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1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10화
“소성주!”
“어차피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어요. 길면 사일 정도? 그 동안 침상에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긴 싫어요.”
우문각이 극구 말렸다.
“하지만 함께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오.”
“말했잖아요? 침상에서 죽음을 기다리긴 싫다고. 그 며칠 동안이라도 천운과 함께 대별산맥의 가을을 구경할 거예요. 물론 살 수 있는 길을 발견하면 더 좋겠죠.”
사마경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말끝이 살짝 떨렸다.
분간하기 어려운 차이였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여행.
어쩌면 이별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누구도 그녀의 뜻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뭐라고 할 건가, 무작정 침상에 누워서 기다리라고 할 건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를 일을 기다리면서?
“성은 총사께 맡기겠어요. 대 구천령을 드리고 갈 테니, 만약 저에게 이상이 생기면 총사께서 성을 이끌어주세요. 총사라면 충분한 자격이 있어요.”
“나는 성주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소.”
“그럼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넘기든지, 모두 알아서 하세요.”
“소성주…….”
“천운, 어떻게 생각해? 멋진 생각이지?”
장천운을 보며 묻는 그녀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장천운은 한 가지 계획을 머릿속에서 완성시켰다.
사마경이 자신과 함께 밖으로 나가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성공 가능성은 오할 정도. 그마저도 우문각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따라줘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다.
그래도 해볼 만했다.
“아주 멋진 생각입니다.”
장천운이 두 말하지 않고 찬성하자, 사마경이 편안해진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다.
“그렇지? 역시 천운은 나와 죽이 잘 맞아.”
* * *
율검당의 어둑한 지하 석실.
등잔불 하나만이 희미한 불빛을 밝히는 그곳에는 한 사람이 의자에 앉혀진 채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는데, 장천운과 공손백, 전무궁이었다.
“동백, 당신이라면 암천신마가 어디로 갔는지 알 거야. 안 그런가?”
말을 하는 사람은 장천운이었다. 공손백과 전무궁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
“솔직히 말해준다면 살려주지.”
“…….”
“살려줄 뿐만 아니라 구천성에서 내보내줄 수도 있어.”
처음으로 동백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공을 폐한 혈도도 되살려주지. 어때?”
장천운은 마지막 떡밥을 던지고 기다렸다.
욕망을 위해 암천신마를 택한 자다.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말 못할 이유가 없으리라.
마침내 동백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믿는단 말이냐?”
“나는 당신과 달라. 약속은 반드시 지키지. 내가 손해를 본다 해도. 그리고 어차피 당신은 선택할 길이 없어.”
“이러나저러나 죽을 거라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하지 않을 거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반드시 약속을 지켜. 당신은 말하지 않을 경우 아주 곤란해질 거고.”
“그 따위 협박으로는 내 입을 열 수 없다, 장천운.”
“그러겠지. 암천문에서 지옥수련을 거쳤을 테니 아마 인내심이 강할 거야.”
장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에 있는 쇠망치를 잡았다. 가끔 하다 보니 이제는 쇠망치가 제법 손에 익숙했다.
“손가락 발가락이 다 부서진 후에도 말하지 않으면 당신을 인정하지. 뭐, 그래봐야 처절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겠지만.”
무심하면서도 나직한 목소리가 지하석실을 잔잔하게 울렸다.
“몇 사람이 자신 있게 버티다가 결국 손가락 병신이 되었어. 한 사람은 네 개, 한 사람은 여덟 개…… 아니 아홉 개인가? 좌우간 결국은 입을 열었지. 참 이상해. 어차피 입을 열 거, 왜 손가락이 부서지고 난 후에 입을 여는 건지 모르겠어.”
탕, 탕.
장천운이 나직이 말하고는 망치로 탁자를 천천히 쳤다.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지금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손가락을 부수고, 뼈를 추려내고, 힘줄을 뽑아서라도 당신 입을 열 거야. 그러다 죽으면 어쩔 수 없고.”
옆에서 듣고 있던 공손백은 등골을 타고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했다.
장천운이란 놈이 저렇게 독한 놈이었나 싶었다.
동백이 정말 버틸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자 몸이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렸다.
전무궁은 표정이 굳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황궁에서 고문하는 걸 자주 봤던 사람이다. 하기에 장천운이 허언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눈빛을 보고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정말 무서운 친구야.’
그 사이 장천운이 동백의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익숙한 솜씨로 손을 고정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동백, 암천신마가 어디로 갈 거라고 생각하지?”
