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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41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411화

단목화종의 눈빛이 흔들렸다.

탁무겸이 말한 용이 누굴 말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힘 다 빠진 늙은이가 무슨 미끼가 될 수 있단 말이냐?”

“사실 그게 의문입니다. 공력이 삼 할도 안 남은 분이 어떻게 명옥에서 빠져나왔을까.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말입니다.”

단목화종이 장천운을 치료하느라 공력을 소진한 걸 알지 못한 이상 탁무겸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단목화종이나 장철산도 알려줄 마음이 없었다.

“어쨌든 사마경의 몸에 침습한 녹령마기를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사부님뿐입니다. 아마 제 생각이 옳다면, 곧 장천운이 저를 찾아올 겁니다.”

“그럼 나만 붙잡아 놓고 철산은 보내줘라.”

탁무겸이 새하얗게 웃었다.

“철산은 따로 쓸모가 있지요. 우문각이 아마 무척 반가워할 겁니다.”

“설마 아직도 옛날 일을 잊지 못해서 복수를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 말에 탁무겸의 눈초리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늘어지며 한광이 번뜩였다.

“그 일을 어찌 잊겠습니까. 그때 일로 인해서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는데.”

“어리석은 놈. 그건 네 욕심 때문이었지, 철산 때문이 아니었다.”

탁무겸의 시선이 장철산에게로 향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철산?”

“탁 형과의 그 일은 실수였을 뿐이오.”

“실수라…… 그래, 실수지, 그것도 아주 큰 실수. 그 일로 인해서 내 가슴에 한이 쌓였으니까.”

오래 전, 단목화종이 장철산을 후계자로 삼으려 한다는 걸 알고 몰래 불러내서 비무를 벌였다.

그 비무에서 승자는 그였다. 그런데 장철산을 끝장내겠다는 마음에 무리를 하면서 약간의 실수를 했다.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해서…… 그의 양물이 절반쯤 잘렸다.

다행히 빨리 조치해서 폐기(?)시켜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는 정신적인 압박감 때문에 여인과 관계를 가질 수가 없었다.

“이제와 말이오만, 나 역시 그때 혈맥을 다쳐서 철혈마절을 영원히 완성할 수 없게 되었소. 탁 형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탁형을 원망하지 않았소.”

그 점은 탁무겸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너는 사부의 조카로서 가진 것이 많았으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천애고아로 자라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빼앗기기가 싫었어. 그리고 빼앗아간 놈은 원수로 여겼지. 그게 너와 나의 차이라면 차이일 게다.”

“어쨌든 나로 인해 아픔이 있었다면 미안하오.”

“그만해라, 철산. 네가 그리 말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변할 것도 아니니까.”

“아마 장천운이란 아이는 이곳에 오지 않을 거요.”

“과연 그럴까? 후후후후, 두고 보면 알겠지. 그런데 왜 네가 그 아이를 감싸는지 모르겠군.”

나직이 웃음을 흘리며 말하던 탁무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점점 눈이 커졌다.

“그래, 그렇군. 너와 그놈…… 많이 닮았어. 설마……?”

장철산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괜한 상상은 마시오. 탁 형도 미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잖소.”

탁무겸도 나름대로 조사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장철산에게 자식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너와 그놈이 완전히 남남인 관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후후후후, 정말 재미있는 일이야.”

그때 계곡 바깥쪽에서 한 사람이 빠르게 모닥불 쪽으로 다가왔다.

탁무겸의 이 장 앞에서 멈춰 선 그자가 오체복지하며 보고를 올렸다.

“아뢰옵니다. 장천운이 동백현으로 향하고 있다 하옵니다.”

“일행은 몇 놈이나 된다 하더냐?”

“모두 삼십 명쯤 된다 하옵니다.”

“흠, 급하긴 급했나 보군. 그 인원으로 나를 쫓아오다니. 하긴 부상자가 많고, 파천회와 무림맹이 쳐들어올까 걱정되어서 어차피 데리고 올 놈도 많지 않았겠지.”

