놓고 흥정하는 치졸한 짓은 하지 맙시다.”

“네가 정말 사마경을 좋아한다면 이리 데려와라. 살려야 할 것 아니냐?”

탁무겸의 밀당 솜씨도 장천운에게 뒤지지 않았다.

입술을 비틀며 조소를 지은 그는 우수를 들었다. 그의 우수에서 시커먼 기운이 일렁거렸다.

“일단 사마경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로 줄여야겠군. 그럼 너도 별 수 없겠지.”

단목화종을 죽이겠다는 뜻.

“잠까아안! 멈춰!”

“왜? 데려오겠느냐?”

탁무겸을 노려보던 장천운이 입술을 깨물며 무릎을 꿇었다.

털썩.

그러고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려오고 싶어도 소성주는 절대 오지 않을 거요. 차라리 목숨을 포기하면 포기했지. 귀하도 잘 알잖소? 그러니 나로선 달리 방법이 없소. 부탁이오. 그분을 풀어주시오.”

탁무겸도 그가 무릎까지 꿇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계집 때문에 무릎을 꿇다니, 독한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순진한 놈이로구나.”

“소성주를 살릴 수만 있다면 더한 짓도 할 수 있소.”

“그래?”

탁무겸의 눈빛이 묘하게 번들거렸다.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렇소. 단, 소성주께서 마기를 몰아내고 정상을 되찾았을 때 이야기요.”

“너의 모든 것을 걸고 약속할 수 있느냐?”

그때 단목화종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안 된다! 그놈에게 아무런 약속도 하지 마라!”

장천운이라 해서 어찌 그러고 싶을까.

그러나 시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사마경을 살리려면 달리 방법이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는 착잡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단목화종을 보며 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소성주의 호위무사를 떠나서, 저는 그 사람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든 못할 것이 없습니다.”

“안된다니까! 내가 너를 저놈의 허수아비나 만들려고 살린 줄 아느냐!”

“숙부님 말씀을 들어라! 탁무겸은…….”

핑!

탁무겸이 지풍을 날려서 단목 노인과 장철산의 아혈을 막았다.

그러고는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이제 조용해졌군. 어디 다시 이야기해볼까? 정말 약속할 수 있느냐?”

“귀하가, 마기를 몰아낸 소성주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그야 물론이지. 본좌는 부인으로 삼으려는 여자를 해칠 정도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장천운은 이를 갈았다.

부인 운운하는 소리가 자신을 놀리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디 말해보시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겠소.”

“물론 네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지.”

탁무겸은 입술을 비틀며 품속에서 옥병을 하나 꺼냈다.

“일단 이것부터 복용해라.”

“그게 뭐요?”

“네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약이다.”

“독이오?”

“독은 아니다.”

장천운은 독이 아니라고 하자 더 불안했다. 옥병 안에 든 물체가 뭔데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것을 복용했는데도 당신이 저분을 소성주께 보내주지 않으면 나만 사기 당하는 것 아니오? 일단 저분부터 보내주시오. 그럼 그걸 복용하겠소.”

탁무겸이 의외로 그 말은 순순히 들어주었다.

“좋아, 그럼 먼저 보내주지. 대신 둘은 안 된다. 저 늙은이만 풀어주지.”

사마경의 마기를 몰아낼 수 있는 사람은 어차피 탁무겸과 단목 노인밖에 없다.

장철산의 정체를 모르는 그로선 단목 노인이 우선이었다.

“좋소. 그럼 어서 그분을 풀어주시오.”

“본좌의 수하들이 사부를 너의 동료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거다. 하지만 명심해라, 네가 허튼수작을 하면 저 늙은이와 장철산의 목숨이 사라질 것이다.”

탁무겸이 손가락을 튕겨서 단목화종의 마혈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아혈은 나중에 풀리도록 공력을 조절했다.

그러고는 한쪽을 향해 명을 내렸다.

“들었느냐? 저 늙은이를 동백현의 사마경에게 데려다줘라.”

곧 무표정하다 못해 석상처럼 느껴지는 두 무사가 나와서 단목화종의 양쪽에 바짝 섰다.

단목화종은 바로 떠나지 못했다.

사실 남는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더구나 아혈이 뚫리지 않아서 말도 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부자가 탁무겸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 자신의 혈육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어디 그뿐이랴. 아들은 함께 있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차라리 늙은 자신이 죽어서 두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때 장천운과 눈이 마주쳤다.