“나는…… 모른다.”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동백의 새끼지손가락 하나가 뭉개졌다.
“끄읍!”
동백이 눈을 부릅뜨며 신음을 삼켰다.
설마 말 한마디 하자마자 망치를 내려칠 줄은 그조차 생각을 못한 것이다.
“뼈가 단단해서 잘 부서지지 않는군.”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잘 됐어. 한 번 더 반복해도 될 것 같아.”
부서진 손가락을 보며 말하던 장천운이 시선을 동백의 눈으로 옮겼다.
“다시 묻지. 암천신마가 어디로 갈 거라 생각하지?”
고저 없는 목소리.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무심한 눈빛.
그래서 동백은 더 소름이 끼쳤다.
어쩌면 말한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부술지 모른다.
자신이 굳이 탁무겸의 편을 들 필요가 있을까?
공포의 존재인 탁무겸이 장천운에게 패해서 도망쳤다고 하지 않던가.
그는 신이 아니고, 앞에 있는 놈은 아수라의 화신이다.
그는 자신을 살려줄 수 없고, 앞에 있는 놈은 자신을 처참하게 죽이고도 남을 놈이다.
“내, 내가…….”
쾅!
두 번째로 무명지가 부서졌다.
“크억!”
무명지가 부서지면서 옆쪽까지 충격이 전해지는 바람에 고통이 배가되었다.
“말이 느려. 세 번째야. 암천신마가 어디로 갔지?”
“내, 내가 아는 건…… 그가 대별산맥을 타고 동백산의 음양곡이라는 곳으로 간다는 것뿐…….”
동백이 고통과 짜증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의지가 이 정도에서 무너졌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죽음보다, 극렬한 고통보다 더한 공포였다.
망치를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던 장천운이 그를 응시했다.
여전히 차갑고 무심한 눈빛으로.
동백이 체념한 듯 미리 말했다.
“하아, 진짜다. 정말 그게 내가 아는 전부다.”
순간, 장천운이 망치를 벼락처럼 내리쳤다.
쾅!
“헉!”
동백도, 공손백도, 전무궁도 몸을 떨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망치는 동백의 중지 앞에 떨어져 있었다.
“좋아, 믿어주지. 진실이길 바라야 할 거야. 거짓으로 판명되면…… 모든 뼈가 부서져서 몸통으로 기어다니는 신세가 될 테니까.”
망치를 내려놓고 돌아선 장천운의 눈빛과 목소리는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돌아올 때까지 동백을 이곳에 가두어 두십시오. 사실이 확인되면 돌아와서 풀어줄 겁니다.”
전무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렇게 하지.”
공손백은 동백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동백이 이리 쉽게 무너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저런 놈을 믿고 구천성을 얻으려 했다니…….’
* * *
교왕 둔가부는 내상이 워낙 심해서 아직 방을 벗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그가 애용하는 교자는 항상 깨끗했다. 교자를 메는 사웅이 할 일이 없으니 하루에 한두 번씩 닦아댄 것이다.
사마경은 바로 그 둔가부의 교자를 남사명과 함께 타고 가기로 했다.
교자를 메는 것은 사웅 차지였다. 사웅은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는 듯 싱글벙글했다.
그들은 두 사람이 탄 것에 대해서 조금도 불만이 없었다. 두 사람을 합쳐도 무게가 둔가부의 절반밖에 안 되었으니까.
교자의 호위는 구천호령과 흑월대, 흑영대가 맡았는데, 변복을 해서 정체를 감추었다.
그들은 강련곡과 연결된 서문을 통해서 성을 나섰다.
구천삼대 사람들은 그들 일행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설마 교자에 소성주가 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구천성을 나선 그들은 대별산맥을 따라서 곧장 동쪽으로 향했다.
비령조와 명안대가 한발 먼저 암천문의 족적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사마경 일행은 동쪽으로 이동하며 그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사마경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교자 안은 겉보기보다 넓었다. 남사명과 함께 탔는데도 누워도 될 만큼 컸다. 게다가 흔들림도 거의 없어서 마차보다 더 편했다.
녹령마기로 인해서 하루 중 정신이 드는 시간은 세 시진 정도, 나머지 시간은 계속 잠에 빠져서 보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깨어 있는 시간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소중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녀는 시간만 나면 장천운에게 말을 걸었다.
오죽하면 장천운이 ‘소성주님이 이렇게 말 많은 말쟁이일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하며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그래도 사마경은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 장천운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다.