탁무겸이 조소를 지으며 허리를 세웠다.

앞에서 타오르던 모닥불의 불길이 그를 따라서 높이 솟구쳤다.

“빠르면 해가 뜨기 전에 놈이 올 것이다. 모두 준비하고 기다려라.”

순간, 일대의 숲속에서 유령 같은 그림자가 쑥쑥 솟아났다.

탁무겸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단목화종과 장철산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그 아이를 내 앞에 무릎 꿇리는 걸 보게 될 거요. 나는 그 아이를 지옥사신의 대장으로 만들 생각이오.”

단목화종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 아이에게 금지된 아수라의 대법을 펼칠 작정이냐?”

“성공한다면 천하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될 거요, 세상 누구도 사혼수라를 이끄는 장천운을 막지 못할 테니까. 후후후후후.”

 

* * *

 

새벽녘, 동백현에 도착한 장천운은 비령팔조 조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탁무겸과 암천문 무사들이 사십 리가량 떨어진 계곡 안에 있다고 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보고를 다 들은 장천운은 일단 사마경을 전에 가본 적이 있던 풍원객잔으로 데려갔다.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손님을 떼로 받은 왕칠은 입이 한 자는 튀어나왔다.

하지만 모두 칼을 든 무사들이어서 불만은커녕 얼굴을 찡그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손님 중에 하나가 전에 본 얼굴이었다.

‘어? 저 자식은 전에 우리 집에서 장작을 팼던 놈인데, 출세했네.’

분위기만 심각하지 않으면 오랜만에 만났다고 반가워했을 텐데, 아무래도 오늘은 말을 걸지 않는 게 나을 듯했다.

사마경은 객잔에 들어간 직후 깨어났다.

영호관이 수하들에게 눈짓을 하고 방을 나가자, 방 안에 두 사람만 남았다.

장천운은 사마경이 누워있는 침상 한쪽에 걸터앉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이틀. 사마경의 목에 드리워진 녹색기운이 더욱 짙어진 상태였다. 태연하려 했지만 몸이 저절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보는 장천운의 가슴도 먹먹하게 떨렸다.

“탁무겸이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소성주께선 이곳에서 쉬며 기다리십시오.”

“함께 가면 안 돼?”

“안 됩니다.”

“며칠만 더 지나면 단풍도 질 텐데.”

“단풍은 나중에 구경하셔도 됩니다. 다 나은 다음에요.”

“알았어, 그냥 심심할까 봐 해본 소리야.”

“이집 요리가 제법 맛있습니다. 마음껏 시켜 드세요.”

장천운은 사마경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너스레를 떨었다.

사마경도 장천운의 마음을 알기에 박자를 맞춰주었다.

“천운 앞으로 달아놓고 먹으면 되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제가 전에 이곳에서 장작 좀 팼습니다. 덤도 많이 줄 겁니다.”

“정말이야?”

“세 사람이 할 것을 혼자 해줬더니 언제든 오라고 했죠.”

“풋.”

가볍게 웃은 사마경은 물끄러미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장천운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수많은 말이 오갔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너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꼭 낫게 해드릴 겁니다. 저를 믿고 조금만 더 참으세요.’

‘사랑해, 천운.’

‘당신을 사랑합니다, 경…….’

사마경이 누운 채로 두 손을 뻗었다.

장천운은 마주 손을 뻗어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천운. 행복하게 해줘서.”

모기 날갯짓처럼 나직한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사마경을 안은 장천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말은 나중에…… 아주 먼 훗날에 듣겠습니다.’

 

객잔을 나선 장천운은 흑월대와 흑영대를 대동하고 달렸다.

어쩌면 함정을 파놓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탁무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자였다.

그래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최소한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는 소성주께 돌아가야 한다.’

너무 늦으면 단목 노인을 구한다 해도 마기를 몰아낼 시간을 놓칠 수 있는 것이다.

 

 

 

153장 그분은 누굽니까?