장천운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울렸다.

<일단 가십시오. 제 걱정은 마시고. 어서요.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 장천운이 어디 보통 아인가? 모두가 하늘이라 생각했던 천외를 무너뜨린 아이 아닌가.

‘저 아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다.’

단목화종은 장천운을 믿기로 했다.

가능성은 따지지 않았다. 어차피 가능성이 구 할이라 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 할에 발목 잡히는 게 세상사 아니던가.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려서 공터를 떠나갔다.

장천운은 단목화종이 공터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일단 단목화종이 계곡을 나가게 되면 흑월대가 보호할 것이다.

본래는 다른 지시가 있었지만, 그러한 지시의 중요도는 언제든 상황에 따라서 바뀔 수 있었다.

“이제 복용해라.”

탁무겸은 그 말만 하고 옥병을 장천운에게 던져주었다.

옥병을 받아든 장천운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옥병의 뚜껑을 열었다.

차라리 독이라면 좋을 텐데.

그의 몸은 이제 독이 통하지 않았다. 흑명지독과 백령혼을 복용한 후 독에 면역이 생긴 것도 있었고, 초인경에 오른 후 독은 그에게 큰 해를 끼치지 못했다.

“나만 이런 것을 복용하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소?”

“싫으면 복용하지 마라. 대신 그 늙은이도, 사마경도 죽을 거다.”

“비겁한……!”

“비겁? 와하하하! 암천문의 주인에게 비겁함을 논하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구나.”

장천운은 이를 악문 채 탁무겸을 노려보았다.

어쨌든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옥병 안에 든 물체가 뭐든.

‘지금쯤은 계곡을 빠져나갔겠군.’

나름대로 계산을 마친 장천운은 옥병을 들어서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진득한 액체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탁무겸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제야 대화를 할 분위기가 된 것 같군.”

“어디 말해보시오. 내가 또 뭘 해주길 바라는 거요?”

“본좌와 함께 가줘야겠다. 그곳에서 본좌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그 일이 뭔지는 몰라도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걱정해도 될 일이다.

“단목 노인이 소성주의 마기를 제거한 것이 확인되면 나 역시 약속을 지킬 거요.”

“그 정도야 기다려주지. 후후후후.”

 

단목화종이 떠나간 공터에 괴괴한 침묵이 흘렀다.

탁무겸도, 장천운도 서로를 노려보며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암천문의 고수 수백 명이 세 겹으로 장천운을 감싸서 빠져나갈 구멍 자체를 철저히 차단했다.

그 사이 장천운의 내부에서는 기이한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탁무겸이 건넨 옥병의 액체로 인해서 발생한 기운인 듯했다.

그 기운은 극독도 아니었고, 무공을 흐트러뜨리는 산공독의 기운도 아니었다. 뭔지 모를 께름칙함이 느껴지고 머리가 지끈거리기는 하는데,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장천운은 그 괴상한 기운을 강제로 제어해서 곡지혈 쪽에 뭉쳐 놓으려 했다. 가능성이 있든 없든 하는 데까지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데 우습게도 독각독룡의 독기를 다루며 고생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반발이라도 하듯 움직이지 않던 기운이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움직였다.

‘됐어!’

한번 움직인 기운을 제어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결국 그는 괴상한 그 기운을 왼팔에 뭉쳐놓을 수 있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올 때까지만 버텨주면…….’

바로 그때, 백 장 높이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누군가가 떨어져 내렸다.

탁무겸은 그자가 이십여 장 위에까지 내려왔을 때서야 인기척을 느끼고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웬 놈이……!”

한 소리 내지르려던 그는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고 대경했다.

“저놈은……!”

장천운도 절벽에서 뛰어내린 자를 보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자였다. 무 노인과 함께 있던 자. 장철산과 나란히 있던 자.

소천이라 했던가?

백장 절벽을 뛰어내린 소천은 곧장 탁무겸 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장천운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듯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심지어 장철산조차도 쳐다보지 않았다.

구암사 중 살아남은 넷이 먼저 소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미 소천은 탁무겸의 머리 위 오 장 위까지 내려와 있었다.

검은 가죽가면을 쓰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짓눌렀다.

두 팔을 활짝 편 그가 쌍장을 내리치며 탁무겸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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