한마디라도 더 하고, 듣고 싶었다.
구천성을 나선 지 하루가 지났다.
이제 마기는 사마경의 목을 완전히 녹색으로 물들인 상태였다. 남은 시간은 삼일.
그날 오후에도 그녀는 시간만 나면 말을 걸었다.
장천운이 대답을 뜸하게 하자, 이번에는 그것을 트집 잡았다.
“천운은 나와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 싫어?”
“누가 싫다고 했습니까? 너무 쉬지 않고 말하면 몸 상하니까 걱정되어서 그런 거죠.”
장천운의 둘러대는 기술도 이제는 수준급에 이르렀다.
“피이, 거짓말.”
“정말입니다.”
“내가 죽으면 송하하고 살 거야? 아니지, 초초도 있구나.”
“송하는 지금 단리성우에게 넘어가기 직전입니다. 그리고 초초는 동생이라니까요.”
연송하와 단리성우의 일은 사마경도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나도 그렇게 한번 대접 받으면 살고 싶은데.’라고 말하며 장천운을 자주 구박했다.
“남 노선배님은 그렇게 말씀 안하시던데?”
“…….”
장천운은 교자 안의 남사명을 흘겨보았다.
무슨 말을 한 걸까. 설마 손주 어쩌고 한 것은 아니…….
“손주사위라며?”
빌어먹을. 그 말을 한 모양이다.
보기보다 입이 싼 노인네다.
명색이 독왕이라고 불리는 분이 왜 그렇게 입이 싸?
“험, 내가 언제 손주사위라고 했나? 될지도 모른다고 했지.”
“그게 그 말이죠, 뭐.”
사마경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댔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오 리쯤 더 걸었을 때, 비령조원이 달려와서 암천문의 흔적에 대해 보고했다.
“놈들이 어제 여기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 근처를 지나갔습니다. 인원은 오백 명 이상으로 보였다는데, 이동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고…….”
나들이 나온 것 같았던 분위기가 서서히 식었다.
이제 암천문 무사들과의 거리가 지척이다.
그들의 속도가 느리다면 하루 안에 따라잡을 수 있을 듯했다.
그럴 경우 남은 시간은 이틀. 그 안에 단목 노인을 구해서 소성주를 치료해야 한다.
장천운은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대별산맥을 바라보았다.
“추적은?”
“비령팔조가 쫓아갔습니다.”
“우리가 나온 걸 저들이 알고 있다고 보시오?”
“전진만 하고 있어서 아직은 모를 가능성이 큽니다.”
구천성에서도 사마경이 밖으로 나온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지금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우문각이 알렸을 테니까.
게다가 변복까지 한 터였다.
하지만 장천운은 비령조원과 생각이 달랐다.
‘그는 알고 있을 거다. 내가 단목 노인을 찾기 위해 쫓아올 거라는 걸.’
그렇다고 해서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장천운은 속도를 높였다.
한 시진이라도 더 빨리 따라잡아야 했다.
그는 교자 옆을 따라가며 교자의 흔들림을 최대한 막았다. 사마경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충격을 최대한 줄이는 게 그녀에게도 나을 듯했다.
사웅은 교자의 무게가 갑자기 가벼워지고 흔들림조차 없자 신기한 듯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 * *
탁무겸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너머를 바라보았다.
모닥불 위에서는 노루가 통째로 익어가고 있었고, 그 너머에는 단목화종과 장철산이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혈도를 제압당한 채 강제로 앉혀진 것이지만.
적상천은 보이지 않았다. 싸움이 벌어지자 단목화종이 그부터 도망치게 만든 것이다. 어차피 함께 있어봐야 죽을 테니까.
“그냥 처박혀 계실 것이지, 뭐 하러 나오셨습니까?”
“심심해서 나왔다.”
단목화종이 콧등을 씰룩이며 차갑게 대답했다.
탁무겸이 그런 단목화종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사부께서 그런 농담을 하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군요.”
“다 네놈 덕분이지. 뇌옥에 오래 갇혀 있다 보니 혼자 노는 법을 깨닫게 되더구나.”
“앞으로는 그런 놀이도 못하게 될 겁니다.”
“당연히 그러겠지. 네놈 성격에 날 살려두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왜 죽이지 않고 여기까지 힘들게 데려온 거냐?”
“용을 한 마리 낚으려고 그럽니다. 사부님께서 미끼가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살아있는 미끼를 써야 진짜 대물을 잡을 수 있지요.”