 

 

동백산 동쪽의 계곡 어귀에 들어섰을 때 동쪽 산머리 위가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령팔조 조원이 보고를 올렸다.

“저 안쪽으로 길을 따라서 십 리쯤 들어가면, 거대한 암봉에 막혀서 계곡이 좌우로 갈라집니다. 그 중 오른쪽으로 꺾어진 계곡 안에 놈들이 있습니다.”

장천운은 흑월대와 흑영대 대원들을 돌아다보았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들어갈 거요. 그대들은 내가 지시한 대로 하시오.”

오면서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흑월대와 흑영대원들은 불안했지만 장천운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직 어둠이 깔려 있는 산속은 암천문의 세상이다. 자신들이 가서 함께 싸운다고 해도 어차피 암천문을 이길 수 없는 이상 장천운의 행동에 방해만 될 뿐이다.

“알았수.”

“조심하쇼.”

“살아서 술 한 잔 사쇼.”

단승과 사공명신, 혁련기가 온갖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흑영대를 이끄는 조백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장천운은 그들을 둘러본 후 계곡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욱, 앞으로 나아가던 그의 신형이 어느 순간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장천운은 무영무종과 부풍비를 적절히 섞어서 펼치며 전진했다.

비령조원의 말대로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원시림 사이로 외길이 나 있었다.

길 양쪽은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로 하늘이 거의 다 가려져 있었다. 그래선지 동이 트기 시작했는데도 밤처럼 어두침침했다.

그런데 그가 원시림의 외길로 들어섰을 때였다.

수풀이 빽빽한 곳, 어두침침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풀을 잔뜩 뜯어서 위장을 한 그는 놀랍게도 적상천이었다.

<적 형.>

갑작스런 전음에 깜짝 놀란 적상천이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자신의 뒤에 나타난 장천운을 보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장 형!>

<어떻게 된 거요?>

<두 분 어르신이 놈들에게 잡혀갔소. 그래서 계속 뒤쫓아 왔는데, 저 안쪽은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소.>

<내가 들어갈 것이니, 적 형은 즉시 계곡을 나가시오.>

적상천은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단목화종에게 그 동안 많은 걸 배웠지만 아직은 암천문의 무사 하나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저 앞으로 가면 큰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일 거요. 그 안쪽부터 놈들이 쫙 깔려 있소. 꼭 어르신들을 구해주쇼.>

적상천을 내보내고 얼마나 안으로 들어갔을까, 적상천이 언급한 ‘나란히 서 있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보였다.

그곳에서부터는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곤충이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고 있는데도 계곡은 음산했다.

조금 더 가자 저 멀리 밝은 빛이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니 모닥불인 듯했다.

장천운은 모닥불로부터 이십여 장 떨어진 곳, 칠팔 장 높이의 나무 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동쪽 산 위가 서서히 밝아오고 있어서 계곡 일대를 살펴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의 앞에는 누렇게 변해가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있는 공터는 직경이 삼십 장쯤 될 듯했다.

이렇게 험한 계곡 안에 이토록 넓고 평평한 곳이 있다니.

모닥불은 공터 저쪽 끝자락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닥불 한쪽에 탁무겸이 앉아 있고, 한쪽에 단목 노인과 장철산이 앉아 있었다.

그 외에 보이는 사람은 열 명도 안 되었다. 탁무겸을 호위하는 십이암귀 중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장천운은 공터 주위에 적어도 이삼백 명의 무사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범위를 더 넓게 잡으면, 비령조원의 말대로 오백도 넘을 듯했다.

아직은 그들 중 누구도 무영무종을 펼친 장천운을 발견하지 못했다.

문제는 탁무겸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공터를 가로질러야 한다는 것이다.

환술을 펼쳐서 모습을 감추고 날아간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상대는 초인경의 고수인 탁무겸이었다.

그걸 생각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걸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 탁무겸은 자신의 환술이 얼마나 신묘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성패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잠깐 사이 여명이 온산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그때 담담한 음성이 계곡에 메아리를 만들며 울렸다.

“장천운, 왔으면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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